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 01:마음이 가야 기쁨으로 기도가 됩니다.(빌 1:1-11)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9-02 00:00
조회
997
빌립보서 강해 01마음이 가야 기쁨으로 기도가 됩니다.(빌 1:1-11)2018. 9. 2. 프롤로그

-빌립보서는 기쁨의 책이다.
빌립보서 주제가 기쁨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기쁨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긴 인생 여정에서 기쁨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기쁨은 성령의 열매다.
기쁨은 성령 충만함의 표시다.
기쁨은 예수 잘 믿는 증거이다.
예수 잘 믿는 것은 얼굴에 써 있다.
얼굴에 기쁨이 전혀 없다면, 그가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아무리 전도를 많이 해도, 예수 잘 믿는다고 볼 수 없다.

-기쁨의 서신인 빌립보서를 강해하는 동안, 우리 교회에 기쁜 일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 자신과 가정과 생업에, 크고 작은 기쁜 일들로 풍성해 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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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는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다.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빌립보서의 발신자와 수신자가 나온다.
발신자는 바울이다.
그가 빌립보서를 쓸 때, 누가 곁에 있었다.
디모데였다.

-디모데가 누구인가?
바울이 복음으로 낳은 아들이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가 아들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성장하여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다.
그리고 후에는 바울의 후계자가 되었다.

-바울이 맨 마지막에 쓴 편지가 디모데후서이다.
마지막에 썼다는 말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썼다는 말이다.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요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바울은 편지에서 자신을 이렇게 칭했다.“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

-여기서 종은 노예를 말한다.
종에게는 자유가 없다.
종에게는 권리가 없다.
종에게는 소유가 없다.
종은 매여 있는 존재다.
종은 속해 있는 존재다.

-바울은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그렇게 이해했다.
‘주인과 종’
나는 예수님한테 매여 있는 존재다.
나는 예수님에게 속해 있는 존재다.
나는 예수님 앞에서 자유도 권리도 소유도 없는 존재다.
나에게는 예수님이 전부다.----------------------------------------------------------------

-이어서 빌립보교회가 있던 빌립보에 대해 살펴보겠다.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게도냐의 왕 빌립 2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다.
B.C. 167년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B.C. 42년 이후 로마 퇴역 군인들의 거주지로 지정되면서부터, 빌립보는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이자, 로마의 군사 전초지로서, 행정 수도인 데살로니가와 함께 마게도냐의 중심 도시였다.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곧 빌립보가 투표권과 자치권 등, 모든 면에서 로마와 동등한 특권을 누렸다는 것을 말한다.
빌립보는 한마디로 로마시의 축소판이었다.
빌립보 시민들은 이런 특수한 지위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마도 이것이 바울이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빌립보서의 수신자인 빌립보교회에 대해 살펴보겠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기간 중, 마게도냐 지방에서 처음으로 세운 교회이다.
오늘날로 치면 유럽 최초의 교회인 셈이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통해 처음 복음을 접한 이후, 지속적으로 바울과 친밀한 관계 유지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물질적으로 선교 사역을 후원하는 등, 바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준 교회였다 .
바울이 많은 교회를 개척했지만,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빌립보교회는 출발이 은혜로웠다.
바울이 아시아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바울을 가로막으셨다.
바울은 한 번 더 아시아지역으로 가려고 했지만, 성령님이 또 막으셨다.
그 날 밤 꿈에 마게도냐 한 사람이 손을 흔들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줄 알고 빌립보로 갔다.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빌립보에 갔는데, 빌립보에는 그 흔한 회당 하나 없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회당은 선교 센타 역할을 했다.
유대인들이 회당을 구심점으로 해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당이 없으니, 바울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회당이 없다는 말은, 유대인들이 거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침 안식일이 되자, 바울은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로 나갔다.
그곳에서 여인들을 만났고,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한 여자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경청했다. 행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물론 그의 마음의 문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한 이는 주님이시다.
우리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면, 주님이 귀를 열어 복음을 따르게 하신다.
이게 영적인 공식이다.

-한 영혼을 구원함 있어서, 우리 역할과 주님의 역할은 확연히 구분된다.
우리는 우리 역할만 하면 된다.
그럼 나머지는 주님이 자신의 역할을 하신다.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선교라고 한다.

