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주일:예수님은 우리의 감사의 본이 되십니다.(골 2:6-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7-07 00:00
조회
886
맥추감사주일
예수님은 우리의 감사의 본이 되십니다.(골 2:6-7)
2019. 7. 7.

프롤로그

-어느 교회 장로님 한 분이 늘 원망과 불평에 차 있었다.
다름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일상사 좀 어려울 때마다, 좀 힘들 때마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 선악과는 왜 따먹어 가지고, 오늘 우리까지 이렇게 고생을 시킨담. 에덴동산에 고이 살았으면, 힘든 농사도 하지 않고, 길이 평안하게 잘살 수 있었을 것을... 뭣 때문에 그렇게 해서 후손들을 두고두고 고생을 시킨단 말인가! 아담 할아버지, 하와 할머니가 원망스럽다.’

-늘 이렇게 원망 불평을 하는데, 그 도가 좀 지나쳤다.
목사님이 이렇게 저렇게 여러 모로 설명을 해 주었지마는 영 들어먹지를 않았다.

-어느 날 목사님 댁에서 저녁식사에, 이 장로님을 초청했다.
음식을 잘 차려 놓고 식사 기도를 하고 막 수저를 드는데 밖에서 손님이 찾는 바람에 목사님이 밖으로 나가면서 하는 말씀이...
"자, 감사 기도도 드렸으니, 다들 식사를 먼저 하세요. 그러나 여기 있는 것, 가운데 요 그릇, 뚜껑 닫아 놓은 이것은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제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이것을 열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 그동안은 참으시고, 다른 것만 드시도록 하세요. 다른 것은 다 잡수셔도 좋습니다."
그래놓고 목사님은 나갔다.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이 장로님이 영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건드리지 말라는 이 그릇에 든 것이 무엇일까...’
그는 기어이 그것을 살짝 열어 보았다.
그 그릇 속에는 뜻밖에도 새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뚜껑을 살짝 여는 순간, 그 새가 그만 푸드럭 하고 날아올랐다.

-헌데 이걸 도로 잡을 재간이 없다.
목사님 들어오기 전에 잡아서 다시 집어넣어야 하는데...
허겁지겁 뛰쳐 일어나 요리조리 쫓아다녔지마는, 방안에 먼지만 자욱해졌다.

-잠시 후 목사님이 들어왔다.
"아니, 여기 다른 음식도 허구하게 많은데, 하필 그것을 열어 보았습니까?"

-짐짓 한마디 던지고는,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장로님은 분명 아담의 후예십니다 그려." “남 탓할 일 아닙니다. 나도 똑 같습니다.”“남 뭐라 할 거 없습니다. 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말이 운명을 바꾼다.
한 마디 말이 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오래 전의 일이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어떤 초신자가 부흥회에 참석했다.
부흥강사의 설교가 길어지니까,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강사가 한 성질했던 모양이다.
그 형제를 향해, “차라리 집에 가서 밥이나 한 사발 먹고 똥이나 싸고 죽으라.”고 했다.
그 호통 치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여, “아멘” 했다.

-실은 그게 그 형제의 소원이었다.
늘 속병이 있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변비까지 심했던 차다.
그래 집에 가서 그대로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부터 속병이 고쳐지고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아멘”이란 한 마디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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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감사를 넘치게 하라신다. 골 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 말씀은 단순히 감사하라는 정도를 넘어선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있을까?
믿음에 굳게 서야 가능하다.
감사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과거의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미래를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믿음이 아니고는, 내일을 감사할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앞날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없다.

-감사는 영적 건강의 좌표다.
감사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늘 가난하기만 하다.
감사는 축복을 두 번 누리는 셈이다.
한 번은 받을 때이고, 또 한 번은 회상할 때이다.

