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12:하나님의 인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호 9:1-1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7-23 00:00
조회
675
호세아 강해 12하나님의 인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호 9:1-17)2018. 7. 22. 프롤로그 “항상 기뻐하라”
이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뻐하지 말라 하신다. 9: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그들의 기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방 사람처럼 기뻐한 게 문제였다.
아니 이방 사람들이 어떻게 기뻐해서 하나님이 막으신 걸까?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타작마당이다.
원래 타작 마당은 시끄럽고 요란한 법이다.
기계화가 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타작하는 일이야 말로 무척 고된 일이었다.
그래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술김에 힘든 줄 모르고 고된 일을 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누가 트집을 잡을 수 있겠나?

-문제는 술이 거나해지면 남녀가 어울려서 음란한 짓을 벌이는데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원래 비가 귀한 지역이다.
그런데 추수 때 청춘 남녀들이 알몸 제사를 드리면 바알 신이 기뻐하게 되고 그래야 다음 해에 비가 많이 온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하나님께는 억장이 무너지는 극도의 아픔인데 말이다.

-왜 이스라엘이 그렇게 되고 말았는가?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음행을 하고 값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부요한 삶이 음행의 값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이 바알과 음란한 짓을 하고 얻은 값이라는 것이다.
정당하게 수고하여 번 돈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은 바알이 준 음행의 값이다.
일터에 나가서 적은 소득이라도 의롭게 번 돈은 하나님이 주신 값이다.
그러나 잘못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번 돈은 바알이 준 음행의 값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신관에 문제가 있었다.
싸움터에 나갈 때는 여호와를 의지했고 논밭에 나갈 때는 바알을 의지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여호와보다 바알 신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들을 가나안에 들어오게 하신 여호와도 잘 섬겨야 하지만 가나안에 살 동안은 바알에게도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 삶이 그들처럼 이중적일 때가 있다.
사실 예배와 삶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다.
삶이 더러우면 예배도 더럽다.
삶이 깨끗하면 예배도 깨끗하다.
깨끗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드리는 예배는 아무리 거창해도 더러운 예배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신앙심은 교회 안에서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십일조를 드린 후 나머지 돈의 씀씀이를 보면 안다.
교회밖에서의 물질관과 경제관을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신앙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공관과 처세술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어떠한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장차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모세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리는 달랑 십계명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왜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없어 한다. 출 20: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이 욕심이 많아서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속 좁은 분이어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이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건가?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그들을 낳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실 자격이 충분히 있는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이유 역시 분명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 백성 삼으신 후 천국 시민의 윤리 강령을 주셨다.
그게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후 자녀의 지침을 주셨다.
그게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나님이 심각한 고민에 빠지셨다.9:2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하나님이 무척 기분이 상하여 말씀하신다.
그들이 지금 뭘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떠나 바알에게 가서 제사하면 바알이 타작마당을 풍요롭게 해 줄것으로 알지만 그렇게 안 될 걸...”
“술틀에서 포도주가 많이 나올 줄 알지만 어림없을 걸,...”
“머지않아 너희 집에 새포도주가 떨어지고 말 걸...”
그들의 축제가 언제까지 지속되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내어 보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9:3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이 보통 땅인가?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는 땅이다.
그런데 그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의 꼴이 되었다.
그들이 추방당해 갈 곳은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 애굽이다.
애굽은 400여년간 종살이하던 지긋지긋한 곳을 상징한다.
앞으로 이스라엘이 자유를 잃고 종살이를 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그들이 끌려갈 곳은 앗수르다.
머잖아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 온갖 고생의 쓴 물을 마시고 더러운 음식을 먹을 거라는 것이다.
더러운 음식이란 우상 숭배한 음식 곧 율법에서 금한 음식이다.
포로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좋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겠는가?
이때 모든 것이 풍요로웠던 가나안 생활이 얼마나 그리워지겠는가?

-그들의 처지는 더욱 불쌍하게 된다.9:4 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제물이 없어서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음식이 부정한 것이기에 굶어죽지 않으려면 먹긴 해야겠지만,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는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아픔이 있다. 9:5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보통 때도 그렇지만 특히 하나님께 거국적으로 제사 드리는 명절이나 절기가 오면 더 견디기 어려울 거라는 것이다.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날이 올 거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예배를 마음껏 드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우리가 예배 때 하나님 앞에 조금이라도 드릴 수 있다는 게 말할 수 없는 복이다.

-그들의 앞날은 고생길이 열렸다. 9:6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겠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한다.
생존자들을 애굽에서 받아주기는 하겠지만 다시는 가나안에 돌아오지 못하고 놉이 매장지가 될 거라고 하신다.
그들이 그렇게 애지중지 모았던 보물이 그때 쓸모없어지게 되고 그들의 장막은 황폐하게 될 거라고 하신다.

-그쯤 되면 그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잃고라도 다른 것을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잃은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잃었지만 다른 것을 얻었는가?
하나님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치게 되고,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하나님을 버린 결과가 어떻게 된다고 했는가?9:7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형벌의 날이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죄지은 만큼 당할 날이 성큼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그래도 그들이 불쌍해서 자기 사람들을 보내셨다.
그들이 망하는 길로 달려가는 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선지자들을 수차례에 걸쳐 보내주셨다.

