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06: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고전 4:1-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12-16 00:00
조회
1302



고린도전서 강해 06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고전 4:1-8)
2018. 12. 16.

프롤로그

-우리가 살면서 피해야 할 마음 자세가 있다.
하나는 체념이고, 다른 하나는 자만이다.
체념이란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는 것’을 말한다.
자만이란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는 것’을 말한다.
체념은 사람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자만은 사람을 우월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체념도 병이고 자만도 병이다.
이런 병에 걸린 사람을 간혹 본다.
교회에서 이런 사람을 보면 안 된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 아닌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사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사람이다.
그러니 체념할 수 없다.
그러니 자만할 수 없다.

-우리의 첫 번째 부르심은 그리스도인이다.
육에 속한 사람 곧 자연인으로 살던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러주셨다.
이걸 다른 말로 구원에로의 부르심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첫 번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다.

-주님은 첫 번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을 두 번째로 부르신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르신다.
이걸 다른 말로 사역에로의 부르심이라고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두 번째 부르심이 있다.
두 번째 부르심의 목적은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이다.
주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기 위해서다.

-전신자의 사역자화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그래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가 그렇지 못하다.
소수가 다수의 사역을 감당한다.
그건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모두가 은사에 따라 사역에 참여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다.

-다음 주일에 내년 한 해 동안 주의 몸된 교회를 섬겨나갈 일꾼을 임명한다.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해 당회를 통해 임명하시는 것이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충성해주기 바란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이다.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벤허>라는 영화에 보면, 주인공이 노 젓는 노예이다.
노를 젓기 위해 배 밑에 들어가 보니 노예들이 대열을 맞추어 쭉 앉아 있다.
그 가운데에 복도가 있는데, 그 끝에 한 사람이 앉아 있고, 그 사람 앞에 조그만 북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사람이 ‘둥! 둥! 둥!’ 북을 치면, 그 북소리에 맞추어 노예들이 노를 젓는다.
북소리가 빨라지면 노를 빠르게 젓고, 배가 방향을 바꿀 경우엔 한 쪽만 북을 치면 노를 한쪽에서만 젓는다.

-우리말 성경에서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어 ‘휘테레타이스’는 ‘배 밑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란 의미다.
배 밑에서 노를 젓는 사람은, 그 배의 목표를 알지 못한다.
그 배가 나아가는 방향도 알 수 없다.
사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도, 다 알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회를 신뢰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내 노를 젓는 것이다. “내 자리에서 내 노를 저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이다.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일꾼이 피해할 태도가 체념과 자만이라면, 일꾼이 가져야 할 태도는 충성이다.
능력은 개인차가 있다.
재능 역시 개인차가 존재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꾼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기의 임명권자가 누군지를 알 때, 충성할 수 있다.
우리의 임명권자가 누구인가? ...
우리가 누구의 일꾼인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우리에게 일을 맡기신 분이, 나를 살리려고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아는 사람은,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임명받은 내가 누군지를 알 때 충성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 일꾼으로 임명 받은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싸구려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이 예수 피로 값주고 사신 예수님 짜리다.

-한 의사가 아프리카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한 청년과 친해졌다.
이 청년은 선진영농기법과 축산기술을 배워,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에서 부유층에 속했다.
그는 앞으로 큰 기업을 일으켜,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꿈을 가진,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혼기가 늦어진 이 청년의 결혼에 대해,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결혼하려는 청년은 암소를 끌고 처녀의 집에 가서, 장인 될 사람에게 “이거 받고 딸을 주세요” 하고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다.
물론 훌륭한 신붓감일수록 많은 가축을 데려가야 하는데, 암소 세 마리를 받은 신부는 이 마을이 생겨난 이후로 단 두 사람뿐이었다.
평범하면 한 마리, 좀 괜찮다 싶으면 두 마리였다.

-어느 날 이 의사가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그 청년이 아홉 마리의 소를 끌고 청혼하러 가고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이 청년이 어느 집으로 가는지 궁금해 하며, 뒤따르고 있었다.
청년은 마을을 지나 외진 곳에 있는, 가난한 노인의 집에 가서 청혼을 하는 거였다.
그 집에는 말라깽이에다가, 키만 멀대 같이 크고, 병약한 외모를 가진 볼품없는 처녀가 있었다.
너무 이외의 일이라, 마을 사람들은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수군거렸다.

