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27: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12-3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7-28 00:00
조회
1009



고린도전서 강해 27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12-34)
2019. 7. 28.

프롤로그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해부실습용으로 기증하겠소. 특별히 하버드대학으로 보내주길 바라오. 이것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오. 부모님의 평생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내가 하버드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소."
이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게 프로 정신이 아닌가 싶다.
그는 뼛속까지 코미디언이다.
죽을 때의 모습이 그걸 증명해준다.
사실 우리도 죽음 앞에서, 이 정도의 여유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이게 진정한 부활신앙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만 믿고, 자신의 부활은 믿지 않는다면, 진정한 부활신앙이라고 보기 어렵다.
교인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 믿는다. 문제는 자기의 부활이다.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까지가 부활신앙이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데, 자기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예수님은 예수님이니까 부활했고, 다른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보지 못했다.
함께 부활신앙으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덤에 묻혔다.
그 중에 누구도 부활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목사님도 부활하지 못했고, 장로님도 부활하지 못한 채 땅에 묻혔다.
그래서 그들 중에 예수님의 부활만 믿는 자들이 생겨났다.

-사실은 이 땅에서 부활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이 땅에서의 부활했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할렐루야교회 김상복 목사님의 설교에 나오는 자전적인 이야기다.
김 목사님이 열 살쯤 됐을 때의 일이다.
밖에서 놀다가 오후에 집에 돌아오니까, 큰방에 동네 어른들이 빙 둘러서서 울고 있었다.
‘무슨 큰일이 났구나’ 싶어 가까이 가보니, 세 살짜리 자기 남동생이 죽은 채 누워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죽은 동생의 몸을 끌어안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이 어린아이를 왜 데려가십니까? 아무 죄도 없는 이 아이를 왜 데려가십니까?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는 정신없이 울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얼마동안 소리를 지르며 기도했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며 기도를 마치고, 눈물 젖은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죽었던 동생이, 큰 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울고 있던 어른들도 놀라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살아났네! 상민이가 살아났어!”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상복이가 기도해서 저 애가 살아났어!”

-김목사님은 그 때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다.
“이 경험은 하나님을 가장 실감 있게 체험한 사건이요, 최대의 신학공부였습니다.”

-그럼 김 목사님의 동생이 부활한 건가?
그건 부활이 아니라 회생한 것이다.
부활과 회생은 같지 않다.
회생은 죽었던 몸 그대로 살아나 생명을 되찾는 일이다.
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되, 영화로운 부활체의 몸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이처럼 회생과 부활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성경에도 보면, 되살아난 사람들이 나온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아들, 나사로 등이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동안 살다가 다시 죽었다.
그러니 그들은 회생한 것이지, 부활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죽음이 없어야, 진정으로 부활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영을 성스럽게 여기고, 육체를 불결하게 여겼다.
죽으면 더러운 육체를 벗어나, 신령한 영에 이르게 된다고 봤다.
그런데 육체의 부활을 말하니, 달갑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예수 부활은 문제없지만, 자기들의 육체의 부활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게 자기 필요에 따라 믿는 신앙이다.
성경을 다 받아들이지 않고 골라서 믿는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 취사 선택해서 믿는다.
더 나아가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것만 받아들인다.
그럼 성경에 나오는 숱한 기적은 제거하고 믿어야 한다.
그러면 성경은 도덕책이 되고 만다.
아니 도덕책이라고도 할 수 없다.
성경에는 비도덕적인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전부 믿든지, 전부 거부하든지 해야 한다.
부분적으로 믿는 신앙은,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는 신앙은, 사실상 신앙이라고 보기 어렵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이화숙 권사의 이야기다.
학창시절 교회에 나가 성경 공부를 했지만, 예수님이 사기꾼으로밖에 안 보여, 교회를 박차고 나갔다.
그런데 30대 중반 유방암 수술을 받게 되었고, 상황이 어려워 이제는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예수는 사기꾼이라며 교회를 박차 나왔는데, 그 예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지만, 그 절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자존심을 버리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기적같이 그녀는 치료가 되었다.
그녀는 영적 방황을 끝냈고,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고, 강의와 연구로 바빠지자, 하나님은 그녀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유방암이 재발하게 되었다.
다시 수술을 또 받게 된 그녀,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건강하던 남편이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다.
너무 기막힌 현실에, 그녀는 절망적이 되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병원으로 찾아와서 말씀을 펴놓고 기도해주셨다.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기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때 그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내게 소망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그런 절박한 현실에서 ‘하나님이 계시니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그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 후 주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와 역사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런가 하고 무심히 넘겼던 말씀인데, 이제는 이것에 내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죄인인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이,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와 와닿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게 된 그녀의 고백이다.
“50세가 넘은 나이에, 고난을 통해 진리를 발견한 나는,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 병원에 들려 남편의 귓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학교에 갈 때마다 나의 기도가 필요한 학생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자살을 하려던 학생, 위로가 필요한 학생들이 찾아왔고, 내가 만난 주님을 전할 때 눈물로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거듭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고난의 산을 넘고 계시다는 믿음이 커져 갔고, 나의 문제는 점점 작아졌다.”

