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15:야곱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십니다.(호 12:1-1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8-12 00:00
조회
866
호세아 강해 15야곱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십니다.(호 12:1-14)2018. 8. 12. 프롤로그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장례식이 있었다.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아이였다.
그런데 이 불쌍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찾아온 한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겼다.
그걸 팔아 술을 마신 그 사람은 바로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20년 후, 시카고 제일장로교회에서는 수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었다
“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신발을 훔쳤던 파렴치범은 바로 저였습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다시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입니다.”
그가 바로 시카고의 부흥사 멜 트라더 목사였다.

-사람은 변한다.
그러나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좀체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변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다.
말로는 변하고 싶다면서, 실제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변화를 외치면서도, 은근히 혹은 대놓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안소니 멜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중년이 되어서는 내 이웃을 변화시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70세가 된 오늘은 나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변화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변화는 발전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변화는 살기 위한 것이다.
변화는 살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자신을 포장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변화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변화는 자기가 치장하고 있는 것을 떼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참된 내가 드러난다.

-워싱턴시에 있는 링컨의 기념관은 국회 의사당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 기념과 안에 링컨의 좌상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조각가 죤 보그룸의 작품이다.
그가 링컨의 좌상을 만들 때의 일화가 있다.
조각가 보그룸이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링컨의 석상을 만드는데, 한 흑인 여성이 고용되어 조각하는 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청소하는 일을 했다.
매일같이 보그룸이 땀을 흘리면서 큰 바위를 두둘긴다.

-여러 날 후에 한 덩어리의 바위 속에서 훌륭한 링컨의 형상이 나왔을 때, 이 흑인 여성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어떻게 이 돌에서 링컨의 형상이 나왔어요?"

-그때 조각가 보그룸이 대답했다.
"이 돌 가운데서 링컨의 형상이 아닌 부분을 다 없애 버렸더니, 이렇게 링컨의 형상이 나왔어요."

-야곱과 이스라엘이 전혀 별개가 아니다.
야곱 안에 이스라엘이 있었다.
이스라엘에 이것저것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깎아내어 이스라엘을 만드셨다.

-야곱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거짓과 포학이다.

-야곱은 거짓말쟁이였다.
그의 별명은 속이는 자다.
어리숙한 형을 속이고, 눈먼 애비를 속였다.
결국은 그대로 당했다.
외삼촌 라반에게 몇 갑절로 당했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며칠 길어야 몇 달 생각하고 밧단아람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20년을 썩었다.
야곱의 인생은 한 마디로 속고 속이는 인생이었다.

-야곱은 포학했다.
몹시 잔인하고 난폭했다.
드러나는 겉모습과는 달리 속이 그랬다.
대단한 승부사적 기질이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바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루고야 말았다.
그 안에 내재된 포학은, 아들 시므온과 레위를 통해 드러났다.
세겜 사람들을 속여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한 후에, 그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야곱은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간 삶이었다.

-바람을 먹는다는 말은, 생각이 허황되게 부풀어서 남이 추켜세워 주는 말을 믿고 자신을 엉뚱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헛바람이 든 상태이다.
사람이 헛바람이 들면,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조언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잘 되는 것을 시샘해서 그런 줄 안다.

-동풍을 따라간다는 말은, 망하게 된다는 말이다.
동풍은 너무나 위력적이다.
동풍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불러오는 뜨거운 바람이다.
동풍이 심할 때는 모래진을 동반해 오기도 한다.
동풍이 불어오면, 채소와 곡식이 말라 죽는다.
집이나 건물들이 파괴되기도 한다.
심지어 지중해의 배들에게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바람을 먹는 순간, 동풍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헛바람이 들었을 때 가라앉히지 못하면, 동풍을 따라가서 결국 망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거짓과 포학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해서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기껏 앗수르를 믿는다.
애굽을 의지한다.

-그게 동풍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이 헛바람이 들어, 동풍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모른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이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그와 논쟁하셨다.
그를 그 행실대로 벌하셨다.
그의 행위를 따라 보응하셨다.
그래서 끝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손해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잔 머리 굴리면, 실컷 고생한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분이 어떤 하나님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백성이, 거짓과 포학을 행하며,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가는데,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놔두면 뻔하니 망하는 게 보이는데, 그것을 두고만 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논쟁하신다.
하나님이 논쟁하셔서라도 그들을 막으신다.
끝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벌하신다.
가만히 놔두면 그들이 완전히 망하기 때문이다.
거짓과 포학으로 완전히 망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손에 징계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
하나님은 기대하고 있는 자를 징계하신다.
하나님은 복을 주고 싶어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그리고 징계는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죽을 정도로는 아니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불붙는 긍휼이다.
어쩔 수 없이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고, 마지못해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는데 급하시다.

-야곱은 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다.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이삭이 장가를 갔는데, 한 동안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리브가가 임신을 했다.
하나님이 둘을 한꺼번에 주셨다.
문제는 이 둘이 태속에서 싸운다는 것이다.
보통 쌍둥이는 사이가 좋다.
싸워도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임신부인 리브가가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창 25: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하나님께 묻기까지 했다.
아무튼 야곱은 별났다.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자기가 먼저 나가고 싶었는데, 에서가 먼저 나가자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것이다.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아주 경쟁을 즐기는 성격이다.

-심지어 그는 하나님과도 경쟁했다.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참 보통내기는 아니다.
외삼촌집에서 이십년간 살았는데,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그 때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도저히 이곳에서는 못 살겠다는 생각에 떠났는데, 얍복강을 건너기 전에, 형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데리고 자기에게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야곱이 어떻게 했는가?
재산과 가축과 처자식을 보내고, 자기 홀로 얍복강 나루터에 남았다.

