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일:부모로 살기, 자식으로 살기(엡 6:1-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5-06 00:00
조회
821
가정주일부모로 살기, 자식으로 살기(엡 6:1-4)2018. 5. 6. 프롤로그

-007영화의 주연이었던 로저 무어가 25년간 살았던 아내와 이혼을 했다.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인품에 감동했던 아내는 책을 써서, 그 제목을 [성자와 함께 살면서]라고 지었다.
그런데 자신과 이혼하고 자신의 친구와 재혼한 로저 무어을 보면서, 그녀는 책제목을 이렇게 다시 썼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끝이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가정도 알고 보면 영원하지 않다.
가정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더 소중히 여겨야 할지 모른다.
부모님이 영원히 자식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식은 부모님께 잘 대해 드려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잘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서 가정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가정을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결혼할 수 있는 나이를 스무 살로 정했고, 영국의 왕이 될 수 있는 나이를 열여덟 살로 정했다.
영국의 왕이 되는 것보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고, 한 남편의 아내가 되어 가정을 이루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정한 게 아닐까 싶다.

-가정이 소중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을 위해 그만큼 투자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정의 행복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힘들게 얻어지는 것이다.
가정이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그에 걸맞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신 행복한 가정은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일이 중요하다.
생업이기 때문이다.
생계가 달려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정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어렵지만 일과 가정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에 치우치기 쉽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자리에 누우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지불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하는 분들은 꿈속에서도 사업 꿈을 꾼다고 한다.

-그런데 자녀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그 문제로 꿈꾸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그 문제로 꿈꾸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의 절반만 가정을 위해 투자한다면, 가정은 지금보다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너무 늦게 깨닫는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김동호 목사님은 이런 내용의 주례사를 했다.
“나도 결혼식 때 앞에 서 있는 너희 신랑 신부 못지않게 행복했다. 양가 부모님들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 결혼이라 그런지 그때의 기쁨과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때보다 지금 더 행복하다. 나는 결혼할 때보다 지금 더 내 아내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것은 내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너희 신랑 신부도 내가 받은 복을 받기 바란다.”

-참 재미있는 주례사란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 부부는 결혼식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면, 불행한 부부임에 틀림없다.
물론 결혼식 때도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이 훨씬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내일은 더 행복해야 한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행복의 깊이가 더해져야 한다.

-나에게는 당장의 작은 소망이 있다.
아내에게 인정받는 남편이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목사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람이와 예준이, 시호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저는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예수 믿고 싶습니다.”
내가 우리 애들한테 이 말을 듣게 된다면, 누가 뭐래도 나는 성공한 인생을 산 것이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젊은이들 가운데 100명중 약 70명이 자신의 부모님을 미워한다고 했다.
부모님을 대하는 게 힘들고 싫은 정도가 아니라, 부모님을 미워한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아마 이들 중에는,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님은, 아마 없을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도 있는 게 부모님의 마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녀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부모님일 것이다.
부모님 때문에 행복한 자녀들도 있겠지만, 부모님 때문에 고통받는 자녀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자녀교육하면 세계에서 2등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정말 못할 것도 없고 안 하는 것도 없는 민족이다.
그런데도 자녀 교육에 성공하여 자식 때문에 감사하고 행복하게 사는 부모님은, 그리 많지 않다.

-집집마다 고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문제이다.
자식 있는 사람은 큰 소리조차 칠 수 없다.

-부모님이 상상을 초월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에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 교육 탓일까?
아니면 교회 교육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시대 탓일까?
어느 정도 그런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가정 교육 탓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해보면 ,잘못된 자녀 교육관을 가진 부모님 탓이다.
부모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행복하게 자라야 할 자녀들이 힘들어 하고 심지어 분노하기까지 한다.

