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제자 강해 09: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막3:13-19)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08-20 12:19
조회
125


열두제자 강해 0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막3:13-19)
2023. 8. 20.


프롤로그

-지금까지 여덟 명의 제자를 살펴보았다.
↳열두 제자는 세 그룹의 나뉜다.
↳세 그룹을 편의상 A팀 B팀 C팀으로 표현해왔다.
↳A팀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이다.
↳B팀은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이다.
↳C팀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가룟 유다이다.
↳각 팀의 팀장은 맨 앞에 나오는 제자이다.
↳A팀의 팀장은 베드로이고, B팀의 팀장은 빌립이고, C팀의 팀장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다.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팀을 나누는 기준이 예수님과의 친밀도라고 본다.
↳그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팀장으로 세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정보는 성경에 별로 나오지 않는다.
↳분명히 그도 말했을 것이다.
↳그도 질문했을 것이다.
↳그도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 한 마디도 성경에는 남아있지 않다.

-그 다음에 나오는 다대오나 가나나인 시몬도 마찬가지다.
↳팀장이 조용해서였는지, 팀원들도 그런 편이었다.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성경에서의 야고보는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야고보가 히브리어 야곱의 헬라어 음역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야곱이 열두 지파의 실질적 뿌리 아닌가?

-야고보란 이름을 가진 몇 사람만 살펴보겠다.

-우선 예수님의 제자 중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있다.
↳그는 요한의 형이기도 하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핵심 제자 3인방에 속한다.
↳성격도 대단해서, 예수님이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여주시기도 하셨다.

-그는 성격 때문이었는지, 제자들 중에 첫 번째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행12: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대신 동생 요한이, 형 야고보가 살아야 할 몫까지 오래 살았다.
↳일반적으로 제자 야고보 하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를 가리킨다.

-다음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있다.
↳그는 예수님의 혈육이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요7: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어쩌면 예수님의 동생이었기에, 더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야고보를 따로 만나주셨다.
고전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동생 야고보를 특별히 만나주신 것이다.
↳이로 볼 때,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된 시점이, 그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는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
↳놀라운 것은, 그가 열두 제자 못지않은 영향력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영향력 면에서는, 그들보다 더 큰 지도자였다.
↳구원론 문제로 예루살렘교회에서 총회가 열렸을 때, 그가 의장을 맡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자존심 센 바울도, 그의 영향력을 인정할 정도이다.
갈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를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교회의 3대 기둥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야고보를 베드로와 요한보다도, 더 앞서 언급하고 있다.

-이 야고보에게는 특별한 별명이 있다.
↳바로 낙타 무릎이다.
↳그가 얼마나 기도의 삶을 살았는지를 말해주는 별명이다.
↳그는 특히 야고보서를 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아홉 번째 제자이다.
↳마가는 그를 달리 “작은 야고보”라고 부른다.
막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그를 왜 작은 야고보로 불렀는지, 나름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열둘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둘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가 작은 야고보로 불렸을까?
↳큰 야고보로 불릴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가 다른 야고보에 비해, 나이가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교회에도 같은 이름의 권사가 있어, A, B로 구분한다.
↳축구국가대표팀에도 같은 이름이 있어, 큰 정우영 작은 정우영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순수하게 나이이다.
↳그리고 이건 가장 일반적인 구분법이다.

-혹 키로 구분했을 수도 있다.
↳나이로 구분하기 애매한데, 두 사람의 키가 눈에 띨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큰 누구, 작은 누구로 구분할 수 있다.
↳농구나 배구 같이 키가 중요한 종목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영향력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에 비하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영향력이 작은 편이었다.
↳팀장이니까 영향력이 미미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핵심제자 3인방에 속한 야고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세베대는 상당한 재력가였고, 대제사장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니, 아버지의 영향력 면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봐야 한다.

