구약인물(모세) 강해 8: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출 05:04-23)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10-23 12:24
조회
249
구약인물(모세) 강해 8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출 05:04-23)
2022. 10. 24.


프롤로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대영제국의 국민들은 극도의 혼란과 절망 속에 빠졌다.
↳사람들은 당황했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허둥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들에게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의 지도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정치 지도자인 윈스턴 처칠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종교 지도자였던 윌리엄 템플 주교였다.
↳전쟁 즈음에 영국의 여왕은, 영국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이 두 사람에게 라디오 연설을 부탁했다.
↳허무와 절망 가운데 빠졌던 대영제국의 온 국민들은,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그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 두 지도자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서로 짜고 한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의 연설의 끝 부분이 똑같았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무릎을 꿇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귀에는, 이 말이 추상적인 얘기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영국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들은 일제히 다음날 같은 시각에 모든 교회당의 종을 울리기로 했고, 교회당 종소리와 함께 전 국민의 70% 이상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까운 교회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했다.
↳국민들의 마음은 안정되었고, 전쟁에 대처할 수 있는 국민적 용기가 용솟음쳤다고, 영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9.11 테러 직후, 미국 부시 대통령과 측근들은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 모여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전 세계인의 눈은, 캠프 데이비드에 쏠려 있었다.
↳당시 긴급 모임은, 마치 교회의 임원 수련회처럼 진행됐다고 한다.
↳모두 합심해서 기도한 뒤,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이 피아노로 에메이징 그레이스(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연주했고, 라이스 안보보좌관이 젖은 눈으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또 미국의 사실상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전 국민들을 상대로 텔레비전을 통해서 희망을 주는 설교를 했다.
↳국가지도자들의 돈독한 신앙심과,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국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에서 벗어나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영국과 미국은 나라는 달라도, 국가의 엄청난 위기 앞에서, 예배를 통해서 희망을 발견했고, 위기를 극복한 점이 공통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방편은 예배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와 만나주신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신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이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도 예배이다.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것도 예배이다.
↳“예배의 성공 없이 신앙의 성공 없고, 신앙의 성공 없이 인생의 성공 없다”는 말은 틀림없다.

-지난 주일예배 때, 예배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째, 광야에서 드리는 예배이다.
↳광야는 하나님께 홀로 예배하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광야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광야는 자신을 세속에서 벗어나, 성별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적당한 장소이다.

-둘째, 절기 곧 축제 예배이다.
↳축제 예배는 예배에 있어 기쁨과 노래가 빠질 수 없다.
↳과거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기뻐하고 미래에도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하며 노래하는 것이다.
↳예배에 있어 거룩함과 경건함 필요하다.
↳그렇다고 엄숙하게 예배드리는 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만일 예배에서 기쁨과 노래를 빼버린다면, 그건 장례예식과 비슷해질 것이다.

-셋째, 희생적인 예배이다.
↳희생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예배이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음으로, 희생제물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그런데 왜 희생적인 예배여야 하는가?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예배 장소에 몸이 와서 드리는 예배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시간과 물질의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는, 단순히 민족의 해방만 부르짖지 않았다.
5:1...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3...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예배의 자유를 부르짖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다.
2...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그렇게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에게, 광야로 사흘 길쯤 가서 예배하겠다니, 바로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가 만약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그렇게 겁없이 굴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예배 의식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라고 알려주셨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예배에 정성만 다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예배에 정성을 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들어보자.
요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하나님을 알고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을 배워야 한다.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겸손해야 한다.
↳겸손함이 없이는, 절대로 배울 수 없다.
↳진리는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릎으로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싶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목말라한다.
↳겸손히 마음의 무릎을 꿇고, 말씀을 배우기에 힘쓰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자기를 찾아온 동기가 불순해 보이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5절에 나오는 “이 땅의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애굽에서 노예생활하고 있는 다른 민족까지 포함된 말이다.
↳그러니까 바로의 말뜻은 이런 것이다.
↳‘애굽에 수많은 노예 민족들이 있는데, 너희들만 자기 신을 섬기겠다고 하면, 다른 민족들도 그렇게 나올 텐데, 그렇게 되면 이 땅의 모든 역사가 중단되는 것이 아니냐?’
↳바로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예배는 삶의 문제로 연결된다.
↳바른 예배는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다.
↳참된 예배는 주위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다.

-종교개혁은 일차적으로 예배의 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예배의 개혁 외에, 유럽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수많은 국가들이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견고하던 봉건주의 체제가 붕괴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신장을 가져왔다.
↳더 나아가 노예해방을 가져왔다.

