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 :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18 )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2-11-11 08:26
조회
304


추수감사주일(2022)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18 )
2022. 11. 6.


프롤로그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 원한다.
↳그러나 감사에 대해서는 행복하기 원하는 것에 비하면 인색하다.
↳알고 보면 행복은 감사에서 오는 것인데 말이다.

-감사한 만큼 행복할 수 있다.
↳감사지수가 높으면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행복하고 싶다면 감사하라.
↳많이 행복하고 싶다면 많이 감사하라.

-행복하기 싫은가?
↳감사와 담을 쌓고 살아라.
↳불행하게 살고 싶은가?
↳매사에 불평하며 살아라.
↳모든 일에 잔뜩 불만을 갖고 살아라.
↳그럼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에게도 불행이 상속될 것이다.

-오늘은 감사주일이다.
↳한국교회는 감사주일을 연 두 차례 지킨다.
↳7월엔 맥추감사주일로 11월엔 추수감사주일로 지킨다.
↳맥추감사주일은 7월 첫주일로 고정해서 지키지만, 추수감사주일은 교회에 따라서 11월 셋째주에 지키기도 하고, 우리교회처럼 첫째주에 지키기도 한다.
↳드물게는 추석에 지키는 교회도 없지 않다.

-사실 언제 지키느냐는 별 문제될 것이 없다.
↳어떤 마음으로 감사주일을 지키느냐가 중요하다.
↳감사주일을 지키는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감사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감사주일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감사가 얼마나 회복되느냐가 중요하다.

-감사 없는 감사주일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감사, 준비없는 감사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봉투만 바꿔서 드리는 감사’가 있다.
↳하긴 ‘맨 입 감사’도 있을 수 있는데 그보다는 낫다.

-나는 해마다 추수감사주일 헌금을 위해, 일 년 동안 잔돈을 모은다.
↳통장에서 찾아서 드리는 것보다, 일 년간 모아서 드리니 더 의미가 있는 거 같다.
↳내가 처음에 정한 추수감사주일 헌금 기준은, 연봉을 12개월로 나눠서 십일조를 하는 거였다.
↳처음엔 그것도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그럼에도 그 정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몇 년 동안 그렇게 드려왔다.

-그런데 어떤 분이, 추수감사주일 헌금을 365,000원한 것을 봤다.
↳그 때 퍼뜩 스쳐가는 생각이, ‘아 이분은 하루에 천원씩 계산했구나’ 였다.
↳그리고는 하루 1천원 감사를 생활화하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 다음해 추수감사주일 헌금으로 365,000원을 했다.

-그런데 특별히 감사할 일이 있는 날은, 1천원이 아닌 5천원을 할 때도 있고, 또 1만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보니까 모아진 돈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사실 사례비 받을 때가 되면, 통장 잔고가 0 또는 거의 바닥인 생활에서, 단번에 절기헌금을 드리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일 년간 잔금 저금통에 모아서 드리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했고, 앞으로도 쭉 이어갈 생각이다.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형편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은행에 통장을 따로 개설하여, 자기 나름 추수감사절통장이라고 이름 붙이고, 수입에 따라 월 몇 만원 씩 자동이체를 한 후, 그걸 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번에 찾아서 하는 것보다는, 모아서 하는 것이 더 좋을 거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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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주일의 유래를 살펴보겠다.
↳추수감사주일의 성경적 유래는, 수장절 또는 초막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추수를 두 번 한다.
↳첫 번째 추수를 하여 감사하는 절기가 맥추절이고, 두 번째 추수를 하여 감사하는 절기가 수장절이다.

-추수감사주일의 역사적 유래는 청교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해서 첫 추수를 하여 감사 절기를 지킨 것이다.

-1609년 영국의 국왕 제임스는, 국교회를 반대하는 청교도들을 심하게 박해하고 심지어 감옥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자 그들은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피신했으나, 그곳에서도 만족할만한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가기로 결정한 후, 그 준비를 위해 3년의 기간을 보냈다.
↳타고 갈 배를 구하기 위해, 런던의 버지니아 회사의 사원들이 되어, 7년 동안 일해서 메이플라워호를 구입했다고 한다.

-1620년 9월 16일, 180톤의 크지 않은 배에 102명이 타고 65일간 항해한 끝에, 미국의 북동쪽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도착하였고, 풍랑과 식량난으로 죽을 고생을 했음에도, 하나님께 도착 감사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그곳의 땅을 개간하고 나무를 베어, 교회부터 짓고, 이어서 학교를 세우며, 맨 마지막으로 자기들이 살 집을 지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순서이다.
↳교회, 학교, 자기 집 순이었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
↳그런데 잘 보라.
↳요즘은 순서가 정반대로 바뀐 양상이다.
↳자기 집이 1번이고, 그 다음이 학교이고, 교회는 맨 마지막으로 밀린다.

