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모세) 강해 32(끝) :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신 34: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06-11 12:5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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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인물(모세) 강해 32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신 34:1-12)
2023. 6. 11.
프롤로그
-오늘로서 하나님과 동행한 모세의 여정이 끝난다.
↳지금까지 구약인물 강해로, 노아 10강, 아브라함 25강, 이삭 4강, 야곱 25강, 요셉 19강을 했다.
↳모세는 32강으로 가장 길게 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모세는 난세의 영웅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 역사의 등불을 밝힌 지도자이다.
↳그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부름 받을 때 80세였으니까, 어두운 역사에 빛을 비추기까지 80년이나 걸린 것이다.
↳그리고 40년 동안 이스라엘 역사의 큰 별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그 역시 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별세의 부르심을, 그라고 거역할 수 없었다.
↳모세 입장에서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여 안타깝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달려갈 길과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마친 영광스러운 죽음이다.
-인물 강해를 할 때는, 늘 그 인물의 마지막 시간이 온다.
↳덕분에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유익을 얻는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마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메멘토 모리는, 너무 늦기 전에 미리 행동에 옮김으로써, 제한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라는 일종의 경구이기도 하다.
-“카르피 디엠(Carpe Diem)”이란 말이 있다.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이사르에게, 옥타비아누스라는 조카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죽은 뒤 황제의 자리를, 조카인 옥타비아누스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심한 반대에 부딪쳤다.
↳옥타비아누스는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로마를 다스리게 되었다.
↳로마 제국은 계속 전쟁을 했고, 백성들은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명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 때 시인 호라티우스는 자신의 시집에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을 썼다.
↳카르페 디엠의 뜻은 “오늘을 즐겨라”이다.
-“오늘을 즐겨라!”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오늘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오늘을 즐기되, 죽음의 날이 온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진지하되 유쾌할 줄 알고, 엄숙하되 자유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게 균형 잡힌 삶이다.
-균형을 잃으면 힘을 못 쓴다.
↳균형을 잃으면, 맥없이 넘어지게 된다.
↳하나밖에 모를 때, 균형을 잃게 된다.
↳자기밖에 모를 때, 균형을 잃게 된다.
↳알면 알수록, 중심을 낮추게 된다.
↳중심이 낮을수록, 균형을 잃지 않는다.
↳어쩌다 실수로 넘어져도, 금방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보고 경험한 게, 다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자기가 뭘 좀 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뭘 모르는 사람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아는 게 아닐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
-특히 우리는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한다.
↳말씀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에 뭐가 묻었으면, 자기 얼굴을 닦아야지, 자기 얼굴을 비추는 거울을 탓하면 안 된다.
↳모세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모세가 느보 산에 올랐다.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두산백과에 따르면, 느보산은 3개의 중요한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니바(Niba)로 높이 835m이고, 두 번째 높은 봉우리는 높이 790m 무카야트(Mukhayyat),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는 높이 710m의 시야가(Siyagha)이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는 비스가 봉우리는, 이 산의 세 번째 봉우리인 시야가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실제로 시야가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느보산에 도착하면, 모세 기념 교회가 있다.
↳모세 기념 교회로 들어가기 전에 전망대가 있는데, 그 전망대에서 사해, 헤브론, 베들레헴, 예루살렘, 여리고가 보인다.
↳그곳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불과 46Km밖에 안 될 정도로 가깝다
-모세가 왜 느보 산에 올랐는가?
신32: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하나님이 올라가라고 해서 갔다.
↳모세가 그 산에서 죽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그림이 보다 구체화된 것이다.
-모세는 전에 그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있다.
신3: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분명하게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고 구했다.
↳안 죽고 싶다고 기도한 것이 아니다.
↳더 오래 살고 싶다고 기도한 것이 아니다.
↳가나안 땅을 단 한 번만이라도 밟아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추상같았다.
신3: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모세의 중보기도에 뜻을 돌이키실 때와는 달리, 진노하시면서 단호하게 답하셨다.
↳기도에 대해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말씀이다.
↳중보기도는 어떤 것도 구할 수 있지만, 개인기도는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이 중보기도는 좋아하시고, 개인기도는 싫어하신다’ 뭐 이런 뜻은 아니다.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는 들어주시고, 자신을 위한 개인기도는 거부하신다’ 이런 뜻도 아니다.
-중보기도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개인기도도 신앙이 어릴 때는 마찬가지다.
↳초보 신앙일 때는, 자기중심적인 기도, 이기적인 기도도 할 수 있다.
