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2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슬퍼요(호 2:2-13)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4-15 00:00
조회
1028
호세아 강해 2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슬퍼요(호 2:2-13) 2018. 4. 8. 프롤로그

-이 세상에서 배신만큼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다.
혹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 당해 쓴 눈물을 삼켜본 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설마 그가 날...’
처음에 믿어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 앞에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해 밤을 새워본 경험이 있는가?

-이 경험이 없는 사람은 고멜에게 배신당한 호세아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이스라엘에게 철저히 배신당한 하나님의 심정을 읽어 내기란 쉽지 않다.

-결혼한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물질적인 도움이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그것은 남편에 대한 배신행위다.
이것은 바른 도움이 아니라 음행의 삯이.
남편과 살기 위해서는 이것을 제하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알 신과 연애하던 자들이었다.
전에는 하나님이 남편이었는데 무능하다고 생각돼서였는지 본 남편을 그대로 두고 바알과 동거에 들어갔다.
바알의 품에 안기는 것이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나 보다.

-신앙은 하나님을 나의 남편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필요나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쉬웠다.
그때는 하나님의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광야와는 달리 가나안 땅에서 얻는 농산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농사해서 수확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땀을 흘려서 거두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서 얻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예배드릴 때에는 하나님을 찾았지만 실제로 생활할 때에는 언제나 바알을 찾았다.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자기 자식을 붙들고 소리치고 있는 남자가 나온다.
그의 안타까운 소리를 들어 보라. 2:2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호세아가 자기 자녀에게 엄마를 고발하라는 말이다.
사실 그게 어디 아비로서 할 짓인가?
이 말을 하는 아버지의 속이 어떠하겠는가?
이것은 사실상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볼거리이다.
하지만 내가 호세아라고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호세아의 아픔과 분노가 나의 것이 된다.
우리는 성경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는 말은 어머니와 논쟁해서라도 어머니 자리를 바로 찾도록 너희들이 촉구하라는 것이다.
“논쟁하고 논쟁하라”고 거듭 말하고 있는데 이는 끝까지 논쟁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바로 잡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어머니”는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자녀들은 누구인가?
학자들은 ‘남은 자들’을 상징한다고 본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순결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남은 자”들인데 이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 “남은 자” 사상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 채로 구원한다고 하지 않았다.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
끝까지 여호와 신앙을 붙드는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말이다.
오늘 이 시대에도 남은 자를 찾고 계신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남은 자가 되기를 바란다.

-2절 뒷부분.2:2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더러운 행위를 버리도록 촉구하신다.
삶의 방식을 뜯어 고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여기서 "얼굴"은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그러니까 “얼굴에서 음란”이란 것은 뻔뻔스럽게 내놓고 지은 죄를 말하는 것이다.
"유방 사이에서 음행"이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밀한 부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드러난 것뿐 아니라 속에 감추어져 있는 그 모든 숨은 죄들까지 다 들추어내고 문제 삼고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사실 본문은 바보 같은 한 남자가 아직 철도 들지 않은 자식들에게 네 어미가 지은 모든 죄를 다 들추어내라고 따지는 것 같지만 실상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두고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따지시는 분이다.
이미 겉으로 드러나서 누구나 다 아는 문제들뿐 아니라 속으로 깊이 감추어져 있는 문제 피차 건드리지 않기로 묵계가 되어 있는 부분까지 다 들추어내서 따지라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쉽지 않는 일이다.
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
매장을 당할 수도 있다.
?겨날 수 있다.

-그냥 넘어가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 위에 바로 서야 한다.
목사뿐만 아니라 말씀을 받은 우리 모두가 해당된다.
죄가 숨어 있는 고요는 고요가 아니며 하나님을 떠난 상태의 평안은 결코 평안이 아니라고 선포해야 한다.

-3절은 “그렇지 아니하면”으로 시작하고 있다. 2:3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인가?
계속해서 그 길을 가면 그 행실을 고치지 않고 고집하면 죄의 길목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벌거벗기겠다고 하셨다.
벌거벗긴다는 말은 정말 볼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도록 가장 비참하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의지할 데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말이다.
도움 받을 수 있는 길을 철저히 차단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벌거벗긴다는 말은 치부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감추고 싶은 것을 만천하에 공개해 버린다는 말이다.
은밀하게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죄를 지으면서 지금 당장에 별탈 없다고 안심하지 말라는 말이다.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들춰내신다.

