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2023):나의 자랑 나의 자존심(갈 2:2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04-02 12:22
조회
222


종려주일(2023)
나의 자랑 나의 자존심(갈 2:20)
2023. 4. 2.


프롤로그

-세계 제 2차 대전 때, 독일인들은 유태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하였다.
↳말이 쉬워 600만 명이지, 사람을 600만 명이나 죽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저들을 죽여야만 하는 사람들의 양심이다.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다 양심의 가책을 받기 때문에, 자연 학살의 진행이 원만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이와 같은 양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도의 심리적인 전술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수용소에 화장실을 짓지 않는 것이었다.
↳수만 명이 수용되어 있는 수용소에, 화장실은 하나 밖에 짓지 않았고,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하루에 몇 번으로 제한하였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 숙소에 갇히게 되면, 저들은 즉시 배변의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결국 저들은 숙소에 배설을 할 수밖에 없었고, 저들은 마치 돼지처럼 자신들의 배설물에 더렵혀졌다.

-독일인들이 이와 같은 일을 통하여 노린 것은, 인간의 자존심이었다.
↳배설물에 더렵혀진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적인 긍지와 자존심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와 같은 자존심과 긍지를 잃어버린 인간을 살해하는 것은, 마치 개와 돼지를 죽이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여, 사람을 죽인다는 심리적인 가책이 적어지게 했다.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생존에는 기적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생존하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원칙이 있었다.
↳그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 중에 기적이 일어났다.
↳물론 그 원칙중의 하나는 빵의 원칙이었다.
↳빵 한 부스러기라도 더 먹기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해야만 했으며, 생명의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팔 하나라도 덜 움직여야만 했다.
↳극도로 활동을 자제해야만, 생존의 기적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상식적인 생존의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생존의 원칙이, 수용소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은 생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세수를 하여야만 한다는 원칙이었다.
↳세수를 거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생존할 수가 없었다.

-다음은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기록이다.
↳“오후 4시가 되면 커피가 배급되었다.
↳말이 커피이지 악취가 나는 따뜻한 물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에 에너지를 빼앗겨야만 하는, 그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저들에게, 비록 악취가 나는 것이었지만, 따뜻한 물 한 컵이란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은, 그 물을 다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은, 그 물을 반만 마시고 절반의 물로 세수를 하였다.
↳옷에 물을 적셔, 먼저 이를 닦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온 몸을 닦아 나가곤 하였다.
↳그러나 배설물로 더렵혀진 몸을, 반 컵의 물로 닦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생존의 원칙을 전수받아, 그와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은, 누구나 곧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한다고, 우리가 과연 깨끗해 질 수 있단 말인가?
↳괜히 귀한 물만 낭비하고, 쓸데없이 에너지만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씻는 것을 포기하고, 따뜻한 물을 마저 마시는 것이, 생존을 위하여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그와 같은 생각 때문에, 씻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곤 하였다.

-그 때 우리는 모두 알았다.
↳그가 며칠 가지 못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실제로 저들은 며칠이 못가서 모두 죽었다.”

-사람들이 반 컵의 물로 세수를 하는 것이, 생존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연구했는데, 연구 결과, 그것은 인간의 자존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용소의 사람들은, 자기들을 향하여 총을 들고 서 있는 독일군을 향하여, 반 컵의 물을 들고 이를 닦았다.
↳얼굴과 온 몸을 닦았다.
↳그것은 일종의 레지스탕스 곧 저항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서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려고 하는 독일인들을 향해,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다.’라는 외침이었다.

-그 자존심이 생명의 힘이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반 컵의 물로 세수를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기적은 씻기를 포기한 사람, 다시 말해 인간의 자존심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레빈스카라는 사람이 한 고백이다.
↳“매일 반 컵의 물을 들고 ‘씻을 것인가?’ 아니면 ‘마저 다 마실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했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자신과 싸워 반 컵의 물을 들고, 독일인에 대하여 무언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절대로 너희들의 의도대로 죽지 않겠다.
↳어떻게 하든지 살아남아, 이 잔혹한 현실의 증인이 되겠다.
↳그러나 만일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여도, 절대로 너희들의 의도대로 짐승으로 죽어주지 않겠다.
↳끝까지 인간으로 살다가 인간답게 인간으로 죽겠다.”

-레빈스카의 말에 울림이 크다.
↳“어떻게 하든지 살아남아 이 잔혹한 현실의 증인이 되겠다. 그러나 만일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여도, 절대로 너희들의 의도대로 짐승으로 죽지는 않겠다. 끝까지 인간으로 살다가 인간답게 인간으로 죽겠다.”