-하나님이 때론 연단을 통해, 당신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실 때가 있다.
고집이 세면 연단이 커질 수 있다는 것쯤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지만, 교만한 목은 꺾으시는 분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지만,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부활할 수 있지만, 죽은 자는 부활할 수 없다고 하는 자들의 논리는 틀렸다는 것이다.
13절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람 되심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100% 사람이 되셨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것이다.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아무리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음이 귀하지만, 부활이 없다면 의로운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실패한 죽음이 된다.
그러니 그들이 전파하는 것이 헛것이 되고 만다.
전파하는 행위가 헛것일 뿐 아니라, 전파하는 내용도 헛것이 된다.
사도들이 무엇을 전파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이 일에 자기들이 증인이라고 했다.
“우리를 보라. 우리가 예수 부활의 산증인이요” 라고 소리쳤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제자들은 거짓 증인이 된다.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사기도 그런 사기가 없다.
2004년 10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조희팔씨 일당이, 의료기 임대사업 등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 속여,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 잠적한 사건이 있다.
피해자가 5만 명, 피해액이 3조 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잠적하고 나서, 피해자 중에 1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단군 이래 희대의 사기극’으로 불린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제자들은 조희팔보다 더 큰 사기를 친 것이다.
사기를 친 기간도 어마어마하다.
무려 2천년을 넘겨가며 사기를 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려고 했다.
본래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활의 예수님을 만남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걸어 잠궜던 문을 박차고 나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외쳤다.
종교지도자들의 핍박도 회유도, 그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세상에 누가 거짓 증언에 자기 목숨을 걸겠는가?
제자들이 하나 같이 순교를 당했다.
어떤 것보다 그거야말로 예수 부활의 확실성이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이다.
그래서 아무 것에나 목숨을 걸지 않는다.
목숨보다 귀한 일이 아니고는, 자기 목숨을 걸지 않는다.
제자들에게 예수 부활은, 자기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믿음은 헛것이 된다.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우리의 믿음이 헛되니,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헛것을 믿는 것이다.
허상을 좇아가는 것이다.
영원히 잡을 수도 없겠지만, 잡았다고 해도 소용없다.
생의 끝에 “너 여태 헛 믿었다”는 말보다 허무한 말이 있을까?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느낀 게, 바로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자기는 최고로 잘 믿었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부활의 예수님을 만남으로, ‘아 내가 지금까지 헛 믿었구나’ ‘내가 여태 믿은 게 헛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거나 잘 믿으면 되는 게 아니다.
진짜를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예수 십자가를 믿어야 하고, 예수 부활 우리 부활을 믿어야 한다.

-교회는 열심히 다녔는데, 어렸을 때부터 빠지지 않고 다녔는데, 믿음이 없는 것도 신기하지만, 믿음이 없이 꾸준히 다니는 것도 신기하다.
사실 신앙은 인생을 거는 것이다.
내 인생 전부를 걸고,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의 핵심인 부활이 없다...? 그러면 망하는 것이다.

-그걸 바울이 말하고 있다.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신앙의 길은 좁은 길이다.
그 길은 좁고 험한 길이다.
그 길을 걷는 우리를 보면서 어리석다고 조롱할 수 있다.
“왜 한 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사느냐”고 놀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조롱과 놀림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웃지요^^이다.

