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 09(끝):나누면 풍성해집니다.(빌 4:10-23)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10-28 00:00
조회
892
빌립보서 강해 09나누면 풍성해집니다.(빌 4:10-23)2018. 10. 28. 프롤로그

-<이상한 라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하겠다.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뒤, 나는 농사꾼으로 남길 바라는 아버지께 혼자 일하면서 공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무일푼으로 이곳 저곳 골목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때 작고 허름한 인쇄소 앞에서 만난 김씨 아저씨가 내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 인쇄소에서 일하거라. 나중에 돈이 모아지면 야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마" 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찬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 아저씨의 인쇄소에서 일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라면 한 상자를 사다놓고 나머지는 몽땅 저금했습니다.
신이 나서 일하는 동안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라면상자에 손을 넣어보니 라면이 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개를 꺼냈는데, 다음날 신기하게도 라면 두 개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분명히 어제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생각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도 여전히 라면은 두 개였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라면 한 상자로 한 달이 넘게 먹은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하루 종일 라면 상자가 있는 쪽에서 일했습니다.
퇴근 무렵 김씨 아저씨가 나를 불러 가게에 갔다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시기에, 인쇄소밖에 나와 유리창 너머로 슬쩍 라면 상자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아저씨가 라면상자 쪽으로 걸어가더니, 품속에서 라면 한 개를 꺼내 상자 속에 집어넣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걸어 나오셨습니다.

-어린 네 남매와 병든 아내와 함께,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시다는 김씨 아저씨......, 나는 그 날 아저씨의 심부름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글이다.
꼭 큰 것이 아니다.
작은 것에 감동을 받는 게 인생이다.
나눔은 축복이다.
나누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나누어 줄줄 모르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빌립보교회는 풍성한 교회다.
자신들의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움켜쥐는 교회가 있다.
움켜쥔 손을 놓지 않는다.
자기네들 밖에 모르는 교회가 있다.
가진 거 나누면 문 닫을 줄 안다.
그런 교회는 재정이 많아도 가난한 교회다.

-바울을 돕던 빌립보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물질적 섬김이 한 동안 끊어져 있었던 거 같다.
뭐라도 한 번 돕는 것은 어렵지 않다.
꾸준히 돕는 게 어렵다.
바울이 바로 옆집에 사는 게 아니다.
빌립보교회와 바울이 매여 있는 로마 감옥과는, 상당한 거리차가 존재한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되었다.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여기서 “다시 싹이 남이니”의 원어 ‘아네달레테’는, 원래 ‘겨울잠을 자던 나무가 봄을 맞아 싹이 나며 꽃이 피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단어였다.
연락 없이 상당한 시간이 지났던 모양이다.
그런데 연락이 닿았다.
그것에 대해 바울은 주님 안에서 기뻤다.
“그 동안 교회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느냐?” “왜 이렇게 오랜 만이냐?” 하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그들 부끄러워진다.
바울은 그들더러 너희들이 항상 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사실 그렇게 말해도, 얼마든지 알아먹을 수 있다.

-그들의 물질적 후원에 주안에서 크게 기뻐한 것을 볼 때, 바울은 지금 궁핍한 상태에 있다.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그러나 대놓고 내가 궁핍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바울도 육체를 가진 사람이다.
궁핍할 때면 왜 안 힘들었겠는가?
스스로 노동하여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몸이 갇혀 있는 상태다.
다른 사람이 물질적인 후원을 해주지 않으면, 어떤 방법도 없다.

-바울은 그런 형편에서 자족을 배웠다.
분명히 자족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자기가 처해진 어려운 형편에서 배운 것이다.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체험하면서 배워나가는 체득이다.

-바울은 본래 잘 나가던 사람이다.
자족하기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 힘들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걸 배워나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가 그걸 얼마나 힘들게 배웠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는 말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적응..., 맞다. 적응하는 것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나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이 생각난다.하나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함을 주시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하여는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는 적응할 수 있는 평정심과,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적응해야 할 때와 도전해야 할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다.

-바울도 옥중에서 이와 비슷한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정도에 이르면 도인 수준이다.
아무나 이를 수 없는 경지이다.
평생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할 것만 같다.

-그럼 바울이 특출 나서 가능했을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빼어나서 가능했을까?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비결, 모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고 선언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로 믿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그분을 철저히 의지했다.

-사람은 믿는 대로 산다.
사람은 믿는 만큼 살아낼 수 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는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로 믿는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분 안에 거하는 것을 통해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분 안에서만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내가 그분 밖에 있어서다.

-처해진 환경에서 자족하고 있는가?
내가 예수 안에 있다는 증거다.
불어 닥친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증거다.

-그럼 자족하면 전혀 괴로움을 못 느끼는가?
환경에 적응하면 괴로움이 즐거움으로 바뀌는가?
그렇지 않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라. 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분명히 내 괴로움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괴로움이 있지만 자족하는 것이고, 괴로움 중에서도 적응하는 것이다.
내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 괴로움에 동참해주면 큰 위로가 된다.
좋은 일에 친구보다 궂은일에 친구가 더 친밀해진다.

-<마지막 잎새>의 작가로 유명한 오 헨리의 단편 중에, <강도와 신경통>이란 소설이 있다.

-강도가 한밤중에 어느 집에 권총을 들고 들어갔다.
잠자는 주인을 깨우며 “손 들어” 하였다.
잠결에 깨어난 주인은 벌벌 떨면서 왼손을 겨우 들었다.

-그러자 강도는 또 고함을 친다.
“오른손 마저 들어”
그래도 집주인은 왼손만 조금 더 높이 들 뿐이다.

