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제자 강해 03:요한(막3:13-19)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07-09 12:38
조회
165


열두제자 강해 03
요한(막3:13-19)
2023. 7. 9.


프롤로그

-예수님은 팀사역을 하셨다.
↳그러나 팀원들의 면면을 보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님께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셨다.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불러서, 열둘을 세우셨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어 전도도 하게 하시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셨다.

막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이 세운 열두 제자의 명단은 이렇다.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베드로와 야고보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보았다.
↳오늘은 요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요한은 베드로와 형 야고보와 함께, 핵심 제자 삼인방에 속한다.
↳제자 중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요한은 히브리어 ‘요하난’을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다.
↳시몬은 히브리어 시므온에서 왔고, 야고보는 야곱에서 온 것과 마찬가지다.
↳요한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 혹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이다.
↳요한은 그의 이름 그대로, 예수님께 특별히 사랑받는 제자였다.

요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19: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의 가족에 대해 정리를 해 보겠다.
① 먼저는 아버지 세베대가 있다.
↳세베대는 평범한 어부가 아니라, 품꾼을 거느린 선주였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알고 지낼 정도로 유력한 사람이다.
② 그리고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살로메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동생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요한은 예수님과 외사촌지간이 된다.
③ 또한 요한에게 형도 있었는데 야고보이다.
④ 요한은 열두 제자 중 막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요한은 일찍이 세례 요한을 따르는 제자였다.
요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기 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
↳기존 바리새파나 사두개파들이 믿는 방식을, 맘에 내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분히 전통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닌, 영적이고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신앙생활을 단순히 동경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된 것이다.

-하루는 스승인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그 길로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리고 안드레가 형인 베드로를 전도했듯이, 요한도 형인 야고보를 전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각자 생업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예수님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의 소개를 받고 예수님을 따라간 거였다.
↳하지만 그들 안에는, 이미 예수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예수님께 받았던 깊은 인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살펴보자.
막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먼저 베드로 안드레 형제가 부르심을 받았고, 이어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부르심을 받았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아버지를 품꾼들과 함께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많이 가진 자가, 버릴 것도 많은 게 당연하다.
↳그 때 선택해야 한다.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처럼 살 건가?
↳아니면 가진 것을 버리고라도, 예수를 따를 것인가?

-결국 신앙이란 자기 안에 가치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소유에 가치를 둘 것인가? 예수에 가치를 둘 것인가?
↳예수님에게 최상의 가치를 두는 것이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덕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 덕 보려고 예수 믿으면, 중도에 탈락할 수 있다.
↳혹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 안드레 형제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그물을 버린 것과, 야고보 요한 형제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아버지와 품꾼을 버린 것 중에, 어떤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상 같다고 봐야 한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나, 야고보와 요한 형제나, 예수님에게 최상의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들이 버린 것의 가치의 크기를 따지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보니, 서로 아는 사이였다.
↳그러니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실 계획을 갖고 계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실수가 없으시다.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그분의 손에 이끌리기만 하면, 그 계획은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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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성격이 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막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형제라고 성격이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쌍둥이 형제인데도, 성격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요한은 형 야고보와 성격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형제를 묶어서,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이셨다.
↳형제는 열정이 과했고, 거기다 목소리도 얼마나 크던지 천둥치는 거 같았다.
↳열둘 중에 한 명만 있어도 힘든데, 형제가 그랬다.
↳거기다 베드로도 한 성질하지... 열심당원 시몬도 있지, 또 가룟 유다도 있지....열두 제자 공동체가 조용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열정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세 사람이, 핵심제자 삼인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열정의 사람을, 자신의 최측근으로 삼으신 것이다.

-냉정한 사람이 있다.
↳또한 냉소적인 사람이 있다.
↳냉정과 냉소는 좀 다르다.
↳냉정은 생각이나 행동이 감정에 죄우되지 않고 침착한 것을 말하고, 냉소는 쌀쌀한 태도로 비웃는 것을 말한다.
↳냉소적인 사람은 하나님께 열정적으로 쓰임받기 어렵다.
↳냉정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 열정적으로 변한 후 쓰임 받을 수는 있다.

-요한은 열정이 과한 면이 있다.
↳야고보 강해할 때 살펴보았듯이
↳눅9장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좀 멀더라도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돌아서들 갔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고자, 먼저 사람들을 보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보인 반응이 이랬다.

눅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쯤 되면 분노조절장애에 해당한다.

-막 9장에 의하면, 요한이 12제자가 아닌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봤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다”고 했다.
↳예수님이 잘했다고 칭찬하실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두의 예상을 깨는 말씀을 하셨다.
막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이 사건으로 볼 때, 요한의 성격은 포용적이지 않았다.
↳하긴 열정적이면서 포용적이기까지 한다...그건 쉽지 않다.
↳열정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

-열렬한 애정을 가지면, 눈이 멀게 된다.
↳열중하는 그것밖에 못 보게 된다.
↳그래서 열정적인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한은 후에 사랑의 사도가 된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화가 된 것이다.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이, 과격하고 편협한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에베소에서 전도를 하다가 붙잡혀 독사 굴에 던져졌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살아나고, 또 끓는 물에도 던져졌지만 죽지 않았다고 한다.
↳말년에는 핍박을 너무 많이 받아 몸이 상해서, 들 것에 뉘어져 제자들에 의해 모셔졌다고 한다.
↳주일이면 간신히 버티고 앉아서, 매주 같은 주제로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설교했다고 한다.
↳좋은 설교지만 똑같은 설교를 듣다보니 좀 그래서, “선생님, 이번 주일에는 새로운 설교를 해 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소자들아, 새로운 설교를 하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고 한다.
↳요한은 사랑을 외치다가, 사랑 가운데서 죽어간, 사랑의 사도였다.

