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29:사람이 할 것과 하나님이 하실 것이 있습니다.(고전 16:1-12)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8-11 00:00
조회
1197



고린도전서 강해 29
사람이 할 것과 하나님이 하실 것이 있습니다.(고전 16:1-12)
2019. 8. 11.

프롤로그

-이덕주가 쓴 책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하겠다.
지금은 시골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성미는, 뿌리 깊은 토착적 신앙 전통이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조선의 부인들은 밥을 지을 때마다 가족의 건강과 복을 빌면서, 쌀을 한 줌씩 따로 떼어 집안을 지켜 준다는 ‘성주’에게 바쳤다.
그렇게 성별한 쌀을 모아 두었다가, 고사를 지낼 때 떡쌀로 사용했다.
그 쌀을 보관하는 항아리를 신주단지라 하여,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우상 섬기는 일이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집안 식구를 위한 기도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부인들은 항아리에 십자가를 그린 후에 여전히 쌀을 떼며, 가족의 건강을 주님께 빌었다.
신주단지는 ‘주 단지’(Lord’s post)로 바뀌었고, 우상에게 바치던 쌀은 전도자의 ‘하늘 양식’이 되었다.

-개성에서 시작된 성미 제도는, 선교사를 통해 다른 지역에도 소개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부인들의 성미로, 전도자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자립 교회’ 전통을 수립했다.
가난했지만 넉넉하게 연보할 줄 아는 초대 교인들로 인해, 일찍이 자립 교회를 이뤘던 것이다.
자발적으로 전도하는 날연보와 십일조회, 주님께 기도하며 바친 쌀로 전도자의 생활을 책임지던 성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는 짧은 기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다.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을 위한 연보 문제를 다루고 있다.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연보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진 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약한 이웃에게 주는 자기희생이다
연보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주인이 아닌 종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를 섬기는 것이다.
연보는 자신을 위한 삶에서 떠나 자기희생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다

-헌금과 연보는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다르다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세대 외래교수인 이상윤 목사가 이에 대한 설명해주는데, 그에 의하면 헌금과 연보는 다르다고 말한다.

-헌금은 ‘고르반’과 ‘도라’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 ‘예물’ ‘헌물’이라는 뜻이다.
‘도라’는 ‘예물’ 혹은 ‘헌금’이라는 말로 우리말 성경에 번역돼 있다.
고르반과 도라 두 단어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의미한다.

-연보는 ‘로기아’ ‘하플로테스’ ‘유로기아’ 같은 단어가 사용된다.
‘로기아’는 ‘모금’이란 뜻이다.
‘하플로테스’는 ‘관대’라는 뜻이다.
‘유로기아’는 ‘축복’이란 뜻이다.
연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개념보다는, 연보의 한자 의미인 ‘내어놓아 남을 돕는다’라는 뜻에 가깝다.
실제로 바울이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성도를 돕는 일과 교회 간의 물질적 도움을 주는 ‘코이노니아’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연보를 굳이 오늘날의 헌금 종류에 비유한다면, 구제헌금이나 선교헌금에 해당할 거 같다.
더 나아가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연합을 나타낸다.
예루살렘교회는 모교회인데, 흉년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예루살렘교회는 교회 내에 빈민층이 많았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구제가 사도들의 주된 임무였을 정도였다.
이방교회는 예루살렘교회로부터 복음을 받았다.
복음을 받은 이방교회는, 어떻든 예루살렘교회에 빚진 셈이다.
그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성도를 위한 연보를 한 것이다.

-갈라디아교회가 언제 예루살렘교회를 도왔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도왔던 모양이다.
바울이 부탁해서 도운 듯 하고, 고린도교회에도 그 부탁을 한 것이다.
그만큼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이 컸던 모양이다.
사실 연보에 한 교회만 참여하면 부담이 크다.
하지만 여러 교회가 십시일반으로 참여하면 아무래도 부담이 덜 하다.

