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모세) 강해 5: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04:01-1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10-02 12:17
조회
321


구약인물(모세) 강해 5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04:01-17)
2022. 10. 2.


프롤로그

-사람들이 사명 받을 때, 바로 “아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변명하거나 회피하거나 거절하곤 한다.

-첫째, 자기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일을 맡기시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형태의 사명이 주어질 때 아멘하기 힘들다.

-둘째,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선뜻 아멘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요나이다.

-셋째,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도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또 그 일을 할 만한 그릇도 안 된다는 열등감이 아멘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사명을 주실 때, 그가 당장 아멘 하지 않는다고, 사명을 취소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변명해도, 그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로 넘기시는 분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신다.
↳언제까지? 알아들을 때까지다.
↳깨닫고 순종할 때까지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하실까?
↳매를 때려서라도 감당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고집 부려 이로울 것 없다.
↳자신에게 사명이 주어지면 즉각 순종하는 게 지혜이다.

-모세에게 사명이 임했다.
출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사명을 받은 모세의 즉각적인 반응은 변명이었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를 설득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를 인도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모세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나님, 고맙습니다. 나 같은 걸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갈 테니 함께 해주시고 인도해 주세요”하고, 곧장 애굽으로 향했는가?
↳아니다. 다른 변명을 이어갔다.

-1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네가 만난 하나님이 누구냐” “너를 보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해야 하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번에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쯤 했으면,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두 말하지 않고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할 법도 한데, 모세는 또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출4: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대로 말했는데, 그래도 자기 말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한 것이다.

-수년 전에 '맥스웰 멀쯔'라는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새로운 미래를 소유한 새로운 얼굴」이라는 책을 썼다.
↳그것은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얼굴을 고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애의 문이 열렸다는, 개개인의 경험담을 기록한 것이었다.
↳얼굴이 달라지니까, 마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바꾸어졌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얼굴을 바꾸었는데도, 여전히 불만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의사는 최근에 또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마음속에 있는 얼굴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은 아무리 외모를 바꿔도 안 된다.

-아무리 얼굴을 뜯어고쳐도, 부정적인 자아상이 자리잡고 있는 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를 무시하면 화를 내면서도, 자신은 자기를 무시하는 모순에 빠져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열등감의 지배를 받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뿐 아니라, 열등감에서도 해방시키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고, 자신을 비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건 사탄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열등감을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질병으로 본다.
↳물론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건 더 큰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낮은 자존감을 치유해야 한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고쳐야 한다.
↳열등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명을 감당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과거에 열등감을 가져보지 않았던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으므로, 누구나 열등감은 있을 수 있다.
↳천하의 모세같은 사람도, 열등감을 보이고 있지 않는가?
↳사실 모세는 태어났을 때부터, 외모가 준수하고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성장 배경은 당대 최고의 환경이었다.
↳애굽에서 최고의 학문을 접했고, 무예를 닦을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 넉넉했다.
↳그 무엇 하나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안에 열등감이 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열등의식이 잠재되어 있었다.

-왜? 무엇 때문일까?
↳과거의 쓴뿌리 때문이다.
↳그가 나이 40이 될 때까지는 자신만만했다.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동족애로 불타올랐고, 생각하는 바를 곧 실천에 옮겼다.
↳동족을 학대하는 노예 감독관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한 방에 쓰러뜨려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민족 해방의 첫발을 상큼하게 내디딘 것이다.
↳그 다음날도 나가봤더니, 이번에는 동족끼리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다툼을 말리고, 또 잘못한 사람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신에게 돌아온 동족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누가 너를 우리의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누가 너에게 그런 권위를 주었느냐?”
↳“여태껏 궁중에서 잘 먹고 잘살다가, 언제부터 네가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위해 일하겠다는 거냐?”
↳동족이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동족의 배척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을 해방시킨다는 꿈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태 파악을 한 모세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다.

-이 때의 기억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게 실패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실패할지도 모른다.’
↳이 실패의 두려움이, 그를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실패했을 때 받게 될 조롱이 두려웠으며, 자신이 입게 될 상처가 무서웠던 것이다.

-열등감은 사람을 볼 때 생긴다.
↳열등감은 사람과의 비교의식에서 생겨난다.
↳사실 같이 서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된다.
↳얼굴이 비교될 수도 있고, 키가 비교될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은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각기 다르게 만드셨다.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들지 않으셨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강점이 있는가 하면 약점이 있다.
↳상대의 강점을 보고 자기의 약점을 보면 열등감이 생긴다.
↳자신이 초라하게 보인다.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비하시키게 된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열등감은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은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모세에게 다가오셨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먼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열등감은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할 때 생긴다.
↳남의 손에 있는 것만 볼 때 생긴다.
↳우리 속담에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남의 떡이 커 보인다.”
↳“남의 밥에 있는 콩이 더 굵어 보인다.”
↳자기 떡 먹으면 되고, 자기 밥에 있는 콩이나 먹으면 된다.
↳그런데 꼭 남의 손에 들린 떡을 쳐다보고, 남의 밥에 있는 콩에 눈독을 들이니까 문제이다.

