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모세) 강해 3: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출 03:01-1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09-18 12:07
조회
299


구약인물(모세) 강해 3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출 03:01-10)
2022. 9. 18.


프롤로그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전환점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 때가 언제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이다.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명(calling)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이 소명을 받는 순간, 믿음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비로소 참된 신앙에 눈뜨게 되고, 신앙의 어떤 뚜렷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
↳소명받기 전의 신앙생활과는 여러모로 대조된다.
↳이건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소명(召命)’이라고 하면, 목회자나 선교사 같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소명은 그렇게 좁은 의미의 개념만은 아니다.
↳물론 그들에게 소명감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그들이 소명감이 분명하지 않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요즘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신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가장 중시한 것이 소명에 대한 확신이었다.
↳아무리 시험을 잘 쳐도, 왜 신학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서, 소명감이 불확실하다 싶으면,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실 그게 맞다.

-그렇다고 소명이 특정 사역을 하는 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하다.
↳혹 자신은 소명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교회에서 구경꾼으로 서 있다.
↳주의 일에 대해서, 한 걸음 물러나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앞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잘 하나 보자’ 지켜본다.

-물론 그런 생각은 바꿔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소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명 없는 믿음의 삶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명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로 구원에로의 소명이고, 둘째로 사역에로의 소명이 그것이다.

-구원에로의 소명은 본질적인 부르심이다.
↳가장 우선적인 부르심이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영혼들을 불러내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건져내신다.
↳“아담아, 내가 어디에 있느냐”
↳이 구원에로의 소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소명을 구체적으로 이루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요한복음 3:16은, 구원에로의 소명에 대해 잘 말씀해주는 구절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든지 이 구원에로의 소명에 응답하면 영생을 얻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구원에로의 소명을 생각하면, 우리가 받은 구원이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어쩌다가 보니 예수 믿게 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셔서 된 것이다.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이다.

-사역에로의 소명은 구원에로의 소명 이후에 온다.
↳사역에로의 소명이, 구원에로의 소명보다 앞설 수 없다.
↳사역에로의 소명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주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이다.
↳구원문제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의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계획을 이루게 하시려 함이다.
↳하나님은 주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사역자들을 부르고 계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역에로의 소명에 응답하여, 교회에서, 일터에서, 심지어 국내의 오지나 국외에서 헌신하고 있다.

-사역에로의 소명이란 개념이 보편화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였다.
↳중세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역에로의 소명을 사제계층에 국한시켰다.
↳당시는 사제계층과 평신도 계층이, 계급처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급적인 구분이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신분을 가진다는 말이고,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직업이 성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평신도들이 자기의 직업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소명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특별한 직업을 갖기보다, 현재의 직업을 통해서 거룩한 소명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나 선교사만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사역에로의 소명을 받았다는 말은, 소명에 관한한 누구도 특권의식을 가져서는 안 되고, 누구도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소명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신학교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소명받은 자로 살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소명을 받은 사람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소명 받은 자의 삶이다.
↳문제는 소명감이다.
↳내가 소명감을 갖고 사느냐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감을 갖고 일하느냐이다.
↳소명감을 갖고 일하는 것과, 소명감 없이 일하는 것은 차이가 난다.
↳소명감을 갖고 헌신하는 것과, 소명감 없이 헌신하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우리는 이미 구원에로의 소명을 받고, 거기에 응답한 사람들이다.
↳그 응답은 사역에로의 소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사역에로의 소명은, 다른 말로, ‘평생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평생 사는 동안 이루어가야 할 사명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역에로의 소명이란, 내 평생 주님을 위해 헌신할 사역을 가리킨다.
↳이걸 빨리 찾은 사람은, 시간 허비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잘 달려갈 수 있다.

-모세도 마찬가지이다.
↳소명을 몰랐던 그의 과거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난 이후, 비로소 진짜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소명은 사실 나이와 관계없다.
↳환경이나 물질이나 건강도 두 번째 문제일 뿐이다.
↳모세는 소명을 깨달은 이후부터, 위대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 모세의 소명에 대한 말씀을 상고하는 것은, 우리도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남은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이다.
↳이미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분들은, 소명에 맞게 살면 된다.
↳소명을 이루기 위해 힘쓰면 된다.
↳기도하면서 소명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 날 자신이 비범한 인생을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인생을 넘어서 거룩한 인생을, 거룩한 인생을 넘어서 비범한 인생을 살게 되기를 소원한다.
-------------------------------------------------------------------------------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기 전에, 이미 모세주변에서 일하고 계셨다.
↳모세가 소명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일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계획을, 모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세우셨다.
↳매사를 미리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시고 실행에 옮기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시기 전에, 세 가지를 준비시키셨다.

