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모세) 강해 23: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출 20:18-2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03-12 12:39
조회
209


구약인물(모세) 강해 23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출 20:18-26)
2023. 3. 12.


프롤로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히 선택받은 백성이다.
↳특별히 뽑아낸 백성이다.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데, 모세를 보내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하게 하셨다.
↳홍해를 건넘으로서, 단체 세례를 받게 하셨다.
↳광야로 보내어,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셨다.
↳그들은 출애굽 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였다.
↳크고 놀라운 일들을, 자기들의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은 없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했고, 기적을 맛봤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은 없었다.
↳단지 하나님과의 마주침만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할 때였다.
↳그 엄청난 기적을 보면서도,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인간이 얼마나 깨닫지 못하는 존재들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도 보면, 이미 구원의 은총을 입었고, 기도 응답의 체험이 있으며, 말씀을 깨달은 감격이 있으면서도,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망설이곤 한다.
↳다른 사람처럼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던 방법으로,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10제자 앞에 자신을 보이셨다.
↳그날 한 제자가 무슨 급한 볼일이 있었던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10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가졌다고 하니까,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자기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열 제자들은 참으로 난감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한 제자를 위해, 여드레 후에 다시 보이셨다.
↳그리고 그 제자를 지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그 제자는, 대단한 고백을 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베드로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고백이지만, 별다른 칭찬을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책망 섞인 말씀을 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그래도 그 제자는 양호한 편에 속한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보고도 믿지 않았다.
↳자기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적을 보고도,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
마12: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자주 만났으나, 사실은 진정으로 만난 게 아니라, 마주쳤을 뿐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예수님을 만났는가?
↳예수님과 마주쳤는가?
↳매일 예수님과의 만남을 갖는가?
↳어쩌다 예수님과 한 번씩 마주치는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과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변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목적이 바뀌었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하지만 예수님과 마주쳤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삶에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교회를 오랫 동안 다녔는데도, 삶의 목적이 그대로고, 삶의 방향이 그대로여서, 여전히 옛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닌 예수님과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을 그리스도께 헌신했다.
↳그러나 예수님과 마주친 사람은, 예수님께 덕 볼 때는 가까이 있었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오래 전 국민일보 미션난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났다.
↳[BBC 10개국 조사] 한국인58% “신 믿지 않는다”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오래 전 KBS가 영국의 BBC와 함께 방영한 ‘세계는 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0개 국가 가운데 무신론자가 가장 많으며, 신자 가운데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신은 항상 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나이지리아인의 98%, 인도인의 97%가 믿는다고 대답한 반면, 한국인은 42%만이 신을 믿는다고 답했다. 조사대상 국가 중 최하위인 수치다.
↳또 ‘신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멕시코인의 59%, 인도인의 46%가 ‘그렇다’고 했지만, 한국은 12%만이 신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답해 역시 최하위를 기록했다.

-신과 만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신을 위해 죽을 수 없다.
↳그 통계대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종교생활은 하지만, 신과의 만남은 별로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게 찾아오신 내용이다.
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이제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그 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왜 그곳에 나타나셨을까?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리에 압도되어, 그 자리에서 죽은 자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었던 신들은, 모두 말 못하는 벙어리들이었다.
↳돌이나 나무를 깎아 만든 우상이나, 아니면 일월성신과 같은 자연신이거나, 뱀이나 소 같은 짐승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다.
↳그 음성이 얼마나 크고 우렁찬지, 마치 시내산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다 즉사하고 말 것 같았다.
↳그런 하나님과 함께 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깨달았다.
↳모세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면 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모세는 발음이 신통하지 않았다.
↳원래는 말에 능하고, 화술도 뛰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미디안광야에서 양치기로 40년을 보내면서, 입이 둔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자기는 혀가 뻣뻣하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를 대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아론을 그의 대변인으로 붙여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발음이 신통찮은 모세보다, 말이 유창한 아론에게 호감을 가졌던 거 같다.
↳오히려 모세는 약간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레와 번개를 통해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들은 깨달았다.
↳모세가 하나님의 대변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전까지는 모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세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혹은 소견으로 치부했다.
↳그러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셔야, 자기들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또한 설교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겸손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복이 된다.
↳모세의 입을 사용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설교자의 입을 사용하여 말씀하신다.
↳발음이 신통찮은 모세를 사용하신 하나님은, 오늘날 연약한 육신을 가진 설교자를 사용하신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에 순종했다면, 굳이 우레와 번개로 찾아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설교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 복이 되려니와, 그렇지 않을 때는 우레와 번개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서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두려워 말라고 한다.
↳돌아서서 웃으며, “너희들 내 그럴 줄 알았다”며 고소해하지 않았다.
↳역시 큰 인물답다.
↳두려워 떠는 백성을 진정시킨 후에 그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엄과 영광가운데 찾아오신 것은,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가르쳐주었다.

