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05:우리는 건축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고전 3:10-23)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8-12-09 00:00
조회
729
고린도전서 강해 05
우리는 건축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고전 3:10-23)
2018. 12. 9.

프롤로그

-성서주일에는 이런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8세기 영국 웨일즈 서해안은 험난한 지형과 좋지 않은 기후조건으로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 몹시 고단했다.
그곳에 메리 존스(Mary Jones)라는 18세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매주일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녀는 이웃 마을에 사는 이반스 부인을 찾아가서 잠시 성경을 빌려보곤 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돈을 모아서 자기 성경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돈을 모으기 시작한지 6년 만에 성경 한권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을 모아 30㎞가 넘는 먼 길을 단숨에 달려가 당시 성경을 보급하던 찰스 목사님을 찾았다.
그런데 그녀는 찰스 목사님으로부터 더 이상 판매할 성경이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그녀는 절망감에 울음을 터뜨렸고,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찰스 목사님은 자신의 성경을 그녀에게 주었다.

-이후 성경을 갖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이 소녀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보급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드디어 1804년 3월 7일 영국성서공회가 탄생하였고, 이것이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9년도에 처음으로 성서주일예배를 드렸다.
이미 100년이 넘도록 성서주일을 지키며,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경을 보다 널리 보급하는 일에 힘쓰고 있는 셈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건축자로 부름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어떤 건축자로 부름을 받았는가?
무엇을 짓는 건축자로 부름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집을 짓는 건축자이다.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지혜는 세상의 지혜와는 구별된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건축이 된다.
건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똑똑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다.

-만약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숨이 막힐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가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을 행복한교회라고 짓기도 했다.

-그럼 어떤 교회가 행복한 교회일까?
교회가 무엇으로 행복해질까?
교회에 무엇이 있어야 행복해질까?
교인 수가 많으면 교회가 행복해질까?
재정이 풍족해지면 교회가 행복해질까?
건물이 잘 지어지면 교회가 행복해질까?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면 교회가 행복해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교회가 행복해진다.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교회라면, 행복할 수밖에 없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간증이 풍성한 교회라면, 어떤 교회 부럽지 않은 행복한 교회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당대 최고의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차세대 주자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게 하나님을 위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자기 같은 죄인 중의 괴수를 불러서 이방인의 사도로 써주신 것에 대해 감격하여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 밑바탕에 하나님의 은혜가 깔려 있었다.

-그는 고린도전서 뒷부분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린 생애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할 일을 터 닦는 것이라고 한다.
건축에서 터를 닦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터는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다.
건축을 했는데 터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면 건축 잘못 한 것이다.
터는 묻히는 것이다.
표도 나지 않게 묻혀야 한다.
묻힌 터 위에 세워진 것이 드러나야 한다.

-건축자로서 이왕 자기가 한 일이, 표도 나지 않게 묻히는 것보다, 드러나 돋보이는 게 기분 좋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잘 지어졌다“고 한 마디씩 한다.
그런데 묻힌 일을 했으면,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일한 표시가 안 나냐” 한다.
그러니까 바울이 자신은 터 닦는 것에 만족했다면,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 집중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사람의 시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하지 않는다.
서로 협력하고자 한다.

-터를 닦는 사람이 있으면, 그 위에 세우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아볼로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구일 수도 있다.
꼭 아볼로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누구여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위에 세울 것인가를 조심하는 것이다.
아무리 터를 잘 닦아둬도, 기둥을 잘못 세우거나 벽을 잘못 세우면 건축이 잘못 되고 만다.

-바울은 하나님의 집의 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터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 되신다. 변치 않으시는 구원의 반석
신실하시고 진실하신 주
주님 같은 반석은 없도다

-하나님의 집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그냥 건축물이다.
일반 건축물은 돈만 많이 들이면, 얼마든지 잘 지을 수 있다.
설계와 건축과 감리에 돈을 많이 쓴 만큼, 잘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건축물과 하나님의 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집이 그런 건축물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게 하나님의 집일 수 있는 것은, 그 집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럼 터만 확실하면, 아무 재료로 지어도 상관없는가?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절대로 그렇지 않다.
무엇으로 세우느냐도 중요하다.
터 위에 세우는 재료 역시 아주 중요하다.
그 이유는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공적을 테스트하는 날이 틀림없이 오기 때문이다.