↳심지어 말씀에 어긋나는 기도를 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믿음이 자랐으면, 기도 수준도 함께 자라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가 있다.
-지난 연말에 주일 오후 축구팀인 위드FC 총회가 있었다.
↳한OO 목사님이 자신이 간식을 챙겨오겠다며, 총회 때 간식을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
↳총회를 경기 2쿼터와 3쿼터 사이에 간단하게 하기로 했기에, 약간의 간식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심지어 총회가 끝났는데도, 그 목사님이 도착을 하지 않았다.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그 목사님이 박스를 메고 웃으면서 걸어왔다.
↳그러자 다들 “아니 왜 이제 와요” 하면서도, 눈은 그 어께 위의 박스를 쳐다봤다.
-그 때 그 목사님이 웃으며 던진 한 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내 손을 보지 말고 나를 보라고.”
-다들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내 안에는 그 목사님의 말이 이렇게 들렸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기도는 열심히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데 열심이다.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것에 눈이 가 있다.
-그럼 우리는 기도는 어떤가?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데 열심인가?
↳혹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데 열심 아닌가?
-모세의 기도를 하나님이 진노하신 데는, 하나님이 충분히 알아듣도록 말씀하셨는데도,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이다.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이 왜 모르시겠는가?
↳모세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심정도 안타깝다.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던 모세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눈으로 보게만 하고, 요단을 건너지는 못하게 하셨다.
-그런데 그래도 자기는 들어가고 싶다고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당신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말씀 앞에서의 자세가,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모세만은 그러면 안 되었다.
↳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괜히 기도 한 번 잘못했다가, 하나님께 혼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느보산으로 올라갔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뤄졌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압에 있는 느보산에서 죽었다.
-모세의 죽음은 예고된 죽음이다.
↳시한은 물론이고, 장소까지 한정되었다.
↳어쩌면 이런 죽음은 드물다.
-시한이 예고된 죽음이 있다.
↳암 같은 질병은, 몇 년 내지 몇 개월이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럼 투병도 해야 하지만,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한다.
↳이게 모순 같아 보이지만, 겸해야 한다.
↳투병한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니다.
↳병이 죽음으로 가는 관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중병에 걸렸을 때, 치유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목숨을 건 기도를 해야 한다.
↳그렇게 했는데도 병에 차도가 없다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시한을 예상하는 죽음은 그나마 낫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 있다.
↳사고사 같은 죽음이다.
↳아침에 웃으며 나갔던 사람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경우이다.
↳이런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준비 없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과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는 안 죽을 거 같은 착각에 빠져 산다.
↳사고도 중병도 죽음도,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무병장수 만수무강만 생각할 게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어야 한다.
↳이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적인 삶이다.
-내가 오늘 당장이라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데, 그렇게 가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관속에 있는 사람도, 어제까지는 자신이 오늘 관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규선의 노래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어요”의 가사 일부이다.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어요
애써 서두르지 않아도 말이에요
누구도 인생의 남은 날을 몰라요
눈이 부시도록 웃어요
…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어요
그리 실감 나진 않아도 말이에요
누구도 인생의 남은 날을 몰라요
눈이 부실만큼 누려요
살아있음을요
…
우리는 인생의 많은 것을 놓쳐요
영원히 살듯이 착각도 하고요
인생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눈이 부시도록 살아요
너의 오늘을요
-가사 내용이 의미심장하여, 그 가수가 궁금하여 검색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가톨릭신자였다.
↳그녀에게는 특별한 체험이 있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입학식을 며칠 앞둔 17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여는 개두수술을 받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런 실감나는 가사를 쓸 수 있지 않았겠나 싶다.
-심규선의 노랫말이 맞다.
↳우리는 언젠가는 틀림없이 죽으니, 애써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죽음이 실감나진 않지만,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는다.
↳누구도 인생의 남은 날을 모른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심규선의 노래 전곡을 들어보면, 죽음이 노래 주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눈이 부시도록 웃어요.”
↳“눈이 부실만큼 누려요 살아 있음을요.”
↳“눈이 부시도록 살아요 너의 오늘을요.”
↳우리가 언젠가 틀림없이 죽게 될테니, 지금 잘 살자는데 노래의 강조점이 있다.
-그렇다. 지금 잘 살아야 한다.
↳지금 잘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훗날 후회하게 된다.
-모세의 죽음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모세 죽음의 특별한 점이 무엇인가? ↳120살까지 장수했다는 데 있지 않다.
