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2023):설을 이렇게 쇱시다.(고전 5:6-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01-22 12:18
조회
215


설날(2023)
설을 이렇게 쇱시다.(고전 5:6-8)
2023. 1. 22.


프롤로그

-올해는 주일과 설이 겹쳤다.
↳우리에게는 설보다 주일이 더 중요한 날이다.
↳설엔 가족을 만나고, 조상을 만나지만, 주일엔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설 쇠는데 생명을 걸 거까지는 없지만, 주일성수는 생명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
↳대충 살아도 될 날, 허투루 살아도 될 날은, 정말이지 하루도 없다.
↳모든 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일이 중요한 것은, 주일은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과 동행한다.
↳하지만 그게 하나님과의 정기적인 만남일 수는 없다.
↳우리가 빡빡하게 짜인 일상에 매인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의 수레바퀴 앞에서, 종종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장치가 주일이다.
↳우리와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싶어서, 일주일 중 하루를 성별하셨다.
↳그리고 그날 먼저 오셔서 우리를 맞아주신다.
↳예배를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와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먼저 찾아와 기다리고 계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든 예배시간 지각하지 말이야 한다.
↳살다보면 어쩌다 지각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한 번 쯤 지각할 수 있다.
↳다만 지각 습관은 안 좋은 것이다.
↳단 1분 지각이라도 그게 습관이라면 그렇다.
↳습관은 한 번 들이면, 여간 고치기 어렵다.
↳나쁜 습관일수록 고치는 게 더 어렵다.

-주일이 설과 겹치므로, 식구들이 다 예수 믿는 집안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식구들 간에 갈등의 소지가 있어서다.
↳그 발단은 제사 문제인 경우가 많다.
↳조상한테 잘하자는 데 나쁠 게 없다고 본다.
↳조상 없이 우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조상을 추모하는 방식이, 꼭 유교식 제사방법이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비그리스도인은 그걸 진리로 아니, 우리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난 토요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갖가지 진풍경을 연출하며, 고향으로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
↳국토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한 동안 동맥경화증에 걸릴 것 같다.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5시간이나 걸려서 가야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또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많이 날 수 있는데, 기온이 많이 떨어져 춥긴 하지만, 눈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다.
↳올 설 연휴에도, 고향 대신 국내외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실상 포스트 코로나 첫 명절이라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했지만, 이번 설에는 고속도로 통행료도 면제해준다고 하니, 큰 금액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다.
↳우리교회 교우들 중에, 이미 고향에 도착하여 고향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명절을 앞두고 있으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북적인다.
↳올해 경기가 역대 최악일 거라고 예상되지만, 그래도 설을 앞두고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상당히 북적거린다.
↳설 장보러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웃음이 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은, 설렘에 마냥 좋기만 하다.
↳지갑은 비어가고, 카드 대금은 늘어만 가지만,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오래 동안 만남에 장애가 있었는데,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을 다시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한껏 달아 올라있다.

-하지만 즐겁고 신나야 할 설날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끼리 관계가 껄끄럽다면 좋은 일이 아니다.
↳종교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 과제이다.
↳또 단시일 내에 해결 가능한 문제도 아니다.
↳세상 머리 아픈 문제이다.
-------------------------------------------------------------------------------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9년이 되었지만, ‘반드시 설은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뚜렷한 지침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설을 쇠는 데 몇 가지 원칙을 세우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오늘 말씀을 준비했다.

-첫째, 하나님을 생각하는 설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명절만 되면, 차례를 지내왔다.
↳말이 좋아 차례지, 사실은 조상신을 숭배해 온 것이다.
↳유교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근성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종교심이 유별난 편이다.
↳이상하게 뭐라도 섬기지 못해서 안달한다.
↳아마 조상신이 아니라면, 발에 걸린 돌부리라도 섬겼을 것이다.

-조상신을 섬기는 것을,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포장된다.
↳그래서 길이길이 발전시키고, 만대에 계승해야 할 민족 전통으로 여기게 한다.
↳시장 뿐 아니라 큰 상점이나 백화점에도, 제수상품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이다.
↳이런 세상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을 지키며,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은, 유대인의 명절 중 가장 크게 지키는 유월절에 대한 말씀이다.
↳명절을 지키는데, 유월절을 지키는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묵은 누룩으로 지키지 말라고 하고 했다.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 지키면 안 된다고 했다.