-그럼 그 공적을 테스트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불 시험을 거치는 것이다.
불로 그 사람의 공적을 테스트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 시험을 잘 통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온다.
어떻게 같은 터 위에 세운 집인데, 집이 이렇게 다를까 하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세운 공적을 가지고 보상을 받는다고 했다.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보상엔 기준이 분명하다.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보상이다.
그 공적이 불에 타면 해를 받는다.
여기서 받는 해는 저주가 아니다.
멸망이 아니다.
부끄러움에 가깝다.
그 사람이 구원을 받기는 한다.
그런데 달랑 구원만 받는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선물은 그냥 주는 것이다.
잘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 그냥 주는 것이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선물은 그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

-굳이 조건이라고 한다면, 예수 믿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나 보상은 또 다른 문제다.
다른 사람은 구원을 선물로 받고 상급까지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 불타지 않는 공적 때문이다.
그 사람의 공적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믿음상을, 어떤 사람은 소망상을, 어떤 사람은 사랑상을 받는다.

-그런데 공적이 불타버린 사람은 해를 받는다.
그 상태를 구원을 받기는 했는데 불 가운데서 받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밤에 집에서 불이 났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던지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
‘아 살았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세상에... 겨우 속옷만 걸치고 있지 않는가 ㅠㅠ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만 쳐다보고 있는 거 같다.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다.

-우리가 평생 예수 믿고, 그 날 그런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는 그런 구원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부끄러운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예수를 엉망으로 믿는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이 땅에서 교회 다닐 때는 큰 차이 안 난다.
예수 잘 믿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은 다르다.
그날은 후회해도 소용없다.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날이 마지막인 이유는,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영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얼마나 살게 하실지 모르겠지만, 후회 남지 않게 믿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기억하자.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달리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령 때문이다.
성령님이 언제부터 우리 안에 계시기 시작했는가?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우리 의식을 지배한 것은 샤머니즘이었다.
악한 영이, 불교의 옷을 입었다가, 유교의 옷을 입었다가, 옷만 바꿔 입고 우리 안에서 의식과 영혼을 지배해왔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영접한 순간, 우리 안에 성령님이 들어오셨다.
그 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던 악한 영이 떠나가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우리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더 이상 섬겨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줄 필요가 없다.
더 이상 그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들은 우리를 단념하지 않았다.
우리를 다시 자기들의 수하에 놓으려고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우리 믿음이 약해지고 은혜가 떨어지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를 쉬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겁낼 필요가 없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그들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가 성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반면에 악한 영은 더러운 영이다. 막 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악한 영은 더러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악한 영도 자기를 가장하기도 한다. 고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자기를 가장하고 찾아오기에 속을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늘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

-우리가 성령님을 무시하고, 악한 영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혼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인한 것이지, 그분의 감정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겠다는 언약을 맺는 것이다.

-구약 시대 언약을 맺을 때 어떤 의식을 행했는가?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가, 짐승을 잡아서 반으로 쪼개놓고 그 사이로 지나간다.
만일 어느 한 사람이 언약을 깨면, 이 짐승처럼 돼도 된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취미 생활이 아니다.
예수 믿는 것은 생명을 거는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그분에게 거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3: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누구도 예수 믿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필요한 지혜가 있을 수 있다.
그 지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 지혜는 우리에게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런데 이 세상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판단한다.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를 판단한다.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판단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어리석은 자가 되라는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이 지혜를 포기하고, 어리석은 자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사실은 그게 진짜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 지혜를 포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드릴 수가 없다.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3: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이 세상 지혜를 고집부리면,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
자기 꾀에 빠지면 인생의 미로에 갇히게 된다.
미로란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이다.
분명히 그 길 같다.
그런데 계속 가보면 막혀 있다.
더 이상 갈 수 없어 되돌아 나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지혜를 구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혜자를 통해 말씀하셨다.잠언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분명히 자기가 보기에는 옳은 길로 보인다.
그래서 다른 사람까지 끌고 간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사망이 기다리고 있다.
일명 헛똑똑이라고 할 수 있다.