-루디아는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와 온 집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는 자기 가정에 바울을 초대하여, 그곳에서 지내게 했다.

-바울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났다.
그런데 이 여종이 바울을 따라 다니면서 힘들게 했다.
좀 귀찮게 한 정도가 아니고, 아주 괴롭혔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안에 있는 귀신을 나오라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여종을 통해 돈벌이를 해오던 주인이, 바울을 고소한 것이다.
귀신 들린 여종을 통해,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어온 주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바울은 얼토당토 않는 일로 고소를 당하게 됐다.
관리들에게 끌려가, 이상한 풍속을 전한다는 죄목으로, 옷이 찢겼고 매를 맞아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발이 차꼬에 채인 채 감옥에 갇혔다.
너무나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바울은 그렇게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밤이 깊어갈 때 기도와 찬송을 했다.
다른 죄수들도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했다.
그러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벗겨졌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간수가 자다가 깼다.
심각한 상황에, 그는 어찌할 줄 몰라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매 죽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 때 바울이 그를 말렸고, 간수는 무서워 떨며 바울에게 물었다.“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바울은 침착하게 그에게 답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게 해서 간수와 그의 집에 있던 온 가족이 세례와 구원을 받았다.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루디아와 그 가족, 간수와 그 가족이 개척 멤버로 첫 출발을 했다.
출발이 그 어떤 교회보다 은혜로웠다.
교회는 첫 출발이 좋아야 한다.
교회의 개척 멤버가 좋아야 한다.
그게 교회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뿌리가 은혜로우면, 은혜로운 꽃이 피고, 은혜로운 열매를 맺게 된다.

-이게 짧은 개척교회 생활을 통해 배운 경험적 사실이다.

-빌립보서를 받은 사람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누구인가?“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빌립보서는 불신자에게 쓴 것이 아니다.
모든 성도에게다.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다.
모든 성도는 이해되는데, 감독과 집사들을 명시하고 있다.
감독은 교인들을 양육하고 인도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다.
오늘날의 목사와 장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말씀은 모든 성도가 읽되, 특히 리더들이 더 읽어야 한다.
리더들이 말씀의 은혜를 더욱 사모할 때,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진다. 행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우리교회가 말씀 위에 든든히 세워지길 바란다.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를 위해 기도해주기 바란다.
말씀을 받는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일에 힘쓰라.----------------------------------------------------------------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다.
은혜와 평강은 바울의 인사말에 있어 핵심이다.
대부분의 서신서에서 “은혜와 평강”으로 인사했다.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때, 평강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사모해야 할 것이 은혜이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평강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나님과의 평강, 자신과의 평강, 타인과의 평강, 환경과의 평강, 다 마찬가지다.

-우리교회는 예배 순서에 평화의 인사가 있다.
설교를 시작하기 직전에 한다.

-다시 한 번 해 보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또한 목사님과 함께”

-앞뒤좌우 분들과 인사하자.
“주의 은혜입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은혜와 평강을 비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인사다.
그 의미를 알고, 앞으로는 보다 진심을 담아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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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에 이어서 바울의 기도가 나온다.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우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왔다.
괜히 감사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감사가 나오게 했다.
이건 범사에 감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감사라는 통로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범사에 감사는 우리를 위해서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와는 다른 감사가 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감사이다.
빌립보교회 교우들을 향한 바울의 감사가 그것이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우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빌립보교회가 있어 감사해요.”

-“하나님, 빌립보교회 교우들의 사랑에 감사해요.”

-바울은 빌립보교회 지금 담임 목사가 아니다.
빌립보교회를 개척한 것은 맞지만, 떠난 지 오래됐다.
그럼에도 멀리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잊지 않고 사랑으로 섬겼다.
그들이 바울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랬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복음을 받았다고, 다 바울을 섬겼던 것은 아니다.
바울이 어려움을 겪을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바울이 어찌 그들을 잊겠는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럼 간구할 때는 어땠을까?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기쁨으로 간구했다.
빌립보교회 교우들의 사랑이, 바울의 마음을 훔쳤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우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마음이 가니, 기쁨으로 기도가 됐다.
그렇다. 마음이 가야 기쁨으로 기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개척한 교회니, 기도를 왜 안 했겠는가?
하지만 기쁨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그런지, 기쁨으로 기도가 되는 사람이 있고, 안타까움으로 답답함으로 기도가 되는 사람이 있다.
기도할 때 마음이 더 가는 사람이 있고, 상대적으로 덜 가는 사람이 있다.