-최용덕이 쓴 <우리가 걷는 이 길>의 노랫말이다.우리가 걷는 이 길은 보기에 좁고 험하며찾는 이 매우 적어서 외로웁지만이 길 끝에는 우리 주님이 계셔우리를 그 품에 안아 주시리세상 사람들 우리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조롱하지만이 길을 가는 자마다 영원히 주와 살리라

-안심하기 바란다.
우리를 어리석다고 조롱하는 그들이 더욱 불쌍한 자이고, 우리는 영생을 소유한 가장 행복한 자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첫 열매는 수확물 전체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후에 거두어질 결실까지도 암시한다.
어떤 나무에 첫 열매가 열렸는데 사과가 열렸다.
그럼 그 나무는 다음에도 사과 열매가 열린다.
그 나무가 사과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말은, 그와 연합한 우리도 부활할 것을 말해준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못했다면, 우리에게도 부활이 없다.
그리스도가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
아담이 죽은 자의 대표자이듯이, 그리스도는 산 자의 대표자이다.
아담 안에 머물러 있으면 죄와 사망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생명과 부활이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바울은 부활이 시간적 간격을 두고 일어남을 말해준다.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일어났다.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그 다음이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를, 공동번역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 번역했다.
누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인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그리스도께 속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만 하면 된다.
내가 부활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내가 죽음에서 깨어나려고 힘쓸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만 하면 된다.

-주님도 말씀하셨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가지는 열매 맺는 것에 대해, 별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 “예수 부활, 우리 부활!”

-그 후에는 마지막이 온다.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맨 마지막에 멸망 받을 것이 바로 사망이다.
사망은 그 동안 사람들에게서 왕노릇을 해왔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로 말미암아, 사람에게서 왕노릇을 해왔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다가와, 순간순간 위협하고 겁을 준다.
그래서 배교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돌아서게도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왕노릇하시게 되면, 더 이상 사망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
그 때까지 우리는 잘 버텨야 한다.
지금보다 신앙생활하기가 좋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 돌아가는 거 보니,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더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주님이 말씀하셨다.막 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끝까지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부활 신앙을 가지지 않고는,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견딜 수 없다.
사람의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있다.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만물을 당신의 발아래에 두실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잘못된 교훈을 전하는, 사이비와 이단이 득세하고 있다.
교회 다닌다고 다 믿을 수 없다.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교회들이 상당하다.
전도하면 그렇게도 안 믿다가, 이상한 교회에 전도 받아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도자 입장에서 얼마나 힘 빠지는지 모른다.

-부활을 믿는 믿음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함을 유지한다.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아프리카 우간다 어떤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당시 우간다는 독재자인 이디 아민이라는, 악명 높은 사람의 통치 아래 있었다.
케파 샘팡기 목사는 종종 정부의 불의를 책망하는 예언적인 설교를 하곤 했다.

-이 사건이 난 아침에도, 7천명의 교인들이 부활절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설교를 마친 후 목사님이 교회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거기에는 5명의 비밀경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우리는 국가의 명으로 반국가 사범을 처단하기 위해 왔소”라고 하면서, 목사님에게 총을 겨누었다.

-이때 케파 목사님은 아주 담담하게 이런 부탁을 했다.
“오늘은 부활절 아침입니다. 나는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죽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지만, 나에게 2분의 시간을 주신다면, 잠시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2분의 시간을 허락 받은 목사님은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간다의 통치자 이디 아민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의 명령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받들어야 하는, 불행한 이 5명의 형제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간다 국민에게 자유를 주시옵소서. 내 사랑하는 조국이 사랑의 땅과 의의 땅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죽음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이 땅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쳤을 때, 목사님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기도를 듣던 경찰들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비밀경찰의 지휘자가 무릎을 꿇으면서, “목사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목사님은 피신하여 교회에 계시지 않는 것으로 보고하겠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떠나 주십시오”라고 했다.

-33, 34절을 읽는 것으로 설교를 마무리 하겠다.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공동번역으로 한 번 더 읽겠다.33 속지 마십시오. "나쁜 친구를 사귀면 품행이 나빠집니다."34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부끄러운 줄을 알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