-3절 뒷부분.2:3...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궁핍과 곤경에 던지겠다는 말이다.
원수들의 침략을 허용하시므로 나라가 황폐하게 될 것이고 가뭄을 보내사 궁핍으로 식량을 삼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커다란 실패와 큰 낙담을 겪게 될 것을 경고하신다.
영적으로 목말라 죽게 될 것을 경고하신다.

-사랑하는 한꿈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상태는 건강한가? 안전한가?
주님의 경고와 무관한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빨리 돌이켜야 한다.

-우리가 왜 빨리 돌이켜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2:4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사실 이 말씀이 제일 두렵다.
주님이 긍휼을 거두어 가신다면 아무런 희망이 없다.

-좀 실패해도 희망이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많은 것을 잃었어도 희망만 간직하고 있으면 재기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정말 끝장이다.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이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별히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을 배역하고 우상 숭배에 젖은 부모들 까닭에 자식들이 버림을 받으리라는 슬픈 소식이다.

-성경은 아비의 죄가 3-4대에 이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의 잘 믿는 신앙으로 천대가 잘되는 비결도 성경은 함께 제시하고 있다.

-여러분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여러분은 자녀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기겠는가?
내가 자식의 앞 길을 가로막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나로 인해 자식이 주의 긍휼을 박탈당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것이 내게 달렸다.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이 일이 현실로 일어난다. 2:5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음행을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사랑하는 자가 자기를 따라오면 이러이러한 것을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런 것들을 내 것으로 주겠다는 말만 듣고 따라나선다.
타락의 출발은 물질적인 욕심에서부터다.
바울이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괜히 그랬겠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율법 지켜가며 힘들게 살았지만 얻은 게 없었다.
만나는 튀겨먹고 볶아먹고 삶아먹어봤자 그게 그거였다.
또 하나님이 해준 것이라고는 옷 하나로 40년 동안 해지지 않게 해준 것 뿐이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은 어려운 율법 같은 것은 지키지 않아도 모든 것을 풍요하게 누리고 있는 거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맨날 똑같은 양젖 먹고 똑같은 신발 신고 똑같은 가죽옷 입고 그 맛이 그 맛인 만나만 먹고 사는데 가나안 사람들은 건포도 떡 먹고 포도주 마시고 삼베옷 입고 산다.

-그런데 바알이 그건 것들을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힘들었는가?
바알 종교는 열심히 갖다 바치기만 하면 이런저런 것들을 주겠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살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노력만 하면 그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가?
내가 바로 너의 상급이다고 한다.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 별 것 아니다는 것이다.
임마누엘이 진짜 복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가나안의 그것이 커 보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복은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많은 것이 있어 누리면 좋다.
없으면 짜증나고 신경질 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다.
우리에게 어떤 것이 없다면 그것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없어야 우리가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리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을 신앙을 떠난 방법으로 채우는 것은 바알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공부 많이 해서 고시 보고 판?검사 의사되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판사가 많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재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의사가 많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직업정신이 아닌 생명 존중 사상을 가지고 진료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 같은데 없는 것이 있는가?
그냥 없이 지내보시기 보라.
그것이 은혜의 끈이 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그들이 남편인 여호와의 품을 떠나 있으나 하나님은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 2: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2: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만일 남편이 나를 포기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려고 할 때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둘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기할 수 없는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가시로 그 길을 막고 담을 쌓으신다.

-인생길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가시와 벽’ 그것은 장애물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사랑의 경고등으로 알아야 한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타락과 방황의 걸음으로 길을 가는데 그 길이 대로(大路)라면 그것은 형통이 아니라 저주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타락의 길로 걸어갈 때 앞길에 갑자기 가시가 등장하고 높다란 담이 나타난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
하나님 없이 내가 계획한 일은 발견되지 않아야 복이다.
찾을 수 없어야 좋은 것이다.

-그래서 7절 끝부분의 말씀처럼 “그 때의 나의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깨달아야 한다.
이 깨달음이 있을 때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다.

