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2023):당신은 부활의 증인인가?(눅 24:13-35)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04-09 12:45
조회
228


부활절(2023)
당신은 부활의 증인인가?(눅 24:13-35)
2023. 4. 9.


프롤로그

-오늘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2천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보고, 그들이 왜 엠마오로 가고 있는지를 보고, 또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까지 살펴보겠다.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예수님을 따랐던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동네 친구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예수님을 따랐다.
↳혹시나 하는 부모의 염려를 무시하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
↳예수만 따라가면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것은 시간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고, 어디 그게 뜻대로 되는가?
↳이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다.
↳희망을 걸었던 예수란 사람이, 글쎄 시기하는 종교적 특권층들에 의해 무참히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희망의 대상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굳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인 엠마오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때 어디선가 주님이 다가오시더니, 그들과 동행하신다.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어렸을 때, 제가 살던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1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낮에야 문제가 없지만, 밤길을 혼자 걷는 것은, 여간 겁나는 일이었다.
↳더구나 길 바로 곁에는, 짚을 조금만 들추면 관이 보이는 짚으로 만든 임시묘가 두 개 있었다.
↳달빛도 없는 밤에, 그 길을 혼자 가는 것은 악몽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그 길을 빨리 벗어나려고 뛰면, 누군가 뒤 따라 뛰어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혹시나 싶어 멈춰보면, 뒤 따라 오는 사람도 멈춘다.
↳또 무서움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까 싶어, 노래를 크게 부르면서 가기도 했다.
↳이런 어릴 때의 경험이, 지금도 내재해 있다.

-어떤 날은 동생과 함께, 그 길을 갈 때가 있다.
↳혼자 걸을 때와는, 마음이 사뭇 다르다.
↳동생이 나를 지켜줄 만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한결 마음이 놓인다.
↳사실 그렇다.
↳함께 걷는 동행이 있으면, 험한 길이라도 웃으며 걸어 갈 수 있다.
↳어떤 무섭고 힘든 길이라도, 듬직한 동행이 있으면, 맘 편안하게 걸어 갈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일까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겸손해진다.

-매일 입버릇처럼 “아이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어른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며느리가 영양제를 사 가지고 와서 드리며, “이 약을 먹으면 빨리 그리고 편하게 죽을 수 있어요” 했다.
↳그 이후 상황은 상상하는 그대로다.

-우리의 신앙이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미리 유서를 쓰라고 하면, 무척 기분 나빠한다.
↳죽으면 천국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심리이다.
↳나 혼자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또 언젠가 한번은 죽어야 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한다.

-첫째는 죽음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기 때문이다.
↳만일 몇 번 죽어본 경험이 있다면 특별히 두려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둘째는 죽음은 혼자 떠나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누구와 함께 가는 길이라면 죽음도 크게 두렵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현재 걷고 있는 인생길에 동행이 있는가?
↳동행인이 있다면 그가 누구인가?

-우리 인생길의 동행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싶다.
↳그분과 동행하면 확실하다.
↳안개가 자욱하여,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이는 인생길도, 주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확실한 인생길을 걸을 수 있다.
↳그분과 동행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아무리 문제를 달고 사는 세상이지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 중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의 문제조차도, 주님과 동행하면 문제되지 않는다.
↳그분은 이미 죽음의 문제를 정복하신 분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의 인생길에 동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는?
↳그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우리와 동행하고 계셨다.
↳그런데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처럼, 우리가 그걸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왜 그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는가?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들의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님은 그대로인데, 그들의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에 미처 몰라 본 것이다.
↳그런데 주님을 보고 주님을 몰라보는 일이, 어디 그 때 뿐이겠는가?

-지금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신학교 다닐 때 처음 듣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어떤 사람이, 죽어 천국에 가서, 자기가 그 동안 걸어 왔던 삶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길에는 자기의 발자국 외에, 또 한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는 것이었다.

