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8: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1-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4-26 12:22
조회
918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8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1-6)
2020. 4. 26.


프롤로그

-오늘 말씀은 “이 후에”로 시작하고 있다.
↳“이 후에”를 공동번역성서는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로 번역했다.
↳이런 일들이라고 할 때 어떤 일을 말하는가?
↳14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브람이 참전하여 승리한 일이다.
↳아브람은 자기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318명으로, 대규모 연합군을 기습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승리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오히려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자신의 신분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에게 노출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날이 밝자, 간밤에 불의의 기습을 당했던 연합군은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곧 습격자들의 병력에 대해 조사했을 것이다.
↳사막 생활에 익숙한 연합군은, 자기를 친 군인들이 정규군이 아닌 소수의 게릴라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전열을 재정비하여, 아브람의 집으로 쳐들어오면, 아브람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아브람에게는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다시 물리칠 만한 군사력이 안 되었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에는, 그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과 많은 물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주위에 아내와 종들밖에 없었다.
↳이때 아브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소돔 왕의 선물을 받고, 그와 동맹이라도 맺어놓았더라면, 반격을 받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텐데.’
↳‘전리품은 하나님이 보상으로 내게 주신 것인데, 그때 공연히 그걸 거절한 것은 아닐까?’
↳‘롯이 잡혀갔더라도 참전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괜히 참견하여 화를 자초한 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나를 구해주겠는가?’
↳아브람은 전쟁에서 이기고도, 불안감과 허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브람의 심기가 이렇게 불편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의 타이밍은 정확하시다.
↳아브람의 문제가 무엇이라는 것을 환히 들여다보시고, 가장 필요한 때에 나타나셔서, 가장 적절한 말씀을 해 주신다.

-아브람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이 무엇인가?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신구약성서에 자주 나온다.
↳그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말이 신기하게도 366회 나온다.
↳우리 인간은 매일 두려워하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일에도 두려워하는 연약한 인생임을 아신다.

-믿음의 사람도 두려움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믿음 생활이 항상 승승장구하는 것만은 아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늘 의기양양한 것도 아니다.
↳우리들 역시 아브람처럼 세상이 두렵기도 하고, 환경의 변화에 대해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다른 것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애썼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한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왜 아브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원래 불신앙과 불순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신앙과 불순종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하와가 선악과 열매를 따 먹은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신앙이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낳았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람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다.
창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두 가지가 무엇인가?
↳땅과 자손이다.

-아브람이 이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창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봐야 하는가? 불신했다고 봐야 하는가?
↳믿었다고 봐야 한다.
↳믿었으니까 제단을 쌓았을 것 아닌가?

-그러나 10년을 기다려도, 아브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기미가 없고, 약간의 조짐조차 없었다.
↳아브람은 마음속에 ‘혹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혹시 하나님이 나한테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닐까’ 하는 불신앙이 고개를 들었다.
↳아브람은 갈등을 겪기 시작했고, 의심에 정복을 당해갔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브람에게 두려움이 심해진 이유는, 그의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이라면, 󰡐언젠가는 낳겠지!󰡑라고 기대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나이는 물론이고, 아내도 나이가 들어 여성의 생리가 끊어져서,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그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게 된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이 환상 중에 말씀하신 것이다.
↳환상 중에 말씀하시는 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실까?
↳성경으로 말씀하신다.
↳예배 시간에 설교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도 말씀하신다.
↳경건한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심지어 자연만물을 통해서 얼마든지 말씀하실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시간은 공적 예배시간이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하다.
↳예배를 잘 드리지 않고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브람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붙잡아야 한다.
↳사막을 걷는 것 같은 현실에서도, 절벽에 부딪히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를 바란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서고 싶을 때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어떤 근거로 아브람한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먼저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방패가 되시기 때문이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상급이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지 문자적으로만 볼 때, 본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나는 네 방패요”
↳이게 아브람의 현재 상태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아브람은 보복공격에 대해 지금 떨고 있다.
↳아브람 역시 불안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때 아브람이 멜기세덱의 말을 기억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창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하나님께서는 멜기세덱을 통해, 아브람의 승전이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작품임을 밝히셨다.
↳그러나 그 말씀이 지금 아브람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말씀은 예방 효과가 있다.
↳어떤 말씀은 지금 나의 삶과 동떨어진 말씀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다보니 흘려듣곤 한다.
↳그러나 당장 처방전 말씀도 있지만, 예방 차원의 말씀이 있다.
↳이점에 있어서 아브람도 실패한 사람이다.
↳멜기세덱이 말씀을 전할 때, 아브람이 심리적으로 흥분된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 상태가, 이처럼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두려워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나는 네 방패요”
↳하나님은 처음에만 이기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나 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주시고, 시작과 끝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시는 분이다.

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일을 만들며 그것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시작하시는 분임과 동시에 이루시는 분이시다.
↳언제까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앞에 방패이신 하나님이 계신다.
↳인생의 문제들을 나 혼자서 처리하려고 하니까, 힘에 부치고 두려운 생각이 들고, 끝내 실의에 빠지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 아브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방패였다는 것을 깜박 잊었을 때, 자기의 힘으로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물리친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보복을 위해 반격해 올 때, 자기 힘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고 있다.
“나는 네 방패요”

-하나님이 우리 방패가 되어주시면...
↳우리는 망할 수 없다.
↳우리는 패배할 수 없다.
↳우리는 잘 될 수밖에 없다.

-아브람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은 목숨을 걸고 싸운 후에 소돔 왕이 주는 전리품을 거절했다.
↳믿음이 있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늘의 신령한 복에 관심이 있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브람은 이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아브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아브람이 하나님 편에 서고 말씀을 따를 때마다, 당장 돌아오는 것이 손해였다.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준 것은, 꽤 큰 손실이다.
↳소돔 왕에게 전리품을 받지 않은 것도, 그에 못지않았다.

