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03:우리에게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고전 2:1-1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11-25 00:00
조회
1011



고린도전서 강해 03
우리에게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고전 2:1-16)
2018. 11. 25.

프롤로그

-사람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을 모르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예전에는 몰랐어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알아야 할 것도 있다.

-나는 자랑은 아니지만 통풍환자이다.
통풍이 걸리기 전에는 아무 거나 잘 먹었다.
가려야 하는 음식이 없었다.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었다.
하지만 통풍 확진을 받고 통풍의 위력을 체험한 후로는 음식을 가린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먹으면 안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요산 수치를 높이는 음식은 가급적 피한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입맛 당기는 대로 막 먹었다가는 찾아오는 통증으로 뒷감당이 안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몰라도 되는 것인데,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는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교회에 등록을 하면 새가족 안내를 받는다.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를 받는다.
그리고 양육을 받는다.
양육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운다.

-그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이다.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교회 다니면 헛방이다.

-교회를 다녀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교회를 떠나서는 예수 믿을 수 없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그럼에도 교회 다닌 것이 곧 예수 믿는 것일까? 아니다.
얼마든지 교회 안에 회심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는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게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 간혹 예수를 믿기는 하는데 이상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자기가 가공한 예수를 믿는다.
자기가 믿는 예수, 자기가 어떤 예수를 믿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한다.
다른 예수를 믿는 사람과는 교회생활을 함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성경에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나온다.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그냥 아무 거나 잘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아무 거나 열심히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어야 한다.
믿음의 대상을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하고, 믿음의 내용을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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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 1년 반 동안 머무르며 전도를 했고 그 때 세워진 교회가 고린도교회이다.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증거”라고 칭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이란 것이다.
본래 범죄한 인간에게는,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기껏 알아봤자,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한다.
하나님 섬긴다는 게 우상을 섬긴다.
세상에는 별의 별 우상이 다 있다.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의 신이 존재하고 있다.

-지혜자라고 다르지 않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증거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자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증거를 전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 일’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사실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울도 처음엔 하나님의 증거를 부인했다.
예수를 박해하고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 아닌가?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하나님의 증거인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드렸다.
그 일은 결코 호강하는 일이 아니다.
어디 가서 누구에게 대접받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고생길이다.
동족으로부터도 핍박 받고 박해 당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 그 외길을 고집스럽게 달려왔다.
그걸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 살다가 그걸 위해 죽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1차 전도여행에서도,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중간에 돌아간 마가 문제로, 바나바와 다투고 갈라지기까지 했다.
2차 전도여행은 더 많은 고생을 했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그 때 고린도교회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그가 고린도에 오기 전에 전도했던 곳이 아덴인데, 그곳에서 별다른 전도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지만, 그는 헬라 철학에도 능통했다.
그래서 아덴에서 헬라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할 때, 자기의 지혜와 말을 십분 발휘하여 복음을 전했다.
처음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몰려들었지만, 결정적으로 회심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는 그 때 결심했다.
그리고는 고린도에서는 자기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내려놓았다.

-그럼 어떻게 했는가?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해서 탈이다.
헤아릴 수 없는 정보를 다 알아서 뭐하겠는가?
다 알 필요도 없고, 사실 다 알 수도 없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만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그게 무엇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이 지식은 누구나 알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이 지식을 아는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했다고 해도, 이 지식이 없으면 사망이다.
소위 지식인들이 믿는 것을 힘들어한다.
자신의 부분적인 지식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거 보면,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예수 믿을 수 없다.
기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예수 믿는 게 기적이다. “내가 예수 믿는 게 기적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 고린도에 대한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그건 고린도 사람들의 타락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린도는 지금까지 바울이 경험한 그 어떤 도시보다 타락한 도시였다.
‘과연 내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내가 복음을 전하면 이들이 받아들일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바울을 두렵게 한 것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바울은 아덴에서 전도를 실패한 경험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실패의 경험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렵다.
더구나 오래 전의 실패가 아니다.
고린도에 오기 직전의 실패이다.
그 경험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또한 곁에 동역자 한 사람도 없었다.
고린도에 혼자 내던져진 것 같았다.
동역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혼자 다 해야 했다.
그리고 상대는 고린도 사람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이 약해지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

-이처럼 사명자도 약해질 수 있다.
목숨을 걸고 달려가는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용기 있는 사람도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자기 안에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자기가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걸...

-우리는 바울하면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 역시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고, 두려워서 심히 떨릴 때도 있었다고, 편지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는가?

-그럼 약해지고 두렵고 떨릴 때, 그가 어떻게 했는가?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자기 실력을 내려놨다.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않았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했다.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다는 말이다.
그렇다. 엄격하게 말하면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이 하신다.
나는 성령님이 쓰시는 도구이다. “나는 성령님이 쓰시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이걸 잊어서 안 됩니다.
이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역자가 가져야 할 자세이다.
내가 하는 게 아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까, 잘되면 교만해진다.
잘 난체 하고, 자기를 뽐내려고 한다.
사람도 그걸 봐주기 힘들어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겠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돼야 한다.
주의 일을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할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된다.
주의 일을 마친 후에,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모든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소서” 고백할 때, 하나님이 감동하신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우들의 믿음의 근거가 세상의 지혜일까 염려했다.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신앙에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
지혜가 없는 신앙, 지식을 무시한 신앙은 답 없는 신앙이다.
그렇다고 믿음의 토대를 사람의 지혜와 지식에 두면 안 된다.
하나님의 능력에다 우리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흔들린다.
우리 마음도 흔들린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인 말씀이다.

