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3: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창 17:9-1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6-14 10:04
조회
858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3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창 17:9-14)
2020. 6. 14.


프롤로그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의 극한 상황은 하나님의 기회이다.”

-우리가 절망할 때, 우리가 낙심할 때, 우리가 소망이 없다고 포기할 때...
↳우리의 이런 상황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다.
↳아브람은 칠십 오세에 ,자식과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상당한 해가 지나갔으나, 약속이 이루어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15장 13절 이하에서 살펴본 대로, 땅은 당대보다 훗날 자손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했다.
↳또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아브람에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자식은 문제가 다르다.
↳아브람이 나이가 어느덧 85세가 되었다.
↳약속을 받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렇게도 기다리던 자식이 생기지 않자, 아브람도 아브람이지만, 사라가 더 견디기 어려웠든지, 인간적 방법을 생각해 냈다.
↳남편에게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들여보내, 아들을 보게 한 것이다.

-이건 당시에 흔히 있는 일이었다.
↳관습이나 도덕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건 분명 편법이고 불신앙이었다.
↳결국 이 일로 가정에 심한 불화가 일어나고 말았다.
↳어렵게 수습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씨까지 아주 꺼진 것은 아니었다.
↳나중 21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이삭이 태어났을 때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게 된다.

-아브람은 이스마엘이 자라는 걸 지켜보는 재미에 빠져서, 13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냈다.
↳어느 덧 그의 나이는 99세가 되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 나이가 된 것이다.
↳물론 사라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갈과 잘 지낼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노년을 잘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지칭하셨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가?
↳‘너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내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그러면서 이참에 그의 이름까지 바꿔주셨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말이다.
↳이름을 바꿔주신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언약을 세우신다.

-그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
창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언약의 핵심은 이것이다.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그 후손들의 하나님이 돼주시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 전체를 언약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겠다는 것이다.

-언약에는 조건이 붙는다.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그건 아브라함도 언약을 지키고, 그 후손들도 대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지켜야 할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할례를 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욕이 무엇인줄 아는가?
↳“할례 받지 못한 인간”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된 표시였기 때문이다.
↳‘할례 받지 못한 인간’이란 말의 뜻은,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것이고, ‘너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진 자다’라는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큰 욕이고 저주이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할례는 아브라함의 후손들만 받았던 게 아니다.
↳고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이집트 사회에서도, 할례를 부분적으로 시행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고대 사회에서 할례를 행한 이유는 세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는 위생적인 이유와 부부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사회적인 이유로 성년이 되었다는 것을 공포하는 것이다.
↳셋째는 종교적인 이유로 성기 표피를 자름으로 피를 흘려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그럼 본문에 나오는 할례는 어떤 의미인가?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상징으로서 할례이다.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자기 몸에 지니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다른 백성들과는 구별되었다는 표징을, 몸에 남기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한다.
↳태어난 지 며칠 만에 할례를 행하는가?
↳팔일 만에 한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당연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팔일 만에 할례를 시행한다.

-그럼 예수님도 할례를 받으셨을까?
눅 2: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주님도 유대인인지라 당연히 할례를 받으셨다.

-그런데 왜 몸의 여러 부분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하필 성기의 포피를 베라고 했을까?
↳몸의 다른 부분은 베어낸 후, 많은 고통과 불편을 수반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부작용이나 불편이 최소화되고, 위생을 위해서도 좋은 점이 있다.

-남자의 가장 적나라한 부분,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있는 부분에 언약을 새겨놓음으로써, 자신이 욕정에 사로잡힐 수밖에는 없는 연약한 자임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만일 언약의 표징이 잘 보이는데 있다면, 자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할례 받은 부위를 숨겨두어, 자랑할 수 없게 하셨다.

-또한 언약을 항상 확인하게 하려는 이유도 있다.
↳하루에 기본적으로 몇 차례는 화장실에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언약의 표징으로 삼은 것은, 소변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거 보면, 하나님이 참 재미있으시다.