-여기서 묵은 누룩을, 설과 관련하여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조상 숭배하는 것이다.
↳곧 우상 숭배하는 것이다.

-좀 도움이 될까 해서, 제사의 유래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조상제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고려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전에는 제천행사로써 천신을 섬기거나 자연을 숭배했지 조상 제사풍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려 때 중국의 성리학이 전래될 때, 조상제사의 의식도 함께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조상제사는 원래 중국의 것이고, 우리나라에 와서 정착된 것은, 다분히 사대주의 사상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에 조상 제사는 지금처럼 죽은 자에게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종손을 높이는 의미에서 높은 곳에 앉혀 놓고 제사형식의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후에는 황제에게만 적용되었는데, 제사를 잘 지내야 훌륭한 신하가 나온다 하자, 제후들까지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질서가 무너지면서, 평민들의 지위가 향상되었는데, 이 평민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높이기 위하여, 자신들의 생존 부모들에게 제사를 드리게 되었고, 결국 죽은 조상에게까지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유교를 국교로 하는 조선의 태조에 와서는, 민간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태조가 조상제사를 널리 보급한 것은, 조상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려는 목적보다는, 사실은 정통성을 갖지 못한 정권의 안정을 위하여, 조상제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사실상의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여, 국호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경하였으나, 흔들리는 민심이 도무지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무학대사에게 자문을 구한 후, 조상에 대한 효 문제로 백성의 마음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권력자들은 예나 오늘이나,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백성이 정치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이다.

-제사상에 필수적으로 올리는 삼실이 있다.
↳삼실 곧 3가지 열매가 무엇이냐 하면, 대추, 밤, 감이다.

-이 삼실의 내력에도, 정치적인 술수가 숨어 있다고 하니 쓴 웃음이 나온다.
↳씨가 하나인 대추는 한 분 왕을 상징한다고 한다.
↳씨가 세 개인 밤은 삼정승을 상징한다고 한다.
↳씨가 여섯인 감은 육판서를 상징한다고 한다.

-삼실을 제상에 필수로 올리고 제사를 지내게 한 이유는 뻔하다.
↳세분의 정승과 육조 판서가 계속되어 한 분 왕을 잘 보필하게 해달라는 기원이다.
↳제사의 출발은 조상님이 아니었다.
↳나라의 안녕, 더 정확히는 통치자의 안녕이 출발이었다.

-설은 조상이 아닌 하나님께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혹 제사문제가 정리되지 않았다면,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하여 정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설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날로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려는 날로 삼아야 한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설은 이런 신앙고백의 날이 되어야 한다.
-------------------------------------------------------------------------------

-둘째,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설이다.

-설이 좋은 것은 만남에 있다.
↳사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바쁜가?
↳마음은 있어도, 한 번씩 고향을 찾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나도 큰 맘 먹어야 고향에 갈 수 있다.
↳큰 경조사나 명절이 아니면, 집에 일부러 가기 어렵다.
↳양부모님이 살아계셔도 그런데, 혹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영 갈 일이 없어질 것이다.

-장인이 돌아가시고는, 처가에도 갈 일이 거의 없다.
↳사실 장인이 살아계실 때도, 명절에 못 가뵀다.
↳친가하고 처가가 방향이 달라서였다.
↳친가는 전라도 여수이고, 처가는 서울이다.
↳방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니 둘 중에 어느 한 곳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명절에 처가에 가본 기억이 없다.
↳장남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친가로만 갔다.
↳집 사람에게 한 번도 말은 안 했지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다.

-언젠가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나는 명절날 언제쯤 친정에 가보나’ 할 때, 애써 못들은 척했지만, 마음에 부담을 가졌다.
↳하지만 막상 명절이 돌아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친가에 갔다.

-내 뿌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내의 뿌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내 혈육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내의 혈육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장인이 돌아가시고는, 기일에나 한 번씩 모인다.
↳그마저도 주일에 모이니, 아내만 보내고 나는 가본 적이 없다.

-이번 설엔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친가 가족뿐 아니라 처가 가족에게도, 친정 식구뿐 아니라 시가 식구에게도, 좋은 만남이 있는 설이 되기를 바란다.
↳종교가 달라도 가족은 가족이다.
↳그러므로 종교를 뛰어넘어 가족애를 나누는 설이 돼야 한다.
↳특히 부모님 앞에서 종교 문제로 다투지 말아야 한다.
↳또 돈 문제로, 형제끼리 다투지 말아야 한다.
↳부모님은 돈에 목숨 건 사람들이 아니다.
↳형제가 서로 도와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신다.

