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14:하나님은 긍휼에 불붙어 있는 분입니다.(호 11: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8-05 00:00
조회
946
호세아 강해 14하나님은 긍휼에 불붙어 있는 분입니다.(호 11:1-12)2018. 8. 5. 프롤로그

-슈퍼주니어라는 일반 아이돌 남성 그룹이 불러서 잘 알려진 노래가 있다.
그들의 [돈 돈! (Don't Don)]이라는 앨범에 친숙한 노래가 실려 있다.
노래 중간에 랩이 들어가 있어 색다른 맛이 났다.
원제목이 <당신을 향한 노래>인데 가사 첫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며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이 내용을 믿는가?
믿어도 안전한 메시지를 담은 찬양이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참 많이 불렀다.
부르면 부를수록 좋고 은혜롭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어느 날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 아니다.
아주 먼 옛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을 이루시고자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셨고,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하셨다.
우리가 이 자리에 스스로 온 게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요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의 모든 과거는 하나님의 은총의 걸음이었다.
순간순간은 힘들었지만, 지나고나니 은총의 발자국이었다.

-오늘 말씀도 그런 얘기다.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나온다.
어떤 관계인가?
부자관계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여 애굽에서 불러내셨다.
고통과 신음으로부터 건져내어 출애굽을 시켜주셨다.

-그들의 고통과 신음 소리가 커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기도를 많이 해서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것은, 그분의 사랑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렸을 때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셨다.
왜 사랑하셨는지 모른다.
그분이 알아서 사랑하셨다.
무슨 이유로 사랑하셨는지 모른다.
그분의 주권으로 사랑하셨다.

-우리는 어떤가?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녀였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자신의 아들로 딸로 받아주셨다.
다른 이유가 없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은혜에 보답하는 양으로, 자신의 전 인생을 그분께 드린다.
어떤 사람이라고 했다.
다 그런 게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엄마가 자식 때문에 대개 속상하면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저거 낳고 미역국 먹은 내가 바보지”

-엄마를 예수님으로 바꿔볼까 ...
“저거 살리겠다고 십자가에 죽은 내가 바보지”

-물론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신다.
그렇게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우리 체질을 우리 수준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내하시며 지금까지 긍휼을 베풀고 계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자기들을 불러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다시는 우상에게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가나안에서 정착하여 하나님을 종교적인 영역에 제한시키고, 농사를 위해 풍성한 수확을 위해 우상 앞에 달려갔다.

-그래서 지금의 상태는 하나님과 너무 멀어져 있다.11: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들 외쳤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갔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멀어진다는 말은, 바알에게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이런 일을 예상하고, 모세가 경고하고, 여호수아가 경고했지만, 그 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굳게 맹세했다.

-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나안 신을 가까이했다.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기본 욕구를 자극하는, 가나안 신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바알이 좋다는 것이다.
혼내는 하나님은 싫고, 다 받아주는 바알이 좋다는 것이다.
삶을 간섭하는 하나님은 싫고, 눈감아주는 바알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알에게 완전히 빠졌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렸을 때, 애굽에서 불러내어 어떻게 했는가?11: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그들을 가르치고 보살펴 주었다.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다.
각별하고 남다른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일찍이 모세를 통해 예언하셨다.신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신 32: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어쩌면 이리도 신랄하게 표현했을까 싶다.
우리가 살만할 때 주의해야 한다.
힘들 때에야 깨어 기도한다.
고통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는다.
살만해지면 느슨해진다.
세상에 눈이 간다.
세상의 가치에 눈이 돌아간다.
세상의 가치에 가치를 부여하고 시간과 돈을 쓴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이 비수같은 말씀을 기억하라.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말씀하고 있다.11: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의 줄로 이끄셨다.
짐승을 이끄는 줄이 아닌 자율적인 사랑의 줄로 이끄셨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임을 말씀해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짐승처럼 코를 뚫거나, 목줄을 해서 강제로 끌고가는 분이 아니다.
인격적으로 대하신다.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즉 자유를 주신다.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신다.

-하나님 안에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을 계속 누릴 수 있다.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이것들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배불렀다.
자기들에게 그렇게 하신 하나님을 버렸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 앞에 나아가 제사했다.
우상에게는 쉬도 때도 없이 달려가 제사하면서 하나님께는 연중행사로 몇 번 제사하고 그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여겼다.
이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하시겠는가?

-급기야 하나님이 분을 발하신다.11: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그들은 어차피 애굽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광야길을 걸으며 습관처럼 내뱉은 말이 무엇인가?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
돌아가면 죽는다.
돌아갈 수 없는 홍해를 이미 건넜다.
그러면 애굽을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애굽을 마음에 담고 있는 한 광야길은 고생길이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힘들어도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
좁은 길이어도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
그게 사는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되돌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앗수르 임금에게 붙이시겠다고 하신다.
디글랏 빌레셀 3세라는 앗수르 임금이 죽자, 이스라엘은 이 때다 싶어 앗수르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애굽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새로운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완전히 짓밟았다.