-오래 전 어떤 목사님 이야기다.
딸아이가 전에 아버지로부터 너는 목사 딸이니까 대중 가요를 듣지 말아라는 경고를 몇 차례 받았다.
어느 날 이어폰을 끼고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신나게 듣고 있는데, 그만 그 현장을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자제력을 잃고, 그만 딸이 갖고 있던 미니카세트를 빼앗아 집어던지고 말았다.
그 일로 그 딸아이는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었고, 아버지에게 마음문을 닫고 말았다.

-어떤 대학 교수님 이야기이다.
자기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인정받는 분이고, 담임목사님의 존경을 받을 정도로 교회에서도 훌륭한 장로님이다.
어느 날 대학 다니는 딸아이가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고 왔다.
순간 화가 났지만, 아버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딸아이를 불러놓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열여덟 살이 넘었으니 집을 나가서 독립해도 된다. 독립해서 살면 머리도 네 마음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 그러나 내 집에서 나와 함께 사는 동안에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딸은 한참 고민하더니, 아버지의 말대로 머리색깔을 예전처럼 하겠다고 했다.

-장로님의 말은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식을 몰아붙여서, 억지로 아버지의 말에 따르게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밥 먹여주고 용돈 주고 학비 대주고 옷까지 사주니, 너는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부모 권한의 남용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학비를 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면 부모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맞다면, 부모님이 주는 돈으로 살지 않으면 자기 맘대로 해도 된다는 논리도 맞다.
부모가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해도, 자식은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한다.
왜?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권리주장은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의 의견과 결정을 존중해주는 것이 좋다.
자녀의 의견과 결정을 부모님이 무조건 따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존중해 주려는 마음은 가져야 한다.
자녀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모든 결정을 부모님이 내려주기 시작하면, 심성이 착한 아이는 ‘마마 보이’나 ‘파파 걸’이 될 것이고, 반발심이 강한 아이는 ‘문제아’가 되기 쉽다.

-부모님이 자식의 인격을 존중해 주면, 자연스럽게 자식도 부모님의 조언을 존중하고 따를 것이다.

-어떤 장로님이 자기 주관이 확실하고 고집이 센 딸과 말다툼을 하다가, 그만 딸아이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그 딸은 눈을 똑바로 뜨고, “아버지는 장로님이라고 하지만, 저는 아버지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나는 무조건 아버지에게 순종할 수 없습니다. 때리시려면 어디 더 때려 보세요” 라고,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은 장로님은, 잠시 방에 들어가서 자기 마음을 추스르며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딸에게 가서 딸의 말을 인정하고 정식으로 사과했다.
“앞으로는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게 교회의 장로답게 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딸도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부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후로 부녀 사이가 좋아져서,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만일 그때 장로님이 딸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부모 권위로 누르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딸과 아버지의 관계는 좀체 회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모님이 자식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님이 자신의 과실을 자식한테 미안하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님이 자신의 잘못을 자식에게 용서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게 훌륭한 부모의 자세다.

-참된 교육은 말에 있지 않고 삶에 있다.
삶이 따르지 않는 말에는 힘이 없다.
물론 부모님도 사람인데 늘 말과 삶이 일치할 수는 없다.
잘못할 수도 있고,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자식도 부모님이 온전하다고 믿지 않는다.
그럴 경우 자식에게 정직하면 된다.
자신의 한계와 실수를 솔직히 시인하면 된다.

-이걸 자존심 깎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입이 안 떨어진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자식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쓸데없는 권위를 내세우려고 하지만, 자식은 다 알고 있다.

-부모님은 자식에 대해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정말 진리에서 벗어나고, 신앙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는 것이라면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문제까지도, 부모님 생각대로 하려고 하니까, 자식들이 부모님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자식과 부모님은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자식의 기분만 맞추어주는 부모님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자녀에 대한 이해심과 엄격함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무조건 이해만 하려고 한다면, 자녀는 버릇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엄격하기만 하면, 기죽은 자녀가 되거나 반항아가 될 것이다.