-바울은 지혜의 무용성을 경계하고 있다.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지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건 신 불신과 상관없다.
믿음의 사람일수록 더 지혜로워야 한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 두 가지를 구할 필요가 있다.
그건 성령충만과 지혜이다.
주님이 야고보를 통해 약속하신 게 있다.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리스도인들이 욕을 먹는 것이 믿음 때문만은 아니다.
지혜롭지 못해서 욕을 먹는 경우가 더 많다.
세상 지혜만 있어도, 신앙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다.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하나님의 지혜는 본래 감추어졌던 것이다.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다.
왜 감추어 놓았었는가?
왜 만세 전에 미리 정해 놓았었는가?“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황송하게도 이게 바울을 통해서 알려준 사실이다.
우리의 영광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최고의 영광이 무엇인가?
구원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방인이다.
죄와 허물로 이미 죽었던 우리다.
그런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남은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이유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모두가 아는 것이 아니다.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통치자,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통치의 지혜가 있어야만 될 수 있다.
통치자가 지혜가 없으면, 백성이 고생을 한다.
그런데 통치자가 모르는 지혜가 있었다.
당시 통치자인 종교지도자들은, 누구보다 하나님 가까이 있던 자들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몰랐다.
그래서 그들이 한 일이 있다.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여러 번 모여서 회의를 했다.
지혜를 짜냈고 중지를 모았다.
자기들이 가진 통치자의 지혜로 기껏 한다는 게,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지혜에 스스로 탄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며칠 갔는가?
삼일이 못 갔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덮으려고, 성전 경비병들을 매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정하신 것을, 그들이 완전히 덮을 수는 없었다.

-가장 지혜로운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지혜를 인정하는 자이다.
자기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자이다.
세상에서 미련한 자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세상에서 똑똑한 자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멸망을 당한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바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이 예비하신 것들을 이뤄 가신다.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는가?“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 있다.
천국은 물론이고, 풍성한 은혜와 아버지의 부요하심이다.
우리는 그걸 누려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걸 누리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평생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예수를 믿는다.
그런 사람이 전도를 한들 누가 믿으려고 하겠는가?
그 사람이 믿는 바가 얼굴에 써있는데...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주님의 얼굴빛을 반사해내야 할 존재이다.
주님이 매번 죽는 시늉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다.
예수님이 타고 있던 배도 풍랑이 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는 고난이다.
주님과 함께 헤쳐 나가는 풍랑이다.
그걸 믿는다면 우리 얼굴 표정관리 잘해야 한다.
나를 알고 있는 비신자들에게, 그 비결이 뭐냐고 물어오게 하자.

-통치자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무엇으로 보여주셨는가? 성령으로“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이 다양한 사역을 하시지만,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성령은 진리를 우리 가운데 보여주시는 분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주실 수 있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깊은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를 말한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가 성령을 통하여 드러났다.
더 실제적으로 말하면, 성령이 저자가 되셔서 성경을 통하여 드러내셨다.

-성경은 40여 명의 기록자가 있다.
그러나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한 주제 하나님나라를 향하고 있다.
성경의 원 저자가 성령님이라는 명백한 증거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성령님께서, 40여명의 기록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성경을 들려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성경은 글로 기록된 책이다.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래서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럼 모든 사람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들을 알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만 알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 수 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누구도 성경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

-말씀 사역자라면 자주 하는 기도가 있다.
성령으로 조명해달라는 기도이다.
말씀을 성령의 빛으로 비춰서 깨닫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늘 성경을 갖고 사는 사람도, 그런 기도를 한단 말이다.

-사실 성경은 쉽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글로 표현했으니, 쉬울 리가 있겠는가?
읽기는 읽는데, 잘 읽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역사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성경 목록도 역사 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펴놓고, 먼저 성령으로 조명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성경을 풀어서 가르쳐줄, 말씀 사역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더 나아가 말씀 사역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기 때문이다.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그 동안 “영적이다”는 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면이 있다.
영적이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육적이다는 말과는 상반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막연하다.
영적이다는 말에 가장 가까운 의미는 성경적이다로 보인다.
어떻게 사는 게 영적 삶인가?
성경적 가치관, 성경적 세계관을 따라 사는 삶이다.

-영적인 삶은 다른 말로 예수님을 닮은 삶이다.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영적인 삶을 사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것을 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님이야말로 가장 영적인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칫 주관적인 판단을 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성령은 성경을 벗어나서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성경의 원저자이신 분이 성경을 무시할 리가 없지 않는가?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도 육에 속한 사람이 있었다.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여기서 “육에 속한 사람”은 자연인을 가리킨다.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자연인이라고 칭한다.
자연인은 대부분 교회 밖에 있지만,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다.
교회의 영접은 받았지만,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한다.
성령의 주요 일은, 진리 곧 예수를 가르치는 일이다.
예수를 믿게 하는 일이다.
예수 믿는 자를 인치는 일이다.

-육에 속한 사람 그 전체를 거부한다.“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그게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게 유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게 논리적이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게 이성적이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이 있으면 신령한 자가 있기 마련이다.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여기서 “신령한 자”는 육에 속한 사람과 상반된 뜻으로,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다.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는 사람이다.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이다.
믿음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사람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다.

-그는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인이다.
설사 판단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자유인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주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
주의 마음을 가진 자가, 진짜 신령한 자인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예수 믿는 게 기적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성령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는 사실이다.
진짜 영적인 것은 성경적인 것이고, 참으로 신령한 자란 주의 마음을 가진 자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