-우리도 주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면, 당장 손해 볼 수 있다.
↳장부를 속일 수 있는가?
↳세금을 떼먹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맘몬과 너무 쉽게 타협한다.
↳세상 가치관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덜 벌어도 정상적으로 벌어야 한다.
잠 16:8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매상을 적게 올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잠 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사업을 해도 파산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기 때문이다.
↳저울추를 속이지 않아도 가난뱅이가 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다는 말에, 아브람이 전적으로 수긍했는가?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이, 격려를 받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이, 안도감을 느꼈는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에게 확실한 불평거리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아브람에게 있어 가장 답답한 문제는, 자기 재산을 상속할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다.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땅의 티끌처럼은 고사하고, 한 명도 없다.
↳또 그가 밟는 모든 땅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다.

-아브람의 입장에서 보면, 불평을 제기할 만한 사유 아닌가?
↳2절의 아브람의 말속에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빨리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이 스며있다.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는 포기의 의미가 담겨 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울화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아브람은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말로만 그렇게 하지 마세요. 너무 뜸들이지 말고 속 시원하게 주세요.’
↳사실 아브람의 입장에서 급하게도 되었다.
↳아내의 나이가 이미 80을 넘기고, 해산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져 가는데,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으니, 그가 답답해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 들으라는 듯, 아브람이 한 마디 해댄다.
2하...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은 양자라도 데려오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릴 수 없다는, 어떻게 보면 최후의 통첩인 셈이다.
↳한쪽에서는 급해 죽겠는데, 다른 쪽에서는 느긋해 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관계가, 지금 딱 그런 상황이다.
↳아브람은 이제 자기 몸에서 아들을 보는 것은 틀렸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든 후사 문제를 정리하고, 이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아브람은 이 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고, 지쳐있는 상태이다.

-우리도 시간만 가고 일은 결판이 나지 않을 때, 그런 맘이 들지 않는가?
↳‘뭐 어떻게 되든 그냥 결판이 났으면 좋겠다.’
↳꼭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일단 그 복잡한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 맘이 드는 것이다.

-아브람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무슨 말인가?
↳결국 아브람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했다는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뭐라고 항변하는가?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믿음 없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한다.

-당시에는 자기 집에서 낳은 종들의 자식을 양자로 삼아, 재산을 상속시키는 관습이 있었다.
↳아브람은 하나님 앞에서 대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 아들을 안 주신다면 나한테도 생각이 있습니다.’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면 되죠 뭐.’

-이건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아브람은 엘리에셀이라는 비상용 카드를 갖고, 하나님 앞에 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을 원하신다.
↳‘저는 하나님 외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기도하다가 안 되면, 슬그머니 엘리에셀 카드를 꺼내는 사람에게 응답하실 만큼, 하나님이 그리 한가하신 분이 아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종종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어떤가?
↳아브람의 경우처럼,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뜻을 바꿔서라도, 내 뜻을 이뤄달라고 하지 않는가?
↳이건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범할 수 있는, 공통적인 잘못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토해낸다.
사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얼마만큼 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하늘만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아브람의 항변에 하나님이 뭐라 하시는가?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아브람의 말을 일축하고, 자신의 뜻을 밝히신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아브람의 생각이 전혀 다르지 않는가?
↳보다 분명히 말씀하신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양자 엘리에셀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거라신다.
↳아무리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고, 하나님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어떤 일이 있어도 폐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브람에게 자식에 대한 약속을 거듭 확신시켜 주신다.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그냥 자손이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자” 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확신하지 못하는 아브람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정 그렇다면 너 알아서 하든지...’ 할 것 같은데, 역시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다.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바람을 쐬러 가신다.
↳그리고는 눈을 들어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게 하셨다.
↳아직도 기분이 덜 풀린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말을 거신다.
↳“아브람아.”
↳“예, 하나님.”
↳“너, 저 하늘의 뭇별들을 셀 수 있나 보라.”
↳“에이, 하나님도...제가 그걸 어떻게 셉니까?”
↳“그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에겐 아들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없었다.
↳그 문제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별을 바라보게 하신 것이다.

-대개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갇혀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문제에 붙들려 생각이 갇혀버린다.
↳이 때 아브람에게 유일한 해결책이 무엇인가?
↳문제에서 눈을 떼어,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내 문제의 크기는,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내가 하나님을 시시한 분으로 알고 있다면, 내 문제는 커 보인다.
↳반대로 하나님을 위대한 분으로 알고 있다면, 내 문제는 작아 보인다.

-우리가 날마다 바라봐야 할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피 묻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이작 왓츠는 이렇게 고백했다.
찬송가 151장 후렴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아브람이 바라본 것은 하늘의 뭇별이었지만, 실제로 그가 믿은 것은 하나님이었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렇담 이방인인 우리를 믿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얼마나 포기하지 않으셨을까?
↳우리가 믿음을 가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내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다함없는 긍휼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6절 말씀은 신약에서 꽤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말씀이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의로 여기시고”에 있다.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가?

-의인이 아니지만 의인으로 인정하신다는 뜻이다.
↳아브람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다.
↳그 역시 진노 이외에 아무 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붙들었을 때에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다.

-의인이라고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개인의 상태와 상관없이 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람은 의인이 될 만한 자질이 부족했지만, 법적으로 그를 의롭다고 선고해 주신 것이다.

-둘 다 은혜를 말한다.
↳칭의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말한다.

-6절을 이렇게 다시 읽어보겠다.
( 류 현 철 )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 류 현 철 )의 의로 여기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