-사실 이건 사람의 보편적 심리이다.
↳그럼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불만만 생기고 불평만 나온다.
↳그 불만을 제거하고, 불평을 없앨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자기 손에 들려있는 떡을 보는 것이다.
↳자기 밥에 들어있는 콩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때 모세는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지팡이니이다”
↳모세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대답했을지 모른다.
↳‘하나님, 정말 몰라서 물으십니까?’
↳‘이게 양치는 지팡이인줄 모르고 물으십니까?’

-목자가 양을 칠 때 지팡이는 필수품이었다.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그 지팡이가 나무로 만들어졌음을 감안할 때, 보지 않아도 모세의 손때뿐만 아니라, 양의 기름때까지 묻어 아주 반질반질했을 것이다.
↳또한 지팡이는 여기저기 상처가 나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 지팡이는 값나가는 물건이 아니다.
↳귀중품이나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걸 누구보다 하나님이 잘 아실 텐데, 무엇 때문에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지, 모세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속에 있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별로인 것으로 여긴다.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움츠려들게 만든다.
↳자기만의 성에 갇혀, 그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 믿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보다 더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난 지금은 아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만난 지금은 아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로 만난 지금은 아니다.

-현재 내 손에 있는 것, 알고 보면 그것이 귀중한 것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내 가정과 가족들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모세는 하나님이 손에 있는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니까, 그냥 던졌다.
↳무슨 기적을 기대하고 던지게 아니다.
↳별 기대 없이 던지라고 하니까, 그냥 던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된 것이다.
↳모세의 손에 있을 때, 마른 막대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던지라고 해서 땅에 던졌더니, 그게 살아 있는 뱀이 되었다.

-하나님은 모세한테 “네가 지팡이를 던지면 그 지팡이가 뱀이 될 것이다”라고, 미리 말씀하신 게 아니다.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하셨다.
↳모세 역시 그냥 순종했다.
↳그랬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모세의 지팡이가 신비한 요술 지팡이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순종이 기적을 낳은 것이다.
↳우리는 기적을 위해 기도는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기적을 낳는다는 사실은 잊곤 한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순종을 무시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모세는 지팡이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사실 모세는 말라빠진 지팡이 같은 존재이다.
↳청춘의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고, 80이 된 지팡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에겐 예전의 야망도 사라졌고, 삶의 열정도 시들어진, 마른 막대기인 지팡이와 같았다.
↳그런데 자신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마른 막대기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이다.

-99세인 아브람이나 사래도 마른 막대기와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하자, 생명을 잉태하는 기적을 보게 되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씨이긴 하지만,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마음에 믿기만 해서는, 이삭이 태어날 수 없었다.
↳아브람과 사래 부부는,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
↳부부관계를 가졌다는 말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다.

-자신이 던진 지팡이가 뱀이 되자, 흠칫 놀라는 모세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라면서, 뱀을 잡아본 적이 있다.
↳뱀은 목을 잡아야 된다.
↳꼬리를 잡았다가는 100% 뱀에게 물린다.
↳그러니까 뱀의 꼬리를 잡으라는 말씀은, 인간의 상식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말씀이 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어쩌다가 한두 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종종 등장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이성의 눈만으로 안 되고, 믿음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인간의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인간의 논리로 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다.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과 진리와는 다르다.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꼭 진리는 아니다.
↳우리는 이성과 논리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면,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도 순종해야 한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의 상식으로 뱀의 머리를 잡으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뱀에게 물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뱀에게 물린 것까지, 하나님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모세는 자기의 상식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했다.
↳자기 손을 내밀어 뱀의 꼬리를 잡았다.
↳그렇게 했더니, 뱀이 다시 지팡이로 변했다.
↳여기서 뱀은 애굽의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모세가 바로를 정복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모세가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해방시키게 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안전하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살아 있는 뱀을 집어도 안전할 수 있다.
↳모세는 40년 동안, 불안한 삶을 살았다.
↳그에게 있어 미디안 광야는, 그래도 안전한 장소였다.
↳그래서 미디안 광야에서 떠날 수 없었다.
↳미디안 광야에서 떠나는 순간, 죽는 줄로만 알았다.
↳이게 실패자의 모습이다.
↳이게 열등감에 붙잡힌 사람의 모습이다.

-열등감의 망령은 어디까지라도 따라다녀서, 도무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열등감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치유 받을 수 있다.
↳과거의 실패의 쓴뿌리로 인해 생긴 열등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만, 치유 받을 수 있다.

-첫 번째 기적을 믿지 않을 것에 대비하여, 두 번째 기적을 보여주셨다.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네 손을 품에 넣으라”
↳네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는 말씀과 더불어, 너무나 순종하기 쉬운 말씀이다.
↳하나님은 아직 확신이 부족한 모세에게, 처음부터 어려운 것을 요구하시지 않았다.
↳쉬운 것부터, 작은 일부터 순종하게 하셨다.

