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22: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입니다.(고전 12:12-31)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6-02 00:00
조회
1435



고린도전서 강해 22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입니다.(고전 12:12-31)
2019. 6. 2.

프롤로그

-바울은 12장을 시작하면서 은사 문제를 다뤘다.
은사는 다양하고 차별이 없다.
은사는 한 성령 안에서 나왔고, 은사를 주신 목적은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다.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요, 서로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다양한 은사를 잘 조화시켜서, 믿음의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에 대한 말씀이다.“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입니다.”

-미국의 유명 소설가이자 그리스도인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개와 고양이를 한 우리에 넣어 보았다. 뜻밖에도 그들은 내 기대를 뛰어넘어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번에는 새와 돼지와 염소를 한 우리에 넣어 보았다. 약간의 적응기간이 지나자 그들도 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로교인, 감리교인, 침례교인을 한 장소 안에 함께 있도록 했더니, 시간이 갈수록 하나 되지 못했다.”

-지체의식이 부족해서 그렇다.
교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라는 의식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의 몸 다양한 지체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 교파와 교단만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기독교는 크게 셋으로 구분된다.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와 천주교(Roman Catholic Church)와 개신교((Protestantism)이다.
우리교회는 개신교 안의 장로교, 장로교 안의 통합측, 통합측 안의 포항남노회에 소속되어 있다.
기독교는 한 몸이지만, 다양한 지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지체에 대해, 서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정교회나 가톨릭이 우리와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교파를 이단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날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가 기도를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러다 하늘나라의 꿈을 꾸었다.
그가 황금 유리가 깔린 찬란한 보석길을 따라 하늘나라에 도착했을 때, 천국의 수위천사가 정중하게 마중하여 주었다.

-웨슬레는 마음에 궁금해 하던 것을 수위 천사에게 질문했다.
“천사여, 나와 더불어 영광스러운 감리교 운동을 하던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얼마나 왔습니까?”
웨슬레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천사의 답을 기다렸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천사는 한참이나 하늘나라 명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감리교인 명단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웨슬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실망 속에 빠지고 말았다.
‘나의 신앙에 무슨 잘못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선교활동은 결국 실패한 거야. 그렇다면, 칼빈의 교리가 맞았나 보다. 천국은 온통 칼빈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겠구나’

-웨슬레는 천사에게 힘없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장로교인은 얼마나 있습니까?”

-천사는 다시금 생명책을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장로교인도 한 사람도 없소.”

-‘장로교인도 천국에 없다니, 그렇다면 우리의 종교개혁은 실패를 해 버렸구나. 결국 하늘나라는 천주교인으로 가득 차 있겠구나. 그 어려운 종교개혁을 이루었는데 이 어찌된 일인가!’

-기가 막힌 웨슬레는 다시 천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는 모두 천주교인들만 있습니까?”

-천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여기 이 생명책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천주교인도 한 사람도 없소.”

-흥분한 웨슬레는 천사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렇다면 천국에는 도대체 누가 있단 말이오? 불교인입니까? 아니면 이슬람신자입니까?”

-천사는 조용히 펼쳤던 생명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요한 웨슬레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기는 그리스도인들 뿐이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하면, 자기가 다니는 교회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크게 보면 노회도 교회다.
교단도 교파도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도 교회요, 가톨릭도 교회요, 정교회도 교회인 셈이다.

-바울을 통해 주신 말씀을 들어보자.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그리스도를 ‘하나의 몸, 많은 지체’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빗대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람의 몸은 다양한 지체로 구성되어 있다.
뼈 개수만 해도, 위키백과에 의하면 성인은 206개(80+126=206개) 정도, 갓 태어났을 때는 270개 정도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지체만 해도 이렇게 많다.
그런데 이 지체가 살아 있어야 지체가 된다.
살아있는 지체가 되려면,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
몸에서 떨어진 지체는, 더 이상 몸의 일부가 아닌 것이다.

-사고로 잘린 손가락도, 수술을 통하여 봉합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도, 회심을 통하여 봉합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고 이전의 상태만큼 완전하게 회복되지 못하다.
흉터가 지고, 신경이 100%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떠났다가 회개하고 돌아와도 그렇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에, 어떻게든 붙어 있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가 부족하고 허물이 있어도, 어떻게든 붙어 있어야 한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그거 아닌가?
베드로는 붙어 있었고, 가룟 유다는 떠났다.
그게 결정적인 차이였고, 그게 영원을 결정짓는 차이였다.