-나이가 적어서 작은 야고보로 불렸든지, 키가 작아서 작은 야고보로 불렸든지, 영향력이 작아서 작은 야고보로 불렸든지,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작은 야고보로 불린 것이지, 작은 제자는 아니었다.
↳그가 작은 야고보로 불린 것이지, 작은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작은 야고보로 불린 것이지, 실제로 작은 야고보인 것은 아니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부르느냐로, 내 가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야, 못난이” 라고 부른다고, 내가 못난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가 ‘나는 못난이야’라고 정의할 때, 진짜 못난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고 있으면, 타인에 의해 자신이 결정지어진다.
↳사실 그보다 불행한 일도 없다.
↳아니, 왜 타인이 나를 결정짓게 한단 말인가?
↳그가 무슨 권한으로, 나를 향해 “너는 이런 존재야” 라고 규정짓는단 말인가?

-우리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답게 살 수 있다.
↳그리고 나답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보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탈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 가면을 쓰고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가면을 벗으면 어색할 수 있다.
↳오랫 동안 탈을 쓰고 살아왔는데, 탈을 벗으면 처음엔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진짜 나다.
↳진짜 나를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남들이 큰 야고보라고 부르든, 작은 야고보라고 부르든, 상관할 게 없다.
↳그냥 야고보일 뿐이다.
↳예수님한테 큰 야고보나 작은 야고보로 부름 받은 게 아니다.
↳그냥 야고보로 부름 받았다.
↳그럼 야고보로 쓰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아니 뭐 또 작은 야고보면 어떤가?
↳반드시 큰 야고보가 돼야 하는가?
↳작게 쓰임 받으면 안 되는가?
↳작은 일에라도 쓰임 받으면 복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가를 확인하시는 주님이다.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을 칭찬하시는 주님이다.

-주님이 왜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셨을까?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사람의 심리를 잘 아시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님은 이런 말씀까지 하셨다.
눅16: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을 자칫 오해할 수 있는데, 공동번역은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 데도 충실하지 못하다면”이라고 했다.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충성된 자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 안에서는 평이 좋은데, 교회 밖에서는 평이 안 좋다?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다.
↳직장에서 일은 성실한데 교회에서 일은 불성실해서도 안 되지만, 그 반대여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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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작은 야고보의 가족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의 아버지는 알패오이다.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알패오를 아버지로 둔 또 다른 제자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막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바로 레위이다.

-그래서 야고보와 레위가 혹 형제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두 사람이 절대로 형제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존 맥아더나 이동원 목사 같은 분들은, 그럴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싣는다.
↳흥미로운 추정이지만,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알패오가 동일인이 아니라면, 마태의 아버지와 야고보의 아버지는 동명이인이다.

-알패오와 글로바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는 게, 더 유익할 거 같다.
요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마태복음과 비교해 보자.
마27: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자리에,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들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럼 알패오와 글로바가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래서 알패오의 별명이 글로바일 거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알패오와 사별을 한 후, 글로바와 재혼했을 가능성도 있다.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는, 같은 사람인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의 어머니는 마리아이다.
막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마27: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눅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아들 야고보만큼이나 어머니 마리아도 흔한 이름이다.
↳대표적으로 주의 모친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이다.
↳주의 모친 마리아나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굳이 소개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는, 일찍이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을 쭉 섬겨왔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현장 목격자였다.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왔던 여인들 중에 한 사람이었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 중 하나였다.

막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작은 야고보에게는 동생이 있었다.
막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동생의 이름은 요세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으로 나온다.
마27: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요세는 열두 제자 안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음이 분명하다.
↳그가 열두 제자 안에 포함되었다면,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이어, 형제 제자로 이름을 올릴 뻔했다.

-요세가 왜 열두 제자로 부름받지 못했을까?
↳그의 모친인 마리아와의 친분을 고려해서라도, 부를 만한데 말이다.
↳부르심은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임을 알 수 없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것에,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기 때문이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도 복이고, 사역을 위한 부르심도 복이고, 안식을 위한 부르심도 복이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
↳사역을 위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직분자로 살아간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또 하나의 부르심이 있다.
↳영원한 안식으로의 부르심이다.
↳그 부르심도 복이기에, 우리가 언제라도 순종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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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다.
↳‘그는 아주 말수가 적은 기도하는 제자였다.’