-그걸 궁금하게 여긴 그 사람이, 주님께 물었다.
↳“저기 또 한 사람의 발자국은 누구 것입니까? 제가 가는 곳마다 같이 갔던 저 발자국은 누구의 것입니까?”

-주님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대답하셨다.
↳“내 발자국이지.”

-“네?...”
↳그 말을 듣고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예수님이 자기 곁에 계신 줄을 알지 못했는데, 그래서 그 험난한 인생길을 자기 혼자 외롭게 걷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항상 주님이 동행하셨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서, 예수님을 그렇게도 목마르게 찾았는데도, 찾을 수 없었던 예수님이 자기와 늘 동행하셨다니, 좀체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기 옆에 발자국이 없어진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이 하나밖에 나지 않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하고 생각해 보니, 그 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을 때였다.
↳자신의 삶에서, 극도로 고통스러웠을 때였다.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너무너무 힘들었을 때였다.
↳그때엔 예수님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자기 발자국만 나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그러면 그렇지.'

-그 사람은 따지듯 주님께 되물었다.
↳“제가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 제가 철저히 실패했을 때, 제게 주님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그때, 주님은 어디에 계셨나요? 왜 그 땐 주님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내 발자국만 있는 겁니까?”

-그 때 주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자세히 보아라. 그건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단다. 네가 인생길에서 가장 힘들어하고, 가장 고통스럽게 살아갈 때, 좌절과 실망으로 주저앉아 있을 때, 도저히 네 힘으로는 걷지 못할 그 때에는,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단다."

-사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풀죽어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자기 혼자 짊어진 것처럼, 괴로워하며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나와 항상 동행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으로 인생을 종치게 된다.

-오늘 본문은, 자기와 동행하는 분이, 예수님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예수님이 다 아시면서,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물으신다.
↳뭔 이야기를 그리 심각하게 주고받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멈춰 선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슬픈 빛이 역력하다.

-자기들과 동행하는 분이, 누구인줄 모르는 사람은, 슬픈 빛을 띠고 살아가게 된다.
↳사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사람은, 좌절의 늪에 깊이 빠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생의 전부를 예수에게 걸었는데, 예수란 사람이 허무하게 처형되고 말았으니,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컸고, 희망의 탑이 순식간에 무너져 절망으로 다가올 때,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삶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목표를 상실하고, 희망이 안개 속에 가려졌다고 생각하니, 앞으로 인생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들이 왜 그토록 절망했는가?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나사렛 예수의 일 때문이었다.
↳예수로 인해 절망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대관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되었길래, 절망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인가?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가 십자가에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가 죽었으니, 모든 게 끝났다는 얘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중에도 그들처럼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서른을 못 채운 사람이지만, 신학자로 목사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분이 있다.
↳본 회퍼이다.
↳그는 히틀러 암살 혐의로 감옥에 갇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4월 8일 주일 아침에, 그는 감옥에서 늘 하던 대로 아침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때 험악하게 생긴 두 사나이가 감방을 향하여 소리쳤다.
↳“죄수 본 회퍼, 우리를 따라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간이 된 것이다.

-같은 방에 있던 한 영국 장교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본회퍼를 향해 인사했다.
↳“목사님, 마지막입니다. 잘 가십시오.”

-이 말에 본회퍼 목사님은 미소를 머금고, 평화로운 얼굴로 말했다.
↳“마지막이 아닙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이게 부활을 믿는 사람의 자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제 모든 게 끝이다’고 말할 때,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두 사람은 심각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인내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으려니까, 주님이 답답한 마음이 드셨나 보다.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가르쳐줬는데 왜 못 믿느냐는 것이다.
↳주님이 보통 때는 마음이 좋으신 분인데, 믿음 없는 사람에게만은 쓴 소리를 잘하신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다시 가르쳐주신다.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신앙의 기초를 어디에 세워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다.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은,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렇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어야 한다.
↳여기서 항상 순서가 중요하다.
↳순서적으로 부활보다 십자가가 먼저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사건이 있음을 꼭 잊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를 건너뛰고는, 부활을 생각할 수 없다.
↳십자가를 생략하고, 부활을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신앙의 첫 번째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십자가는 의로운 죽음이다.
↳십자가는 사랑 이전에, 죄인들을 향한 진노로 인해 부들부들 떨고 계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난 곳이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울기 전에, 자신의 죄 때문에 먼저 울어야 한다.