-여러 해가 지났다.
그 의사는 휴가차 아프리카 그 마을에 다시 가게 됐다.
뛰어난 기업가가 된 그 청년을 만났고, 그 집의 초대를 받았다.
의사는 그 동안 수많은 여인들을 보아왔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의사는 속으로 “아, 이 사람이 그 때의 말라깽이 처녀와는 이혼하고, 아내를 새로 맞은 모양이구만” 이라고 생각했다.

-그 청년이 의사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이 말했다.
“선생님, 저 사람이 그때의 그 말라깽이 처녀입니다.”
“아니, 정말입니까?”
의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청년이 사연을 이야기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저 사람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어, 결국 저 사람에게 청혼하였습니다.” 하면서, 암소 아홉 마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제가 청혼할 때 몇 마리 암소로 할 것인가 오래 동안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암소가 몇 마리인가가, 아내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결정할 기준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가 자신의 가치를 한 두 마리 암소로 낮추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 세 마리는 자신을 전의 다른 처녀들과 비교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되어, 아홉 마리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아내는 자신에게 암소 아홉 마리의 가치가 있는가하고 의심했지만, 아내는 자신의 가치를 아홉 마리에 걸맞게 하려고 노력하여, 지금 아내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그 청년의 지혜로움에 감탄하며, 그의 두 손을 굳게 잡고는, 더 이상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엄지척을 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암소 아홉 마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려 죽게 하시고, 대신 우리를 살리는 선택을 하셨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하나님한테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진심어린 충성이 나온다.
암소 아홉 마리 받은 여자가, 자기가 잘 나서 아홉 마리 받은 줄 알고 불충성했다면, 답 없는 인생이라고 욕먹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암소 아홉 마리가 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 땅에서 불행한 삶을 청산하고, 영원히 지옥 갈 인생에서 천국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고도 그리스도께 충성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구원에 대해 진지한 의심이 필요하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는 결코 교회만 왔다갔다 할 수 없다.
주님을 위해 뭐라도 자꾸만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주님의 은혜에 작은 거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일꾼은 자기에게 일을 맡긴 주인에게만 집중해야 한다.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어떤 일이라도 하다보면 소리를 듣게 된다.
남의 일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다들 너무 쉽게 생각한다.
자기한테 해보라면 잘 하지도 못하면서, 남이 하는 것에 대해서는 토를 단다.
이런저런 소리 안 듣는 방법이 있긴 하다.
일을 안 하면 된다.
그렇다고 일꾼이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바울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신자로부터나 불신자로부터나 판단을 받을 때, 거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 주인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다.
충성하지 않으면서도 판단의 소리에 귀를 막고 독주하면 재앙이다.

-일꾼은 자신에게 일을 맡긴 주인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 사역을 일년 단위로 감당한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잘 감당하는 일꾼들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들쑥날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 참 힘들다.
일반 회사와는 달리 속으로만 끙끙 앓을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는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다.
얼마나 충성했는지, 어떻게 충성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충성했는지를 빼곡하게 기록해 두신다.
하나님은 결코 허술한 분이 아니다.
우주를 설계하여 만드신 분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천체를 돌리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상급 받을 자에게 착오로 벌을 주고, 형벌 받을 자에게 착오로 상을 주는 일이 있겠는가?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상적인 믿음이다.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일꾼에 일을 맡겨놓고, 그 일에 충성한 일꾼에게 상주시기를 기뻐하신다.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우리가 맡은 일 중에 가장 귀한 일이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어떤 일보다 우선한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모든 사역의 기본이다.
사역을 위해 생명을 죽일 수는 없는 법이다.
反(반)생명적인 것은 反(반)하나님적인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때 유럽에서 일본대사로 근무하던 ‘스기하라’란 분이 있었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신의 집 공관 앞에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독일 비밀경찰을 피해 결사적으로 도망쳐 나온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일본 입국 비자를 얻기 원했다.
일본 비자를 받으면 동유럽을 빠져나와 비밀경찰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기하라 대사는 동경으로 그 유대인들에게 비자 발행을 허락해 달라고 세 번이나 전보를 쳤다.
그러나 본국에서는 안 된다는 회신만 올 뿐이었다.
그는 안정된 출세의 길이냐, 아니면 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냐,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스기하라 대사는 안정된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생명을 살리는 길을 택했다.
본국 정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무려 28일 동안, 그는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손수 비자를 쓰고 도장을 찍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해서 6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 후 일본에서 전구를 팔면서 소박하게 남은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스기하라 대사의 이야기가 알려져서 기자 한 사람이 그의 아들을 찾아갔다.
“외교관으로서 출세의 길을 버린 아버지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아버지가 성공한 인생을 사셨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의 아버지를 필요로 하셨을 때 저의 아버지는 옳은 일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6천명의 생명을 구한 스기하라 대사에게, 큰 상급을 주셨을 것이다.
육체적인 생명을 구해도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면, 전도를 통해 영혼을 구한 사람에게 얼마나 더 큰 상급이 있겠는가?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 각 사람이 바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 때에 OOO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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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일꾼에게는 겸손이 필요하다.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
말처럼 쉽지 않은 게 겸손이다.
남을 존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겸손은 훈련으로 되는 것이다.