-청교도들은 1년 동안 약 반수인 44명이 죽었는데,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렀다고 한다.
↳인디언들에게 사람 수가 적어지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후 그들은 인디언들과 화친을 맺었고, 추장 사모세트의 도움으로 농사에 필요한 재배 기술과 가축 사육 방법을 배워, 황무지를 개간하고 가축들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추수한 햇곡식과 채소 등의 귀한 열매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자신들에게 경작법을 가르쳐준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열었던 것이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이 되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생명을 걸었다.
↳그들의 감사는 생명을 건 감사였던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어떤가?
↳주일을 성수하고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뭘 걸었는가?
↳지금은 예수 믿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하는 시대는 아니다.
↳아직도 북한이나 극단적 이슬람 국가는 여전히 생명을 걸어야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거창하게 생명까지는 걸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혹 밥줄을 걸어야 할 수는 있다.
↳주일성수를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나와야 할 수도 있다.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터에서 약간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생명까지는 아니다.

-청교도들은 왜 신앙의 자유를 위해 생명을 걸었는가?
↳신앙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예배의 가치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길 때 예배에 생명을 걸 수 있다.

-내게 부끄러운 고백이 하나 있다.
↳내가 전에 주일날 시험을 친 적이 있다.
↳국가 고시였는데 당시 교육전도사 신분이었다.
↳목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아 시험을 치러 가던 중 운전실수로 큰 사고가 날뻔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야, 이거 보나마다 떨어지겠구나’ 했는데 하나님이 봐주셔서 붙었다.

-하지만 난 그 날의 그 일을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한다.
↳그리고 부끄러워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아내만 아는 사실이다.
↳어쩌면 오래돼서 아내도 잊었을 수 있다.
↳그런데 교우들에게 주일성수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라 위축이 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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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이 되면,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찬양이 있다.
↳설교 전에 불렀던 감사라는 찬양이다.

-이번 감사절에는 감사 찬양의 가사를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겠다.

1절....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감사에 있어서도 순서가 중요하다.
↳감사에도 앞뒤 순서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감사가 무엇일까?
↳바로 구원에 대한 감사이다.
↳이게 모든 감사의 기본이고 출발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은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다면 다른 뭘 아끼겠느냐는 의미이다.
↳또한 자기 아들까지 줬으면 다 준 것인데, 그 이상 뭘 더 줄 게 있겠느냐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구원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실제로 우리가 한 일은 없지만, 대신 하나님이 다 하셨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우리는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다.
↳자기 아들을 죽였으니, 그 이상 더 큰 게 있겠는가?
↳구원에 대한 감사는, 곧 모든 것 주심 감사인 것이다.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지난 추억이라고 하니까,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한 해를 여는 송구영신예배 후부터 오늘까지로 생각하면 된다.
↳나한테도 지난 열 달을 돌아보면, 아픔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지난 추억 인해 감사’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은 ‘지난 추억 인해 감사’이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주님이 곁에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이 안 되고, 불편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슬그머니 곁에서 떠나간다.
↳만약 이 시간 감사할 사람이 떠오른다면, ‘지난 추억 인해 감사’이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대체적으로 봄은 향기롭다.
↳새 해를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열정도 살아 있다.
↳기도 시간도 지켜지고, 성경 읽기도 잘 된다.
↳가정도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나가는 노력을 경주한다.

-그러다 가을을 맞는다.
↳가을은 풍요로운데, 이상하게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있다.
↳외로움 중의 최고의 외로움은, 사람이 떠가갈 때의 외로움이다.
↳내가 믿고 의지했던 사람, 혹은 내가 마음을 써줬던 사람들이 어느 날 떠나갈 때, 그 때 찾아오는 외로움은 쓸쓸한 외로움이다.

-그 때 가족이 힘이 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버텨주는 남편이 있다.
↳별 내색하지 않고 응원해주는 아내가 있다.
↳말없이 제 자리를 지켜주는 자녀들이 있다.

-또한 교우들이 힘이 된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순례 길을 걷고 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아닌가?
↳“아득한 나의 갈 길 다 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이다.
↳먼 길을 가는 데, 친구만한 사람이 없다.
↳아득한 길이라도, 친구와 함께 가면 갈만 하다.
↳믿음의 교우들은 순례 길을 동행하는 친구들이다.

-그러므로 우린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외로운 가을날에도 감사할 수 있다.
↳잎이 다 저버린 나뭇가지를 봐도 쓸쓸하지 않다.
↳외로움의 눈물은 사라지고,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영혼은 평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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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평범한 사람은 응답하신 기도에 감사한다.
↳비범한 사람은 거절하신 것에도 감사한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믿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기도한대로 되면 좋겠지만, 그건 내 생각일 수 있다.
↳내가 기도한대로 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근시안적이다.
↳내 눈앞에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한다.
↳아무리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라도, 불과 몇 시간 후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정말 급하게 필요한 것을 구하지 않고, 엉뚱한 것을 구할 수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건 지금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자꾸 그걸 달라고 할 수 있다.
↳떼쓴다고 금식한다고 다 들어줄 수 있겠는가?

