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모세) 강해 16: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출 15:22-2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01-15 12:21
조회
211


구약인물(모세) 강해 16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출 15:22-27)
2023. 1. 15.


프롤로그

-이스라엘 민족은 어렵사리 출애굽은 했으나,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오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불가능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니,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었다.
↳홍해가 갈라져 육지같이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추격해오던 바로의 군대는, 물속에 수장되었다.
↳그들은 찬양했다.
↳아니 그 놀라운 일 앞에서, 저절로 찬양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잘 될 것같이 보였다.
↳그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 앞서 인도하고 계신다.
↳이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광야였다.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광야가,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구름기둥은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였다.
↳그래도 첫날은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보았기에 광야 길도 갈만했다.
↳그들 앞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이 있으니 든든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다.
↳첫날은 그렇게 해서 지나갔다.

-이튿날이 되었다.
↳역시 구름기둥이 앞장섰다.
↳백성들이 준비했던 물은 이미 고갈되었다.
↳서서히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약속의 땅은 고사하고 오아시스라도 찾기를 바랐다.
↳참 힘든 하루를 보냈다.

-셋째 날이 되었다.
↳기온이 서늘한 아침나절에는 걸을만했지만,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자 더 이상 걷기 힘들었다.
↳장정들은 그렇다 쳐도, 노약자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불안은 점차 공포로 바뀌었다.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무렵 물이 있는 곳에 도착을 했다.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사람들은 물을 발견하고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하실 리가 없지!”
↳몇이 허겁지겁 달려가, 물을 들이켰다.
↳그런데 또 이게 웬일인가?
↳물이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물을 옆에 두고도 마실 수 없으니, 더 죽을 거 같았다.
↳타는 목마름을,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사람들에게서, 원망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다는 말은, 곧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말이다.
↳모세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으로 모세를 원망하면서, 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들은 3일 전의 기적은 다 잊고 있다.
↳홍해가 갈라질 때의 그 감격은 사라지고 없다.
↳당장의 타는 갈증으로 인해, 감사는 오간데 없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원망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는가?
↳아니다. 몇 번이나 원망했었다.
↳모세가 바로 앞에 서서, 이스라엘 자손을 놓아줄 것을 요구하자,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의 노역을 과중시켰다.
↳그때 기록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바로를 찾아가서, 선처를 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때 그들은 또 모세를 원망했다.

-또 출애굽을 하고 나서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의 군사들이 추격해 오자, 그들은 또 모세를 원망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역경을 만날 때마다, 모세를 원망했다.
↳그들의 원망은 상습적이었다.
↳그들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일단 원망부터 하고 봤다.
↳전에 감사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누구나 한번쯤은 원망할 수 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가 원망스러울 수 있다.
↳문제는 습관성 원망이다.
↳원망을 상습적으로 하는 것이다.
↳원망에 중독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원망이 삶 전체를 삼키지 못하도록,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영국의 트렌취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취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삶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작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인가?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취어도 감사하는 사람인가?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해서는 별로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할 때,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한 헨리 프로스트는,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집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들은 후, 깊은 어두움의 그림자가 내 영혼을 덮었다.
↳기도를 하여도 그 어두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견디어 보려고 애를 써 보아도 어두움은 점점 깊어만 갈 뿐이었다.
↳그런 후 내륙 선교 본부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 선교 본부의 벽에 이런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감사를 연습하십시오.’
↳나는 그대로 해보았다.
↳그러자 곧 모든 어두움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다시는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어려운 일들로 인해,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지고, 서 있기조차 힘들어 비틀거리는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부터 하자.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시며, 나를 버리지 아니하셨다는 믿음을 갖자.
↳그리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로 인도하셨는지 보라.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왜 광야의 고통을 허락하실까?
↳이건 우리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25절 뒷부분을 다시 보자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훈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광야의 여정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훈련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합당한 자격자를 만들기 위해서, 광야학교에 입학시켜 훈련을 받게 하신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학교에 입학시키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셨다.

-어떤 설교자가 말했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면 광야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고전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바울은 홍해의 사건을 해석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그들이 홍해의 바다 속을 걸어간 것은, 단체로 물 속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며, 그로 인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게 되었단 말이다.
↳세례란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을 선포하는 행위이다.
↳세례란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인침의 사건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세례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1)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옛사람이 죽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의 세례를 받고 광야 학교에 들어갔듯이,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광야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 광야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실력있어도 광야학교를 건너뛸 수는 없다.

-광야학교와 일반학교와 공통점은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시험이 없는 학교는 없다.
↳우리가 광야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계속되는 시험이 있다.
↳예수 믿는 순간부터, 고난도 고통도 없는 삶이면 오죽 좋겠는가마는, 세례를 받은 후에도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걱정 근심거리가 있다.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숱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숱한 시험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맘을 놓을 수 없었다.
↳우리의 영원한 가나안인 천국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광야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광야 길에는 쓴물이 있다.
↳꼭 마라에만 쓴물이 있는 게 아니다.