-어떤 사람한테 할례를 하라고 했는가?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즉 할례의 대상이 누구인가?
↳아무나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할례는 남자에게 행했다.
↳여자들은 할례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럼 여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에서도 제외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당시는 남자들 사이에서만 언약이 이루어졌다.
↳남자들끼리 언약을 맺되, 거기에는 여자들까지 포함되었다.
↳이는 대표성의 원리가 적용되었다고 봐야 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최초로 따먹은 사람은 사실 하와이다.
↳그러나 최초의 범죄를 한 사람을 하와라고 하지 않고, 아담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대표성의 원리다.

-범죄 후 아담과 하와가 나무 뒤에 같이 숨어 있었다.
↳이때 하나님이 “아담아, 하와야” 둘 다 부르시지 않았다.
↳“네가 어디 있느냐?”
↳분명히 아담만 부르셨다.
↳역시 대표성의 원리이다.

-그 외에도 남자들의 경우 할례를 받는 것은, 신체적으로 별문제가 따르지 않지만, 여자들의 경우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일부 아랍권 나라에서는, 여자들에게까지 할례를 시행하다고 한다.
↳여성 할례는 주로 0~14세 여성을 대상으로 하며, 대부분 마취·소독·의료 장비 없이 비위생적 환경에서 행해진다.
↳이로 인해 할례 여성들은 통증, 출혈, 용변 장애 등의 합병증으로 평생 고통을 겪게 되며, 심지어 과다출혈 등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오죽 했으면, 유엔이 매년 2월 6일을 ‘세계 여성 할례 금지의 날’로 정했을까?

-하나님이 할례에서 여자를 제외시킨 것은, 여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여자의 신체적인 특성을 배려하셨기 때문이다.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유대인 남자만 할례를 받은 게 아니라, 이방인도 해당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혈통에게만 허락된 것으로 보면 안 된다.
↳그런데 욕심 많은 유대인들은, 이 놀라운 특권을 이방인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걸 아시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이방 사람에게서 돈을 주고 산 자라도, 함께 살고 있다면 할례를 행하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섞여 사는 이방인들이, 주로 어떤 사람들이겠는가?
↳빚을 갚지 못해서 노예로 잡혀온 사람들이나, 전쟁에서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비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초청하신 것이다.

-우리가 16장에서 살핀 것처럼, 하나님은 사래도 사랑하시지만, 하갈도 사랑하신다.
↳사래가 가진 자요 여주인이요 자유인이라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사래의 편만 든 게 아니다.
↳여주인의 학대를 못 이겨 도망쳐, 광야에서 방황하는 하갈을 보살펴주신 분이다.
↳단순한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복을 선언하시기도 했다.
창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그리고 그 복의 내용도 보면, 아브람에게 주신 것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할례와 더불어 목숨처럼 붙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서도, 이방인에 대해 차별대우하지 않는다.
신 5: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특히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이다.
↳안식일에 쉬는 것도, 주인만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도 쉬어야 한다고 했다.
↳종에게 안식하게 하되 주인과 ‘다르게’가 아니라,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이다.
↳남자 종만 쉬는 것이 아니다.
↳여자 종도 쉬어야 한다.
↳심지어 사람만 쉬는 것이 아니라, 짐승까지 쉬게 하라고 했다.

-당시 종에게 안식이 어디 있는가?
↳안식은커녕 군대에서 말하는 ‘10분간 휴식’도 없다.
↳종은 기계나 마찬가지다.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종들에게도 안식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택하셨지만, 그렇다고 유대인만의 구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신 구원은, 유대인 중심의 편협한 구원이 아니다.
↳아브람을 부르실 때의 약속,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이다.
↳즉 유대인을 통한 이방인까지의 구원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은 하나님의 원수이고, 따라서 없애야 할 존재로 알았다.
↳그래서 적대감을 품었고, 지금도 호전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요나가 그토록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했던 이유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민족적 감정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럼 이방인도 무조건 언약의 대상이 되느냐 이다.
↳결론은 ‘아니다’ 이다.
↳아브람의 집에 사는 조건이 붙는다.