-떠나온 세상에 미련두지 말라.
세상 임금이 우리를 예수님한테 빼앗기고,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양무리에 있으면 안전하다.
우리 영혼은 양무리 곧 교회에 속해 있을 때 안전하다.
교회 자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 믿다가 포기한 사람의 영혼 상태를 말해준다. 11: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들의 영혼이 난도질당하게 된다.
가진 것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노략질 당하게 된다.

-예수님은 세상 임금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셨다.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을 등지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 중에,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중에라도 돌아온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돌아온 사람들은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영혼이 돌아오기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영혼을 도둑에게 도둑질 당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는 게 쉽지 않다.

-자기 영혼 관리 잘해야 한다.
자기 영혼을 위하여 하루 1시간 기도하라.
하루 쯤 기도를 건너뛰어도 별다른 표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쌓이면 어느 날 훅~ 간다.
자기 영혼이 도둑맞은 줄도 모르고 살 수 있다.

-자기 영혼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11: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끝끝내를 개역성경에서는 결심하고로 번역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서 결심하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물러갔다는 말은 떠나갔다는 말이다.
결심하고 물러갔고 작심하고 떠나갔다는 것이다.
조짐이 이상해서 선지자를 통해 부르셨다.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셨다.
하지만 그들은 끝끝내 하나님을 떠나갔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말 안 듣기로 결심한 사람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와야 산다고 해도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
한 명이라도 일어나면 따라서 일어나는 사람이 생긴다.
그런데 하나도 없다.
나는 이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일어나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다수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 소수가 변화시킨다.
하나님은 다원주의를 외치는 이 시대에, “오직 예수”를 외치는 소수를 찾으신다.
말씀에 무관심한 이 시대에,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소수를 찾으신다.
사실상 기도의 능력을 부인하는 이 시대에, 목 놓아 기도하는 소수를 찾으신다. “내가 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자기 백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 안에서 불타는 긍휼 때문이었다.
에브라임의 행실을 보면 몽둥이가 약이다.
이스라엘이 하는 꼴을 보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 나오는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 받을 때 함께 멸망했던 곳이다.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불심판을 자초했던 소돔과 고모라 같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놓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불붙듯 하는 긍휼 때문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가 서 있는 것이 하나님의 붙들어주심 때문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붙잡고 계신 손을 놓는 순간 우리는 힘들어진다.

-예전에 많이 불렀던 찬양이다.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 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 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 이시사 손 잡고 날 인도 하소서
주의 불붙는 긍휼에 의지하여, 날 잡은 손을 놓지 말아달라는 노래요 기도이다.

-하나님의 긍휼의 내용은 9절에도 이어지고 있다.11: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는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 있다.“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하나님은 신실한 성품을 갖고 계신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셨다.
그들을 율법으로 가르치고 사랑으로 돌보셨다.
그런데 그들은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처럼 반항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에 관심 있어 했다.
돌아오라고 해도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을 향해 긍휼이 불붙는 듯 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었기에 가능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붙는 긍휼로 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줬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11: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2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사자처럼 소리를 내셨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돌아온 그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겠다고 하신다.

-빌리 그래함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님이었다.
올해 별세했을 때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발인식을 할 정도였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여기에 미국 국민 목사가 누웠다”고 애도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은 한 동안 방탕의 길을 걸었다.
그는 오토바이 폭주족이었고, 알콜 중독자이기도 했다.
오토바이를 몰고 나가면,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다.

-목사님 부부는 속이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받아주고, 끝까지 연락을 취했다.

-대학에 다닐 때, 이런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간 적도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만, 나 같은 인간을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못난 자식을 사랑해주고 용납해 주는, 부모님께 면목이 없어서 적은 글이었다.

-그 후 세계를 떠돌아다니다가, 어떻게 예루살렘에 가게 됐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들어왔던 성경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예루살렘에서, 그는 다시 생각했다.
“우리 부모는 나를 받아 주시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나 같은 인간은 그냥 놔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 날 밤 호텔에 갔는데, 기드온 성경이 비치되어 있었다.
무심코 펼쳤는데 로마서 8장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자기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깨달음에, 눈물을 터뜨리며, 호텔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주님, 제가 주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아버지 사역을 이어 받아, 세계적인 전도자로 살고 있다.

-하나님은 긍휼에 불붙어 있는 분이다.
우리는 그 긍휼을 의지하는 자들이다.
그 불붙는 아버지의 긍휼을 받은 자로서, 타인과 세상에 긍휼을 베푸는 자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