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01: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1-1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11-11 00:00
조회
1396



고린도전서 강해 01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1-17)
2018. 11. 11.

프롤로그

-빌립보서 강해에 이어서 고린도전서를 강해하겠다.

-먼저 고린도에 대해 살펴보겠다.
고린도는 BC 146년 무미우스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복구된 도시다.
아우구스도 때에 아가야라는 로마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었고, 그 지역 총독의 거주지였다.
바울 당시 인구가 60만 명을 헤아릴 정도였으니, 꽤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고린도는 항구와 군사 기지로서, 예루살렘으로 가기에도 편리했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기도 했다.
고린도인들은 성격이 매우 자유분방하고, 신분이나 형식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은, 비교적 민주주의적인 사회였다.

-고린도의 귀족들 곧 지배 계급은 가문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 즉 상업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었다.
고린도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물질을 숭배하고, 명예보다는 이윤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정신적 능력이나 도덕적 힘, 영적 가치 같은 것들은 무가치하게 여겼다.

-고린도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항구였지만, 항구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퇴폐적인 모습들이 나타났다.
기록에 의하면,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성창들이 천여 명이나 상주했다고 한다.
종교의 이름을 빙자해 매춘굴로 유명했던 것이다.
지금도 이 영향으로, 영어 단어 중에 “corinthian” 이라는 말은 ‘사치하고 게으르다’, ‘한량’, ‘난봉꾼’의 의미로 쓰인다.

-이어서 고린도교회가 세워지게 된 경위를 살펴보겠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도중 아덴으로부터 고린도로 왔다.
아덴은 철학의 도시 즉 정신문명의 도시라면, 고린도는 물질문명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이 고린도에 와 보니, 도시가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한 모습이었던지, 적잖이 두려움이 느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파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훌륭한 동역자를 만나게 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서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게 됨으로, 고린도 복음 전파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반대가 엄청 심했다.
도저히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던 차에, 회당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라는 이방인의 집에서, 전도를 계속해 나갔다.
그 때 회당장 그리스보를 비롯해 많은 고린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세례를 받았는데, 이게 고린도교회가 세워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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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썼다.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그 때 그의 곁에 한 사람이 있었다.
소스데네였다.

-이 소스데네가 어떤 사람인지 살피고 지나가겠다. 행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소스데네는 그리스보의 뒤를 이어 회당장이 된 사람이다.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님을 믿고는 회당장에서 물러난 후, 소스데네가 회당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울과 관련된 일로 회당장 자리에 더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회당장직을 내려놓고 바울과 함께 복음 사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괜히 유대인들이 그를 잡아다가 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회당장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유대인들에게 존경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
그런 회당장을 법정 앞에서 때렸다는 것은, 그가 전도자 바울 편에 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때로는 이런 식으로 인도하실 때가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흔들어서, 사역자의 길을 가도록 하실 때가 있다.
하나님이 왜 그런 방법을 쓰실까?
그 사람의 엉덩이가 무거워서 그렇다.
그냥 말로 하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바울은 다른 서신서와 비슷한 내용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고린도교회는 평안한 교회가 아니다.
몇 개의 분파로 인해,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교회다.
모든 교인들이 바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에 의해서 됐다는 것을 강조한다.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명백한 사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때가 있다.
왜?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이 정체성과 사명이다.
내가 누구인지와 내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확실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당연히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래야 신적 권위가 있고 흔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부르심”은 의미를 좁혀서 복음의 직분 또는 교회의 직책으로 보는 게 좋겠다.
나는 류현철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의 예수의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는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목사 후보생 고시를 칠 때도 그렇게 생각했고, 목사 고시를 칠 때도 그렇게 생각을 했다.
목회의 어려움이 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랬기에 내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서는, 한 번도 흔들려본 적이 없다.

-자기 직분을 넣어서 따라해 보자. “나 OOO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OO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씩 분리해서 고백해보자.“나는 내가 OO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나는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으로 OO가 된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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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교회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그 어떤 교회보다 문제가 많은 교회였다.
고린도전서에 다양한 주제가 나온다.
그건 그런 문제들이 고린도교회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어떻게 불렀는가?“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고린도교회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줄임말인 것이다.