-그리고 어떻게 했는가?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온 밤을 천사와 씨름했다.
천사와 씨름한 얍복강 나루터가 없었다면, 그는 평생 야곱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야곱은 벧엘에서도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래서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얍복강 나루터는 그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져주시는 것을 통해, 일평생 이기려고만 했던 자신을 돌아봤다.
그리고 울며 간구했다.
그래서 그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에게 얍복강 나루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죄짓는 것보다 예수 믿는 것이 훨씬 편하고, 불순종하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쉽다고 고백할 수 있다.

-의학공부를 하는 한 미국의 여대생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우연히 마약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피곤할 때마다 마약을 복용하곤 했는데, 나중엔 그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
인턴 과정,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서 의사로 일하면서도, 매일 마약을 복용했다.
그것을 복용하지 않으면, 환자를 진료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이 직장 동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마약을 살 수도 없는 가난뱅이가 돼버리자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로 마약을 끊어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다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저녁에, 자살을 결심하고, 비를 잔뜩 맞으면서 뚝 옆의 저수지로 나아갔다.
뚝 위에 올라서서, 여태껏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오! 하나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
비를 맞으면서, 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 위가 뜨거워지면서, 전신에 그 뜨거움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누군가가 양 손으로 거두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그녀는 날듯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살하려는 마음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후로 깨끗이 마약을 끊어버렸고, 후에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저수지 뚝이 그녀에게 얍복강 나루터였던 것이다.
그렇다. 누구나 얍복강 나루터를 거치기만 하면, 새사람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누구도 얍복강 나루터를 거치지 않으면, 새사람이 되기 어렵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맘 한 번 고쳐먹는다고 쉽게 바뀌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죽다 살았다.
야곱은 결사적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고백했다.5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야곱은 만군의 하나님을 만났다.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남은 생을 살았다.
자기 이름에 하나님이 들어가 있다.
“이스라엘”
하나님이 “너, 나와 겨루어 이겼다”고 이름을 붙여주셨다.
야곱은 어디를 가나 하나님의 이름이 자기를 따라다녔다.

-우리도 야곱 못지 않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의 소유인 사람, 그리스도가 주인인 사람이란 뜻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그리스도와 붙어 있다.
그리스도란 이름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때, 자유와 평화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뜻을 위해 살 때, 기쁨과 행복이 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야곱 곧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지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다.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마음이 저만큼 멀어져 있다.

-예전에는 그들이 하나님만 찾았다.
아이가 엄마를 찾듯, 그렇게 하나님을 찾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필요할 때만 찾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바알을 찾았고, 저럴 때는 아스다롯을 찾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하나님을 찾았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라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라고...

-인애와 정의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인애를 사랑으로, 정의를 공의로 대치할 수 있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요, 공의의 하나님이다.
그분의 사랑과 공의가 만난 곳이 바로 십자가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의 하나님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새 생명을 얻은 우리에게, 나타나야 할 삶의 열매가 있다.
그게 사랑과 공의다.
그렇다고 둘은 나눌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사랑의 공의요, 공의로운 사랑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서는 인애와 정의가 실종되었다.7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특히 정의가 무시되었다.
상인이 거짓 저울을 가지고 있었다.
상인은 정상적으로 장사를 해도 남는 게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남는 게 많지 않다.
그래서 거짓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다.
상대를 봐가면서, 어떨 때는 이 저울을, 또 어떨 때는 저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쌓여간다.
돈 버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모른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걸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그러나 그들은 그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자신들은 정당하게 재물을 얻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돈에 눈이 멀어 거짓 저울을 썼는데 들통이 났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고, 이제라도 제대로 된 저울을 써야 한다.
더 나아가 거짓 저울을 이용하여 얻은 재물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가가 수고해서 모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물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찾아낼 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분노 지수가 점점 높아갔다. 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10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그럼에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진정시키시며, 이스라엘의 어린시절을 반추하신다.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부터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이었음을 말씀하신다.
자라면서 속을 썩일 때마다, 그들에게 매를 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지자를 보내 말로 타이르셨다.
비유를 베풀었다는 말은,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셨다는 말이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11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한 번 거짓 저울로 돈 모으는 재미를 봐서인지, 거짓을 버리지 못했다.
그게 송아지 하나님 은혜라고 생각했는지, 송아지 제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제단이 얼마나 많았던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았다.
하나님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눌러 참으시며 좋은 말로 타이르고 있는데,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전히 삶 속에서 거짓을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 대신 송아지 하나님께 제사했다.
하나님 무서운 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신자가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면, 불신자만도 못한 노답 인생이 된다.

-하나님은 또 야곱을 상기시키신다.12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13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

-거짓으로 형을 속이고, 눈먼 애비를 속이고, 아람으로 도망하던 이야기, 아내를 얻기 위해 삼촌을 섬기고 양을 쳤던 이야기를 회상하게 하신다.
그런 불의한 야곱에게 은혜를 베풀어, 후에 요셉을 통해 애굽에 머물게 하시고, 그 후에 모세를 통해 구원해 내신 것을 상기시키신다.
그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다.14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하나님이 그들을 단단히 혼내실 것을 말씀하신다.
자기들이 한 만큼 징계하실 것을 말씀하신다.“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불의에 대한 보응으로서 피를 보는 대가를 받게 될 거라는 것이다.
야곱의 후손 아니랄까봐 어쩌면 그리도 닮았느냐는 하나님의 한탄이다.

-하나님이 야곱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야곱이 고집 부리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야곱이 자기만 생각하고 잔 머리 굴리다가 얼마나 당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어떤 변화된 삶을 살았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