-첫째, 때를 준비하셨다.
출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마2: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애굽왕이 죽었을 때, 모세가 출애굽 소명을 받았고, 헤롯이 죽었을 때, 예수님의 부모에게 출애굽 명령이 떨어졌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바뀌게 되면, 모든 주위 환경이 새롭게 변하게 된다.
↳이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때를 조성하신다.
↳적절한 때를 포착하신다.
↳가장 적절한 때가 이를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다.
↳결코 서두르지 않으셨다.
↳모든 게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진리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애굽인 아래서는 더 이상 못살겠다는 의식이 생겼다.
↳출애굽의 열망이 준비되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모세가 40년 전에, 동족을 괴롭히는 노예 감독관을 쳐 죽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 중 누구도 그를 영웅시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자극을 받아 뭔가 일어나기를 바랐던 모세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40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40년은 기다림의 시기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출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열망이 생긴 것이다.
↳어떻게든지 애굽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모아진 것이다.
↳떠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다.
↳때만 준비되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아셨다.
↳정말 중요한 것은, 떠나야 할 사람들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이 중요하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51: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1)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34편과 51편은 참회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시이다.
↳회개를 건성으로 해서는 안 되고, 중심에서 우러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겉으로 아무리 그럴듯한 회개를 해도, 중심에 진실함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중심을 강조하셨다.
마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입술로만 용서했다고 해선 안 되고, 중심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다.
↳남들이 용서하라고 하니까, 중심엔 미움을 그대로 둔 채, 말로만 용서했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것 준비하느라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고, 그분 앞에 서면 책망 듣게 된다.
↳예배를 마음에 준비한 사람과, 준비없이 예배하는 사람이 같을 수가 없다.
↳예배를 마음으로 준비한 사람은, 적어도 예배시작 10분전에 나와서, 영혼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정신을 예배에만 집중하도록 한다.
↳또 우리가 보기엔 똑같은 헌금 같아 보여도, 마음의 준비를 갖춘 헌금과, 그렇지 않은 헌금은 하나님 보시기에 분명히 다르다.
↳하나님 앞에 설 때 마음의 준비를 잘하기 바란다.
↳그래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자녀들이 되기를 바란다.

-셋째, 모세 자신을 준비시키셨다.
↳40년 전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백성을 구원하려고 했다.
↳자신이 애굽에서 익힌 학문을 믿었고, 자신이 애굽에서 누리는 지위를 의지했다.
↳아주 자신만만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자신만만한 모세를 부르시지 않았다.
↳오랜 날들을 기다리게 하셨다.
↳자신 만만함이 깨지고 철저히 부서질 때까지 기다리게 하셨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40년이다.
↳참 길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만만한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
↳자신감으로 충만한 사람을 쓰면, 나중에 모든 영광을 자기한테 돌린다.
↳그러면 하나님은 오간데 없어진다.
↳자기가 중심에 서고, 하나님은 들러리 신세가 된다.
↳하나님은 그 꼴 못 보신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자기 깨어짐의 세월 40년을 보낸다.
↳이제 그의 나이 80세가 되었다.
↳그는 양치기 생활로 40년을 보내는 동안, 문득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가 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자신만만’을 잃고 ‘자기 무능’을 느끼고 있을, 바로 그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혹 한 때는 자신만만했는데, 고개 숙인 나날을 보낼 수 있다.
↳자기 깨어짐의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하나님이 나를 준비시키고 있다고 믿으면 견딜 수 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이 세워주실 줄 믿는다.
-------------------------------------------------------------------------------

-하나님은 일상적인 삶에서, 소명을 주시는 분이다.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모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양을 치는 것은, 일상적인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산 호렙”이라고 하니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날 특별히 호렙산에 오른 줄 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모세는 평소 이 호렙산 기슭에서 양떼를 먹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신 것이다.

-우리는 모세가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만나주셨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양떼야 어떻게 되든 말든 놔두고, 절벽에 올라가 떼쓰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만나주신 것이 아니다.
↳모세가 일상에 충실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어부인 베드로 형제와 야고보 형제가 어디서 부름받았는가?
↳갈릴리 호수 즉 고기잡이하는 현장 아니었는가?
↳세리인 마태가 어디서 부름 받았는가?
↳세리가 앉아 있어야 할 곳인 세관 아니었는가?
↳제자 중 누구 한 사람 특별기도 하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은 일상의 직업에 충실하고 있을 때,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을 때 부르셨다.