-요즘에는 모금 운동을 한다.
언론을 통해서, 어려움에 처한 교회나 성도의 사정이 전해지면, 모금 운동을 하곤 한다.
그러면 모금에 개인이 참여하기도 하고, 교회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우리교회도 어려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다 참여할 수 없지만, 그래도 포항 근교는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지역도 섬겨야 하지만, 교회의 어려움은 더더욱 모른 체 하면 안 된다.

-우리교회는 선교헌금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회 규모에 비해, 우리교회만큼 선교헌금에 힘쓰는 교회는 흔치 않다.
그러다보니 구제와 지역 섬김까지는, 힘이 부치는 게 사실이다.
그 점을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재정의 축복이 더해지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했다.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여기서 “매주 첫날”은 주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 안식일에도 모이고, 안식 후 첫날에도 모였다.
그러다 점차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의 날이라고 해서, 매주 첫날에 모여 예배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연보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연보를 언제 했는가? 매주 첫 날이다.
주일 예배 때 모여서 연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연보는 누가 참여했는가? 각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참여했다.
연보의 기준이 무엇인가? 수입에 따라서 했다.
각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참여했다.
무엇보다 연보는 준비했다가 해야 한다.

-오늘날도 특히 절기 헌금 같은 것은,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몇 십 만원이 돈도 아닐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니다.
맥추감사헌금은 사례비의 십일조를 드리니, 그래도 부담이 덜하다.
추수감사헌금은 ‘하루 천원 감사의 정신’을 살려서 하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천원씩 적립하지는 못하지만, 천원짜리 지폐가 생길 때마다 저금통에 모은다.
좋은 일이 생기면 오천원짜리도 넣고, 어쩌다 만원짜리도 넣는다.
그래서 작년과 재작년에 36만 5천원을 넘겨, 40만원씩 추수감사헌금을 했다.

-내가 그렇게 한 데는, 예전에 기아대책기구에서 사랑의 밥그릇 저금통을 나눠주고 채워오게 한데서 힌트를 얻었다.
우리 교회 모든 교우들이, 매일 천원 감사 운동에 참여하면 좋겠다.
천원씩 저금통에 모을 때,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무엇보다 추수감사주일이 돌아와도, 헌금 걱정이 안 돼서 좋다.
오히려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헌금을 하고 나서 부끄럽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금을 하고 나서, ‘나는 최선을 다해 헌금했다’는 뿌듯함이 있어야 한다.

-준비해야 하기는, 연보든 헌금이든 마찬가지다.
절기 헌금 뿐 아니라, 매주일 하는 헌금도 준비가 필요하다.
토요일에 준비를 해두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 주정헌금을 하려고 하는데, 만원짜리가 없어서 5만원짜리를 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좀 바꿔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는 일이 있다.
예배를 불과 몇 십분 앞두고 말이다.
준비 부족에 해당한다.
미리 준비해서 성경에 넣어두었다가,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바로 헌금함에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바울은 연보를 은혜라고 표현했다.3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연보는 “은혜” 다른 말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연보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이다.
연보도 헌금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 흉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가난한 성도를 돕는 일에 사용된다.