-둘째 십자가는 사랑을 증명하는 죽음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이, 선명하게 드러난 곳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이다.

-셋째, 십자가는 자발적인 죽음이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다.
↳충분히 죽지 않으실 수가 있었다는 말이다.
↳피할 길이 여러 번 있었다.
↳만약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유월절에 들어오시지만 안 했어도, 만약에 빌라도 앞에서 말씀만 잘했어도,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부득이 하여 죽는 죽음은 십자가가 아니다.
↳내가 스스로 죽어야 십자가이다.
↳이 죽음 위에 부활의 능력이 나타났다.
↳바울은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죽으려 했다.
↳사람다운 삶, 존경받는 삶이란, 할 수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죽는 것이다.
↳끝까지 살아 보겠다고 바둥바둥하면서, 있는 방법 다 동원하다가 죽는 것을 보면, 그리 보기 좋지 않다.
↳오래 살고자 애쓰지 말고, 정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진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처럼 죽어야, 그리스처럼 살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혹 십자가 없는 부활을 바라고 있지 않는가?
↳오래 살아야 하고, 모든 게 편해야 하고, 어떻게든 성공해야 하며, 십자가가 없어야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지 않는가?
↳꼭 살아남아야 하고 복일까?
↳죽으면 안 되는 것일까?
↳죽으면 복 받지 못한 증거라도 된단 말인가?
↳죽어야 할 때 잘 죽는 것이 복이다.

-무엇이든 잘 되어야 복일까?
↳브레이크 고장난 차가 잘 달리면 달릴수록 위험하듯이, 하나님이 없이 잘되는 것, 말씀에서 벗어나 잘 되는 것은, 사실 잘될수록 불안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다 담당하셨으니, 우리는 편안해야 한다는 얌체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누구 떠 올리지 말고 스스로를 생각하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찌 편안하기만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죄로 인한 죽음, 저주의 고통, 심판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제거되었다.
↳조상 죄를 들먹이고,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들먹이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해결하셨다.

-대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가 따로 있다.
↳서로 사랑을 위한 수고가 있다.
↳의를 위한 핍박이 있다.
↳성숙한 신앙을 위한 연단이 있다.
↳제자다운 제자가 되기 위한 훈련이 있다.

-찬송가 339장 1-2절,
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십자가는 오늘도 우리가 다 시 한번 새겨야 할 우리 신앙의 기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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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의 두 번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부활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면 아무 것도 없다.
↳기독교의 기독교 됨은 부활에 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질문을 했는데, 특별히 대학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오랜 동안 젖은 전통의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
↳즉 힌두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굳이 바꾸었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부활의 증인으로 산 사람들이 어디 한 두 사람인가?

-베드로를 보라.
↳그런 비겁쟁이가 전설에 의하면 자원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한다.

-바울을 보라.
↳자기가 가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 내세우다 결국 감옥에서 목이 잘려 순교한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을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에 감격하여,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가, 자신의 몸을 순교의 제물로 드렸다.

-주님은 그리스도를 따른 제자인 우리에게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 것을 요청하신다.

-그럼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말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셨다.

-첫째, 제자를 삼으라고 했다.
↳주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자 삼을 것을 명령하셨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를 삼기 위해서는, 먼저 전도를 해야 한다.
↳전도를 생략하고, 제자를 삼을 수는 없다.
↳전도에 있어 결정적인 것이 때이다.