-호세아, 아모스, 미가, 요엘, 이사야 등 많은 종들을 보내셨다.
“거기로 가면 안된다.”
“그렇게 살면 필경 망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거듭 거듭 경고를 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지자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했다.
오히려 조롱하기까지 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선지자들을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참 선지자를 배척할 때 거짓 선지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거짓 선지자의 사명은 백성들을 미혹하는데 있다.
그들은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했다.
듣는 이들의 귀만 즐겁게 했다.
여호와도 잘 섬겨야 하지만 바알도 잘 섬겨야 한다고 했다.
안식일에는 여호와에게 잘 보여야 하고, 농사할 때는 바알에게 잘 보여야, 양쪽에서 다 축복을 받는다고 했다.

-문제는 그들이 참 선지자들보다 더 신령해 보였다는 것이다. 9:8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세워진 참 선지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새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듯 선지자들을 잡기 위해 모든 길목에 덫을 놓았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도 선지자들의 말을 거슬렀다.

-이스라엘의 부패 정도가 기브아 시대 못지 않았다. 9:9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기브아 시대란 사사 시대에 기브아에 사는 비류들이 한 레위인의 첩을 강간한 사건을 빌미로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가 싸워 베냐민 사람들이 크게 희생당한 것을 말한다.
그 때는 하나님은 있으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영향력을 잃은 시대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져버린 어두운 시대였다.

-그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는가? 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스레 여겼는지를 말해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 너무 사랑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어떻게 보셨는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무화과나무는 한번 심으면 보통 5-6년이 지나야 첫 열매가 맺힌다.
그런데 어느 날 열매가 열렸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흥분하여 드디어 무화과가 열렸다고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않겠는가?

-많은 민족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한 민족을 택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셨다.
기대를 거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다.
하나님의 마음에 실망을 안겨줬다.
실망시킨 정도가 아니라 배신을 때렸다.
좋은 포도를 기대했더니 들포도를 맺었고, 잘 익은 무화과를 기대했더니 중간에 낙과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과 결혼한 사이임을 잊었다. 9:10....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자신이 임자가 있는 유부녀라는 사실을 잊고, 아무 남자의 품에 안겨 자기 몸을 더럽혔다.
신부로서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가증한 일이다.
자격없는 사람이 신랑의 은혜로 신부가 되었고,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신랑에게 받았음에도 그렇게 한 것이다.

-신랑을 버리고 몇 번이고 집을 뛰쳐나간 고멜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으려는 호세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얼마나 끈질기게 사랑하는지 보여주셨다.

-이제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9:11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 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 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에브라임이란 말의 뜻은 “창성함” 또는 “두 배로 결실함”이다.
그런데 창성함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갈 거라고 하셨다.
“창성함”이 “쇠잔함”으로 바뀐다는 말이다.
자꾸 해산해야 창성해지는데, 아이를 낳기는커녕 아이를 배지도 못할 거라고 한다.
혹 아이를 낳아 기를지라도 사람 구실하기 전에 잃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에브라임의 영광은 사실상 끝난 것이다.

-언제 이 일이 일어난다고 했는가?“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하나님이 떠나는 때”보다는 “하나님이 손 떼는 날”이 더 와 닿는다.
에브라임은 자기들이 잘해서 창성해진 줄 알았다.
자기들이 복 받을 일을 해서 두 배로 결실한 줄 알았다.
이제는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손 떼시고 나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화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손 떼시는 것이다.

-무엇이 복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손 대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손을 떼면 화(禍)가 되고 손을 대면 복(福)이 된다.
우리 교회와 가정과 일터를 하나님이 손 대주시기를 바란다.

-과거의 영광스러움이 이제는 더한 슬픔으로 다가오고 있다.9:13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아름다운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 화려했던 영광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지금은 자식들을 살인자들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끔찍한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다.
자식들이 전쟁터에 끌려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다. 9:14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차라리 하나님께서 손을 써서 잉태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공동번역에선 이렇게 번역했다.“차라리 자궁은 죽은 애나 배고 젖가슴은 말라붙게 하여 주십시오.”
어디 이걸 기도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들에게 닥친다는 말이다. 9:15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길갈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의 처음 정착한 곳이다.
한 때는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진 후, 벧엘과 더불어 우상숭배가 가장 심한 곳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악이 길갈에 있다고 하신다.
이제는 그들을 하나님의 집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지도자들도 하나같이 반역했다고 하나님이 분개하신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쏟으셨다. 9:16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에브라임이란 나무는 도끼로 찍혀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거라고 하신다.
애써 아이를 낳아도 낳고 보면 죽은 아이일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작심하고 망하게 하시면 사람에겐 아무 대책도 없다. 9:17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제일 무서운 말씀이 나온다.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하나님과 함께 가신다면 광야 길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힘들지만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
포로로 잡혀가도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그걸로 끝장이다.
모든 희망이 끊어지고 만다. 이걸 절망이라고 한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걸 실망이라 한다.
모든 희망이 떨어지고 만다. 이걸 낙망이라 한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생은 유랑하게 된다.
이리 저리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난민으로 살게 된다.

-그들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결정적으로 말해주는 단서가 있다.“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모든 키(Key)는 여기에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다.

-말씀을 듣는 것이 사는 길이다.
하나님의 인내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