-한국교회는 모이는 것에 힘썼지, 변화에 힘쓰지 못했다.
↳지금은 모이는 것조차 힘써야 할 형편이 되었지만...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변화를 가장 싫어하는 집단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변화를 주도해야 할 교회가 변화를 거부하다보니까, 교회가 사회에 끌려 다니고 있는 형국이다.
↳교회가 사회를 선도하는 게 아니라 뒤따라가는 형편이다.

-그럼 교회만 변화를 싫어하는가?
↳예배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변화를 싫어한다.
↳싫어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는 하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다.
↳변화를 촉구하는 설교를 듣지만, 실제로는 귀를 닫고 있다.
↳자기 삶에 부담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할 수만 있으면,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변화만이 살길이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하게 된다.

-경영학 이론 중에 "전파론"이 있다.
↳거기서 사람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변화 주도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모험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다.
↳항상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고 변화를 즐긴다.
↳이런 사람들은 전체의 약 5% 남짓 된다고 한다.

-두 번째 유형은 타인 인식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소극적이고 변화를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하다 보니, 진정한 변화를 꾀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약 20%가 된다고 한다.

-세 번째 유형은 타인 추종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 무조건 남이 하자는 대로 따라간다.
↳남이 가면 가고 남이 오면 온다.
↳남이 입은 대로 입으면서 행복해 한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 그것을 선이라고 느끼고 산다.
↳이런 사람들이 무려 70%가 된다고 한다.

-우리 자신은 어떤 유형인지 생각해 보라.
↳변화 주도형? 타인 인식형? 아니면 타인 추종형?
↳물론 교회 안에는 모든 유형이 골고루 섞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문제는 세상에서 어떤 유형으로 살아야 하느냐이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변화 주도형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우리가 세상의 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세상의 눈치나 보고 있다.
↳심지어 세상을 추종하기도 한다.
↳자기 변화를 거부하고, 적당히 세상에 묻혀 지내려고 하기도 한다.

-교회성장학자 죠지 바나(G. Barna)는,『21세기 교회를 붙잡아라』책에서, 교회를 ‘가마솥 안에 있는 개구리’로 비유했다.
↳개구리를 가마솥에 물을 붓고 넣으면, 처음엔 유유히 헤엄을 치고 논다.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도, 그 온도를 체감하지 못한 채, 그 환경에 만족해한다.
↳물론 몸이 이전 상태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거나, 혹은 물의 온도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 정도는 받는다.
↳그러나 그 환경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의 온도가 100도에 가까워졌을 때, 자기가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죽고 만다.

-변화를 거부하고, 환경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결과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하나님 앞에서 뭐가 변화돼야 하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를 점검해보자.

-하나님은 참된 예배를 위해서,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애굽과 분리되게 하셨다.
6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바로는 자신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세와 아론을, 즉시 가두지 않고 일단 돌려보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바로의 음모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는 히브리 백성의 지도자를 처단하면, 자칫 어려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바로는 이들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일이 너무 편하니까, 팔자 좋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주던 짚을 주지 않고 짚을 주워서 벽돌을 찍게 했다.
↳벽돌을 찍어내는 물량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벽돌을 굽는 일이 엄청난 중노동이었는데, 바로의 요구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가 노린 것은, 모세와 백성들의 틈새를 벌리는 것이었다.
↳고통이 가중된 것이 순전히 모세 때문이다는 점을 부각시켜서, 모세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자신들에게 고통이 가중되었다고 생각하게 한 것이다.
↳그럼 백성들 중에서, 모세를 제거할 사람이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가 자기들과 비슷할 때는 같은 편으로 여겨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분열시킨다.
↳당신네들은 우리하고 다르다며 따돌린다.
↳그럴 때 갈등하게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이 깊어지게 된다.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서 타협하는 일이 생긴다.
↳주일날은 예수님과 함께하고, 다른 날은 세상과 함께 한다.
↳교회 가서는 예배드리고, 교회 밖에서는 세상 가치관으로 산다.

