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예배(2019):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씁시다.(고전 5:9-1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1-06 00:00
조회
1062



신년예배(2019)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씁시다.(고전 5:9-10)
2019. 1. 6.

프롤로그

-새해 첫 주일예배를 여러분과 함께 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신년주일을 예배로 시작하였으니, 송년주일을 예배로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그러기 위해서 한 해 동안 여러분 모두 건강하기 바란다.?가정과 일터가 형통하기를 바란다.?주일을 아예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날로 구별해 놓기 바란다.

-오늘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주께서 기뻐하신다면...”이다.?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뜻이다.?사람들이 아무리 싫어해도, 나도 그 일을 하기 싫어도, 주님이 기뻐하신다면 하겠다는 것이다.?반대로 표현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뭐든지 안 하겠다는 뜻이다.?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하고 있어도, 나도 그 일을 하고 싶어도,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면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삶의 기준을 주님께 두고 산다는 말이다.?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주님께 두기만 하면, 우리 신앙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고, 우리 삶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믿음의 길을 걸었던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자.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여기서 “몸으로 있든지”는 세상에 거하는 동안을 말한다.?“떠나든지”는 세상에서 떠나는 것을 말한다.?9절을 다시 읽어보면 내가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쓴다는 말이다.?내가 사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면 살겠다는 것이고, 내가 죽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면 죽겠다는 말이다.?살아서는 선교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죽을 때는 순교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는 말이다.

-반드시 사는 것만 주님의 뜻은 아니다.?꼭 살아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아니다.?우리가 이걸 인정해야 한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았다.?그는 무서울 정도로 복음을 위해 살았다.?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기도 했고,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도, 그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왜 그랬을 거 같은가??그걸 주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의 소원이 골로새서 1장 24절에 있다.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의 소원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기 육체에 채우는 것이었다.?그는 자신의 소원대로 로마의 감옥에서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드렸다.?선교의 삶을 살다가 순교로 삶을 마감했던 바울이다.?그럼에도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위해 어떻게 한다고 했는가??“...힘쓰노라”?바울 같이 의지가 곧은 사람도, 바울 같이 학식이 깊은 사람도, 바울 같이 열정이 넘치는 사람도, “힘쓰노라”고 했다.?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하물며 우리이겠는가??교회 왔다갔다 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올 한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 우리도 힘써보자.?울어도 보고 땀도 흘려 보자.?기도도 해보고 금식도 해보자.?조금 힘써보고 힘들다며 포기하는 일이 없기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첫째가 예배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아버지께 예배하는 것이다.?주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다.?하나님의 눈에 띠고 싶으면 참된 예배자가 되기 바란다.?하나님의 눈에 들고 싶으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되기 바란다.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말씀의 강조점이 뒷부분에 있다.“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예배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에 인색하다.?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조차 푸대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물론 오늘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사무엘 때도 그랬다.?당시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시대였다.?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엘리에게 들려준 이 말씀을 보면 백성들 중에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도 있었다.?나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존중히 여겨주길 바란다면 말이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예배다.?올 한 해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중히 여김을 받기를 바란다.

-우리는 흔히 예배하면 교회에 나와서 드리는 1-2시간만을 생각한다.?그러나 그렇지 않다.?예배 전의 삶과 예배 후의 삶을 포함하고 있다.

-예배 전의 삶도 너무 중요하다.?예배를 드리러 나오기 전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이다.?하나님께서 내내 눈을 감고 계시다가,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종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는 것이 아니다.?그분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계신다.?주님을 잃어버리고 악한 생각과 나쁜 말과 그른 행동을 하며, 제 맘대로 살다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나에겐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말을 하면,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여러분 상상에 맡기겠다.-예배 전의 삶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우선, 예배를 사모하는 것이다.?예배를 사모하면서 사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다르다.?자신이 예배 전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예배가 기다려진다.?이런 사람은 주일이 기다려진다.?이런 사람은 예배가 없으면 못산다.?이런 사람은 주일에 예배드리는 재미로 산다.?이런 사람은 예배를 위해 중보기도하기를 기뻐한다.?이런 사람은 예배 때에 신령한 은혜를 공급받기 위해 기도로 준비한다.?이런 사람이 예배 시간에 은혜 받지 못한다면 기적 중의 기적이다.