-또 안식일에 안식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즉 유대인 공동체에 같이 사는 조건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를 생각해 보자.
↳그는 집 안에 있는 큰아들도 사랑하고, 집 나가 있는 작은 아들도 사랑한다.
↳집을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보면,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시지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신다는 말이 된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게다.
↳‘그럼 뭐 굳이 애써 믿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까지 한사코 교회 다닐 필요가 있을까?’

-이 점을 생각해 보라.
↳집안의 있는 아들은 아버지의 은혜 아래 있지만, 집밖에 있는 아들은 고생 아래 있다.
↳예수 믿는 자는 보혈의 은총 아래 있지만, 예수를 부인하는 자는 마귀의 속박 아래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고 있지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영적 고아로 살고 있다.

-끝까지 집 밖에 있으면 안 된다.
↳결국은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아버지 안에 거해야 한다.

-바울의 신학을 한 마디로 말하면 ‘엔 크리스토(en cristo)’ 신학이다.
↳바울이 쓴 서신서를 보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런 표현들로 꽉 차 있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이방인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전했지만, 그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 결국 무엇이었다는 말인가?
↳예수 안에 구원이 있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구원이 유효하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상징으로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신다.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2절에서도 보았듯이, 언약은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이기 때문에 언약의 대상이 되고,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기 때문에 언약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언약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할 때 언약의 대상에 포함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민족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무시했었다.
↳그들은 선민이 맞다.
↳선민이기에 성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성민은 사명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
↳그들은 ‘제사장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민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대신 자복해야 한다.
↳그들은 이방민족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아론처럼 대제사장으로서 축복기도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려고 했을 뿐이지, 자신들이 맡은 사명은 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 후에 그들이 한 일이 무엇인가?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않은 자를 구분하는 거였다.

-할례는 언약의 표징이다.
↳할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할례는 언약의 수단에 불과하다.
↳할례 받는 거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있어 세례도 마찬가지다.
↳세례 받기 위하여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은 후에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세례가 너무나 중요하지만, 세례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세례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관계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례를 거부하는 것은 곧 믿음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운동복을 입고 출발선상에 섰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거부하는 것과 같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을 보면, 먼저 세례를 주고, 이어서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제자는 세례를 받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말씀을 배우고 지키고 더 나아가, 자신이 제자를 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할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자.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씀을, 단순히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 뒤 말씀이 중요하다.
↳물론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지만, 백성에서 끊어지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례의 문제가 무엇인가?
↳할례는 난지 팔일 만에 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고백이 없다.
↳태어나서 자라다가 보니까, 자기 몸에 할례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할례는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 불신앙적인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의 할례’란 말이 생겨났다.

-‘마음의 할례’ 하면 우리는 신약성서부터 떠올리겠지만, 이미 구약성서에도 나와 있다.

-먼저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다.
신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할례를 하게 하신 취지가 나온다.
↳할례의 취지가 무엇인가?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할례의 표징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명을 얻는 것이다.

-다음은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다.
렘 9: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할례 받았다고 무조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할례 받았으니까 하고, 마음 턱 놓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들이 망하는 것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고 사는 것은, 몸의 할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할례라는 말은, 우리의 예상대로 신약 성서에도 나온다.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다.
롬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말씀대로 산다면 몸의 할례가 유익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할례 안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몸에 할례의 흔적을 지닌 것만으로, 내가 유대인이니까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짜 할례는 마음에 하라고 했다.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 한 군데 더 확인하겠다.
갈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육신의 할례는 받아도 좋고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할례라는 것이다.
↳마음에 할례 받은 것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다.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그럼 그가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새로 났음을 확인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과거를 정리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 과거에 매여 있다...??
↳그래서 아직 새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옛 사람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