-3장 10절의 사명에 비해, 이 말씀은 시시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모세는 순종했다.
↳지팡이를 무심코 던지고 나서, 특별한 일을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기대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순종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언급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순종하고 봤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순종 훈련을 시키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순종이다.
↳제자훈련이 무슨 특별 훈련이 아니다.
↳순종 훈련하는 것이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게 중요하지 않고, 입으로 시인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실제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장차 민족의 해방자가 될 모세한테, 무슨 엄청난 것을 요구하지 않고, 시시해 보이는 것을 명하신 것은, 순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손을 품에 넣었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손에 나병이 발생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당황스럽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나병에 걸린 손이 나아야지, 멀쩡한 손이 나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나병에 걸린 자기 손을 보며, 무척 당황해하는 모세를 향해, 하나님이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 하셨다.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 왔다.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나병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모세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광야 생활 40년은 절망의 세월이었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삶의 목적도 없이 살아온, 기나긴 좌절의 시간들이었다.
↳과거의 실패로 인해, 자신의 동굴에 갇혀 열등감을 곱씹으며 지내온,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그런 그에게 소망의 한 줄기 빛이 있었다.
↳그게 바로 말씀이었다.
↳나병에 걸린 손이, 말씀에 순종하여 본래의 살로 회복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기만 하면, 자신도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나병에 걸린 모세의 손은, 절망적인 처지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고통에 울부짖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니까 나병에 걸린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온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으로 치유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거하던 땅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두 번째 기적까지 보여줘도 믿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또 하나의 기적을 주셨다.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나일강은 두려움과 사랑의 대상이었다.
↳나일강은 애굽인들에게 생명의 젖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다.
↳그런데 나일강물을 취하여 육지에 부으니 피가 되었다.
↳그건 모세가 애굽의 심판자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세가 심판권을 대행하게 될 것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세 가지 기적은, 다 예언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실 일을 다 하셨다.
↳보여주실 것을 다 보여주셨다.
↳말씀으로 설득하셨고, 기적으로 설득하셨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님께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모세에게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열등감이 있었다.
↳그건 말을 잘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모세가 생각하기를, 아무리 하나님이 함께 하셔도, 바로 앞에 서려고 하면 말을 잘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변명한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모세는 순음(脣音) 발음에 서툴러, 말을 매우 느리게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신다.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더 이상 입 아프게 하지 말고 이제 가라고 하신다.

-그런데도 모세는 계속하여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사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말을 잘 하지 못 하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자신의 말을 잘 해서 바로를 설득시켜야 한다는 입장이고, 하나님은 네가 내 말에만 순종하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입장이다.
↳둘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입장과 내 입장에 차이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두 사이에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하는가?
↳아니다. 내 입장을 철회하고, 하나님의 입장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 모세는 자꾸 자기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드디어 화를 내셨다.
↳“이제 가라”고 했을 때, “예, 알았습니다” 하고 가면 되었다.
↳그런데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니까, 하나님이 화를 내신 것이다.
↳모세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의 눈이 잘못되었다는 말인데,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분이고, 우리의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까지도 아시는 분이니까, 사람을 잘못 볼 리가 없고, 선택을 잘못하실 수가 없다.
↳그런데도 모세는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 지었을 때마다 노하시는 것은 아니다.
↳참으실 때도 있고, 긍휼히 여기실 때도 있다.
↳슬퍼하실 때도 있고, 마음 아파하실 때도 있다.
↳그런데 스스로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열등감에 젖어 있어, 사명을 포기하고자 할 때는, 여차 없이 노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화를 내실 수는 있어도, 우리를 포기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화를 내서라도 안 되면, 매를 때려서라도, 기어이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사명을 발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다.
↳사명자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사명에서 비켜서려고 하면, 하나님이 관두시지 않는다.
↳생업이 중요하지만, 생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이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면, 하나님이 생업을 책임져주신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이 화를 내시며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다.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말 잘하는 아론을 준비해 놓으셨다.
↳아론을 모세의 대변인으로 붙여 주시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게 하나님의 최선의 뜻은 아니었다.
↳모세가 ‘난 말을 못해서 안 되겠다’ ‘나 혼자는 못가겠다’고 하도 변명을 하니까, 아론과 함께 가라고 하신 것이다.
↳모세 혼자 바로 앞에 서는 것이 최선의 뜻이었는데, 그가 그걸 마다함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가 아론 때문에 상당한 고생을 하지 않는가?

-이제 모세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
↳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면, 안 가고 배길 수가 없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사명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첫마디에 순종했으면, 얼마나 보기 좋았겠는가?
↳처음부터 사명을 따라 살았으면 지금쯤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나님은 모세가 말을 못한다고 하니까, “그럼 됐다. 정 갈 생각이 없으면 관둬라” 하지 않았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건, 하나님이 양보하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양보를 받아냈다면, 그건 전혀 기뻐할 일이 아니다.
↳그건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최선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