-다음은, 설교자와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다.?주님은 교회에 말씀 사역을 하는 사람을 세우셨다.?그 사람이 설교자다.?예배를 사모하는 맘으로 교회에 나와도, 설교자와 맺힌 것이 있으면,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없다.?그러므로 주일 전에 설교자와 맺힌 관계를 풀어야 한다.?설교자가 잘못했든, 아님 설교자에게 오해를 했든, 설교자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으면, 예배 때 은혜를 받지 못한다.?설교자가 아무리 명 설교를 해도, 자기 맘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은혜의 시간이 아닌 견디는 시간이 될 수 있다.?말씀은 설교자와 회중이 상호 교통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예배 당일의 삶도 중요하다.?예배 전의 삶이 중요하지만, 예배 당일에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예배 당일의 삶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드리겠다.

-첫째로, 예배드리는 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주일은 주의 날이다.?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사실 모든 날을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아야 하지만, 우리는 일주일의 하루를 특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삼고 있다.?일요일이 주일이 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요일이다.?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매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지켰다.

-그리스도인들의 주일 성수 개념이 흐릿해졌다.?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주일 성수에 목숨을 걸었는데, 지금은 52주를 다 지키는 사람이 요령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취급받는다.

-주일 성수를 하지 않는 사람 중에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없다.?주일 성수를 못하는 사람이 아닌, 주일 성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신앙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진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주일을 빼먹는 것과 십일조를 건너뛰는 것이다.?주일성수를 잘 하던 사람이 한 번씩 빠지면 이상이 생긴 것이다.?십일조를 꾸준히 잘 하던 사람이 한 번씩 건너뛰면 이상이 생긴 것이다.?요즘은 주일성수와 십일조만 잘해도 ‘그 사람 신앙 좋다’는 말을 듣는다.?아니다. 그건 기본을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주일을 성수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때에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는 100 m 달리기가 주일에 잡혀 있었다.?그 때 그 경기의 강력한 우승후보인 영국의 에릭 리델(Eric Liddell)은 출전포기를 선언했다.?출전을 포기하는 이유는 자기에겐 메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랬을 때에 그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특히 영국 국민들은 그를 가리켜 `조국을 배반한 자'라고 했고 `광신자'라고까지 몰아 부쳤다.

-며칠 후 에릭 리델은 100m 경기 대신 4백미터 달리기에 출전했다.?400미터는 자신의 주종목이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관중들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저렇게 달리다가 심장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에릭 리델은 예상을 뒤엎고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기자들이 우승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처음 200미터를 뛸 때는 내가 뛰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200미터는 하나님이 친히 뛰어주셨습니다."?영국인들은 에릭 리델의 용기와 투철한 신앙에 박수를 보냈다.

-“나는 세상의 어떤 것도 주일성수와 바꿀 수 없다”는 자세로, 매 주일을 맞이하기 바란다.

-둘째로 예배 시간을 지키는 것이다.?교회는 예배드리는 시간을 정해놓았다.?우리 교회는 주일예배를 올해부터는 오전 10시 30분에 드린다.?큰 교회는 1, 2, 3, 4부 많게는 6부까지 드린다.?교회 건물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어쩔 수 없겠다고 이해는 가지만, 그러다보니까 자기 편한 시간에 맞춰 예배를 드린다.

-그걸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문제는 예배를 일 순위에 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오늘은 출타해야 하니까 1부예배를 드려야겠다.’?‘오늘은 약속한 사람을 만나고 와서 4부예배를 드리면 되겠다.’?‘오늘은 시간이 남으니까 2부예배를 드리겠다.’?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예배 시간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예배 시간을 지키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적어도 예배 시작 10분전에는 나와서 예배를 준비해야 한다.?예배를 10시 30분에 시작하니까 10시 20분에는 자리에 앉아서 예배 준비를 해야 한다.

