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16: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명입니다.(고전 9:15-2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3-24 00:00
조회
1159



고린도전서 강해 16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명입니다.(고전 9:15-27)
2019. 3. 24.

프롤로그

-마광수 교수가 쓴 <개미>라는 꽁트에 실린 글이다.
어느 남자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개미를 길렀다.
그리고 길들이기 시작했다.
개미를 춤을 추게 하는 훈련에 너무 집착해, 7여년을 고생하는 동안, 정신병에 걸렸다고 병원까지 끌려갈 정도였다.
드디어 개미로 하여금 춤추게 하는데 성공했다.

-신문에 내려고 신문사로 가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식당에 들어갔다.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에게 자랑하려고, 성냥갑에 넣어온 개미를 내놓았다.
종업원을 불러서 "이 개미 좀 보시오." 했더니,
종업원이 와서 "아저씨 미안해요" 하고 손톱으로 확 문질러버렸다.
식탁에 개미가 올라온 것을 보고, 얼른 치워버린 것이다.
7년 공들인 것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인간의 자랑이란 게, 이처럼 부질없는 것이다.
상대와의 비교우위를 자랑하지만, 더 우위에 있는 상대를 만나면 자랑이 비참으로 바뀐다.

-성경은 어떤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것을 자랑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렘 9: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얼마나 자랑하기 좋아하는 존재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말씀이다.
‘지혜’, ‘용맹’, ‘부’...
모든 사람이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들은 인생에서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그렇게들 소유하고 싶어 하는데, 자기가 남들보다 많이 가졌으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정 자랑하고 싶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예수 믿는 것을 자랑하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이다.
나라는 질그릇 속에 담긴 보화인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 자랑을 포기할 수 없어 한다.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어떤 자랑인가?
권리를 포기한 것에 대한 자랑이다.
일꾼의 권리에 대한 말을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사실 권리 주장이 쉽지 권리 포기는 어렵다.
그런데 바울은 그걸 해냈다.
그 자랑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바울의 자존심 같은 거였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밥그릇을 지키는 것보다 필요할 때가 있다.
자존심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살면서 때로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야 할 때가 있다.

-목회자는 자존심 하나로 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목회자가 가진 거라곤, 어쩌면 자존심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목회자만 그럴까?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존심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존심,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심, 내가 천국 백성이라는 자존심, 내가 한꿈교회 성도라는 자존심...그 자존심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이다.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쉽게 작은 것에 무너지지 않는다.
자존심이 있어야 자기를 지켜낼 수 있다.

-자랑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던 바울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한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서 정당한 권리주장을 할 수 있음에도, 기꺼이 권리포기를 했던 것은 자랑했지만, 복음 전하는 것 자체는 자랑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새번역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공동번역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참 정직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사역자로서 누구보다 정직했다.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이로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게 어디 보통 사역자가 이룰 수 있는 삶인가?
하지만 바울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그건 내가 부득불 하는 일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한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것 안 했다가는 나한테 화가 임할 수 있다.’

-당시 바울의 위상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정직하게 고백한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사역자가 가장 회복해야 할 게 정직이다.
능력은 그 다음이다.
은사는 그 다음이다.

-다윗이 절규했던 기도제목이 있다.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건 시대를 초월해 모든 사역자가 부르짖어야 할 기도제목이다.
난외주에 보면, ‘정직한’은 ‘견고한’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정직함이 곧 견고함이다.
사역자의 정직함이 사역의 견고함을 보장한다.
내가 견고하게 설 수 있느냐는, 내가 얼마나 정직하냐에 달려 있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끝까지 견고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정직함에 있었음을 기억하라.

-바울은 자신의 일을 사명으로 여겼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복음 전하는 일을 자의로 한 것이 아니고, 자진해서 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순전히 받은 사명 때문에 했고, 이방인의 사도라는 직무 때문에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어떤 일에 사명의식을 갖는다는 게 중요하다.
이 일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일은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삶이 의미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일이 없는 것이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는 삶이야말로,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이다.

-중국 명나라의 유학자요 정치가인 왕양명이, 이런 말을 남겼다.
살아보니 인생에 어려운 일이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어려운 것은 고생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먹을 것 없고 입을 것이 없어 고생스러울 때가 힘들더라고 했다.
끼니 걱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수밖에 없다.

