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2020):부활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라(요 20:19-29)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4-12 12:15
조회
554
부활절(2020)
부활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라(요 20:19-29)
2020. 4. 12.


프롤로그

-성경은 부활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부활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한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나 예수님의 부활이나 일방적인 선포인 셈이다.

-오늘 말씀은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생긴 일이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안식 후 첫날 저녁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혹시 유대인들에게 들킬까봐 문들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그들은 주님이 틀림없이 부활하실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들이 보인 반응이 그걸 말해준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예수님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의 말로는, 주님이 부활하셨고 자기가 만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 믿을 수도 그렇다고 안 믿을 수도 없다.
↳그래도 모르니까 문을 단단히 닫고 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때에 주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주님을 만난 제자들에게 그날 저녁은 최고의 저녁이 되었다.

-주님을 만난 날은, 우리 인생에 최고의 날이다.
↳그 이후로는 주님과 함께 하는 모든 날이, 최고의 날인 줄 믿는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자말자 뭐라고 하시는가?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은 주님이 주신 부활의 첫 번째 선물이다.

-부활을 믿지 못하고,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책망 대신 선물을 선사하셨다.
↳평강의 선물이다.
↳평강은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주님은 선물을 주시되, 당신의 필요가 아닌 제자들의 필요에 의해 주셨다.
↳사실 제자들이 겪었던 며칠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불안과 공포의 나날이었다.
↳그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다 사라져버렸다.
↳절망과 박탈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이 오셔서 평강을 선물하신 것이다.
↳그들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 주신 것이다.

-그럼 평강은 이천년 전 제자들에게만 필요한 건가?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더 나아가 온 인류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평강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부활절예배에 참여한 여러분에게 주님이 평강주시기를 바란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여러분에게 평강주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은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비신다.
↳자신의 죽음이 눈앞에 닥쳤는데, 제자들을 걱정하시는 주님이시다.
↳이 말씀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다락방에서 하셨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는 다툼이 일어남으로, 발도 씻지 않고 유월절 만찬에 참석했던 제자들이다.
↳섬김의 정신은 실종되고, 경쟁심과 시기심으로 가득해 있는 제자들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섬김의 가치를 알려주신 후, 평강을 말씀하신 것이다.

-평강은 경쟁심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평강을 시기심의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평강은 섬김의 그릇에만 담겨진다.

-평강은 부활절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부활의 첫 번째 선물인 평강을 받기 바란다.
↳남은 생애를 섬김의 삶으로 평강을 누리며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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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유대들이 무서워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먼저 평강의 선물을 선사하신 주님은, 이어서 또 하나의 선물을 주신다.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명은 주님이 주신 부활의 두 번째 선물이다.

-사명을 선물로 생각하는가? 의무로만 생각하는가?
↳억지로라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물론 그런 점도 없지 않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사명은 맡겨진 임무라고 풀이됐다.
↳내가 원해서 맡은 것이 아니고 나한테 맡겨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는데 나에게 맡겨주셨다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건 특권이요 선물인 것이다.

-사명을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보는 것과, 사명을 선물로 보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의무감으로 하는 것과 감사함으로 하는 것에는 차이가 난다.
↳주님은 아무나에게 당신의 사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주님이 원해서 부르신 자들 곧 제자들에게 주셨다.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이 제자들에게 사명과 함께 주신 약속이 있다.
↳권세이다.
↳제자들을 무조건 보내신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위임하여 보내셨다.

-또한 임마누엘을 약속하셨다.
↳제자들을 대책 없이 보내신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다.

-사명은 부활절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부활의 두 번째 선물인 사명을 각자가 발견하기 바란다.
↳그래서 평생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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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선물은 평강, 사명 외에 또 하나 있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받으라”
↳성령은 주님이 주신 부활의 세 번째 선물이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닌 것도 중요하다.
↳예수님 바로 가까이서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사와 이적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들이 어디 있었는가?
↳멀리 도망치지 않았는가?
↳예수님이 죽어 장사지낸 후 그들이 어디 있었는가?
↳문을 걸어 잠그고 벌벌 떨고 있지 않았는가?

-누구보다 그런 그들을 주님이 잘 아신다.
↳그들이 성령 받지 않으면, 평강도 누리지 못하고, 사명도 감당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음을 잘 아신다.
↳그래서 부활의 세 번째 선물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이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가?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증인이 되는 다른 길은 없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증인이 될 수 있다.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을 기억하는가?
↳문을 닫고 벌벌 떨던 예전의 제자들이 아니었다.
↳종교지도자들의 위협에 굴하지 않았고, 협박해도 소용없었다.
↳심지어 감옥에 가두는 것도, 그들 안에 타오르는 복음의 불을 꺼뜨릴 수 없었다.

-얀 후스(John Huss)라는 종교개혁자가 있었다.
↳그는 중세기 로마 가톨릭교회의 비진리성을 지적하였다가, 그의 제자인 에롬과 함께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 에롬은 죽는 것이 두려워서, 그만 자기의 주장은 헛된 것이며, 스승 후스의 사형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는 스승을 배신한 것이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릴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자신의 스승을 사형시키는 일이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정말 배은망덕한 배신자였다.
↳결국 후스는 비참하게 사형을 당하게 되었고, 에롬은 변절한 덕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에롬은 그 뒤 자신의 마음에 드리워진 어두운 먹구름으로 인해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를 짓누르고 있던 양심의 가책과 번민으로,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진리를 외면하고 스승을 배신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스승의 가르침이 옳았다고 양심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즉각 체포되었고 이번에는 스승보다 더 무서운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화형장의 불 속에서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로다."

