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당신 안에 성령 받은 증거가 있습니까?(요 20:19-2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5-20 00:00
조회
913
성령강림주일당신 안에 성령 받은 증거가 있습니까?(요 20:19-22) 2018. 5. 20. 프롤로그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잘 믿고 싶어도 우리 안에 예수의 정신이 없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이는 그리스도를 잘 믿을 수가 없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면 성령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냐 비그리스도인이냐의 여부를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할 수 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한 젊은 신학생이 유학길에 올랐었다고 한다.

-한 전도자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형제는 예수를 믿으세요?”

-신학생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예, 우리 아버지가 어느 신학대학 총장입니다.”-전도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 그래요, 그런데 형제가 신학대학 총장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 믿는 거와 무슨 상관이지요? 나는 형제가 예수 믿느냐고 물었어요.”-신학생은 그때 약간 심각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앞으로 목사가 되려고 준비하는 신학생입니다.”-전도자가 답답한 심정으로 다시 물었다.
“나는 형제의 직분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가 그리스도인인지를 묻고 있어요. 형제는 정말 그리스도인이 맞습니까?”

-전도자로부터 전도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십니까?”
아마 한 두 번은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전도자로부터 전도를 받아본 적이 있다.
참 묘한 기분이 들면서도 조금은 언짢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색이 목사인데 오죽 목사같지 않았으면 전도를 다 받겠느냐고 생각하니까 무엇보다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무리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딘지 모르게 꼭 목사님 같습니다.”

-신앙에 있어 부모님과 자신을 연계시키지 마라.
부모님들은 ‘우리 자식이 어느 교회 뭐’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신앙에 있어 자식과 여러분을 연계시키지 마라.
자식 신앙과 여러분 신앙은 다르다.
엄격히 따진다면 믿음과 직분도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직분자들 중에 믿음이 좋은 사람이 많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믿음은 거의 없는데 직분자가 된 사람이 없지 않다.
또 교회 다닌 연수와 믿음이 정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 중에, 믿음의 뿌리가 깊은 사람들이 다수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다.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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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첫째 예수님을 주(主)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안다.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안에 성령이 없다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
주님은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 부르는 호칭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자기와 무관하면 주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주(主)라는 말의 원어 ‘퀴리오스’는 자기 나라의 황제에게 붙였다.
또한 자기 스승에게 붙였다.
그러니까 단순히 예수님이라는 말 대신에 주님이란 말을 사용한다고 그가 성령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주님과 관계를 맺고 있느냐를 생각해 봐야 한다.
예수님을 왕으로 자기 마음의 보좌에 모셨느냐 항상 예수님을 믿고 따라다녔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짖는 것을 보면 안다.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자기 안에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
그런데 아버지 역시도 관계적인 용어다.
아버지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나를 낳으셨고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다는 부자관계가 분명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호칭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했다.
“부르짖느니라”의 원어 ‘크라조’의 본래적 의미는 ‘까마귀처럼 소리지르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크게 부르다’ ‘크게 소리치다’ ‘크게 탄원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크라조’가 사용된 곳을 찾아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마 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소경이 소리지른 것은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기도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는 말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말이다.
성령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다.
속에 성령이 있는데 기도하는 것에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기도는 못하고 살지만, 기도에 대한 부담감은 늘 느끼며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듯한 말이지만 그건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자기 안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성령으로 숨 쉰다.
성령으로 숨 쉬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기도다.
그러니까 성령의 사람이란 곧 기도의 사람인 것이다.

-셋째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을 보면 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이 있는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된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라는 말이다.
성령이 하자는 대로 하라는 말이고, 성령이 시키는 대로 따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에 의해 움직이라는 말이다.

-철학자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보통 10대에는 먹는 것에 의하여 움직이고 20대는 연인에 의하여 움직인다. 30대는 쾌락에 의하여 움직이고 40대는 야심에 의하여 움직인다. 50대는 탐욕에 움직이고 60대는 명예심에 의하여 움직인다.”

-성령이 있는 사람은 성령에 의하여 움직인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통치 아래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강제로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성령 안에 거한다.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날 열매가 맺혔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제자들의 상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난 후에,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꼭꼭 닫고 있었다.
그 때 예수님이 오셨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고 있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지금 자기들 앞에 서신 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확인한 후에 기뻐했다.

-그런데 기뻐하다는 말 앞에 형용사가 없다.
예를 들어 “심히” 기뻐했다던가 “무척” 기뻐했다는 말이 없다.
제자들이 기뻐한 것에 강조점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앞에서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을 안심시키신 것이다.

-먼저 두려움에서 안심시키셨다.
제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게 최고의 두려움 아니겠는가?
언제 끌려가서 죽을지 모르니 얼마나 두렵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숨어 있다.
문을 잠그고 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이런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하며, 나무라지 않으셨다.
“내가 그렇게 죽임을 당했다가 삼일에 살아난다고 했건만, 왜 이러고 있느냐”며 호되게 꾸중하시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평강을 선언하셨다.