-여러분이 아주 귀한 분을 만나려고 할 때 어떻게 하는가??최소한 10분전에는 약속 장소에 도착할 것이다.?이 세상의 어떤 분보다 귀하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데, 우리가 예배 시간에 지각을 해서야 되겠는가??어쩌다 사정이 생겨서 한 두 번 그런 것은 몰라도 습관성이 되면 곤란하다.?주일성수와 함께 예배 시간 성수도 해야 한다.

-셋째로 예배 장소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든지 그분을 예배할 수 있다.?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특별히 구별하여 놓은 장소가 있다.?그곳이 어디인가? 예배당이다.?우리가 예배당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건물 자체가 거룩해서가 아니다.?그곳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 예배 장소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가??눈물의 기도로, 수고의 땀으로 지어졌다.?예배당을 눈물의 기도로, 수고의 땀으로 지었던 분들과, 예배당을 짓고 나서 합류한 분들은, 예배당을 대하는 손끝에 전해지는 느낌이 다르다.

-고향 교회당을 지을 때 나도 벽돌을 날랐다.?당시 중학교 1학년인 때였으니까, 뭐 얼마나 날랐겠는가마는, 그런데도 그곳에 가면 그 때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예배 시간이 되어도, 예배드릴 교회가 없어서 헤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언제든지 찾아와 기도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해 보았는가?

-올 한해 여러분이 맡은 교회 청소 사역을 잘 감당해 주기 바란다.?주님을 사랑하는 맘으로 예배당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기 바란다.

-넷째로, 예배의 내용이 중요하다.?주일에 제 시간에 본 교회에 나오는 것 중요하다.?그러나 예배의 형식만 있고 내용이 없으면 안 된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말해준다.?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어떤 분이신가??영이시다.?그분은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다.?시간에 제한을 받거나 장소에 제약을 받는 분이 아니다.?그분은 통성 기도를 할 때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고, 우리나라 전체에서 주일예배를 드려도, 한 교회에서 드리는 것처럼 받으시는 분이다.?지금 이 순간에도, 그분은 이곳에 영으로 임재하신 분이다.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한다고 하는가??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첫째, 영이다.?“영”의 원어가 ‘프뉴마’이다.?프뉴마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성령으로 볼 수 있다.?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말이다.?예배의 주도권을 성령님께 맡기라는 것이다.?꽉 짜인 예배의 틀에 매이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라는 말이다.?어떤 음향이나 효과로 회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말고, 성령으로 마음을 주장케 하라는 말이다.

-교회사에 보면, 어떤 교파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예배 순서도 없고, 정해진 설교자도 없이, 몇 시간씩 예배를 드렸다.?그런가 하면 주일예배가 1시간 넘어가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교회들이 있다.

-우리의 심령으로 볼 수도 있다.?프뉴마는 성령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영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사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보면, 몸은 교회당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을 때가 있다.?예배하는 시간에는 별 관심 없고, 예배 끝나고 있을 행사에 마음을 두고 있을 때도 있다.?예배는 우리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드려야 한다.?아무리 뭘 많이 준비하면 뭐하는가??마음이 빠진 예배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이다.

-둘째 진리다.?성령만 강조하거나, 우리의 마음만 강조하면, 예배가 주관적으로 흐르기 쉽다.?예배가 무질서해질 수도 있다.?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쁜 맘을 먹으면 악용될 소지가 있다.?이걸 막아주는 것이 진리다.?어떤 예배가 좋은 예배인가??주관적 요소인 영과 객관적 요소인 진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예배다.?성령의 역사와 말씀이 균형잡힌 예배이다.

-예배에서 그 어떤 요소보다 말씀이 중요하다.?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주의를 기울여 경청해야 한다.?듣고 돌아서면 잊어먹는다.?기록하면서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설교만으로는 부족하다.?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기본적으로 한 해 일독은 해야 한다.?성경 읽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읽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그래서 수요예배 때 어성경이 읽어지네란 콘텐츠로 여러분을 돕고자 한다.?반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해서 전문강사 자격증을 땄다.