-구제는 내가 한다.
자칫 내가 구제했다는 ‘자기의’를 내세울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구제를 할 때, 어떻게 하라고 했는가?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런데 이게 실제로 가능하겠는가?
구제를 자기가 직접 하지 않으면 가능하다.
자기는 구제헌금을 하고, 교회가 구제비를 전달해주면 된다.
구제헌금을 하고,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우리가 살면서 주로 은혜를 받고 산다.
그런데 은혜를 주는 길이 있다.
그게 바로 연보 곧 구제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연보인 것이다.
구제는 ‘적선’하는 것이 아니다.
구제는 ‘하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자기의’가 들어갈 수 없다.
가진 자로서 교만한 마음이 섞일 수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보화를 하늘에 쌓으라고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구제이다. 시편 41: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마 6: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보다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도 있다.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어리석은 부자가 있을 수 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바로 어리석은 부자이다.
주님이 구제에 대한 말씀을,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 이어서 하셨다.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도 좋다.
돈이 많으면 할 일이 너무 많을 거 같다.
실제로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많지 않은가.
부자에는 두 종류의 부자가 있다.
돈을 소유하는 부자가 있고, 돈을 사용하는 부자가 있다.
돈을 소유하는 부자는 돈을 벌어서 자기를 위해 쌓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고, 돈을 사용하는 부자는 돈을 벌어서 타인을 위해 쓰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돈을 사용하는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보화를 하늘에 쌓는 지혜로운 부자가 다 되기를 바란다.

-원베네딕트 선교사는 <공부해서 남주는 인생이 되자>는 책에서 이렇게 외친다.
세상 사람들은 "공부해서 남 주냐?"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전하신다.
'공부해서 남 주는 인생이 되라.'
세상 사람들은 돈 벌어서 자기 자신에게 쓰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돈 벌어서 남 주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연보 요청을 했지만, 상황이 불확실했다.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바울은 연보를 들고 예루살렘에 갈지 못 갈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거 같다.
거둔 연보가 얼마 되지 않으면, 그걸 들고 가는 게 좀 그렇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이다.
연보를 부탁했지만, 얼마나 참여하려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갈만한 사정이 되면 가겠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갔다.
고린도교회가 연보한 금액이 상당히 많아서였다.
고린도교회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교회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에, 물질적인 헌신을 해준 것이다.
그들은 분파로 인해 마음이 갈라져 있는 상태이긴 하다.
베드로파가 뭐 하자고 하면, 바울파는 그걸 왜 하냐고 한다.
아볼로파가 이게 좋겠다고 하면, 그리스도파는 저게 좋겠다고 한다.

-오죽 했으면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을까?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바울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웠을 것이다.
고린도교회 때문에 누구보다 속앓이를 했던 바울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싶다.

-바울은 앞으로의 자기 동선을 밝히고 있다.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현재 위치는 에베소이다.
에베소에서 고린도를 들렀다가,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마게도냐를 방문하고, 그 이후 고린도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을 변경하여, 마게도냐를 먼저 방문한 후에, 고린도교회에 들르려고 한다.
배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야하는데, 겨울에 항해하는 게 힘드니까, 고린도에서 겨울을 지낼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바울이 고린도에서 석 달을 머물며, 겨울을 지낸다.
활동적인 바울이 겨울에 뭐했겠는가?
이 때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된다.
로마서, 바울의 대표작 아닌가?
말이 편지지, 한 편의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이 고린도에서 겨울을 지낼 수 있다고 한데는, 생필품을 공급해달라는 부탁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교회 내 게스트 하우스가 있기도 하지만, 그 옛날에는 개인 집에서 모셨을 것이다.
어느 한 집에 머무를 수도 있고, 몇 집에 돌아가면서 머무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교회가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본래는 교회가 모셔야 하는데, 개인이 모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동지방에서는, 집에 찾아온 손님을 어떻게든 잘 모시려고 한다.
자기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걸 축복이라고 여겼고, 자기 집에 손님이 끊기는 것을 저주로 여겼다.

-조선 시대 선조 때의 허준 이야기다.
그가 아직 명의가 되기 전, 의학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서울 구리개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하루는 남루하게 입은 노인 한분이 찾아와, 약국 한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사람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안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비좁은 약국인데도, 허준은 조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 노인은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도무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허준은 그 노인을 정성껏 대접을 했다.