-우리는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애굽과 분리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과 분리를 시도하셨다.
↳그들과 관계를 끊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를 통한 하나님의 방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0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로가 이렇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11 너희는 짚을 찾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그러나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2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13 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 날의 일을 그 날에 마치라 하며
14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12절에 보면 그들은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여 벽돌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감독들은 수량에 미달한 것을, 자기들이 세운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렸다.
↳무자비하게 채찍질을 했다.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바로에게 나아가 호소하기로 했다.
15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이르되 왕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16 당신의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사오니 이는 당신의 백성의 죄니이다

-여기서 “호소하여”의 기본 동사 '차아크'는 '부르짖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상소문을 올린 정도가 아닌, 직접 바로에게 나아가서 탄원한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감독들이 자의로 부당 노역을 독촉한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여하튼 당시 일개 노예민이 애굽 관료의 부당 행실을 바로에게 직접 고발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을 볼 때, 바로의 무리한 요구가, 참된 예배를 위해 자신들이 치러야 할 대가인줄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렇게까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어려움이 생기자, 그들이 기도할 리가 없다.
↳영적 지도자를 찾을 리가 없다.
↳끊어야 할 바로에게 찾아갔다.
↳하나님은 바로와 끊도록 하시는데, 그들은 바로의 줄을 붙들려고 한다.

-믿음은 돌아서는 결단이다.
↳돌아서기 위해서는, 전에 붙들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한다.
↳이전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믿음의 길에 들어설 수 없다.
↳믿음 생활을 하다가 중도에서 관 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온전히 돌아서지 못한 사람들이다.
↳예전에 붙들고 살던 끈을, 완전히 놓지 못한 사람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은, 바로와의 면담을 통해서 화가 몸에 미친 줄 깨달았다.
17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18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로 바칠지니라
19 기록하는 일을 맡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희가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바로의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관심은, 벽돌을 만드는 데 있었다.
↳뭔가 뒤바뀐 것 같지 않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좋은 말씀’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데까지는 나아가지만,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참된 예배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까지는 나아가길 주저한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참된 예배를 드리려고 할 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의 신분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기록원들은 다르다.
↳약간의 지위와 권리가 있었다.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 예배의 자유를 요구하기 전에는, 별 탈 없이 지내왔다.
↳자신들의 지위도 보장되었고, 어느 정도의 권리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걸 접어야 했다.
↳모든 지위와 권리가 사라지게 될 판이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망할 지경에 놓인 것이다.
↳말씀이 임하기 전에는 문제없었는데, 말씀이 임하고 보니 삶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바로에게서 물러나왔지만,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모세와 아론을 만났다.
20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인사도 없고, 배려도 없다.
↳모세와 아론에게 분노를 쏟아댄다.
↳만약에 자기들에게 아무런 손해가 임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들이 그렇게 했을까 싶다.
↳그들은 백성들의 문제로 걱정하지 않았다.
↳기록원 자리에 관심이 있다.
↳자신들이 기록원 자리를 잃게 되는 것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다.

-사실상 믿음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적당하게 갖다 붙이고 있다.
↳자기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이용해먹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고난 받기를 거부하면서, 하나님더러 살피시고 판단하시라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들은 자기 편한 대로 하나님을 생각했다.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하나님으로 알았다.
↳잘되는 것이 하나님 뜻이고, 편안한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알았다.
↳자기들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벗아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하고, 자기 뜻으로 말씀을 판단하였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축복하는 말씀뿐만 아니라, 책망하는 말씀에 대해서도 “아멘”해야 한다.
↳부드럽고 달콤한 양식 뿐만 아니라, 거칠고 쌉싸름한 양식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의 승부는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금방 결정이 나는 승부가 아니다.
↳말씀을 받았다고, 당장에 엄청난 일이 있어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지고 얼마 있다가, 바로 면류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짧은 100미터 달리기에서도, 1등으로 출발을 했다고 반드시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기록원들의 말을 듣고는 고민에 빠졌다.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아뢰었다.
↳탄식하는 기도이고, 원망성 기도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그 일을 했을 뿐이다.
↳바로가 그렇게 나올 것은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자기 백성에게서 배척을 받게 되자, 자신감이 떨어지고 말았다.
↳모세에게 과거의 좋지 않았던 기억이 되살아났을 수 있다.
↳자기를 배척하고, 자기를 바로에게 고해바쳤던 이들을 위해, 내가 과연 이일을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용을 보면, 꾸밈 없고 솔직한 기도를 했다.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털어놓는 기도를 했다.
↳그렇다고 모세의 기도를, 수준 낮은 기도로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그 어떤 기도보다, 우리의 마음을 토해내는 기도를 기쁘게 받으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예배를 통해 우리와 만나고 싶어 하신다.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신다.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예배가 바른 예배이다.
↳말씀에 순종하여 변화를 가져오는 예배가 참된 예배이다.
↳우리는 그런 예배를 꿈꾸고 그런 예배를 드리고 싶다.
↳당연히 그런 예배를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삶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우리 삶에 가장 밀접한 것은 예배이다.
↳예배 없는 삶은 불신자의 삶이다.
↳삶과 무관한 예배는 위선자를 양산할 뿐이다.

-남은 삶을 복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