-공병호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이다.
청바지 브랜드 가운데,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디젤’ 브랜드가 있다.
빈티지풍 청바지의 원조인데, 창업자 렌조 로소 회장의 이야기다.

-렌조 회장은 고등학교 때 빈티지 청바지를 만들었다.
집 마당의 시멘트 바닥에 청바지를 문질러, 오래 입은 듯 부들부들하고 말랑말랑하게 했다.
그리고 그걸 청바지 납품 업자들에게 보여줬다.
대다수의 청바지 업자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그들로서는 새 청바지도 아니고, 수년 입어서 너덜거리는 것 같은 청바지를 누가 살까 싶었던 거다.
그들은 ‘새 것’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렌조 로소 회장은 달랐다.
청바지 마니아들 중에는, 중고 빈티지 청바지를 사려고 큰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아무런 선입견이 없던, 그는 빈티니 청바지를 젊은이들에게 비싸게 팔 수 있었다.

-1978년 세워진 디젤은, 이제 6,000명의 직원과 400여 개의 해외 매장, 연간 2조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세계적인 회사가 됐다.

-렌조 로소 회장의 모토는 ‘바보가 돼라(Be Stupid)'다.
그는 바보의 어원은 원래 깜짝 놀라게 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한 거라고 한다.
평범하고 관습적인 일상에 균열을 내는 도전을 하는 사람, 그를 가리켜 ‘바보’라 칭한 거다.

-우리 말에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은 많지만, 그 아는 것에 사로잡혀 진부한 생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그 ‘헛똑똑이’의 반대말이, 바로 렌조 로소 회장이 말하는 ‘바보’다.
다시 말해 ‘똑똑한 바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은 헛똑똑이다.
자기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드리는 사람은 바보다.

-헛똑똑이를 국어사전에서 ‘겉으로는 아는 것이 많아 보이나 정작 알아야 하는 것은 모르거나,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풀이했다.

-인터넷을 통해 다른 예수에 대해 많이 안다.
숱한 정보를 통해 교회의 잘못에 대해 많이 안다.
그런 정보 믿고 예수 안 믿다가 끝내 지옥 가면 ‘헛똑똑이 인생’이다.

-몇 천 년 전에 4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을,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은 바보다.
그 말씀 믿고 예수 믿다가, 천국 가면 그래도 바보일까?
바보는 바보인데 똑똑한 바보이다.

-링컨 대통령의 별명이 바보다.
그가 얼마나 바보였는가를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는, 일리노이 주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그 당시 일리노이 주에는 스탠턴이란 매우 유명한 변호사가 있었다.
스탠턴에 비하면 링컨은 아직 애송이 변호사에 불과했다.
그런데 링컨이 한 사건을 맡아서 법정에 나가보니, 마침 스탠턴도 거기에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링컨과 스탠턴이 함께 그 사건을 맡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법정에 앉아 있던 스탠턴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저 따위 시골 변호사와 어떻게 같이 일을 한단 말이오?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소!”
그는 그렇게 소리치고 나가버렸다.

-그 후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가 남북전쟁을 이끄는 동안, 매우 혼란스럽고 긴박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 국방장관이 물러나서, 그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그래서 중요한 그 자리에 누굴 앉힐 것인가를 놓고 많이 고심했다.
그 때 링컨이 딱 잘라서 말했다.
“스탠턴 씨를 임명하시오!”

-이만하면 링컨은 별명만 바보가 아님이 증명되었다.
그런데 암살범의 총탄에 쓰러진 링컨에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이 스탠턴이다.
그 스탠턴이 링컨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서 완벽한 통치를 보여준 통치자가 여기에 누워 있구나!”
예전에 그는 링컨을 ‘불쌍한 바보’라고 놀렸던 적이 있다.
그 링컨이 실상은 불쌍한 바보가 아닌 똑똑한 바보였던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곧이곧대로 믿고, 순수하게 따르는 똑똑한 바보가 되길 바란다.

-끝으로 바울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기가 따르는 사람이라고, 특정인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교회 안에 분파가 생기고, 괜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사역자가 교회에 속했지, 교회가 사역자에게 생긴 것이 아니다.
사역자가 교회보다 클 수 없고, 교회 위에 사역자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자로 부름 받은 여러분,
주님의 몸된 한꿈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