-마지막으로 예배 후의 삶이다.?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예배 후의 삶이 따라야 한다.?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예배는 바른 예배라고 보기 어렵다.?다시 말하면 우리의 예배가 참된 예배였는지는, 그 후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다.?예배 후의 삶이 엉터리면 예배도 엉터리로 드린 것이다.?예배 후의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면 예배를 잘 드린 것이다.?사실 정상적인 예배는 삶의 변화가 따른다.

-무엇보다도 말씀을 통해 우리 인격의 변화를 가져온다.?말씀의 양식을 먹으며, 우리 마음 씀씀이가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이게 말씀의 열매이다.?이게 예배의 목적이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둘째, 하나된 공동체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믿음의 한 식구다’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공동체 다른 말로 가족이다.?우리는 실제로 가족이다.?피를 나눈 가족이다.?피로 맺은 식구들이다.

-우리가 누구의 피를 나누었는가??예수님의 피를 나누었다.?우리가 누구의 피로 맺은 가족인가??예수님의 피로 맺은 가족이다.?그럼 우리의 혈관에 누구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인가??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다.?이걸 믿어야 한다.

-우리가 성찬식을 왜 하는가??단순히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해서인가??‘내 죄 때문에 죄 없으신 그 분이 죽다니 와, 슬프다’ 하고 눈물 찔끔찔끔 짜라고 성만찬을 거행하는가??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 못지 않게 예수님의 살과 피로 우리가 믿음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 한다.?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자매들이여

-우리 교회는 한꿈교회 출발 때부터 성찬식을 매월 한 차례씩 해오고 있다.?매월 둘째 주일을 성만찬주일예배로 드린다.?성찬식을 통해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한 식구 됨을 깊이 느끼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될 수 있을까??‘우리는 하나다’ 라는 사실을 머리로 인정한다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사는 배경이 다르고 가진 가치관이 다른 우리가 쉽게 하나되기 어렵다.?그 점을 무시할 수 없다.?실제로 이런 일로 교회가 다투거나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될 수 있을까?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첫째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다.?그러나 그냥 사랑이 아니다.?주님의 사랑이다.?사람의 사랑은 변덕이 심하다.?기분이 좋을 때와 기분이 나쁠 때가 다르다.?자기와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과 다르다.

-이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믿음의 식구들을 서로 사랑하기 바란다.?서로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보면 먼 산 바라보듯 하지 말고, 서로 아는 체 하기 바란다.?서로 먼저 다가가 손을 꼭 잡아주고, 힘들어하는 분들의 등을 도닥거려 주라.?우리는 서로를 돌아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특히 약한 자를 세워주어야 의무가 있다.?사랑하는 것이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한다.

-셀로 하나될 수 있다.?우리교회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를 추구한다.?주일예배가 한 쪽 날개이다.?다른 한 쪽 날개가 무엇인가??셀모임이다.

-셀모임은 주일예배의 연속이다.?주일예배의 말씀을 셀모임에서 나눈다.?하나님과 동행했던 얘기를, 셀모임에서 나누는 것이다.?서로를 위해 기도한다.?전도에 대해 나눈다.

-셀모임에서 힘을 얻는다.?셀모임에서 위로를 얻고 격려를 받는다.?셀모임에서 치유를 받고 회복을 경험한다.

-셀모임을 말할 때 셀리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셀리더는 셀모임의 DNA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단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셀리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순간, 그 셀은 암세포가 되고 만다.

-암세포의 특징이 무엇인가??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분명히 내 몸 안에 있는 세포인데, 내 뇌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뇌의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고, 통제받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셀리더는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기 속에 있는 구중물이 나와 셀모임이 흐려지게 된다.?셀리더는 목회자로부터 그 셀에 파송을 받은 것이다.?나는 이 자리에 목회자를 대신하여 와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셀모임은 모여서 수다 떠는 자리가 아니다.?셀모임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는 자리가 아니다.?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는 자리다.----------------------------------------------------------------

-우리가 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언젠가는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하기 때문이다.?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으면, 그 날에 주님이 우리에게 갚아주신다.“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그 날을 생각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하나된 공동체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