-몇 가지 삶의 보편적인 원칙들을 정해 놓고, 그 원칙에 대해서는 엄격함을 유지하면 좋겠다.
그 원칙에서 벗어나면 꾸짖어야 한다.
때로는 큰 소리도 내야 한다.
교육상 필요하다면 매를 들기도 해야 한다.

-나는 교육에 있어서 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잠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그래서 선생님이 매를 못 들게 하는 현재의 학교교육에, 별 희망을 걸지 않는다.
어떤 학부모들은 남의 귀한 집 자식을 체벌했다고,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에게 망신을 주기도 한다.
그럴 거면 뭐 하러 학교 보내는가?
반면에 어떤 학부모들은 회초리를 해 가지고 가서, 전체 조회시간에 학교장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어디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양한 삶의 원칙들이 있겠지만, 몇 가지만 제시하겠다.

-정직이다.
정직하지 못한 것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거짓말하는 것은 어렸을 때 바로잡지 못하면 후에는 바로잡기 어렵다.
신용이 재산이고 정직이 가장 큰 자산임을 알게 해야 한다.

-성실이다.
성실하지 않는 것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책임한 불성실한 태도에 대해서는 엄해야 한다.
성실하게 사는 것이 곧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임을 알게 해야 한다.

-법과 질서이다.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도 엄하게 교육해야 한다.
기본적인 법질서를 잘 지키도록 해야 한다.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 교통신호를 지키는 것, 차례로 줄서는 것을 지키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때도 부모님이 명심할 것이 있다.
꾸짖되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난은 자녀를 비뚤어지게 한다.
비난은 자녀를 노엽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물론 자녀 교육에서 신앙교육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우리는 여기에 진심으로 아멘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다른 교육에 성공한다고 해도 신앙교육에 실패한다면, 그 교육은 성공한 자녀교육이 될 수 없다.
서울대가 아니라, 미국의 하버드나 예일대, 영국의 옥스퍼드나 캠브리지대 같은 세계적인 명문대에 들어갔다고 해도, 신앙 계승에 실패했다면 실패한 자녀교육이다.

-나는 우리집 애들에게 1차적 소원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 애들이 예수 잘 믿는 것이다.
예수를 잘 믿기만 하면, 다른 것은 주님이 덤으로 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기 전에 할 유언도 미리 정해 놨다.
“애들아 예수 잘 믿거라. 그리고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신앙은 신앙으로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의 신앙은 부모의 신앙으로만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 분문 말씀에서, 자식을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다.
그러려면 부모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인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내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부모님이 자식에게 신앙의 롤모델이 돼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포항목회자축구팀 멤버 중에, 지난달에 목사 안수를 받은 분이 있다.
그 장모님이 자기한테 “최목사, 교회 잘 다니고 있지?” 라고 물었다고 해서, 우리가 한바탕 웃었다.
알고 보니 장모님이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불들고 “류목사 예수 잘 믿고 있지?” 하고 물어올 것만 같다.

-설교 준비하면서도 다짐을 했다.
‘내 자식들을 봐서라도 예수를 더 잘 믿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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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농군학교 교장 김범일 장로님이 쓴 [효자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책이 있다.
내용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부분이 “노력 않는 효자 없고 정성 없는 효녀 없다” 이다.
효도가 아무리 귀한 일이라고 해도, 효를 실천하는 노력과 정성이 없이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

-김범일 장로님이 제시한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지, 아홉 가지 제목만 소개하겠다.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
둘째 말씀을 들어드려야 한다.
셋째 부모님 앞에서 모습을 다듬어야 한다.
넷째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드려야 한다.
다섯째 정성껏 간해야 한다.
여섯째 일감을 드려야 한다.
일곱째 영혼을 구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덟째 몸을 편하게 해드려야 한다.
아홉째 용돈을 드려야 한다.

-설교를 맺기 전 여러분과 같이 불러보고 싶은 노래가 있다.
생각해 보니 오래 동안 못 불러본 노래이기도 하다.
바로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잠시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니 은혜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아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님의 큰 사랑 거룩한 사랑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드리자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