-여기서 시험한다는 말의 뜻은, 그들의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이다.
↳자신들의 교만하던 심령을 낮추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들 죄악이 드러남으로,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케 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레와 번개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마음이 낮아져서 말씀에 귀를 기울일 상태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이런 시험을 하곤 하신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세상에서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교만하여 성령님도 손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번개와 천둥으로 찾아오셔서, 그들의 교만이 꺾으신다.
↳그러면 사업에 가정에 몸에 어려움이 찾아온다.
↳멀쩡하던 게 갑자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간섭을 시작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려움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 일이 생기기까지 살아 온 자신의 삶이 문제이다.
↳자신이 그런 열매를 거두도록 뿌려온 것이다.

-신앙의 어려움이 갑자기 닥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불순종이 오랫동안 쌓여온 것이다.
↳우리의 삶이 갑작스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전부터 조금씩 깎여나가고 천천히 흘러내린 것이다.
↳기도를 잠시 쉰다고 해서 당장 표가 나지 않는다.
↳말씀을 좀 멀리한다고 해서 바로 탈나지 않는다.
↳당장에 표나지 않고, 바로 탈나지 않는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신앙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조금씩 깎여나가고,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신앙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제대로 믿고 있는지를, 종종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진단하고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가? 평소이다.
↳평소를 진단하고 평상시를 확인하면 된다.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하고, 평상시 말씀에 붙들려 산다면, 그는 신앙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평소에 새벽기도에 힘쓰고, 평상시에 기도줄을 붙들고 산다면, 역시 신앙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육체의 남은 때를, 평소에 말씀의 사람으로, 평상시에 기도의 사람으로 살기 바란다.

-모세는 모든 백성이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갔다.
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을 흑암이라고 했다.
↳공동번역성서와 한글KJV은, 먹구름과 짙은 구름으로 번역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모세는 그 하나님께로 가까이 갔다.
↳백성들은 벌벌 떨고 있는데, 모세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갔다.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
↳모든 일에 하나님과 대면하는 관계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관계인가?
↳때로는 하나님이 귀찮게 여겨지는 불편한 관계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날마다 하나님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 하나님과 대면하지 않고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하루를 살면서, 순간순간 성령님과 대면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가까이 나아온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말씀에 주린 자들에게, 못 본체 외면하는 법이 없다.
시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다.
↳사모하는 모세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셨던 하나님이라면, 사모하는 우리의 영혼도 만족하게 하시고,,,, 주린 모세의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던 하나님이라면, 주린 우리의 영혼도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나를 비겨서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에 대해 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말씀을 들었을 뿐이다.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만들 수는 없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에 대해 표현하고 싶어진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음악이다.
↳그래서 음악은 일찍부터 발달했다.
↳대개의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종교음악 곧 기독교 음악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이다.
↳그런데 음악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 경우에 대비해서 말씀하셨다.

-실제로 그건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출애굽기 32장에 그 기사가 나온다.
출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방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그들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삼천명이 살육을 당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그런 엄청난 비극을 면할 수 있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결국은 비극을 불러온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치유설교도 필요하지만, 보다 필요한 것은 예방설교이다.
↳설교가 현재 자기의 상황과는 무관한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예방적인 면에서 생각한다면 상관없는 말씀은 없다.

-오늘날 우리는 무슨 형상을 만들어 우상숭배하지는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숭배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세운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상이다.
↳이미 자신이 결정을 내렸다.
↳그 후에 하나님께 갖고 나온다.
↳그리고 하나님을 설득시키려고 한다.
↳안 되면 하나님을 협박한다.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다.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우상이 많다.
↳한 두 개가 아닐지 모른다.
↳한 두 가지가 아닐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예배하라고 하신다.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예배를 위해서 먼저 토단을 쌓으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예배하고픈 마음이 불타고 있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단이 필요했다.
↳그곳은 광야이다.
↳제단을 위한 돌을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토단을 쌓으라고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단은 돌로 쌓는다.
↳하나님께서 단을 돌로 쌓으라고 하신다면, 어쩔 수 없다.
↳돌로 쌓아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돌 제단을 고집하시지 않았다.
↳그들의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주신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외모나 외양이 아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거였다.