-내가 교인이라면, 목회자로 하여금 기쁨으로 기도하게 하겠다.
그러려면 목회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목회자와 가까이 지내려고 해야 한다.
그게 신앙생활의 지혜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자기와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자를 위해서, 기쁨으로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자기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자를 위해서도 기도는 하지만, 기쁨으로 기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단 마음이 안 가니까...
마음이 가야 기쁨으로 기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바울이 빌립보교회 교우들에게 마음이 간 이유가 소개되고 있다. 1: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어보겠다.1:5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복음을 전하는 데 협력해 온 것을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첫날은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첫날이다.
빌립보교회는 예수 믿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협력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다.
모든 교회가 그렇다면, 바울이 이 부분을 꼭 찍어서 감사를 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예수를 믿을 때는 뜨겁다.
복음을 위한 일에 열심히 참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꾀를 부리고, 요령을 피운다.
그러다 에베소교회처럼 첫사랑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있을 때 뿐 아니라, 바울이 멀리 떠나 있는 지금도, 바울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점이 그렇게 고맙게 여겨진 것이다.
기도만 하면, 그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피어오른다.

-바울은 확신했다.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교회 교우들이 그렇게 한 것이, 그들 안에 역사하신 주님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우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았던 것이다.
그 주님 때문에, 힘든 중에서도 힘을 낼 수 있었다.
그 주님께 쓰임 받고 있는, 빌립보교회 교우들이 그렇게 대견스러웠다.

-빌립보교회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주님이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이도 주님이시다.
빌립보교회를 시작하신 이가 한꿈교회도 시작하셨다.
한꿈교회를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이도 주님이시다.
우리는 그 때까지 믿음으로 달려가야 한다.

-어느 정도 달리다보면 한계점이 온다.
그 한계점에서는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버티다보면, 골인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지금 바울은 로마 옥중에 있다.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나의 매임” 이란 말에서 알 수 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
바울이 무슨 나쁜 짓을 해서 갇힌 게 아니다.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을 위하다 갇혔다.
바울은 그것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은혜로 여겼다.
나 같은 것도 써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찬양이 가능하다.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빌립보교회 교우들은 복음 사역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을 실질적으로 도왔다.
기도로 도왔고, 물질로 격려 했다.
그걸 이렇게 표현했다.“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그냥 바울을 도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게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된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를 돕는 게, 그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는 것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바울이 그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했다.

-어떤 사람을 마음에 담아두면, 그 사람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온다.
기도 부탁을 받아도, 그 때 바로 기도하지 않으면, 나중에 기도할 때 잊어버린다.
하지만 마음에 담겨진 사람은, 어느 때 기도해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기도가 절로 나오고, 자연스럽게 나오니, 기쁨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렇다. 마음이 가면 기쁨으로 기도가 된다.

-바울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빌립보교회 교우들을 사모하고 있다.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그들을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몸이 매여 있는 신세이다.
그러니 사모하는 마음이 날로 커간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이 얼마나 믿음이 자랐을지 궁금해진다.
자기가 목회했던 교회의 교인을 오랜 만에 만나면, 가장 궁금한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얼마나 믿음이 자랐을까이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긴 한다.
그래서 믿음이 자랐다는 게 느껴지면, 그렇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바울은 그들을 사모하여 기쁨으로 기도했다.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세 가지 제목으로 기도했다.
사랑이 더 풍성하기를 위해 기도했다.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했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위해 기도했다.

-이건 우리 자신의 기도제목이기도 해야 한다.
“주여, 우리에게 사랑이 더 풍성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가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하소서.”
“주여, 우리에게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하소서.”

-빌립보교회 교우들을 향한 이 기도를, 바울은 감옥에서 기쁨으로 했다.
그냥 그렇게 기도가 나왔다.
그들이 바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