-말수가 많은 사람이 있다.
↳잠시라도 입을 닫고 있을 수 없어한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궁금하여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다.
↳상대는 궁금하지 않는데, 기어이 알려주고 싶어 한다.
↳옆 사람은 조용히 있고 싶은데, 그런 걸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일행도 함께 탄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말을 쉬지 않는다.
↳호칭이라도 안 쓰면 좋겠는데, 그런 거 가리지 않는다.
↳그럴 때면 적잖이 당황스럽다.
↳난처하여 눈치를 줘도 못 알아챈다.

-말수가 많으면, 당연히 말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다.
↳말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럼 말을 많이 하는 게 잘못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말수가 적은 게 잘못이 아니듯, 말수가 많은 것도 잘못된 게 아니다.
↳말수가 적으면 적은대로 괜찮고, 말수가 많으면 많은대로 괜찮다.
↳다만 말수가 적은 사람한테, 말을 많이 하라고 하면 힘들다.
↳말수가 많은 사람한테, 말을 적게 하라고 하면 역시 힘들다.

-베드로는 말수가 많아서 실수도 잦았다.
↳반면 작은 야고보는 말수가 적어서 말실수는 안 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성경에 기록 한 줄 남아있지 않다.

-그는 말수가 적은 대신, 기도하는 제자였다.
↳말수가 적었기에, 기도하는 제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말을 주고받으며 떠들고 있을 때, 그는 조용히 기도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제자들 사이에서 끼지 못하여, 겉도는 그런 제자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주님이 그에게 팀장을 맡기시지 않았을 거다.

-그는 자기 말을 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는 경청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경청의 사람이, 기도를 잘할 수 있다.
↳기도도 일종의 경청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렸으면, 하나님도 나한테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는 게 맞다.
↳그런데 그냥 내 할 말만 잔뜩 늘어놓고, “아멘” 하고 일어나버린다면, 그건 기도라기보다 독백에 가깝다.

-물론 말수가 많은 사람도, 얼마든지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을 붙들고 말을 많이 하듯, 하나님을 붙들고 더 오래 기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말이 많은 게 큰 문제가 아니다.
↳그냥 본래 말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사람들에게 말을 많이 하여, 속마음을 다 털어놔버렸다.
↳그러면 굳이 답답한 마음이 없다.
↳그러니 하나님을 붙들고, 자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 하소연을 다 들어주고, 자기 신세타령을 밤새 들어주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면, 굳이 하나님께 나와 기도할 필요를 덜 느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자기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붙들고, 자기 속에 겹겹이 쌓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수가 적은 사람이, 기도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핵심제자 3인방처럼, 활동적인 제자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제자만 있으면 안 된다.
↳작은 야고보 같은 제자도 필요하다.
↳예수님이 다 필요해서 부르셨다.
↳단순히 열둘이란 숫자 채우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는, 다양한 성향, 다양한 기질의 제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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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작은 야고보는 시리아에서 전도하다가, 예루살렘 혹은 애굽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그가 어떻게 순교했느냐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그가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톱에 잘려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톱이 작은 야고보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전승된 것을 볼 때, 그가 톱에 잘려 순교 당한 것으로 보인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유명한 제자가 아니다.
↳그는 두드러진 뭔가를 남긴 제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무시해도 될 제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는 엄연히 열두 제자이다.
↳예수님이 자기가 원하여, 직접 부르신 제자이다.
↳특히 그는 세 번째 그룹의 팀장을 맡았던 제자이다.
↳그는 말수가 적은 제자였지만, 대신 기도의 제자였다.
↳무엇보다 그 역시 복음을 전하다가, 다른 제자들처럼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작은 야고보처럼, 말은 적어도 기도하는 제자가 되기 바란다.
↳사람에게 말을 많이 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려고 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