-인생의 쓴물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죄책감의 쓴물이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죄책감의 쓴 물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린 채 살아가곤 한다.

-죄책감의 쓴물로 인해 여러 번 자살을 기도한 한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 가서 정신과 치료도 받고, 심리학자에게 가서 심리치료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영혼 속에 씻을 수 없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홀로된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딸을 잘 키워서 훌륭하게 자라게 하고, 시집을 보냈다.
↳남편은 세일즈맨으로서 돈을 잘 벌었다.
↳그런데 남편은 자주 출장을 가고, 이 부인은 어머니를 모시기 때문에 출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집에 있어야 했다.

-한번은 남편이 멀리 출장을 가는데, 그 어머니가 자꾸 말한다.
↳“얘야 따라 가거라 따라 가. 나는 혼자서 집에 있으면 된다. 걱정하지 말고 따라 가라니까.”
↳그래서 남편을 따라 출장을 갔는데 갔다가 돌아와서, 문을 열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다.
↳창을 따고 들어가 보니까, 어머니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시체를 안고 딸은 몸부림치면서 울었다.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 어머니를 두고서 남편을 따라 출장을 가 있을 동안에, 어머니가 몸이 아파 병들어도 도와줄 사람 없이 죽고 말았으니, 내가 어머니를 죽인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장례식을 한 다음에, 그 죄책감으로 인해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그 때마다 실패했던 것이다.

-둘째, 미움과 분노의 쓴물이 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의 쓴물을 마시며 산다.
↳미움과 분노는 사망의 독이다.
↳미움과 분노는 자기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남을 파괴하는 무서운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해부학자인 존 헌튼 씨는,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노는 인생을 파괴하는 병적인 요소이다. 분을 내는 자는 자살하는 사람이다. 분과 노는 남을 괴롭히기 전에 먼저 자기를 죽인다.”
↳그런데 그는 어느 해부학회에 참석했다가, 다른 의사가 자신을 맹비난하자, 그만 분노하여 일어나 저항하다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자기는 분을 내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었으나, 스스로는 분을 품다가 심장마비로 죽고 만 것이다.

-셋째, 좌절과 절망의 쓴물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 좌절과 절망이 있으면 파멸에 이르게 된다.
↳사람은 음식이 없이 40일간 살 수 있다고 한다.
↳물이 없이는 8일간 살 수 있다고 한다.
↳공기가 없이는 4분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단 몇 초도 살지 못한다.
↳희망이 없다면 벌써 죽은 것이다.

-한 주부는 시어머니 살림솜씨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남편에게 자주 야단을 맞자, 갓돌이 지난 아들과 세 살배기 아들을 죽이고는, 스스로 목메어 목숨을 끊었다.
↳그 주부가 남긴 유서의 내용은 이렇다.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당신은 집에만 들어오면 고함을 치니, 시어머니 빈자리를 채우기에 너무 부족한 사람, 먼저 갑니다.’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지만, 누구나 죄책감의 쓴물과, 미움과 분노의 쓴물과, 좌절과 절망의 쓴물을 계속해서 들이마시면, 끝내는 그런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죄책감의 쓴물을, 위로와 평안의 단물로 바꾸어야 한다.
↳미움과 분노의 쓴물을, 사랑과 용서의 단물로 바꾸어야 한다.
↳좌절과 절망의 쓴물을, 희망과 소망의 단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 쓴물을 마시지 않으면 된다.

-하나님만이 쓴물을 단물로 바꾸실 수 있는 능력자이시다.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쓴물을 단물로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광야의 여정에서 당하는 인생의 쓴물을 마시지 말고, 주님 앞에 쓴물을 내놓기 바란다.
↳쓴물을 단물로 치료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시기 바란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쓴물을 주님 앞에 내놓는 것인가?
↳첫째 기도하는 것이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스라엘 자손이 마라의 쓴 물 앞에서 원망했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사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마라의 쓴물 앞에서 모세처럼 기도하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하기가 쉽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쓴물을 주십니까?”
↳“왜 하필 나만 이런 쓴물을 마셔야 합니까?”
↳아마 한 번쯤은 그런 전과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쓴물이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기 바란다.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기 바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쓴물이 단물로 치료될 줄 믿고 기도하기 바란다.

-모세가 왜 기도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는 이집트의 학문을 두루 섭렵한 사람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다.
↳익힐 만큼 익힌 사람이다.
↳그는 광야 생활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40년의 경험이면 보통 경험이 아니다.
↳그는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기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상황에서 모세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쳐다보고 있은들 염려밖에 더 생기겠는가?
↳또 염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염려는 실망을 낳을 뿐이다.
↳염려는 좌절하게 만든다.

