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5:우리는 하나님께 소송 당할 수 있습니다(호4:1-1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5-13 00:00
조회
717
호세아 강해 5우리는 하나님께 소송 당할 수 있습니다(호4:1-10) 2018. 5. 13. 프롤로그

-이스라엘 백성의 비극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데서 출발했다.
그들은 들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상 숭배자들의 말을 차별화하지 않았다.
다 좋은 말씀으로 들었다.
다 들어두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로 들었다.

-오늘 말씀에서는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설교를 좋은 말씀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서려면 말씀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
말씀의 권세가 우리 심령을 사로잡을 때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다.
교회사를 보아도, 회중들이 말씀의 권위 앞에 벌벌 떨 때에, 대각성과 부흥이 일어났다.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소송을 제기하셨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기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소송을 제기해서, 그들의 불법성을 드러내시고, 그 후에 그들을 이 땅에서 추방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소하신 내용이 무엇인가?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신다.
“진실”, “인애”, “여호와를 아는 지식”
진실함이 있는가? 책임지는 사랑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진실과 인애가 생활이라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신앙을 가리킨다.
즉 생활과 신앙 모두를 진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특별한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이었다.
그릇은 깨지거나 물이 새면 안 된다.
온전해야 한다.

-그릇이 온전하다는 게 무엇인가?
서로 진실한 것이다.
서로 책임지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담길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없다고 지적하신 첫 번째 것 진실이 무엇인가?
히브리어로 ‘에메트’라고 하고, 신약성서에서는 ‘아멘’이라고 번역했다.
‘아멘’이나 ‘에메트’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때 쓰이는 단어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다면, 우리의 삶에 진실함이 묻어나야 한다.

-진실이란 다른 말로 서로 속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진실이란 말은 약속을 지키는 것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진실함의 증표는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약속 받으셨던 것은, 철저하게 진실한 백성으로 살라는 것이다.
자기의 이익이나 체면보다는 정직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거짓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결국 자기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멸망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 보다 진실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없다고 지적하신 두 번째 것 인애가 무엇인가?
히브리어로‘헤쎄드’인데, 신약성서에서 제일 가까운 단어는 ‘아가페’이다.
인애는 언약에 기초한 사랑이다.
다시 말하면 인애는 책임을 지는 사랑인 것이다.
책임지는 사랑만이 참 사랑이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로만 했다면 별 감동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신다.
구원한다고 말씀하셨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하시고야 만다.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당신이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을 지신다.

-이스라엘 백성에 없다고 지적하신 세 번째 것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현장성을 갖고 있다.
삶과 말씀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이 뒷받침될 때 강력한 증거가 된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성경에 대충 어떤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안다.

-하나님이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교세가 아니다.
교회 건물의 크기에 그리 큰 관심 있어 할 거 같지 않는다.
이건 사람의 관심거리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교인들이 서로 진실하고 책임지는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교회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

-교회 공동체 안에 서로에 대한 진실함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저 모였다가 흩어질 뿐이다.
서로에 대해 애써 무관심해 하려고 한다.
서로에 대해 책임지려는 자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믿음의 식구라는 공동체 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성경을 읽지만, 설교를 듣지만, 큐티를 하지만, 삶과 동떨어진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고소를 당하는 구체적인 죄목들이 나온다. 4: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하고 나니까, 그들에게 있는 것들이다.

-저주이다.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라는 것이다.

-속임이다.
거짓말을 말하는데 아홉 번째 계명이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살인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여섯 번째 계명이다.
타살은 물론이고 자살을 포함한다.

-도둑질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짓으로 여덟 번째 계명이다.
강도행위든 절도행위든 타인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모든 행위를 통틀어 도둑질로 표현했다.

-간음이다.
부정한 성관계를 말하며 일곱 번째 계명이다.
간음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간통과 음행이다.
간통이 결혼하여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다.
음행은 정조를 깨뜨리는 행위를 말한다.
보다 포괄적으로는 음란한 짓 자체를 말한다.
우리 시대에 가장 흐트러지고 희미해져가는 계명이다.

-포악이다.
원뜻은 ‘찢다’, ‘깨뜨리다’는 말로 폭력행위를 가리킨다.
요즘엔 폭력도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복수이다.
“피가 피를 뒤이음”은 피 흘림의 행위가 뒤따른다는 의미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

-이것들은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런 사회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우리가 신기하기만 하다.