-그러자 강도는 또 다시 “오른손 마저 들으라니까” 하며 윽박을 지른다.
그때 그 집주인은 벌벌 떨면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미안하지만 오른손은 신경통 때문에 들 수가 없습니다” 했다.

-그러자 강도는 “신경통...? 젠장, 나도 신경통 때문이 이 짓을 하고 있는데...!” 하는 거였다.
그 강도 역시 오른손이 신경통으로 마비가 되어, 제대로 일을 못하였던 거였다.
그래서 남의 집에 들어가 사람을 위협하고는, 물건을 훔쳐내는 짓을 하였던 것이다.

-신경통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강도는,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빼앗으려는 생각은 잊고, 신경통 이야기를 꺼낸다.
주인도 신경통 이야기에 공포나 두려움을 잊고는, 어떻게 신경통을 치료하느냐, 무슨 약을 쓰느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새도록 있다가, 새벽녘에는 서로 멋쩍게 헤어졌다는 것이다.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면, 강도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셀모임은 전인적인 소그룹이다.
서로의 괴로움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가족 모임이다.
좋은 일을 나누고, 받은 은혜를 나누는 것도 좋다.
기도 응답을 나누면 더더욱 좋다.
그럼 셀모임의 영적 분위기가 올라간다.

-그런데 그런 일만 있지는 않다.
살다보면 괴로운 일을 나눠야 할 때가 있다.
그 괴로운 일을 나눔으로 기도의 짐을 나눠지는 것이다.

-내 괴로운 짐을 나눠 짊어져주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많이 있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들 자기 짐 지기에도 벅차한다.
대부분 무거운 짊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진다.
셀모임에서는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한다.
셀모임을 정상적으로만 진행한다면, 셀모임만큼 좋은 모임은 없다고 확신한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복음의 초창기 시절의 사랑을 회상하고 있다.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립보교회는 루디아 집에서 빌립보교회가 시작되었다.
빌립보교회가 세워진 후에는 사역을 하다가, 아가야 지방으로 떠났다.
그 때 바울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준 교회는 빌립보교회가 유일했다.
바울의 사역을 몰라서 후원 안 한 게 아니었다.
마음이 없어서 안 했다.
빌립보교회가 바울에게 후원한 게 넉넉해서가 아니었다.
마음이 있어서 했다.

-선교라는 게 그렇다.
선교엔 직접 선교가 있다.
직접 선교사로 나가서 사역하는 것이다.
간접 선교가 있다.
직접 나가 있는 선교사를 후원한다.
기도로 후원하고 물질로 후원한다.

-간접 선교도 마음이 없이는 못한다.
간접 선교는 가능한 교회를 통해서 하는 게 좋다.
아는 사람이라고 친척이라고 직접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에 선교헌금을 하여, 교회로 선교의 통로를 일원화하는 게 좋다.
특별히 후원하고 싶은 선교사가 있다면, 목회자와 논의를 하면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 교회를 앞세워서 나쁠 게 없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4: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교회의 사랑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손수 노동을 했다.
자비량선교를 했다는 말이다.
자기 생업인 텐트를 만들면서 선교를 한 것이다.
아마도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전적으로 생업에 매달릴 수 없었기에, 바울은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때 빌립보교회에서 두 번이나 쓸 것을 보내온 것이다.
꼭 숫자적으로 두 번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금 감옥에서 생각해도, 그 때의 고마움이 잊어지지 않는다.
본래 힘들었을 때는, 작은 도움이라도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지금 살만하다고 힘들었을 때의 도움을 잊어버리면, 인성에 문제 있는 것이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고, 17절을 덧붙이고 있다.4: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바울이 지속적인 생계지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오해할까봐, 선을 긋고 있다.
바울이 지금까지 받아온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 큰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구하는 것은, 빌립보교회의 선물이 아니라 그들의 유익이었다.
실제로 바울에게 물질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영적인 투자로 봐야 한다.

-빌립보교회 교우들이 바울에게 덕 볼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것에 감사해서, 적지만 보답하는 양으로 그렇게 했다.
사실 이게 그리 쉽지 않다.
자기 형편도 넉넉하지 않은데, 떠난 사역자를 개인적으로가 아닌 교회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물질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대표자까지 보내서 바울을 섬기게 했다.
그가 바로 에바브로디도이다

-바울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이전에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 것이 넉넉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향기로운 제물로 이름을 붙였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바울은 하나님의 심정으로 그들을 축복하고 있다.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자기 쓸 것도 부족한 중에서 나눔에 힘썼던 그들에게, 하나님이 모든 쓸 것으로 채워주시기를 축복하고 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이, "가난한 아이들에게 인형을 나누어 줄테니 집에서 인형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 아이가 집에 와서 자기 인형들을 눕혀 놓고, 유치원에 가져 갈 인형을 골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낡은 인형은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좋은 인형을 골랐다.
그리고 그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고, 벽난로 옆에서 따뜻하게 재웠다.

-다음날 아침, 이 아이는 섭섭했다.
그때 아빠가 "너 왜 울어?" 물었다.
이 아이는 제일 좋은 인형을 남에게 주려고 하니까 섭섭해서 운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빠는 "괜찮아.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거야."라고 했다.
아이는 자기의 인형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주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였다.
아빠는 시중에서 제일 좋은 인형을 사다가, 아이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게 나눔의 법칙이다.
이게 나누는 자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바울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빌립보교회를 통해 자기를 돌보아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다.

-끝으로 안부를 전하며 편지를 맺고 있다. 4: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4: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우리교회도 나누는데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나누기를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