-그 때 산모가 쓰러져 죽게 되었다며, 급한 사람이 찾아왔다.
허준은 도저히 약방문을 만들 수 없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노인이, 곽향정기산을 지어주라고 했다.
그대로 했더니, 그 환자가 깨끗이 나았다.
그 노인은 당대의 명의로, 자기의 의술을 전수시킬 사람을 찾던 중이었는데, 허준을 만났던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물론 사람을 잘 대해주다가, 손해 볼 수도 있다.
자기를 잘 대해준 사람을 등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다.
그런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은혜를 아는 사람도 소수지만, 배은망덕하는 사람도 소수다.
배은망덕하는 소수를 보고, 차라리 개한테 잘해주는 게 낫지, 사람은 당최 믿을 게 못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희망을 걸고 계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로 가게 되면, 잠시 들렀다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고린도교회에 들러서, 잠시 안부 인사나 하고 가는 정도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고린도교회가 워낙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그 이유였다.
바울은 고린도에 얼마 동안 머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자기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유연한 사고를 했다.

-사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잘 되던가...?
잘 안 될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럼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단 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세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우리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지만, 계획대로 될 수도 있어서다.
또 계획대로 돼서 좋을 수도 있지만, 계획대로 안 돼서 좋을 수도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다.

-바울은 워낙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사람이다.
일단 저질러놓고 나중에 생각하는 베드로와는 상반되는 사람이다.
그런 바울조차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란 단서를 달고 있다.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이런 유연한 사고와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곤란한 대답을 우선 모면할 속셈으로, “며칠 기도해 보겠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며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순종하라는 마음을 주시네요.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순종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거의 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죄송하지만 못하겠습니다” 하더라.
그럼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순종하지 말라고 하던가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오지만 꿀꺽 삼킨다.
이 일로 관계를 깰 거까지는 없어서다.
하지만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내가 이렇게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주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그럼 해야 할까? 안 해야 할까?
왜? 고집 부려봤자니까.
고집 부려가며 해봤자, 안 하니만 못하니까.
하나님이 쫓아다니면서 막으시는데, 잘될 턱이 있는가?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이 말은 아무나 하는 말이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자기 삶을 주께 맡긴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자기 생각과 뜻을 고집하는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자기 삶을 하나님이 간섭하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바울은 지금 에베소에 머물고 있다.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그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고 한 이유가 있다.
그건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회는 항상 위기를 동반한다.
복음의 문은 활짝 열렸는데 대적자도 많았다.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대적자도 많이 생겼다.
이건 전도가 영적 전쟁임을 말해주고 있다.
전도가 영적 비즈니스가 아닌, 영적 전쟁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에베소에서 바울을 대적하는 자가 누구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은장색 데메드리오로 인한 소동이 아닌가 싶다.
바울의 전도로 인해 자기 영업에 방해가 되자, 에베소 사람들을 충동하여 온 시내에 소란을 일으켰다.
바울은 그 일로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갈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내고자 한다.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그 때 디모데와 함께 한 사람이, 고린도 성의 재무 담당인 에라스도이다.
바울은 자기의 고린도 방문에 앞서, 디모데를 먼저 보내 사전 정지 작업을 하게 한 것이다.
디모데가 다른 교회들을 들러 고린도에 갔을 때, 바울이 보낸 편지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본래는 바울이 방문하려고 했지만 계획을 바꿔서 편지를 보냈고, 편지는 해상으로 왔기에, 디모데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를 직접 방문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대신 디모데를 잘 영접해 주기를 부탁했다.
디모데는 이 때 젊은 목회자였고, 경험도 일천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또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디모데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디모데를 보내놓고, 바울은 한 동안 잠 못 이룬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볼로 이야기를 꺼낸다.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아볼로는 바울에 이어 고린도교회 2대 목회자였다.
그런데 지금 에베소에 와 있다.
고린도교회에서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는 아볼로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아볼로를 다시 가라고 권했지만,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다고 했다.
아직 마음의 정리가 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떠맡겨도 안 되고, 하나님이 하셔야 할 것을 우리가 하겠다고 나서도 안 된다.
우리가 우리 할 일을 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