-자녀들은 이번 설을, 부모님께 효도하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그간 멀리 떨어져 따듯한 말 한마디, 조그만 사랑의 선물 한 가지 못하고 살아왔는가?
↳이번 설에 큰맘 먹고 그 동안 못했던 효도를 하기 바란다.

-어른들은 이번 설을, 자녀들과 손주들을 축복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힘들게 살아가는 자식들을, 손주들을, 진심을 담아 축복해 주기 바란다.

-성경은 형제 간의 화목을 강조한다.
↳기독교는 형제도 모른다는 말은 맞지 않다.

-심지어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간의 화해부터 할 것을 말씀하신다.
마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설은 형제자매간의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형은, 동생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졌을 수 있다.
↳이 섭섭함을 푸는 설이 되어야 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동생이, 형한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을 수 있다.
↳이런 감정의 찌꺼기를 푸는 설날이 되어야 한다.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동서간에, 용서하고 화해하고 서로 부둥켜안는 설이 되기 바란다.
-------------------------------------------------------------------------------

-셋째, 선교의 기회로 활용하는 설이다.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묵은 누룩'을 조상숭배에 비유할 수 있다면,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은 좋지 않은 풍속에 비유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도박성 놀이가 풍속으로 자리를 잡았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들어온 화투놀이가 대표적이다.
↳설날 가족끼리 만나서 할 얘기도 많을텐데, 뭐 어쩌자고 밤을 새워가며 고스톱을 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재미로 친다지만,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 있겠는가?
↳집에 돌아오면서, 부부 싸움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설을 선교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나는 선교사로서 고향에 왔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기도로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고향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예수님의 삶에서도 알 수 있다.
↳예수님 역시 힘들어 하셨다.
눅4: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어딜 가나 구름떼 같은 인파가 따랐지만, 유독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예수님이시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이 명령은 유효하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우리는 이 말씀에 기꺼이 순종해야 한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 중 피트는 신혼여행도 포기하고 에콰도르 선교에 나섰다.
↳다섯 명의 선교사는, 아내들을 후방에 남겨둔 채, 경비행기를 타고, 단 한 명의 기독교인도 없는 아우카 인디언 마을로 떠났다.

-1956년 1월2일, 피트 선교사는 아내에게 긴급무선을 쳤다.
↳"흥분한 인디언들이 몰려오고 있다. 기도해 달라"
↳그 후 연락이 끊겼다.
↳이튿날 구조대원과 가족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다섯 명의 선교사들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복음을 거부한 인디언들에게 순교 당한 것이다.

-20대의 선교사부인들은, 남편의 주검 앞에 울부짖으며,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남편들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우리가 완수하자"

-아내들은 아우카 마을로 이사를 하고, 거기서 복음을 전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마을은 '복음의 땅'으로 변했다.
↳선교사를 살해한 다섯 명의 인디언들 중, 네 명이 목사가 됐고, 1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두 신자로 변했다.
↳피트 선교사의 부인 라이펠트 여사는, 선교사들의 용기있는 활동을 담은 '아우카 선교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40여년 전 뿌려진 순교의 씨앗이, 복음의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선교는 헛일이 아니다.
↳기도하고 뿌린 말씀의 씨앗은, 언젠가는 싹이 나고, 언젠가는 꽃이 피고,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기가 좀 늦춰질 수는 있다.
-------------------------------------------------------------------------------

-3가지 원칙으로 설을 쇠자.

-첫째, 하나님을 생각하는 설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설을 맞기 바란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설이 되기 바란다.

-둘째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설이 되기 바란다.
↳자식은 부모님께 작게라도 효도하는 설이 되기 바란다.
↳부모님은 자식들과 손주들을 축복하는 설이 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선교의 기회로 활용하는 설이 되기 바란다.
↳부모님을 둔 자녀 여러분,
↳이번이 부모님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르잖는가?

↳자녀를 둔 부모님 여러분,
↳아직 믿지 않는 자녀들에게, 유언하는 심정으로 말해 보기 바란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네가 예수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