-사실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짐승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짐승으로 살지 않는 것이다.
↳끝까지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답게 죽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다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마치 배설물로 더렵혀진 세상 같다.
↳그런 세상에서 깨끗하게 산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와 같은 세상에서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우리 능력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이다.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는 죄의 권세 때문이다.
↳우리 힘으로는 이 죄를 이길 수 없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죄가 가진 대단한 권세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죄를 짓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죄 짓는 것을 싫어한다.
↳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그게 그리 안 된다.
↳죄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죄의 권세와 싸워 이길 사람은 없다.
↳이전에도 죄와 싸워서 이긴 사람이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죄의 권세는 그토록 강하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은 비참하기만 하다.
↳이 땅에서 불행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 비참한 운명이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과 씨름하다가, 죽어야 할 비참한 운명이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죽어야 할 비참한 운명이다.
↳죽음 이후에는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져야 할 비참한 운명이다.
↳영적인 저주가 3, 4대까지 이어져, 후손들까지 고통을 받아야 할 비참한 운명이다.

-한 마디로 희망이 없다.
↳인간이 죄 앞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느낌은 절망 뿐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간이 당하는 불행을 극복할 수 없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간이 처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없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도덕의 문제도, 윤리의 문제도 아니다.
↳철학의 문제도,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다.
↳경제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인간의 문제는 죄의 문제이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이 당하는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죄에서 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데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는 해결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에서 승리할 수 있다.
골2: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로 죄를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로 죄의 권세를 이기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죄로 더렵혀진 인간을 씻을 수 있다.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구원하는 크신 능력 다 찬송할지라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보혈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도 씻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지 못할 죄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을 수 없는 죄인은 없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나가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누구라도 보혈을 지나기만 하면, 하나님 품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대로 누구도 보혈을 지나지 않고는, 아버지 품으로 나아갈 수 없다.

-평생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기고 살았던 사람,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십자가만 자랑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자랑하는 십자가가 원래 어떤 것인가?
↳저주의 십자가 아닌가?
↳부끄러운 십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십자가로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평생 자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우리는 날마다 자랑하며 살아야 한다!!!

-복음을 자존심 삼고 살았던 사람,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우리에겐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거룩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굽히지 않는 거룩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끝까지 지켜야 할 거룩한 자존심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자존심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자존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의 자존심이다!!!

-사람에겐 최소한의 자존심이란 게 있다.
↳사람에게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없다면, 그를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생계형 범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생계형 범죄란, 말 그대로 생계를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사실 생계란 중요하다.
↳생계의 압박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더욱 실감할 것이다.
↳‘생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주장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주장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생계 앞에서도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생계의 어려움 앞에서도, 예수님을 팔아먹지 않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생계의 막막함 앞에서도,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생계의 곤란함 앞에서도, 보혈을 욕되게 하지 않고, 복음을 자존심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겐 어떤 자존심이 있는가?
↳예수님이 우리의 자존심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자존심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의 자존심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거룩한 자존심이다.
↳평생 거룩한 자존심을 지키며 살기 바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룩한 자존심을 구기지 않고 살기 바란다.

-예전에 전 프로야구 선수가, 실종된 네 모녀 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가 죽은 후 시신을 교회 묘지에 안장하려고 했는데, 교회 측의 반대에 부딪혀 화장하기로 했다.
↳그의 부모는 물론이고, 본인도 교인이었다.
↳그런데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끔찍한 죄에 연루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없을 때, 짐승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한 자존심을 잃어버릴 때, 인간 이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안타까운 사건이다.

-우리는 자존심을 가질 만하다.
↳우리가 세상에 기죽어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하찮은 우리의 생명을 위해, 너무나 고귀한 당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이다.

-우리는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자가 되었다.
↳하늘의 천군천사가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이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이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질그릇 안에 보배가 담겨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냥 질그릇이 아닌 보배가 담긴 질그릇이다.
↳우리가 담고 있는 보배는 예수님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하게 되었고, 하늘의 천사가 부러워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자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거룩한 자존심으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다.
↳거룩한 자존심인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란,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자랑스러워하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삶이다.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삶이다.
↳우리를 저주를 풀어 축복의 삶을 살게 하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삶이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복음의 통로로 살게 하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삶이다.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해마다 이 맘 때쯤 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가?
↳십자가를 지는 행사를 갖는 것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일까?
↳하루 몇 끼 금식하고, 금식 헌금하는 것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일까?
↳자신의 피를 타인과 나누는 헌혈을 하는 것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일까?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혹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은, 분명 고난이라 할 수 있다.
↳생계를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자존심마저도 내팽개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은, 분명 고난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 자기 공치사에 정신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은, 분명 고난이라 할 수 있다.

-그 고난은 무의미한 고난이 아니다.
↳그런 고난은 쓸데없는 고난이 아니다.
↳그렇게 당하는 고난은 매우 값어치 있는 고난이다.

-장래에 영광이 약속된 고난이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영광만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영광에 비하면, 현재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다.

-장래에 상급이 약속된 고난이다.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 세상에서 예수 제자로 살아가려면, 고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받게 될 상급에 비하면, 현재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다.

-장래에 영생이 약속된 고난이다.
막1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데, 왜 고난이 없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받게 될 영생에 비하면, 현재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의 자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자존심으로 살고 있는가?
↳예수님을 자랑스러워하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자.
↳어떤 경우에도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한 자존심을 지키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