-이게 바울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까?
그렇지 않다. 이게 하나님의 관점이다.
사람은 규모에 따라 교회를 나누곤 한다.
교회에 문제가 생겨 시끄럽기라도 하면, 기도 한 자락이라도 보탤 생각은 안하고 수군거리기부터 한다.
분명한 것은 규모와 상관없다.
큰 교회도 작은 교회도, 도시 교회도 농어촌교회도, 조직 교회도 미조직 교회도, 자립교회도 미자립교회도, 각 지역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모여야 교회이다.

-건물만 있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포항에도 유명한 술집을 사서 교회로 리모델링해서 들어간 교회가 있다.
그 말은 교회가 술집에 팔릴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포항의 어떤 교회는 지역을 옮겨서 교회를 건축하고자 현 건물을 매각하는데, 하필 이단한테 팔아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고의가 없었겠지만, 포항을 대표하는 교회였기에 교계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은,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가끔 교회에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목사파와 장로파가 갈리고, A장로파와 B장로파가 다툰다.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2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단어가 “성도”이다.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내가 자주 쓰는 “교우” “믿음의 식구”라는 말도 좋지만, “성도”라는 말이 특히 좋다.
성도는 아직 직분을 받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말이다.
국어사전에서 성도를 ‘기독교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뜻풀이를 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은 성도인 것이다.
목사도 성도이고, 장로도 성도이고, 어린 아이도 성도이다. “나는 성도입니다.”

-내가 죽으면 위패에 목사 류현철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두 글자를 추가하여 기록해 주면 좋겠다.
“성도 류현철 목사”
나는 내가 성도인 것을 앞세우고 싶다.

-성도는 우리의 영원한 이름이다.
성도는 평생 우리 뒤에 따라다니는 이름이다.
성도는 우리가 죽은 후에 패에 새겨질 이름이다.
성도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이 성도인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것을 은혜로 여겨야 한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바울은 다른 서신서와 동일하게 인사하고 있다.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건 전형적인 바울의 인사 형식이다. “은혜와 평강”
여기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살 붙였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3계명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을 꺼려했다.
그리고 포로기 이후부터는 “여호와”나 “야웨” 대신, “주님”을 뜻하는 “아도나이”를 사용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니까, 신성모독이라며 들고 일어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했다.
그리스도의 값진 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타종교에서는 자기 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무서운 신을 달래거나, 주술을 통해 신을 조종하거나 한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인도자와 회중이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또한 목사님과 함께”
평화의 인사는 예배 때만 할 게 아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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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교회는 빌립보교회의 수준이 못된다.
바울과 그 정도로 친밀한 교회가 아니었다.
바울의 어려움에 동참하고 바울을 섬겼던 교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한결 같이 감사를 표현했다.
그런 거 보면, 바울은 철저히 감사의 사람이었다.

-감사의 눈으로 보면, 감사할 것 투성이다.
감사할 일이 어디 한 두 가지뿐이겠는가?
그리스도인은 곧 감사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환경 자체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바울 역시도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을 바라봤다면 감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했다.
그는 일단 감사하고 봤다.
그가 고린도교회를 위하여 항상 감사한다고 했다.
항상 감사하려면 일단 감사하고 봐야 한다.

-감사는 습관이다.
감사의 안경을 쓰면 감사로 보인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라는 것이다.
환경이 아닌 그 환경에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보라는 것이다.

-바울이 감사한 이유가 나온다 1: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1: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린도교회는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했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게 되었다.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다.

-고린도교회는 문제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도 많았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는 이처럼 양면성이 있다.
천국 같은 환경에도 그늘이 있는 법이다.
100% 만족할 수 없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고, 누군가에게는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도 어떤 사람을 쓰실 때, 모든 게 맘에 들어서 쓰시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만의 어떤 특별한 점을 쓰신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한 지역에 교회가 많다.
신구교가 있고, 다양한 교파의 교회들이 있다.
오천읍만 해도 30개가 넘는다.
다 오천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들이고, 하나님이 필요해서 세우신 교회들이다.
오천지역의 교회들이 연합해서 달려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끝까지 견고하게 서기를 바랐다.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기서 “끝까지”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말한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을 가리킨다.
지상의 교회는 수명이 딱 거기까지다.
교회는 이 땅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끝까지라고 했다.