-무엇으로 훈련하는가?
말씀으로 훈련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훈련한다.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뭔가 영적인 체험을 하면, 말씀 밖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거기서 교만이 싹튼다.

-말씀에 순종하는 데는,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다.
눈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겸손함이 필요하다.

-교회에서 맡긴 일이 내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겠는가?
때론 내가 배워가면서 해야 할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겸손함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자신이 튀려고 하면 안 된다.
조화를 이뤄야 한다.
교회 사역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교회가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바울이나 아볼로는 교회 사역의 본이 될 만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겸손한 그리스도의 일꾼들이었다.
그들은 말씀 사역자로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누구보다 영적 체험이 많았던 바울이었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전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 영적 체험이 많았다.
그러자 말씀을 시시하게 여기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성령은 성경의 원저자이시다.
성령은 말씀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절대로 말씀 밖으로 넘어가시지 않는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의 열매를 보면 안다.
그들은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졌다.
누구나 말씀을 넘어가면, 이렇게 될 수 있다.
영적 체험들이 많을수록, 그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일꾼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함이다.
영적 체험은 개인의 신앙에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체험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객관화시켜서는 안 된다.
영적인 체험과 신앙의 깊이와는 별개이다.
오히려 말씀 신앙이 깊어지면, 체험은 점점 사라져간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단순 노동자가 아니다.
그 안에 말씀이 있어야 한다.
말씀으로 점점 자라가야 한다.
말씀과 멀어져 있다는 것은, 주님과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말씀과의 거리가 곧 주님과의 거리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만큼,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
말씀을 묵상하는 깊이와, 주님을 사랑하는 깊이는 비례한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받은 은혜로 사역한다.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자기가 사역하는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일을 맡기실 때 감당할 은혜를 주신다.
다시 말하면 감당할만해서 맡기신다.
감당할 능력도 주지 않고 일을 맡길 정도로 무책임하시지 않다.
우리가 받은 만큼 사역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이다.

-받은 것으로 사역하는 일꾼은, 자기를 자랑할 게 없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는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자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표정이 어떨지가 궁금하다.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으시지 않을까 싶다.
나 같으면 ‘뭐 저런 게 다 있냐‘ 할 거 같다.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내가 어떤 일에 봉사할 수 있다면 여간 감사할 일이다.
내가 받은 것으로 일하고, 내가 받은 것으로 봉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슨 자랑할 게 있겠나...?
자랑할 게 있다면 나의 약함을 자랑할 것이요, 나 같은 것도 써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보면 감사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랑질이 심하다.
하나님께 감사하기에 바쁜 사람은, 자기 자랑할 틈이 없다.

-자기 자랑에 중독된 사람은 왕과 다름없다.4: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자랑하는 사람은 스스로 왕노릇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왕으로 알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배부르면 왕 되고 싶어 한다.
이미 배가 부른데 일하고 싶겠는가?

-8절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어보겠다.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벌써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함께 우리도 한번 왕노릇을 해볼 것이 아닙니까?

-바울은 그들이 진짜 왕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왕노릇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진짜 왕이 아닌 자칭 왕이었다.
일꾼이 되가지고 자칭 왕 노릇하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를 일꾼으로 부르신 주님이 되레 그들을 왕으로 섬기셔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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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체념하거나 자만하지 말자.
충성스럽게 사역하자.
겸손하게 사역하자.
받은 은혜로 사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