↳죽는 시한과 장소까지 알았다는 데 있지 않다.
↳자기가 죽을 산으로 스스로 올라갔다는 데 있지 않다.
↳그가 죽을 때까지도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가 죽었을 때 애곡하는 기간이 30일이나 됐다는 데 있지 않다.
-그의 특별한 점은, 그가 잘 살았다는 데 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다는 데 있다.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엎드림의 사람으로 살았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모세의 위대한 죽음은, 그의 위대한 삶에서 나온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
↳우리는 잘 죽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
↳얼마나 잘 살았느냐에 따라, 죽음의 질이 결정된다.
-사람이 기억해 주는 죽음도 훌륭한 죽음이다.
↳죽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죽음이 있다.
↳그건 하나님이 기억해 주는 죽음이다.
↳하나님이 기억해 주는 죽음은, 훌륭함을 넘어 위대한 죽음이다.
↳하나님이 꼭 순교자만 기억하실 거라고 보지 않는다.
↳선교사만 기억하시거나, 목회자만 기억하실 거라고 보지 않는다.
↳주의 복음과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한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기억해 주실 줄 믿는다.
-모든 사람이 순교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목회자로 헌신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선교사로 파송받을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일을 하면서 전도자로 살 수 있다.
↳누구나 일터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교지로 여기고, 일터선교사로 살 수는 있다.
↳큰 이름이 나지는 않을 수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억해 주신다.
↳우리에게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찬양의 노랫말이다.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불타는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 하는 아름다운 그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아무리 사람들이 추모하고 기억해줘도, 하나님이 기억해주지 못하는 죽음이라면, 우리는 헛 믿고 헛 산 것이다.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보다 억울한 일도 없다.
↳내 맘대로, 내 하고 싶은 거 다하며 산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날 주님께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는 말을 들었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삶을 살았던 결과로 보인다.
-이왕 믿을 거라면, 잘 믿어야 한다.
↳안 믿을 거면 몰라도, 믿을 거라면 진짜 잘 믿어야 한다.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인가?
↳그날 이런 말 들을 수 있게 믿어야 한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하나님은 모세가 죽기 전 후계자를 세우게 하셨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민수기 27장을 보면, 모세가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알 수 있다.
민27:15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후계자를 세워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도 계획이 있으셨을 거다.
↳하나님이 아무 계획도 없이, 모세를 느보산으로 부르실 리가 없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그렇담 모세를 대신할 지도자가 필요하다.
↳모세가 살아 있을 때 후계자를 세워야 혼란이 없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다.
↳죽는 순간까지도, 이스라엘 자손을 걱정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셨다.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셨다.
-신속한 기도 응답이 있었다.
민27: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여호수아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일찍부터 모세의 부하였고 젊은 수종자였다.
↳하나님이 오래 전 모세의 이후를 계획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모세를 따라다니며,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게 하셨다.
↳가장 지근거리에서 모세를 보좌하며, 리더십 자질을 차근차근 기르게 하셨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라고 하신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내가 예전에 점찍어 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한테 모세의 리더십을 잘 인계하여, 그를 제사장과 온 회중 앞에 세워,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하셨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다.
↳그러자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해졌다.
↳이스라엘 자손도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다.
↳리더십이 순조롭게 이양되었다.
-리더십이 이양될 때, 종종 잡음이 일어나곤 한다.
↳리더십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히 리더 한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예 교통정리를 해주신 것이다.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여정은 계속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리더는 바뀌어도, 하나님의 계획이 흔들릴 수 없었다.
-모세는 분명 남다른 사람이다.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이스라엘에 그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한 때는 한사코 거절하는 모세를 향해, 하나님이 집착하기도 하셨다.
↳모세가 “나 말고 다른 사람 찾아 보세요” 할 때, 하나님은 “나는 너하고 일하고 싶다.” “내 계획에는 너밖에 없다.”며 모세를 붙드셨다.
-이제 그런 모세를 놓아주시려고 한다.
↳모세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모세가 달려야 할 구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 다음 구간은 여호수아가 이어 달려야 한다.
↳모세가 여호수아 구간까지 달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구간이 있다.
↳우리는 자기가 맡은 구간을 잘 달려야 한다.
↳사람마다 남아 있는 구간 거리가 다를 수 있다.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 구간이 얼마가 남았든지, 자기 구간은 자기가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내 구간을 대신 달려줄 수 없다.
↳내 구간은 내가 책임지고 달려가야 한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서, 주님께서 예비하신 면류관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