-바울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들으라.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라의 쓴물을 마시며 괴로워하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인생의 쓴물 앞에 서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하나님을 원망하는 분이 있다면, 먼저 무릎 꿇기 바란다.
↳부르짖어 기도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기 바란다.

-둘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하나님은 우리가 쓴물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한 나뭇가지를 쓴물에 던지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무 나뭇가지나 던져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하나님이 지시하신 나뭇가지이다.
↳말씀을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엉뚱한 말씀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이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다.

-모세는 적어도 40년간을, 애굽 궁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요 엘리트이다.
↳그런데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했다.
↳그랬더니 쓴 물이 단 물이 되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에 순종했더니 상식을 넘어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다. 순종에 치료의 기적이 일어났다.
↳순종에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이적이 일어났다.
↳순종에 마라가 환희로 바뀌는 표적이 생겨났다.

-마라의 쓴물이 괜히 있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 분이 있다면, 그 의미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보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기 바란다.
↳거기에 여러분의 지식, 상식 결부시키지 말고, 말씀 그대로 순종해보기 바란다.
↳이왕 순종하실 바엔 철저하게 순종하기 바란다.
↳특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어도, 말씀 그대로 순종하기 바란다.
↳어차피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것은 우리 지식 밖의 이야기이다.
↳우리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지식과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복음서를 보아도 예수님은 자신의 방법을 선호하셨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고치셨고 치료하셨다.
↳똑같은 소경이라고 똑같은 방법으로 고치시지 않았다.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말씀 한 마디로 고치셨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좀 특이한 방법으로 고치셨다.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셨다.

-똑같은 소경이었다.
↳똑같이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러나 치유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한이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만 하면 된다.
↳그건 인생의 쓴물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마라”와 같은 쓴 일들만 계속되지 않는다.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인생의 마라가 있다면, 그 다음에는 분명히 엘림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라에 머물지 말고, 엘림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인생이 힘들수록 그 자리에 머무르면 안 된다.
↳쓴물이 단물로 치료되는 체험을 했다고 해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마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엘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그걸 보지 못했다.
↳조금만 더 가면 엘림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아마 그들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 보지 못함이 슬픔이다.
↳근시안적인 시각이 슬픔인 것이다.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갈매기 조나단은 고독한 선구자였다.
↳갈매기들은 해변가를 조금 날아서, 겨우 먹이를 찾아 먹고는 제자리로 돌아가 있다가, 배가 고프면 다시 가서 먹이를 잡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것밖에는 갈매기들이 더 이상 날아다닐 곳이 없었다.
↳그것이 갈매기 삶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 중에 꿈을 가진 조나단이란 갈매기가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높이 날 수 있어. 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어.”

-그는 친구들에게 미지의 나라를 향하여 가자고 속삭였다.
↳그러나 다른 갈매기들은 조나단을 미쳤다며 쫓아내어, 그 사회에서 추방했다.
↳추방당한 조나단은 너무나 슬펐다.
↳그 슬픔은 그들의 사회에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더 커다란 꿈을 모르는 데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엘림이라고 하는 기가막힌 오아시스를 준비해두셨다.
↳그곳엔 물샘이 열둘이나 있다.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다.
↳어떤 학자는 물샘 12개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고, 종려나무 70주는 이스라엘 70장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엘림은 이스라엘이 우연히 도달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인도하신 곳이다.
↳아무튼 엘림은 마라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오아시스이다.

-그럼 오늘 우리에게 엘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
↳광야길을 걷는 인생에게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오아시스이다.
↳엘림이란 뜻은 ‘상수리나무’ 또는 ‘능력’이다.
↳상수리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기 때문에 ‘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엘림은 쉼과 능력을 주는 곳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쉼과 참된 능력을 제공하는 곳이 어디인가?
↳오직 교회밖에 없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오아시스는 교회이다.

-주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보혈을 흘리셨다.
↳우리 교회는 주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것이다.
↳인생의 마라를 만났을 때, 언제라도 달려와서 기도할 수 있는 엘림, 언제라도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엘림이, 바로 한꿈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광야는 분명히 힘든 곳이다.
↳그러나 광야이기에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광야이기에 오히려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광야는 믿음의 사람에게 축복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아니 광야는 하나님의 축복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광야 길을 한참 걸었는데, 마라에 도착하고 말았는가?
↳쓴물이 있는 현장에, 기도로 하나님을 초대하기 바란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기 바란다.

-마라가 고비이다.
↳우리가 마라의 고비만 잘 넘기면, 엘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