-우리에게 감사의 샘플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다.
감사주일을 맞아, 예수님이 언제 어떻게 감사하셨는지를 상고해 보고자 한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감사 기도한 기사가 4번 나온다.
물론 그분은 범사에 감사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4번이란 말이다. 1. 마가복음 6:41-44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42 다 배불리 먹고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보면 감사 기도할 상황이 아니었다.
굶주린 사람들을 앞에 두고 감사기도 한 것이다.
자기가 5천명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스런 상황에서 감사기도 한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무슨 죄인가?
예수님은 그들을 목자없는 양 같이 불쌍히 여겨 말씀을 전하셨다.
벳새다 들녘에 모여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흠뻑 빠졌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고, 어느 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 가는데, 먹을 것은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무리를 촌과 마을로 보내어, 무엇을 사먹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대책이 없었다.“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떡이 몇 개나 있는지 알아 보라고 했다.
제자들이 어린 아이의 도시락 안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백성들을 백 명씩 오십 명씩 앉게 했다.
그러고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감사기도를 하셨다.

-지금 예수님이 손에 들린 것은, 가난한 어린 아이의 도시락이다.
그런데 지금 먹어야 할 사람들의 숫자는 남자만 오천 명이다.
아니 그걸 누구 입에 부치겠나?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도시락을 들고, 무슨 감사기도를 한단 말인가?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예수님은 믿음으로 감사기도 하신 것이다.
배고픈 상황, 무엇하나 넉넉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믿음으로 감사기도를 하신다.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로 가득한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믿음으로 감사기도를 하신다.
꼭 기억하라. 넉넉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명심하라. 풍족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먼저 감사하여 풍성해졌다.

-그랬더니 어린 아이 도시락에 지나지 않았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42 다 배불리 먹고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이게 감사의 기적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부족한 것에 감사하라. 더 부족하면 지금이 그립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가졌어도 부족하다.
넉넉해지면 감사하겠다고 하면, 평생 감사할 수 없다.
부족한 중에 믿음으로 감사하자.
예수님처럼 부담스런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감사하자.---------------------------------------------------------- 2. 요한복음 11:39-44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보면 감사 기도할 상황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죽은 친구의 무덤 앞에서 감사기도 한 것이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는 상황이다.

-나사로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좀 특별하다.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시면, 꼭 들르시는 곳이 베다니다.
예수님이 언제나 부담없이 들르실 수 있는 곳, 맘 편히 쉬었다 올 수 있는 곳이 나사로 집이다.

-아마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세 남매가 함께 살고 있다.
삼 남매가 의가 깊었다.
특히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의지의 대상이었다.
오빠지만 아빠 같은 존재였다.
특히 예수님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였다.
그런 나사로가 죽었으니,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실 만도 하다.

-나사로는 사람 좋기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온 동네 사람들이 위문을 하러 왔다.
여기저기서 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 얼마나 무거운 분위기였겠는가?

-예수님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는, 마르다가 얼른 마중을 나갔다.
예수님을 붙들고는 흐느끼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소연했다.
예수님은 별 것 아닌 듯 그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마지막 날 다시 살아날 거라고 알아들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는 깜짝 놀라 고백했다.“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는 마리아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예수님한테 나아갔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그를 어디 두었느냐”고 물으셨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안내를 받아,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무덤의 돌을 옮겨 놓게 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감사기도를 하셨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아니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이런 감사기도를 한단 말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호상이 아니다.
9988 234가 아니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아프다가 사망한 게 아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감사기도 하셨다.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감사기도를 하신 것이다.

-장례를 많이 치러보지는 않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장례가 있다.
목재소에서 사고로 죽은 집사님의 남편 장례와, 첫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집사님의 장례다.
나는 두 장례를 치르면서 울었다.
집례자가 우니, 유족은 물론이고, 교인들도 울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우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인의 죽음에 감사하다고도, 유족들에게 감사하자고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상황에서 감사기도를 하셨다.

-예수님이 처음 나사로가 위중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인 반응이 있다.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르다에게 보인 반응도 보자.요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주님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감사한데는,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테니 감사할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다면 가슴을 칠 일이다.