-둘째로 어려운 것은 남에게 냉대 받는 것이라고 했다.
집안에서든 직장에서든 친구들에게서든, 어디에서든지 환영받지 못하고 냉대 받는 데서 오는 인간관계가 그렇게 힘들더라는 것이다.
인간관계만큼 힘든 것도 없다.

-셋째로 어려운 것은 고민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자기 마음속에 깊은 고민이 있는데 해결은 안 되고 그 고민과 치열하게 싸울 때 너무 힘들더라고 했다.
자기 고뇌와의 싸움보다 더 큰 싸움은 없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어려움보다 더 힘든 것이 있는데, 그것이 한가로운 것이라고 했다.

-왕양명의 통찰이 옳다고 본다.
사람이 무위도식하는 것보다 힘든 게 없다.
놀고먹는 것도 한 달 두 달 넘어가면 고통이다.
만약 회사에서 월급은 주면서 일은 못하게 한다면, 오래 견디기 힘들 것이다.

-사명의식을 갖고 생업을 대하면 그게 축복이 된다.
생업을 축복이라고 여기기 바란다.
사명의식을 갖고 교회 사역을 대하면 그게 축복이 된다.
교회 사역을 축복이라고 여기기 바란다.

-바울은 권리포기에 대해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바울은 자기에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한 것에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한 것에 자부심이 묻어나 있다.
어쩔 수 없어서 권리포기를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잘한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주스를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다.
그런 나에게 좋아하는 주스가 있다.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는 주스라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그 주스에 담긴 감동적인 스토리 때문이다.

-미국의 한 청년이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기를 지망했다.
수속절차를 거의 끝내고 마지막으로 출발을 확인하려고 뉴욕에 갔는데, 거기서 그만 선교사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불합격된 것이다.
이유는 그의 부인이 아프리카의 기후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체질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청년은 부인과 함께 고향의 집으로 돌아왔다.
주님을 위하여 헌신의 각오를 했는데 이루지 못하니, 적잖이 실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결심했다.
내가 선교사로 가지는 못하지만, 돈을 열심히 벌어서 선교사의 일을 돕겠다고 결심했다.

-그 청년의 아버지가 치과 의사였는데, 부업으로 교회의 성찬식에 사용하는 포도즙을 만드는 사업을 했다.
청년은 자기 아버지의 그 사업을 인계받았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돈을 쓰겠다는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열심히 사업을 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업을 축복해 주셨다.
그는 하나님 앞에 결심한 대로, 사업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돈을 정성껏 헌금하였다.
그는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인도되는 것을 기뻐하며, 거액의 선교비를 하나님께 바쳤다.
그 청년의 이름이 바로 웰치(Welch)였고, 그가 만든 포도즙이 그 유명한 Welch 포도주스이다.

-권리포기 없이는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망하기 어렵다.
웰치는 그리스도 앞에서 권리포기를 선언한 사람이다.
사정상 실제로 선교사로 떠나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권리포기만은 지켜졌다.
그걸 하나님이 보신 것이다.
그리고 그를 보내는 선교사로 지금껏 사용하고 계신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동족의 구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그토록 치열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방 땅에 거주하는 동족을 우선으로 전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를 믿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방인 전도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어찌 보면 자유인 같았고, 어찌 보면 종 같았다.
어떨 때는 자유인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고, 어떨 때는 종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그렇게 살았던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다.

-전도자는 어느 하나만 고집하면 안 될 거 같다.
특히 선교사는 임기응변의 능력이 뛰어나야 할 거 같다.
전도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전도 방법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복음 전도의 대상에 따라서, 자유인으로 다가가야 할 사람이 있고, 종으로 다가가야 할 사람이 있다.
그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선교사 체질일 수 있다.

-바울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어떻게 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리고 있다.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율법 없는 자들도 구별했다.
바울이 둘을 구별한 의도가 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였다.
유대인에게는 그에 맞게, 이방인에게는 그에 맞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게,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그에 맞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일명 맞춤형 전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포기할 수 없었다.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도 율법 없는 이방인도 구원의 대상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렇게 몸부림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전도자는 배우 같아야 한다.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을 하는 직업인이 배우 아닌가?
우리는 전도를 위해서라면 배우라도 되어야 한다.
일명 우리는 천국 배우인 셈이다.
주연이 아니어도 괜찮다.
조연이어도 괜찮다.
몇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단역이면 어떤가?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엑스트라면 또 어떤가?