-이제 하나님의 탄식 섞인 독백을 들어보라.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무식하면 어쩔 수 없다.
사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그들은 속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종교적인 영역에만 제한시켰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고 다른 나라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일이지만 많은 곡식을 거두고 무역으로 돈을 버는 것은 바알이 해주고 가나안 땅이라는 지형적인 조건이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적응했다.
정확히 말하면 종교-문화적 적응을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동화되지 말고 오히려 그 사회를 변화시키라고 하셨다.
그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할 아름다운 삶이 있다.
가난하고 무식할 때에는 이런 겸손한 모습을 잘 갖출 수 있는데 부자가 되고 유식해진 후에도 여전히 아름답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좀 더 잘 살게 되었을 때 더욱 더 그와 같이 살라고 하신다.
이웃들과 더 많은 사랑을 나누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수준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따라 하면서 그들과 똑같이 비싼 물건을 사기 시작하고 그들처럼 거들먹거릴 때 하나님의 은혜는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소용이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은혜를 거두어 가고 마신다.
택한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신을 두고 다른 방법으로 사는 길을 택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셨던 모든 은혜를 거두어 가시는 것은 당연하다.
철저히 상실의 체험을 하게 하신다.

-9절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9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내가 준 것 도로 내 놓으라는 말이다.
인생에게는 본래 자신의 것이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모든 삶의 요소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누리고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내 것이 아니다.
내 손에 있다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오늘이라도 환수해 가시면 우리는 반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한시도 있지 말아야 한다.
많이 가졌다고 거만해서도 안 될 것이고 적게 가졌다고 비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기 도로 찾으시겠다는 것을 살펴보면 곡식, 포도주, 옷이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다.
이것을 환수당하면 알거지가 되고 만다.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를 거부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실제 속 마음은 바알을 섬기면서 ‘꿩 먹고 알 먹기’라고 생각했다.
여호와는 자기를 버리지 못할 것이고 바알 또한 그들에게 축복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이 여기에 속으시겠는가?

-10절 보면 수치를 안겨주시겠다고 하신다. 2:10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이다.
톡톡히 망신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 수치를 가려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낙을 폐하겠다고 하신다. 2:11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소에는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다가 그 절기 때에만 제사에 참여했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절기를 이방인들이 벌이는 향락의 축제로 만들었다.
그런 절기는 하나님께 필요없다.
폐하시겠다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해보면 삶의 잔치들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살아도 재미가 없게 된다.
허무감만 더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한번 망하게 하시기로 작정하시면 이를 돌이킬 자가 없다.
이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이켜야 할 것이다.

-삶의 요소, 삶의 낙뿐만 아니라 삶의 열매까지도 파괴시키겠다는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 2:12 그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

-이스라엘의 신앙적 상태를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내통하여 선물을 받은 음녀의 어리석음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이는 마치 타락한 여인이 본 남편과 이혼하고 이제 행복의 나래가 자기 앞에 활짝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간부에게 갔으나 결국 간부에게도 배반당하고 학대받는 운명이 된 것과 같다.

-이게 하나님의 공의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이 밥으로 삼겠다고 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이것을 바알이 준 것으로 자기 수단이 좋아서 획득한 것으로 알았다.
하나님의 축복인줄 몰랐던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여태껏 공들여 쌓았던 탑을 허무시겠다는 말이다.
발버둥을 치며 올라갔던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리겠다는 말이다.
애써 모았던 돈이 한낱 휴지조각이 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았던 재산이 몽땅 남의 것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몰래 귀고리와 패물을 장식하고 바알을 찾아가 향을 사른 날짜까지 기간까지 다 알고 계신다. 2:13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외간 남자에게 넋이 빠져서 남편을 완전히 잊어버린 타락한 아내의 모습과 조금도 다른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지금 고발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서 불의한 사랑을 따라간 이 여인의 비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극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배당 자리는 부지런히 채우지만 하나님께는 철저히 무관심한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이기도 한다.

-오늘날 교회는 믿는 사람들에게 조차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이 세상의 중심에서 밀리고 있다.
불신자들이 교회에 대한 기대치를 점점 낮춰 잡고 있다.
교회에 있는 사람들과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회복 가능할 때 우리가 돌이켜야 한다.
심판의 날이 지연되고 있을 때 우리는 돌아서야 한다.
주님의 오래 참으실 동안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한다.

-이 주님의 안타까운 호소가 우리의 귀전에 날마다 맴돌아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그 사랑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