-우리는 생업이라고 하는 일상생활을 중시해야 한다.
↳직장에 속한 분들은 직장생활에 성실해야 한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사업을 위해 열심을 내야 한다.
↳일상생활을 하던 중,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양을 치고 있는데, 아주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웬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오르는데, 이상하게 나무는 타지 않는 것이었다.
↳모세는 호기심이 들어, 그 불을 보려고 가까이 갔다.
↳광야에서 떨기나무는 아주 흔한 것이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것도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날마다 보는 나무, 날마다 하는 일,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나무에 불이 붙었으면 나무가 타야하는 데, 그렇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광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떨기나무의 불로, 일상적으로 양을 치고 있는 모세에게 다가오셨다.
↳그런데 그날만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도 일상적인 삶의 환경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보통 때와 다르지 않는 평범한 일인데, 거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수 있다.

-매주 드리는 주일 예배가, 어느 날 가슴 벅차게 다가올 수 있다.
↳매번 하는 찬양인데, 눈가가 촉촉해지고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이 있다.
↳늘 하는 새벽기도인데, 주님의 임재하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주일예배에 성실하기 바란다.
↳늘 부르는 찬양에 마음을 담기 바란다.
↳정기적인 기도회를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개인적인 소명을 주셨다.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다.
↳두 번 연달아 부르셨다.
↳그 음성이 너무나 또렷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희미하게 애매하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실은 하나님의 뜻은 확실한데, 우리가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자기 욕심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이 가려지고, 자기 생각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시되고, 자기 고집을 피워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모세가 어떻게 했는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들리는 음성이, 누구의 음성인지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두 번 반복하여 부를 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담처럼 나무 뒤로 숨지 않았다.
↳그는 겸손하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모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줄 확실히 모른 상태에서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했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하는가?
↳혹시 하나님의 눈에 띌까봐, 고개 숙이고 있지 않는가?
↳괜히 하나님과 눈 마주쳐봤자, 내 이름 부를까봐, 나한테 무슨 일 시킬까봐, 나한테 뭐 바치라고 할까봐, 애써 낯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거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지 않으면서, 내 기도에는 하나님이 “내가 여기 있노라”라고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건, 대단히 염치없는 신앙이란 사실을 말이다.
-------------------------------------------------------------------------------

-계속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을 건네신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하나님은 모세더러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 땅 자체가 거룩한 땅일 수는 없다.
↳거룩한 땅이 따로 있고, 천한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세가 서 있는 땅을 거룩하다고 하신다.

-그 땅이 거룩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교회’라고 교회를 거룩하다고 고백한다.
↳왜 교회가 거룩한가?
↳교회에 하나님이 임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까이 다가오는 모세에게, 이해 안 되는 말씀을 하신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것이다.
↳신발은 더러움의 상징이다.
↳신발을 벗으라는 말은, 거룩을 요구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더러움으로 가득한 채, 자신에게 나아오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또한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의 권리, 자기의 주장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이다.
↳당시 노예들은 신발을 신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노예가 주인 앞에서 자기주장을 하지 않듯,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말이 많은 곳이 되었다.
↳말이 말은 교회치고 좋은 교회 없다.
↳말이 말은 교회치고 거룩한 교회 없다.
↳말이 많은 교회치고 영적인 교회 없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하나님께 말을 많이 하는 교회이다.
↳어떤 교회가 거룩한 교회냐? 무릎 꿇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교회이다.
↳어떤 교회가 영적인 교회냐? 교인들이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교회이다.
↳우리교회가 사람에게 하는 말이 줄어들고, 하나님께 하는 말이 많아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교회가 사람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크게 들리는 교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

-하나님은 모세에게 놀라운 계획을 알려주신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계획을 단계적으로 알려주셨다.

-먼저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다음 단계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말씀하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는 것, 그가 얼마나 바라던 일인가?
↳아마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속으로 ‘하나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셨다.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기 원하셨다.
↳하나님이 괜히 모세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싶어 한다.
↳하나님이 자기에게만 특별한 말씀을 해주시길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8절까지만 듣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맞장구를 친다.
↳“맞습니다. 맞고요” 한다.
↳그러나 10절까지는 안 듣고 싶어 한다.
↳10절 말씀은, 애써 못들은 체 하려고 한다.
↳왜? 부담스러우니까. 내가 희생해야 되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다른 사람이 아닌 모세 네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하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모세 너를 통해서 그 일을 하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일을 하게 하시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역을 감당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걸 원하시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인생 감독이시다.
↳어떤 배역을 감당할 사람으로, 나를 캐스팅하셨다.
↳그 배역이 나에게 적합하기에,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맡기신 것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배역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배역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배역에 눈 돌리기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