-또 자칫 흥분에서 안심시키신 것이다.
잔뜩 숨죽이고 있던 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며 뛰쳐나갔을 때, 핍박의 칼날이 다가올 거고, 그럼 곧 쫓겨 올 것을 아셨기에, 흥분에서 안심시키신 것이다.
전번의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을 맞게 될까 봐, 예수님은 그들을 안심시키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강 선언에 이어 또 다른 말씀을 하신다.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명을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가 자칫 평강 차원에서 머물기 쉽다.
실제로 예수 믿은 후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평강이다.

-455장 1절을 보라.1절)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성령이 임한 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 역시 평강일 것이다.

-182장 2절을 보라.2절) 나의 생명 소생케 됨은 성령 임하심이라모든 의심 슬픔 사라져 주의 평강 넘치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고 평안을 누리는 선에서 끝나면 안 된다.
마음에 평안이 중요하고, 집안의 평화가 더 없이 중요하지만, 그 평강은 제자로서 사명 감당을 위한 그 전단계이다.

-계속해서 455장 2-3절이다.2절)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 들려도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3절)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받음이라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4절)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날엔 뭇 성도 변화하여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그날까지 주님을 본받는 생활 곧 사명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 전에 우리가 할 일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맘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그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갈급해 해야 할 것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에 대해 살펴보겠다.

-첫째로 증인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제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다.
성령 받는 것이 개인의 영적인 행복을 위한 체험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성령을 체험하면 영적으로 행복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성령을 주신 본래적 목적은 증인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고 주신 것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는데 그 권능을 증인으로 사는데 사용하라고 했다.
누구의 증인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무슨 증인인가?
복음의 증인이다.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들으면 전하게 된다.
자기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자랑하게 된다.

-시골에서 어렵게 목회하시는 목사님께 아들이 있었다.
대학에 한 번 낙방한 일이 있었는데 다음 해에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냈다.
합격자 발표하던 날 목사님은 그 대학에 가보았다.
합격자 명단에 아들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너무 좋아하시던 목사님은 나오면서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여보세요. 우리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했어요.”
다음 사람을 보고 또 말했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서울대에 합격했다니까요.”

-아니 여러분, 생각해 보라.
길가는 사람들 하고 그 목사님의 아들이 대학에 합격한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러나 목사님은 너무 좋아서 그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상관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의 반응이 그와 같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마리아 여인이다. 요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녀는 과거가 부끄러운 여자다.
지금도 떳떳하지 못한 여자다.
남의 남자 빼앗아서 살고 있는 여자다.
그러나 동네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늘 피해 다녔던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다.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예수님을 복음이라고 믿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복음이라고 믿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복음이라고 믿는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증인의 삶으로 증명하기 바란다.

-어떤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
성령을 받으니까 ‘3쁨’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가 말한 ‘3쁨’이란 기쁨, 예쁨, 바쁨이다.

-성령을 받고 보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것에 기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기쁘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게 된 것이 기쁘더라는 것이다.

-또 성령을 받고 보니 보이는 것마다 예쁘더라는 것이다.
집에 가면 아내가 그렇게 예쁘게 보이고, 자녀들이 너무 예쁘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교회 오면 목사님이 예쁘게 보이고, 교회 식구들이 너무나 예쁘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또 성령을 받고 보니 그렇게 바쁘더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일을 포기하고 교회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도 집안 일, 직장 일까지 잘해야 하니 결국 바쁠 수밖에 없다.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이 또 있다.
둘째, 능력 있게 살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전날 밤에 모든 제자들이 도망하였다.
그렇게 장담하던 베드로를 위시하여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던 요한조차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배우고 훈련받고 이적을 보고 체험했으나 그들은 도망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힘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철저히 무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무능을 탓하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건 능력이다.
기독교에 대해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세상에서 그들과는 차별되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찬송가 455장에 보면 그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를 말해준다.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가사를 눈여겨보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험악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이길 힘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그 힘은 내 안에 있지 않고 내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우리는 항상 두 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오는 유혹이 있다.
다른 하나는 내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부패성이다.
‘왜 나는 세상과 싸워서 질까?’
‘왜 나는 환경과 싸워서 질까?’
‘왜 나는 자신과 싸워서 질까?’

-성령이 임하면 외부로부터 오는 유혹에서 이길 수가 있다.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면 내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 기도하기 바란다.
성령충만을 사모하기 바란다.

-성령이 임하면 사랑의 능력이 임하게 된다.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
주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게 된다.
목회자를 사랑하게 된다.
교회의 식구들을 사랑하게 된다.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죽도록 충성하게 된다.
교회를 사랑함으로 자원하여 봉사하게 된다.
목회자를 사랑함으로 기쁨으로 돕고자 한다.
교회의 식구들을 사랑함으로 섬기며 나누고자 한다.
원수조차 사랑함으로 축복하며 기도하고자 한다.

-성령 충만으로 증인으로 능력 있게 살아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