-예수를 너무 점잖게 믿으려고 해서 문제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전도를, 신사적으로 해서 가능하겠는가?
체면 다 차리고 전도하려고 하는 것은, 외과 의사가 피 흘리지 않고 수술하려는 거와 같다.
전도는 기본적으로 영적 전투다.
마귀에게 속한 자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마귀의 종노릇 하던 자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점잖게 복음을 전해서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바울이 왜 그토록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까?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바울 자신이 복음에 참여하고자 해서였다.
복음에 참여하는 것은 그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바울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행했다.
바울은 복음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을 알았다.
사실 우리 몸은 주께서 값을 주고 사셨다.
더 이상 우리는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한 자에게 상을 주신다.
바울은 일찍이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 예수의 복음을 위해 함께 달려가는 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위해서 달려가지 않는다.
더 나아가 끝까지 잘 달려가서 상을 받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상을 받는 사람의 특징은 목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할지 방황하는 사람은 상 받기가 어렵다.
시간은 방황하다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넓은 사막을 정처 없이 방황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물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알고, 걱정과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 빨리 오아시스를 찾아야 하는데....’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다.
그러다가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이젠 살았다!” 하고 소리쳤다.

-발자국만 따라가면 분명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 발자국을 따라갔다.
하지만 아무리 발자국을 따라가도 끝이 없고, 해는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야 그는 자기가 자기 발자국을 되밟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졌을 때, 하늘에 북극성이 반짝였다.
그는 북극성을 보고서야, 제대로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바라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자기 감(느낌)을 의지하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라봐야 한다.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갈 수 있다.
물론 사명의 길에 들어섰다고 끝까지 가지는 건 아니다.
사명의 길에 들어선 것은 출발선에 선 것에 지나지 않는다.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그래서 결승선까지 통과해야 승리자가 된다.

-교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리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
믿음으로 달려가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의 푯대이신 예수님을 못 만나서 그렇다.

-무조건 달려가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방향성이 분명해야 한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어떤 목표물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런 사람만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다.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한 사람에게는 절제가 필요하다.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는 자들도 절제한다.
하물며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한다면, 더 절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절제가 말처럼 쉽지 않다.
다이어트가 왜 어려운가?
절제가 힘들어서이다.
절제란 Self Control 곧 자기 조절 능력이다.
절제는 자기 스스로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다.
외부의 코칭만으로는 승리자의 관을 얻기 힘들다.
반드시 스스로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윈스턴 처칠이 어느 날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를 방송하기 위해, 영국 BBC 방송국으로 가야 했다.
그가 택시를 잡아타고 “BBC 방송국으로 갑시다!”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운전기사가 승차거부를 하는 것이다.
까닭인즉슨 이제 한 시간 뒤에 위대한 정치가 처칠 경이 중요한 방송을 할 터인데, 자기가 BBC 방송국까지 가다 보면, 그 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처칠은 속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택시비를 더블로 내밀며, “그러지 말고 좀 갑시다!” 하고 짐짓 애원했다.
그러자 택시 기사가 “에라 모르겠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만, “타세요, 처칠인지 개떡인지 내가 알 게 뭐야. 돈이나 벌어야지.”

-“처칠인지 개떡인지...” 하는 사람은, 벌써 자기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절제가 무너지고 말았지 않은가?
어쩌면 절제는 자존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선 절제 훈련부터 해야 한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사명자로 살 수 없는 법이다.

-때로는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해야 한다.
사명자가 자신이 죄의 성향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깨어 있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옛 본성이 나오고 만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킬 수밖에 없다.

-사명자의 삶을 잘 노래한 남궁송옥의 찬양을 소개하며 말씀을 맺겠다.



주를 위해 살아가는 것 쉽지만은 않아요

나의 욕심, 부와 명예 내려놓아야 하죠



하지만 걱정하지마요 나를 드리는 순간

아버지의 크신 손이 강하게 붙드시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주를 위해 살았죠

죽으면 죽으리라 아버지의 기쁨의 눈물 보며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모두 마치고 아버지 향한 믿음을 지켰으니



이젠 나를 위한 그 면류관 주실 나의 아버지

내게만 아닌 주를 사모한 모든 자에게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