-소련이 붕괴되기 전의 이야기이다.
↳의사인 콘필드가 정치범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병든 죄수들을 치료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중환자가, 콘필드에게 꾾임 없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죽음 인생의 종점이라고 생각합니까? 영생의 소망을 품고 있으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지십시오.”

-콘필드는 그의 간곡한 전도를 받아들여, 크리스천이 되었다.
↳중환자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콘필드는 한 암 환자에게 복음을 전한 후, 수술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콘필드가, 교도소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콘필드에게 수술을 받은 암 환자는, 극적으로 회생해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다.
↳이 암환자의 이름이, 알렉산드로 이사비치 솔제니친이다.
↳그가 바로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문학가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콘필드가 전도를 하루만 더 미루었다면, 솔제니친의 회심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님은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런데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한다.
↳전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례를 주어야 한다.
↳세례를 받기까지 돌보아야 한다.
↳그럼 세례만 받으면 다된 것인가?
↳아니다.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말씀으로 양육 훈련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님은 불신자를 전도해서 교회 등록시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제자로 삼으라고 하셨다.
↳우리 교회가 제자 삼는 일에, 더욱 헌신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둘째, 제자로 인정받으라고 했다.
↳주님은 우리가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해 주셨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뭐라고 했는가?
↳서로 사랑하는 삶이다.
↳여기서 “서로”는 먼저 제자들끼리를 말한다.
↳같은 교회 식구라는 말할 수 있다.
↳주님은 같은 교회를 다니는 믿음의 식구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목회자가 교우들을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교우들이 목회자를 존경함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목회자가 장로님들을 이해함으로 사랑하고, 장로님들이 목회자를 존중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교회 식구들끼리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물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마음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당연히 교회 밖의 사람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부르시면]이란 시가 있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예” 하고 대답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시간에 원하는 모습으로 오셔서 불러만 주십시오.
어느 날 볼 상 사나운 걸인이 옷자락 잡으며 동냥을 청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돌아 서버렸습니다
재수 없다고 투덜거리며 한참 걷다가 뒤 돌아보았습니다.
아, 아 주님께서 슬픈 눈빛으로 거기 서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런 모습으로 오시다니 말도 안 됩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주님은 품위를 지키셔야 합니다.

저녁 무렵 약수터에서 내려오다가 여럿이 한 사람을 사정없이
돌려 차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리저리 차이는 그 눈빛이 서글펐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가까이 갔다가 어깨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쳤습니다.
비명소리에 귀 막으며 자신의 비겁함 조소하다가 살며시 뒤 돌아보았습니다.
아~ 아, 거기 주님께서 피 흘리며 쓰러져 계셨습니다.

주님이여, 더 이상 저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왜 자꾸만 이상한 모습으로 오셔서 혼란에 빠지게 합니까?
제발 신비한 빛보라 일으키며 거룩한 모습으로 오십시오.

친구와 여행 떠나기로 한 아침이었습니다.
콧노래 부르며 마악 떠나려 하는데 이웃 아주머니가 사색이 되어 오셨습니다.
아기가 아픈데 병원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냉정히 거절했습니다.
대문 열고 나오다 보채는 아기 어르며 우는 어머니를 보고 걸음 멈추었습니다.
아~ 아, 주님은 아픈 아기를 부여안고 피 같은 눈물 뚝뚝 흘리고 계셨습니다.

주님이여, 저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수치와 분노로 몇 날 울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영영 그렇게 될까봐 두렵고 겁이 나서 더욱더 섧게 울었습니다.

주님이여, 부디 허영과 허상에 찌든 눈을 뽑으시고
부활의 새벽 목격했던 마리아의 그 눈으로 주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부르시면 “예” 하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삶이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하는 것이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특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변장하고 찾아오시는 주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활절을 맞아, 아무리 멋진 예배를 드린들, 우리 안에 또한 우리 이웃의 아픔 속에 함께 하시며, 변장하고 찾아오시는 주님을 몰라보면, 주님이 기뻐하실 거 같지 않다.

-부활하신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 제자 삼는 일에 힘쓰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