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설립기념주일: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가 되자(행 2:43-4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07-15 00:00
조회
938
교회설립기념주일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가 되자(행 2:43-47)2018. 7. 15. 프롤로그

-한꿈교회란 이름으로 달린지 오늘로서 막 6년이다.
6년이 금방 지나간 것처럼 느껴져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길게 느껴진다.
돌아보면 좋은 일이 훨씬 많았는데도 말이다.

-한꿈교회는 출발이 특이하다.
합병하여 세워진 교회이다.
1998년에 세워진 포항동광교회와, 2010년에 세워진 올네이션교회가 합병하여, 2012년에 세워졌다.
한꿈교회 역사는 길게 거슬러 올라가면 1998년이고, 한꿈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출발은 2012년이다.

-합병하여 세워진 교회가 끝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다.
두 교회가 합병하였다가, 세 교회로 분열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합병한 후 참으로 조심스러웠다.
어떨 때는 꼭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합병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두 교회가 합병할 때,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목사님이 선교사로 나갈 결심을 하고, 포항동광교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당시 교회가 자립이 되지 않았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진로를 두고 교인들과 의견조율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안다.
여러 대안 중에, 다른 교회와 합병도 있었다.

-올네이션교회와 합병 얘기도 오갔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올네이션교회와 합병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합병의 부작용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네이션교회 교우들을 모아놓고, 합병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대해 얘기를 해준 후,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물었다.
그 때 누가 “목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해서 “나는 합병에 51%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하겠습니다.” 했다.
“그리고 포항동광교회에서 올네이션교회와 합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와야 추진이 가능합니다”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모두가 “우리는 목사님이 하자는 대로 하겠습니다.” 했다.

-나는 그 때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포항동광교회와 올네이션교회가 합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합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이번 주일에 포항동광교회에서 올네이션교회와 합병하기로 결정되게 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그걸 하나님의 뜻으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김목사님으로부터 포항동광교회가 올네이션교회와 합병하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서 “올네이션교회 교우들의 뜻은 어떠세요?” 물었다.
“내 뜻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했더니, “그럼 목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해서 내가 기도한 내용을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서 합병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 중간에서 전원교회 김목사님이 애를 많이 썼다.
지혜롭게 조율을 잘 해줬다.
선교사로 나가는 김목사님한테도 최소한의 예우를 하고, 합병교회 담임을 할 나에게도 부담이 덜 되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김목사님이 선교사로 나가는 게 급해서, 그 다음주인가 바로 합병예배를 드렸다.
예배드리는 방식은 크게 차이가 없어 적응에 문제가 없었는데, 교인들의 성향이 차이가 워낙 커서 그 간격을 좁히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합병하고도 동광파와 올네이션파가 확연히 갈렸다.
무엇을 해도 보면, 그렇게 갈려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어떻게 하면 동광출신과 올네이션출신을 섞을 수 있을까,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추수감사절 축제였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눈에 띄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시작된 추수감사절 축제가, 이제는 우리교회 축제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걸어온 6년 동안, 새로 들어온 교인들도 있지만, 떠나간 교인들도 있다.
정들었던 교인들이 떠나갈 때는, 정말이지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이 자리를 지켜주는 여러분에게 고마움이 크다.-----------------------------------------------------------------------

-우리교회가 속한 포항남노회에서, 우리교회가 합병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본다.
성공의 기준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완벽하게 성공한 것도,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지만, 딱히 실패한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어떤 길을 가느냐가, 성공이 될 수도 실패가 될 수도 있다.

-빨리 달려야만 성공은 아니라고 본다.
멈추지 않고 어떻게든 가는 게 중요하다.
천천히 가도 멈추지도 않으면, 언젠가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왜...우보천리란 말이 있지 않은가.

-교회가 풍랑으로 요동할 때, 나 혼자라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때마다 곁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준 장로님들의 도움이 컸다.
세 분 장로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는 교회가 잔잔한 물결이다.
대신 가정에 풍랑을 만난 교우들이 있다.
이래저래 목사는 기도를 쉴 팔자는 못되나 보다.

-삶의 풍랑 가운데서도 오직 주님만 붙들고 씨름하는 교우들을 보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해서 기도하지만, 더 실제적 도움이 돼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 때마다 내 한계를 느낀다.
내가 해결자가 아닌 안내자라는 정체성을 깨닫는다.

-교우들의 문제를 척척 해결해주면, 목회자가 폼은 날지 모른다.
그럼 교우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목회자를 찾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목회자가 하나님 자리에 서게 된다.
목회자는 무능하다는 말을 들어도 된다.
목회자는 교우들을 주님께로 안내하는 것 잘하면 된다.