-진리의 성령님이 붙들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로다” 하며 화형당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성령은 부활절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부활의 세 번째 선물인 성령을 사모하기 바란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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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다.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도마가 돌아와서 보니까 제자들의 표정이 달랐다.
↳얼마 전까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겁먹은 표정이었는데, 얼굴 표정이 환해진 것이다.

-도마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제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도마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거 같아, ‘정신 차리라’고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가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도마가 제자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을 때, 다른 제자들은 다 참석했다.
↳그런데 도마만 빠졌다.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도마만 참석하지 않았다.
↳제자 공동체와 함께 하지 않고, 개인 플레이를 한 것이다.
↳그 결과 혼자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

-믿음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한다.
↳비록 교회 공동체가 완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하려고 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자성의 소리를 낼 수는 있어도, 공동체를 떠나서는 안 된다.
↳이 땅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뤄 가신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도구로 교회를 사용하고 계신다.
↳교회를 떠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 떠돌이 교인들이 있다.
↳어느 한 교회에 속해있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장로교의 창시자 깔뱅은 교회를 신자의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양육을 강조한 것이다.
↳체계적인 양육과 꾸준한 양육이 있어야 바른 성장이 가능하다.
↳떠돌이 교인은 체계적인 양육과 꾸준한 양육을 받을 수 없기에, 바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자칫 사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사탄은 교회 공동체의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성경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정규적인 자리에 마음대로 빠지면, 언제, 무엇을 잃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정규적인 자리란 예배의 자리를 말한다.
↳예배의 자리에 빠지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들어야 할 말씀을 듣지 못하면, 의심이 고개를 들게 된다.
↳몇 주 연속해서 예배의 자리에 빠져 말씀을 듣지 못하면, 의심의 넝쿨이 영혼을 덮어버린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듣는 자리를, 말씀을 배우는 자리를, 말씀을 나누는 자리를, 사모하기 바란다.

-도마가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뺀 모든 사람들이 부활의 주님을 목격했고,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했다.
↳제자들의 다양한 캐릭터를 도마가 모를 리가 없다.
↳10명이 입을 맞추기란 사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도마가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제자들의 표정이 그걸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한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은 다수결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진리는 다수결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이 주장해도 진리는 진리이고, 한 사람만 믿어도 진리는 진리인 것이다.
↳문제는 내게 믿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마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도마는 보다 확실히 믿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믿기 보다는, 주님을 직접 만나서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마의 말은 다른 제자들을 무시하는 태도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꼭 눈으로 봐야 믿고, 꼭 손으로 만져 봐야 믿을 수 있는 건가?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건가?
↳만져보지 않고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건가?

-우리가 보는 것은 불완전하다.
↳정확하게 볼 수도 없고 제대로 볼 수도 없다.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볼 수도 없다.
↳같은 사람이라도 볼 때마다 다를 수 있다.

-알고 보면, 우리가 믿는 것의 상당수는 보지 않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의 대다수는 만져보지 않고 믿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가?
↳안 믿어야 할 것을 믿고 사는 사람이다.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이다.

-의심은 병이다.
↳의심은 마귀가 주는 병이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쉴 새 없이 의심의 씨를 뿌린다.
↳마귀가 할 일 없어 의심의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다.
↳의심의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처음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끝내는 불신하여 파멸로 모는 것이 의심이다.
↳의심은 신앙생활을 병들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존재이다.

-마귀는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서 의심의 씨를 뿌린다.
↳주의 동생으로 알려진 야고보는 기도의 사람으로 소문난 분이다.
↳그의 별명이 낙타무릎이면 말 다했다.
↳그는 정말로 치열한 기도의 생애를 살았다.
↳그가 그토록 믿음에 따른 행위를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은, 삶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고, 그 삶을 지탱해준 것은 기도였다.

-야고보는 기도에 있어서 의심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사실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도 동일하다.
마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부활의 주님이 여드레 만에 다시 오셨다.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이번에 주님이 제자들을 찾으신 것은 도마 때문이었다.
↳도마의 의심이 충만한 태도에,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 한 번 더 오시기를 바랐을 것이다.
↳도마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니까, 예수님이 해결하시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도, 주님이 안 오시는 거다.
↳도마는 기세등등했을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오히려 부활의 주님을 봤던 제자들이 초조했을 것이다.

-여드레 만에 주님이 나타나셨다.
↳그 때 제자들이 얼마나 기뻤겠는가?
↳다들 주님을 반가워하는데, 도마는 고개를 숙였다.

-주님의 말씀은 도마를 더 부끄럽게 했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자기가 했던 말을 주님이 그대로 재연하신다.
↳분명히 주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도마가 받았을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굳이 손의 못 자국을 볼 필요도 없었고, 창 자국이 있는지 옆구리에 손을 넣어볼 필요도 없었다.
↳어떤 증거도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주님을 만나는 순간, 도마의 입에서 믿음의 고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도 안 믿어졌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었는데, 주님 앞에서 믿어진 것이다.

-예배 때마다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기 바란다.
시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주님은 사모하는 자의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이다.
↳주님은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다.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체험하기 바란다.

-뒤늦게 믿음의 고백을 하는 도마에게, 주님은 진한 아쉬움을 표현하신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사실 도마의 고백은 대단한 고백이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어쩌면 베드로의 고백보다 더 뛰어난 고백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주님은 도마를 칭찬하시지 않았다.
↳베드로에게 하셨던 극찬에 비하면, 오히려 꾸중에 가까웠다.
↳일차적으로는 주님이 전에 하셨던 말씀을 믿지 않아서였고, 이차적으로는 주님을 먼저 만났던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아서였다.

-부활절에 주님이 우리에게 세 가지 선물을 준비하셨다.
↳평강, 사명, 성령이다.
↳이 특별한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 평생 누리며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