-사람이 타락하면 자연이 탄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4: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니,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땅이 황폐해졌다.
소득이 감소하게 될 거라는 말이다.
새벽까지 그물질을 하지만 얻는 것이 없을 거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힘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예 그들을 “내 버려둬라” 하셨다. 4: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그들과 다퉈봤자 소용없다는 말이다.
책망할 가치도 없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사실 책망도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한테 한다.
왜 책망할 필요도 없다고 하셨을까?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마음이 굳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 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종인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으면 신앙은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성도가 목회자와 틀어진 채 좋은 신앙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다.
목회자와 다투는 사람이 바른 신앙을 가질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눈에 보이는 말씀 사역자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님을 잘 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신앙적으로 가장 막 되먹은 사람, 갈 데까지 간 사람, 책망할 가치도 없는 사람을 비유하여,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실 교인이 목회자를 존중해야 할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를 존경할 때, 그가 전하는 말씀의 권위가 서고, 은혜를 받을 수 있어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던 것은, 무지와 고집 때문은 아니었다. 4: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들을 잘못된 길로 가게 한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 지도자들은 선지자와 제사장이었다.
아무리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가도, 이들만은 깨어 있어야 했다.
설사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도, 지도자들이라도 달라야 했다.
하지만 그들도 일반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악을 조장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앞당기는데 주역이었다.

-선지자는 율법 교사다.
율법을 해석하여, 그들의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해서 죄를 예방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나 오늘이나 죄에 대한 가르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굳이 백성들의 마음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그 고귀한 직무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공동번역을 보면 보다 실감나게 번역했다.
제사장들을 “그 자랑스런 직책을 부끄럽게도 밥벌이로 만드는 것들”이라고 호되게 책망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가 부패를 해도 희망이 있다.
경제 지도자가 실수를 해도 소망은 있다.
교육 지도자가 잘못을 해도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가 진리에서 떠나면 희망이 절벽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존경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가고 있다.
오히려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디 가서 “내가 목사요” 하는 말이 쉽게 안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한 성경지식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가 누구이고, 언제 태어났고, 몇 살에 죽고, 며칠 만에 부활했고 하는 식의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어로 “디아트”란 말을 썼는데, 그건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서 얻게 되는 체험적 지식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얻게 되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 힘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는, 욕심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백성들을 제쳐놓고, 오직 자기들에게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
참된 지식은 사람을 살린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영혼을 살린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의 제사장”이 되기를 원하셨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사람이다.
제사장은 원래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인을 위해서 고통이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그 문제를 해결 받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선임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열방이 복을 받는 통로로 쓰임 받는다는 의미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취할 수가 없다.
하나를 취하면, 다른 것을 버리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련하게도 지식을 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택하면, 다른 부분에서는 손해를 봐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택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손해 볼 각오를 해야 한다.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다는 것은, 기억력이 나빠서 잊어버렸다는 뜻이 아니다.
율법은 그들을 하나님께 잡아매는 끈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끈을 슬그머니 놓아 버렸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구속되기 싫어서, 스스로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을 놓는 순간,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 말씀을 거꾸로 읽어보면 이해가 쉽다.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가까이 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가까이 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붙들어 주리라.”

-자녀들을 하나님이 가까이 해주기를 바라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붙들어 주기를 바라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이 잘될수록 죄를 범했다. 4: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번성할수록 범죄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욕심대로 살았다.
제사장이 많을수록 교회가 거룩해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직책을 부끄럽게 만들겠다고 하신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를 망신스럽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의 구체적인 죄가 나온다.4:8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원래 속죄 제물은 제사장도 먹을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속죄 제물에 손을 대고 있다.
그들이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것을 식량으로 사용해야 할 만큼 궁핍해서도 아니다.
그들은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그 젯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굿에는 관심이 없고 돈 챙기기에만 바쁜 무당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너무 기막힌 사연을 전하고 있다. 4:9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머잖아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백성과 제사장 간의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거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제사장이 설 자리가 없다.
목회자만의 얘기로 들으면 안 된다.
직분자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하나님이 주신 존귀한 직분이니 잘 감당해야 한다.
직분 자체에 만족하지 말고, 직분에 충성하여 복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종을 직접 다루신다.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하나님은 당신이 세운 종을 직접 손보신다.
하나님이 그 종을 손보실 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총대 매는 것을 자청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것이고, 본인과 가정에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손보실지를 예고하신다. 4:10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먹으면 배가 불러야 정상이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다.
음행을 해서라도 자손을 얻고 싶어한다.
그래도 수효가 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되는 일이 없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외면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종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리 못하겠는가?

-지난주에 이어 이번 한 주간도 성령대망기도회가 진행된다.
다들 참석하여 기도하기 바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 충만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죄를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우리 중 한 사람도 하나님께 소송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