-말씀을 잘 보면, 교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끝까지를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끝까지 존재해야 하느냐 하면,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다.
여기서 책망할 것이 없다는 말의 원어상 뜻은, ‘아무도 비방할 수 없을 만큼 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교회가 지역 사회로부터 욕 얻어먹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지역 사회 내에서 욕먹지 않게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해야 한다.
그래야 한 눈 팔지 않는다.
이 번 한 주간도 미쁘신 하나님께 집중하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교회의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답은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이었다.
먼저 모두가 같은 말을 하라고 한다.
대부분의 분쟁이 말 때문에 생긴다.
생각이 달라도, 말하기 전에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말을 해도 지혜롭게 해야 한다.
들어서 기분 나쁘게 말하면, 옳은 말을 해도 기분 나쁘다.
세상의 어떤 기술보다 말하는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말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말을 듣는 기술도 배워야 한다.

-다음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다.
지금 고린도교회가 분쟁 중이다.
분쟁하고 있다는 말은, 둘 이상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편이 나눠지면 분쟁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사이좋게 나눠진 편이라도, 결국엔 분쟁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온전히 합하라고 권한다.
온전히 합하는 비결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제시하고 있다.

-분쟁하는 교회 치고 잘 되는 교회 없다.
분쟁 있는 교회 치고 은혜로운 교회 없다.
분쟁 있는 교회 치고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없다.
교회가 분쟁만은 없어야 한다.

-바울이 어떻게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글로에의 집 편으로 들었다.
그들이 왜 바울에게 교회의 분쟁 소식을 전했을까?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분쟁이 있으니, 걱정도 해보고, 기도도 해봤을 것이다.
교회 가도 은혜가 안 되니,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래서 기도하던 중에 바울을 생각했고, 바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바울에게 교회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전도여행 차 떠나 있는 바울에게 궂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교회 상황이,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송구한 마음을 무릅쓰고, 바울에게 교회분쟁 소식을 전했다.

-교회가 어떤 식으로 나눠져 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렸다. 1: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냐 고린도교회 설립자고, 아볼로야 고린도교회를 목회했으니 이해가 되지만, 게바파는 왜 생겨났는지, 또 그리스도파는 뭔지 의아하긴 하다.
아무튼 네 파가 나뉘어 분쟁하니, 교회가 한 시도 평안할 날이 없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
바울파가 “합시다” 하면 게바파가 “반대요” 한다.
아볼로파가 “합시다” 하면 그리스도파가 “반대요” 한다.

-오늘날도 분파로 인해 분쟁하는 교회들이 없지 않다.
서로 자기주장이 옳다고 하지만, 그리스도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화평한 자의 편이다.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교회를 위해 묵묵히 기도하는 자의 편이다.
교회에 분파를 만들어 분쟁할 때, 주님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진다.
주님이 몸을 찢기시는 고통을 십자가에서 한 번이 됐지, 왜 또 당하셔야 하는가?

-정치에는 여야가 존재할 수 있다.
또 그래야 한다.
여당이 책임감을 갖고 국정을 이끌어 가고, 야당이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만약 사실 상 여당밖에 없다면 일당 독재 국가이다.

-그러나 교회에는 여야가 없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을 견제하는 대안세력이 되겠는가?
누가 그리스도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되겠는가?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라는 것이다.
목회자가 교우들을 끌어주고, 교우들이 목회자를 밀어주라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운명이란 생각을 가져야 한다.
너와 나는 공동 운명체라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의 손이 떨리고 있다.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우리에게 또 다른 그리스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뿐이다.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의 이름으로도 세례를 줄 수 없다.
세례 집례자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게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 분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한 아버지에게서 난 자녀들이다.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우리가 서로 나누고 돕고 사는 것을 아버지가 기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