-왜 다양한 지체를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는가?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성령을 마셨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헬라인은 출신이 다르다.
종과 자유인은 신분이 다르다.
그런데도 한 몸에 속한 지체이다.
유대인이 세례 받을 때의 성령과, 헬라인이 세례 받을 때의 성령이, 한 성령이기 때문이다.

-종이 마신 성령과, 주인이 마신 성령이, 한 성령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우리도 유대인과 헬라인 정도의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다양한 출신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믿음의 한 가족으로 살고 있다.
우리 각자가 세례 받을 때의 성령이, 한 성령이기 때문이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다.
성령을 마신다는 말이 어렵게 다가오긴 하다.
혹시나 싶어 새번역과 공동번역을 살펴봤는데, 둘 다 “마신다”고 번역되었다.
그래선지 교파에 따라 이 말씀을 다양하게 해석하지만, 성령의 인침을 받게 되었다로 볼 수 있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우리 각 사람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을 때, 한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 각 자가 제 각각의 상황에서 예수를 믿었어도, 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었고, 그 몸의 지체가 된 것이다.

-타생지연(他生之緣)이란 말이 있다.
불교에서 낯모르는 사람끼리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것 같은 사소한 일이라도, 모두가 전생의 깊은 인연에 의한 것임을 이르는 말이다.
옷깃만 스쳐도 그 정도의 인연이라면, 믿음의 한 식구로 살아가는 우리는 정말 엄청난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는 말을, 성례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구든지 세례를 받으면, 성례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할 수 있다.
정교회와 천주교와 개신교는, 성만찬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에 대한 해석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세 교파가 함께 모이면, 함께 빵을 떼고 포도주를 마신다.
빵이 그리스도의 몸을,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바가 같기 때문이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한 성만찬에 참여한다면, 한 몸인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다.

-바울은 지체가 한 몸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실제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머리하고 손과 발이,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
서로 미워했고, 서로를 도와주지도 않으려고 했다.
손이 얼굴을 씻어주지 않았다.
얼굴에 떼 꾸중물이 흘렀다.
머리는 발에게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고, 눈을 감았다.
발이 아무데나 가다가 넘어져 다쳤다.
손은 발을 안 씻어줬다.
발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입은 아예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몸은 얼마가지 않아서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은 깨달았다.
서로 미워하고 싸울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손이 바빠졌다.
음식을 입에 넣어줬다.
입은 음식을 열심히 받아먹었다.
발은 물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손은 얼굴을 씻어주고, 발을 씻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몸이 정상을 되찾게 되었다.

-공동체 안에서 지체가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 둘 다 마이너스가 된다.
서로 축복하고 격려하면, 둘 다 플러스가 된다.
둘 다 마이너스를 택하겠다는 사람은, “니 죽고 나 죽자”는 고약한 심보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다.
교회 안에 있으니 구원은 받겠지만,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
좋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 교회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다.
좋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공동체를 유익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편을 가르고, 공동체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교회에 누가 되지 않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혹여 목사님이 걱정하지 않을까’
이런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바울이 말한 덕을 세우는 것이다. 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일번이지만,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우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도,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건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트러블메이커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덕이 되도록 하고, 공동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균형이 중요하다.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은사도 그렇고, 직분도 그렇고, 사역도 그렇다.
모든 사람이 어떤 특별한 은사만 추구하고, 교회에 그런 은사자들만 있다면, 교회가 되겠는가?
또 모든 남자 교우가 장로와 안수집사고, 모든 여자 교우가 장로와 권사라면 교회가 되겠는가?
또 모든 성도들이 찬양사역만 하려고 하거나, 중보기도사역만 하려고 한다면 교회가 되겠는가?

-몸에 균형이 깨지면 병이 난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다 하지 않는가?
내가 받은 은사를 귀히 여겨야 한다.
내게 맡겨진 직분에 충성해야 한다.
내게 주어진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
교회 공동체가 건강해야,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체는 서로를 존중하는 지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먼저 자기 스스로에 대해, ‘나는 그리스도의 몸에 소중한 지체다’ 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나는 필요 없어.’
‘나 한 사람쯤이야’
이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건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이다.
그거야말로 사단이 뿌리고 심어준 생각이다.