-물론 아주 위험하지 않다면, 교육상 줘볼 수도 있다.
↳애 키우다보면 애가 뜨거운 것을 만지려고 한다.
↳그럼 부모는 기겁을 하며 말린다.
↳나는 화상을 입을 정도가 아니라면, 한 번 만져보게 한다.
↳그래서 뜨거움을 맛보게 한다.
↳그러면 그 후에는 ‘앗 뜨거’ 하면, 손을 끌어가서 만지라고 해도 안 만진다.
↳뜨거운 맛을 봤으니까...

-작정 기도하고 금식해서 하나님께 빼앗듯이 응답받은 것을, 기도의 승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교육상 줬을 수도 있다.
↳거절이 응답인데도, 억지로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교육 목적으로 주실 수 있다.

-바울은 거절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지병이 있어 3번 기도했다.
↳그 지병이 선교와 목회에 치명적인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생명을 건 기도를 세 번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

-무슨 응답을 받았는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말이 응답이지, 사실상 거절이다 다름없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 알았습니다” 하고 수긍했다.
↳그는 평생 거절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지병을 안고도 끝까지 달려갔다.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수준 높은 감사를 말한다.
↳우리의 감사 수준을 한 차원 높였으면 한다.
↳우리가 잘 돼야 하고, 또 실제로 잘 될 줄 믿는다.
↳그런데 잘 될 때만 하는 감사는 평범한 감사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이다.
↳그런 감사로는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람도 감동시킬 수 없다.

-감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감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왕 해야 하는 감사라면,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람까지도 감동시키는 감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감사 그릇에다, 모든 것을 채우신다.
↳작은 것에 넘치는 감사를 할 때, 넘치게 채워주신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아픔도 감사, 기쁨도 감사...
↳말이 쉽지 정말 아픔에 감사하기 힘들다.
↳아픔 당시에 죽을 것 같은데, 감사가 나오겠는가?
↳바로는 힘들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픔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혹 지금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혹시 아는가?
↳오프라 윈프리처럼 아픔 속에 사명이 있을지...
↳힘들겠지만 아픔에 믿음으로 감사해보라.
↳그럼 머잖아 아픔이 감사거리로 바뀔 줄 믿는다.

-하나님의 아픔은 우리가 절망하는 것이다.
↳절망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위로하여 주신다.
↳성령님이 친히 위로해 주시기도 하고, 위로의 사람을 붙여주시기도 한다.
↳그 때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얻게 된다.
↳그 때의 감사는 측량 못할 은혜의 감사이고 크신 사랑의 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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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길가의 장미 꽃 감사 장미 꽃 가시 감사
따스한 사랑의 가정 일용할 양식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소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길가의 장미 꽃 감사 장미 꽃 가시 감사”

-꽃 중에서도 장미는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다.
↳장미는 꽃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노래가 있다.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장미가 특별한 점은 돋아난 가시 때문일 것이다.
↳장미가 장미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몸에 난 가시 때문이다.
↳가시가 장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장미를 가시를 빼고 꽃과 향기에만 감사할 수 없는 이유이다.

-보면 주위에 가시 같은 사람이 한 명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항상 찌르기만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가 좋을 때도 있다.
↳그가 나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나에게 장미이다.

-그 사람 들으라고 그 사람 앞에서 이 노래를 자주 부르면 어떨까?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면 장미꽃 감사를 하라.
↳가시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장미꽃 가시 감사를 하라.

“따스한 사랑의 가정 일용할 양식 감사”

-가정에 감사하자.
↳포항에서 그것도 오천에서 가정이 멀쩡한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이런 집구석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자기 가정을 감사의 눈으로 다시 보자.
↳오늘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씩 건네보자.
↳그러면 사랑의 온도가 1도는 올라가 ‘따스한 사랑의 가정’이 될 것이다.
↳감사하는 가정치고 불행한 가정 없고, 불평하는 가정치고 행복한 가정 없다.

-특히 밥 굶지 않고 살아간다면 감사하자.
↳사실 밥 굶지 않고 산다는 게 어딘가?
↳지금도 이 땅에는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다.
↳꼭 아프리카 이야기만은 아니다.
-밥술을 뜨면서 진심을 담아서 감사하자.
↳또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건강이 있다면 감사하자.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게 더 중요하다.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소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과거나 현재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있다.
↳생각해 보면, 기쁨도 잠시이고 슬픔도 잠시이다.
↳‘아이고, 저런 일 당하고 어떻게 살아가나’ 싶은데, ‘살다보니 살아집디다’ 한다.
↳기쁨과 슬픔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늘 평안이다.
↳기쁨이 커도 하늘 평안이 없으면 별 유익이 없고, 슬픔이 커도 하늘 평안이 있으면 그게 진짜이다.

-우리 안에 하늘 평안이 있는가?
↳그럼 된 것이다.
↳잠시의 기쁨과 슬픔에 요동하지 말고, 믿음의 중심을 잘 잡자.

-우리에겐 내일의 소망이 있지 않는가?
↳‘내일의 소망’ 그건 우리가 평생 감사할 제목이다.
↳내일의 소망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영원한 천국을 소유했으니, 영원토록 감사하며 사는 게 당연하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다.
↳감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일단 감사하고 보자.
↳감사부터 하고 나서 생각해 보자.

-감사주일을 계기로 감사가 회복되고 확장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