-우리는 뭔가 이득이 생길 때 감사하려고 한다.
우리는 뭔가 이문을 얻었을 때 감사하려고 한다.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크게 관련이 없다.
감사의 기준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각을 나에서 하나님으로 옮기자.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 감사하자
예수님처럼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면 감사하자.

---------------------------------------------------------- 마태복음 11:25-27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보면 감사 기도할 상황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특히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곳이 소개되고 있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겠는가?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고라신과 뱃새다에서, 가버나움에서 전도에 실패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 상황에서 감사기도 한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셨겠는가?
예수님의 심정이 얼마나 무거우셨겠는가?
그렇게 애써서 복음을 전하셨다.
권능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하셨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은 돌처럼 딱딱하기만 했다.
그들의 마음문은 닫혀져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복음이 나타난 것에, 어린 아이처럼 감사기도를 하신 것이다.

-맥추감사주일은 상반기를 결산하는 감사절기다.
하나님이 올 상반기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영혼추수의 절기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위해, 반년 동안 말씀의 씨를 뿌렸고, 물을 주었다.
감사 절기는 영혼 추수하는 것이 포함돼야 한다.

-누구나 알듯이 추수도 철이 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었어도, 추수할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농사와 달리, 영혼 추수의 열매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감사하자.

-예수님도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가버나움에서 별 다른 열매가 없었다.
내가 영혼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다.
내가 영혼을 품고 기도하고 있다면, 더 감사할 일이다.
오늘 그 영혼을 추수했다면, 그보다 더 감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 주는 한꿈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지, 7주년이 되는 주일이다.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찬양팀을 초청하여, 주일예배를 드린다.
우리끼리 7주년을 축하하고 감사할 수도 있다.
전도대상자를 초청하여 함께 예배하고 축하하면, 더 뜻깊을 거 같다.

-독수리 1호가 단톡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러니까 감사’‘그럼에도 감사’‘그럴수록 감사’‘그것까지 감사’

-그 글에 4호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감사는 환경과 형편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다.”
지금 4호가 처한 현실을 감안하면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이다.---------------------------------------------------------- 누가복음 22:17-20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보면 감사 기도할 상황이 아니었다.
임박한 자신의 죽음 앞에서 감사기도 한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식사의 자리다.
특히 그 자리가 부담스러운 것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을 밝혀야 한다.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도 알려야 한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공치사 해주는 것은 쉽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분신과 다름 없는 제자들의 배신과 부인을 드러내야 한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인 셈이다.

-더군다나 몇 시간 후면, 자신이 체포 당하게 된다.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불법 심문을 받게 된다.
최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이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있다.
이 때 예수님의 심경은, 너무나 복잡 미묘했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심경을 이렇게 알려주고 있다. 막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그런 심경에서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셨다.
대개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어떻게 하는가?
“나 좀 살려 달라”고 한다.
“내 재산의 절반이라도 줄테니 살려 달라”고 한다.

-왜 그런가?
왜 더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가?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덜 됐기 때문이다.
심판자 앞에 설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예수님의 표현처럼 ‘자는 것’이다.
이 땅에서 잠들었다가,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곳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내 본향 가는 길 보이도다인생의 갈 길을 다 달리고 땅 위의 수고를 그치라 하시니 내 앞에 남은 일 오직 저 길 주 예수 예비한 저 새 집은영원히 영원히 빛나는 집거기서 성도들 즐거운 노래로사랑의 구주를 길이 찬송

-자기 죽음 앞에서 감사가 진짜 감사다.
그게 진정어린 감사요 순수한 감사다.
그게 하나님께 올려지는 숭고한 감사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자.
감사도 연습이다.
감사는 이론이 아닌 실천이다.
감사는 감정이 아닌 의지의 문제다.
마음은 심히 고민하여 죽을 거 같았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잃지 않았던 예수님의 감사를 본받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투자가이자,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설교를 마치겠다.“감사하는 마음은 행복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를 신과 함께 있도록 해준다. 늘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근심도 풀린다.”
감사는 위대한 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