-요한은 제자의 증거로 서로 사랑을 들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제자에겐 제자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제자라는 것을 보여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아니 안 보여줘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그걸 요한은 ‘서로 사랑’이라고 했다.

-제자의 자격 요건을, 여러 가지로 들 수 있다.
↳제자가 갖추어야 할 구비 조건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요한은 가장 결정적인 자격요건으로, 서로 사랑을 들고 있다.
↳다른 게 좀 부족해도, 이것만은 구비해야 할 조건으로, 서로 사랑을 들고 있다.

-엄격하게 적용하면, 서로 사랑이 안 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것이다.
↳서로 사랑에 무관심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거짓말하는 것이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형제는 미워할 수 없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어서다.
↳그래서일까? 마태가 위대한 계명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했다면, 요한은 새계명으로 서로 사랑을 말했다.
↳사실상 위대한 계명과 새계명은 같은 것이다.
↳요한이 죽는 순간까지 사랑을 외치다 간 이유이다.

-보아너게도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레의 아들도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다.
↳단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가능하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가능하다.
↳이게 요한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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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유독 베드로와 짝을 이루어 등장할 때가 많다.
↳열둘 중에, 베드로가 가장 나이가 많고, 요한이 가장 어리다.
↳큰행님과 막내 사이다.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이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었는지 모른다.
↳베드로가 큰형으로서, 막내를 잘 챙겼을 수도 있다.
↳반대로 요한이 막내로서, 큰형을 잘 따랐을 수도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길 원하셨다.
↳그럼 유월절 준비를 해야 한다.
↳유월절 준비를 위해, 예수님이 두 사람을 보내신다.
↳그 때 선발된 두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이다.

눅22: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예수님의 핵심제자로 삼인방을 말하지만, 두 사람만 말한다면 베드로와 요한이다.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이 가장 신뢰하는 제자들이었다.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실 때도, 두 사람을 보내신다.
막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네 개의 복음서 어디에도, 두 제자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예수님은 그 때도 가장 믿을만한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심문 받을 때, 가까이 갔던 두 사람이 있다.
요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베드로와 요한이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시는 순간, 다른 제자들처럼 이들도 도망쳤다.
↳그러다 베드로는 돌아와 예수님을 멀찍이 따랐고, 그 후에 대제사장을 아는 요한과 함께 예수님이 심문 당하는 것을 지켜봤다.

-예수님의 빈무덤을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 때 빈무덤을 확인 차, 부리나케 달려갔던 두 사람이 있다.

요20: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 두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다.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을 치유할 때도, 두 사람이 함께 했다.
행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그 두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그 중 한 곳이 사마리아이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파견한 두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이다.

행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2)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예루살렘 교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걸 요한이 요한복음 21장에서 말해준다.

-이쯤 되면 베드로와 요한은, 영혼의 콤비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가 있어 요한이 있고, 요한이 있어 베드로가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최고의 파트너이자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주의 일을 할 때나, 생업 활동을 할 때나, 취미 생활을 할 때도,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좋다.
↳물론 누구와도 완벽하게 맞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오래 몸을 섞고 살아 온 부부도 삐걱 거리는데,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하고도 안 맞는데, 타인과 완벽하게 맞을 수는 없다.
↳그래서 뜻이 맞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비전이 일치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동역자를 붙여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동역자보다 더 필요한 사람은, 믿음의 동무이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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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후에 에베소에서 사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베소에 가면, 지금도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살던 집이 보전되어 있다.
↳아마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에베소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셨다.
요19: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동생들도 있고, 또 다른 제자들도 있는데, 왜 하필 요한에게 부탁하셨을까?
↳요한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한만큼 신뢰할 말한 제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은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90이 넘도록 살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면서, 에베소에서 복음사역을 했다.

-그러다가 에베소에서 남서쪽으로 90km 떨어진, 밧모섬으로 귀양을 갔다.
↳밧모섬은 로마제국시대에 종교·정치범을 귀양 보냈던 유배지였다고 한다.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18개월 정도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썼다.
↳그가 밧모섬에 유배를 가기 전, 그 역시 다른 제자들처럼 박해도 받았고, 실제로 죽음의 자리에 이르기도 했는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살려주셨다.
↳다른 제자들에 비해, 30년 정도를 더 살았다.
↳그건 그가 요한계시록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다 쓰고는, 트라이안 황제 때 밧모섬에서 에베소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것 보면, 박해자들이 요한을 밧모섬에 유배를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밧모섬으로 보내신 것이다.

-보냄을 받았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나를 이 교회로 보내셨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이 가정으로 보내셨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이 일터로 보내셨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창세기의 요셉처럼 말이다.
창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한은 에베소에서 노쇠한 몸을 이끌고, 죽는 순간까지 말씀 사역에 힘쓰다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예수님 품에 안겼다.
↳요한은 AD 100년 경, 자신을 사랑하시는 자 곁으로 갔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설교,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소자들아 새로운 설교를 하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오늘도 우리 귓가에 맴돌고 있다.

-우리의 남은 날 동안 더 사랑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