-세포 하나는 보잘 거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60조~100조의 세포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 몸을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교회 안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한꿈교회에 두셨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스스로에 대해, ‘나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지체로서 내 역할이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먼저 자기 은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교회는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
팀이기 때문이다.
팀 스포츠에서는 자기가 선호하는 포지션만 고집할 수 없다.
팀을 위해서 뛰어야 한다.
감독의 전술에 따라 뛰어야 한다.
어떤 역할이 맡겨졌을 때,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손은 손의 역할을 하고, 발은 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신동목 씨라는 분이 있다.
이 사람은 물구나무서서 빨리 달리기 세계 기록보유자이고, 물구나무서서 제주 한라산을 등정하고, 63빌딩과 남산을 물구나무서서 오른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아무리 물구나무 서서 빨리 달린들, 100미터를 얼마나 빨리 달리겠는가?
발로 달리는 것보다 빠를 수 없다.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할 때, 교회가 건강해진다.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꼭 다른 사람의 일을 간섭한다.

-다른 지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한다.
할 수만 있으면 관용하고 용납해야 한다.
또한 격려하고 축복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교회는 다들 무급자원봉사자로 사역한다.
아니 자기 호주머니 털어가면서 사역할 때도 있다.
그런데 곁에서 기운 빼는 소리가 들려오면, 힘 빠지게 된다.
특히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온다.

-우리는 한 몸 안의 지체다.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내가 한 몸의 지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교회 공동체와 함께 가는 것을 통해서다.
교회 비전을 내 비전으로 삼고 달려가는 것을 통해서다.
교회 담임목회자와 짐을 나눠지고 동역하는 것을 통해서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교회를 비방하지 않는다.
목회자의 허물이 보여도, 비방하지 않고 기도한다.
지체 중의 연약한 자가 있어도, 비방하지 않고 격려한다.
교회를 비방하는 자를 어떻게든 멀리하는 게 지혜다.
교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자를 멀리하는 게 사는 길이다.
긍정적인 영향력보다 부정적인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몸의 정상적인 지체라면 이렇다.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한 지체의 고통에 함께 하는 것이다.
한 지체의 고통은 또 다른 지체의 고통이다.
손을 다쳤으면, 손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지 않는가?
온 몸 곧 모든 지체에게 고통이 된다.
교회 어떤 지체가 무슨 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에게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러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 몸에 속한 지체는, 서로 기뻐하고, 서로 즐거워하고, 서로 슬퍼하고, 서로 아파한다.
얼굴이 혼자 영광 받는다고, 다른 지체가 삐치는 것을 보았는가?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습니다.”“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픕니다.”

-1988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흑인인 잭슨 목사와 듀카키스가 나와서 경선을 하게 되었다.
당시 잭슨 목사는 듀카키스에게 패배했지만, 그는 후대에 길이 남을 만한 명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의 일부이다.
“마이클 듀카키스는 양친 중 한 분은 의사셨고, 한 분은 교사였습니다. 나의 부모는 하인이었고 미용사였고 경비원이었습니다.
듀카키스는 법률을 공부했고, 나는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둘 사이에는 종교, 지역, 인종의 차이, 경험과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듀카키스의 선친은 이민선을 타고 미국에 왔습니다. 나의 선조는 노예선을 타고 미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둘의 앞 세계가 무슨 배를 타고 미국에 왔든지 간에, 그와 나는 지금 같은 배에 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한 가지 실, 한 가지 색깔, 한 가지 천으로 짜인 담요가 아닙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보냈던 나의 유년시절, 나의 어머니는 담요 한 장 미련해 주지 못하셨지만, 어머니는 슬퍼하지 않으셨고, 우리는 춥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머니께서는 털 헝겊이나 방 수천, 부대자루 등, 구두나 닦을 수 있는 조각천들을 모아서, 그것으로 훌륭한 누비이불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누비이불’을 건설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누비이불과 같다.
교회를 이루는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다르다.
교회 안에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다.
우리의 왼손 오른손, 왼발 오른발이 다르다.
우리의 왼쪽눈 오른쪽눈, 왼쪽귀 오른쪽귀가 다르다.
모양이 다르고 크기도 다르다.
서로 다른 제체가 모여서, 한 몸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에 다양한 은사를 가진 지체를 주셨다.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나님이 세우신 지체가 똑같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히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순서를 정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질서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고 너도 나도 첫째인 사도가 되려고 하고, 둘째인 선지자가 되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몸의 모든 지체가 눈이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고, 서로 입이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좀 괜찮다 싶으면, 신학을 권했다.
요즘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나는 신학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말리고 봤다.
말렸는데도 가겠다고 하면, 좋은 주의 종 되라며 축복해서 보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좋은 평신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시대는 훌륭한 목회자보다 훌륭한 평신도가 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몸에 머리는 하나면 충분하다.
몸에 머리가 그리스도 한 분이면 족하다.
교회 안의 모든 성도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통치아래 있는 지체다.
우리는 각각의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유익하게 하고, 건강하게 세워나가야 할 소중한 지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