-목회자는 기도하는 사람이자, 기도하게 하는 사람이다.
혼자 10시간 기도하는 목회자도 훌륭하지만, 10명의 교우들에게 1시간씩 기도하게 하는 목회자가 더 훌륭하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기도하라고 노래를 불러도, 기도하러 나오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교우들의 대다수는 꿈쩍도 안 한다.
다들 바쁘다는 것 안다.
한가해서 기도하는 것 아니다.
시간이 나서 기도하는 것 아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는 것이다.
기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만들고 조정하는 것이다.
왜?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는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다 지쳐 찾아온 모니카를,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자, 이제는 떠나시오.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주시기를!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 눈물의 가정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
눈물의 교회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 앞에 놓인 각자의 눈물병이 있다.
그 눈물병을 채우는데 게으르지 말자.

-개인 신앙의 기본은 말씀과 기도다.
올해는 성경쓰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내년에는 성경읽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아직 성경을 덜 쓰는 분은 분발해주고, 다 쓴 분들은 제출해 주기 바란다.

-지난 5월에 <어, 성경이 읽어지네> 라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났다.
신구약성경 집중훈련을 마쳤고, 17-18일 인도자 컨퍼런스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9월에 스쿨에 입학하여, 내년 2월에 수료할 예정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열심히 배워서, 교우들과 성경 읽기에 힘쓸 계획이다.
스쿨등록비는 물론이고, 매주 목요일 하루 전체를 할애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
그러니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셈이다.
그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이다.

-그럼에도 기도가 받쳐줘야 한다.
기도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을 읽은 후 기도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는 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어느 하나를 강조할 수도,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도 없다.

-목회자가 가장 힘이 빠질 때가, 언제일 거 같은가?
목회자가 가장 위기를 느낄 때가, 언제일 거 같은가?
교회에 기도힘이 약해질 때이다.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허사가 된다.
교회의 엔진인 기도가 약해지면, 교회의 모든 사역은 열매가 없다.

-집안의 무슨 문제가 터져야 기도하는 수준은 넘어서자.
주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우리가 되자.
주님이 우리교회에 주신 비전을 위해 기도하기를 힘쓰자.

-기도의 지경을 점점 넓혀가자.
기도의 지경이 넓은 사람이 큰 기도의 사람이다.
우리교회는 여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도시복음화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꿈꾼다.
그런데 교우들의 기도의 지경이 가정에 머물러 있다면, 그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기도할 때 마음이 간다.
기도할 때 몸이 움직인다.

-우리교회는 1000명의 제자를 삼아 100명의 셀리더를 세우고 10명의 선교사를 파송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이게 우리교회의 방향이다.
우리교회는 제자 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교회는 셀리더를 세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걸 위해 양육하고, 그걸 위해 훈련한다.
이런 방향으로 가는 교회가 건강하다.

-건강한 교회는 구성원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바울은 여러 분파로 쪼개진 고린도교회를 향해 이렇게 권했다.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예수 이름으로 권했다는 말은 사실상 명령한 것이다.

-고전 1:10 말씀은 건강한 교회의 열쇠이다.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우들이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이 돼야 한다.
같은 비전을 공유한 사람이, 말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고 뜻이 다를 수 없는 법이다.
교우들이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이 안 되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게 된다.

-교회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건강성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교회가 있는가?
하지만 건강한 교회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교회 건강지수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6년 동안 달려온 방향으로 앞으로도 쭉 달려가면,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잠시라도 중단하거나, 샛길로 새게 되면, 교회는 건강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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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는 예배가 다르다.
예배가 역동적이다.
예배가 생동감이 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몇몇 소수가 예배를 독점하지 않고, 다양한 회중들이 예배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예전에 괜히 예배 보러간다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배 보러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교회에 예배 보러 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란다.

-예배는 서비스다.
실제로 예배를 영어로 Service라고 한다.
예배는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서비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배를 위해 모인 모든 사람이 예배자인 것이다.
예배에서 순서를 맡은 소수가 배우이고, 나머지는 관객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예배의 관객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모든 예배자가 유일한 관객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축제하는 것이다.
축제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래다.
우리교회는 예배를 축제로 보기 때문에, 예배 때 찬양을 많이 한다.
10시 40분에 예배를 시작하여, 25분정도 일어서서 찬양한다.
본래 찬양은 일어서서 하는 것이다.
또한 찬양은 손뼉을 치면서 하는 것이다.
또한 찬양은 손을 들고서 하는 것이다.

-찬양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의 제사요 입술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시작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적어도 예배 시작 10분 전에는 와서, 예배를 준비해야 한다.
예배에 지각하는 것을, 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존중한다면 그럴 수 없다.
예배에 정성을 다해 시간을 지키자.