-그럼 교회를 아름답게 꾸밀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이왕이면 아름다운 게 좋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이, 허름하고 낡아빠져 있는데, 자기 집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면, 성도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다윗은 그 점에 있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대상17:1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에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
↳그는 자신은 화려한 백향목 궁에 거주하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마음 아파했다.
↳이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사고이다.
↳교회는 자기 집보다 좋아야 한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미국에 건너간 청교도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악전고투 끝에 신대륙에 도착했다.
↳그들은 도착해서, 자기들의 집을 먼저 짓지 않았다.
↳맨 먼저 교회당을 지었다.
↳그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자기들이 살 집을 지었다.
↳신앙을 예배를 일번으로 여긴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외형적인 모습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사치스럽게만 꾸며서도 안 되지만, 초라하게 보여서도 안 된다.

-교회의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다가, 예배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제단의 규모나 아름다움보다, 제사를 드리는 백성의 마음을, 더 소중하게 보시는 분이다.
↳제사를 어떤 자세로 드리느냐, 어떤 태도로 드리느냐를 보시는 분이다.
↳토단이야 돌단이냐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토단에서 드리든, 돌단에서 드리든, 번제와 화목제의 정신으로 드려야 한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이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목적으로 하는 제사이다.
↳제사에 헌신과 화목이 빠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헌신적인 백성이 드리는 제사는, 토단일지라도 받으신다.
↳그러나 다투는 백성이 드리는 제사는, 돌단일지라도 물리치신다.

-우리가 여기서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토단을 좋아하시고 돌단은 싫어하신다’ 이게 아니다.
↳돌단을 쌓을 수 있는 데, 수고를 덜려고 돈이 아까워서 토단을 만들면 안 된다.
↳돌단을 쌓아서 제사를 드리는 게 보통이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돌단을 쌓았다.
↳광야에서 토단을 쌓으라는 것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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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돌단을 쌓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돌단을 쌓을 때 유의할 점이 있다.
↳그건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연석으로 쌓는 것보다, 다듬은 돌로 쌓으면 제단이 보기 좋을 것이다.
↳제단의 아름다움보다는, 제사 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워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외형적인 요소에 집착해서, 예배의 본질적인 요소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뜻이다.

-또한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는 것은, 예배에 있어서 인위적인 요소를 조심하라는 뜻이다.
↳성령님이 주도하시는 예배를 드리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예배를 순서도 없이 진행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해진 순서에만 매여서는 안 된다.
↳성령님께서 강한 감동을 주시면, 찬송은 물론이고 설교도 바꿀 수 있다.

-돌단을 쌓을 때의 유의할 점이 또 있다.
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제단에 층계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제단에 층계를 만드는 이유가 있다.
↳그건 위엄 있게 보이기 위함이다.
↳그런데 왜 제단에 층계를 만들지 말라고 했을까?
↳이왕이면 위엄 있게 보이면 좋을텐데 말이다.
↳그럼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제단에 가려지게 돼서이다.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닌,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돋보일 수 있어서다.

-우리는 예배마저 자기중심으로 드리려는 심성이 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에 대해 호되게 책망한다.
암4: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절의 희생의 원어 ‘지브헤이켐’은, 원래 유월절 희생을 의미하는 ‘지브히’에서 온 말로, 후에 일 년에 한 번 성소를 찾아가 드리는 매년제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희생을 드린다는 것은, 엄청난 열심인 것이다.
↳십일조는 오늘날 봉급생활자로 적용하면, 한 달에 한번 드릴 수 있다.
↳그런데 3일에 한 번씩 드린다는 말은, 보통 헌신이 아닌 것이다.
↳그것 자체는 책망들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누구를 기쁘게 하는 것이냐는 말이다.

-5절 중간에 보면,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했다.
↳그들은 제사 의식법에 따라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은, 이렇게 평가하신다.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하나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말 섭섭합니다” 하고 따져도, 하나님은 단호하시다.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이 하나님이시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맞춰야지, 하나님더러 우리에게 맞추라고 하면 곤란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를 드린 나는 기분이 좋은데,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은 기분이 언짢다??’
↳그러면 예배를 제대로 드린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만남을 원하신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과 선포된 설교를 통해,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신다.
↳하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뢰와 번개로 다가오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면하고 싶어 하신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루를 보내면서, 하루를 마감하면서, 대면하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자신과 대면하는 예배자를, 오늘도 찾고 계신다.
↳외형적으로 그럴싸한 모습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우리는 토단에서도 예배할 수 있고, 돌단에서도 예배할 수 있지만, 헌신과 화목이 빠지면 안 된다.
↳예배에서 내가 주체가 되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는 예배자, 하나님만 돋보이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