-지난 6월 6일에 상견례를 하러 갔다.
마침 용훈이 아버지가 운전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우리가 거제도로 갔다.
약속시간이 12;30이었던가, 도착예정 시간보다 1시간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혹시라도 도로에 무슨 변수라도 생기면, 첫 만남에 실례가 될 거 같아서였다.
별 일이 없어서 1시간 남짓 일찍 도착했고, 호텔에서 기다렸다가 상견례를 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상견례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진짜 우리 예배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예배는 은혜 받는 게 목적이 아니다.
예배의 목적은 내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예배의 기본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예배는 출석하는데 의의를 두는 게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눈도장 찍는 게 목적이 아니다.
예배는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배는 내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쏟아 붓는 헌신 행위다.

-이 말을 몇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 신앙에 성공하고 신앙에 성공한 사람이 인생에 성공한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다.
예배에 바로 서 있으면, 신앙이 흔들릴 수 없다.
예배의 감격에 빠지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춤추게 된다.
예배를 잘 드렸는가는 예배 드리고 난 얼굴 보면 안다.

-예배를 통해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확증하자.삼상 2:30 뒷부분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내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도 나를 존중히 여기신다.
내가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도 나를 경멸하신다.
하나님께 존중히 여김을 받고 싶지 않은가?
사람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도 복이다.

-지난 수요일에 부목으로 있던 교회 청년부였던 형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향이 부산인데 고향으로 갔다는 말을 얼핏 전해들었는데, 전화번호가 바뀌고 그래서 연락이 끊어져 있었다.
그런데 내 카톡 대문 사진을 보고는, 우리 애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올 여름 휴가 때 와이프랑 3남매를 데리고, 꼭 한 번 찾아뵙겠다고 했다.
“기도할 때마다 목사님의 기도소리가 아른거립니다.”
“존경합니다 늘...이제서야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그 청년과 헤어진지 어언 17년이다.
잊지 않고 연락 주고 찾아준다는 것도 고마운데, “존경합니다 늘” 이 말을 들으니 감동이 됐다.

-사람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을 때도 감동이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존중히 여김을 받을 때 얼마나 감동이 되겠는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을 보여주자.
예배를 통해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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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는 두 날개가 있다.
두 날개가 있어 건강한 교회가 된 것이다.
한쪽 날개로는 건강할 수 없다.
교회가 두 날개로 날아오를 때 건강할 수 있다.

-두 날개의 한쪽 날개는 앞에서 말한 예배다.
대그룹날개인 주일예배이다.
다른쪽 날개는 소그룹날개이다.
전인적인 소그룹 모임을, 우리교회에서는 셀모임, 셀가족모임이라고 부른다.
셀모임은 5W로 진행된다.
Welcome Worship Word Witness Work&Prayer
환영, 찬양과 경배, 말씀나눔, 증거, 사역과 기도

-셀모임은 나눔의 모임이다.
셀모임에서는 자기의 모든 삶을 나눌 수 있다.
원칙적으로 셀모임에서 나누지 못할 것은 없다.

-실제 현대인들 중에 자기 삶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정기적인 모임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없거나 있어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셀모임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혹 상처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셀모임에 참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확연히 다르다.
특히 셀모임은 주일예배 때 들었던 말씀 나눔 시간이 있다.
예배 때 말씀을 듣고 교회당 문을 나서는 순간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할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주중에 주일예배 때의 말씀을 나누면 다르다.
말씀대로 살았는지, 어떻게 말씀대로 살 수 있는지, 말씀대로 사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오히려 그 어려움에 굴복하고 말았는지...이런 것들을 가감없이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갈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다.

-셀모임은 힘을 얻는 곳이다.
셀모임에서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셀모임은 절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 나 같아도 갈 맘이 없을 거 같다.
말씀을 통해 자기를 판단하고, 이를 셀가족들과 나누는 것이다.
그걸 듣고 셀가족들이 위로하고 격려해줌으로서, 다시 힘을 내어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한다.

-증거도 마찬가지다.
요즘 전도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전도대상자를 품고 기도하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섬기지만, 전도는 점점 어려워진다.
전도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버텨낼 힘이 생기지만, 더 낮아지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런 얘기를 셀모임에서 서로 나눈다.
나만 힘들어하는 줄 알았는데, a도 힘들어하고, b도 힘들어한다.
그 중 어떤 사람은,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 사람에게서 전도의 노하우를 배운다.
또 다른 사람에게 동기 부여를 받는다.
그리고 다시 전도자로 살기로 다짐한다.

-우리교회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를 추구한다.
아직은 약한 날개짓이다.
하지만 이 날개짓이 성령의 바람을 타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중요한 것은 중단없는 날개짓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두날개로 끝까지 퍼덕거려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