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28:우리의 수고는 주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고전 15:35-5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8-04 00:00
조회
911



고린도전서 강해 28
우리의 수고는 주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고전 15:35-58)
2019. 8. 4.

프롤로그

-중국 당나라 말기에 황소의 난이 있었다.
이때 황소의 부장으로 주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자기를 키워준 황소를 배신하고, 당나라에 투항하여 절도사라는 직임을 지니고 있다가, 마침내 황소를 파멸시키고 말았다.

-당나라에서는 그의 공로를 크게 기려, 각가지 특혜를 베푸는 가운데, 그에게 주전충이라는 이름까지 하사했다.
“그대 당나라를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하였도다. 앞으로도 나라를 위하여 온전한 충성을 다할지어다”라는 뜻이, 그 이름에 담겨져 있다.

-본래 은인이요 주인이던 사람을 배신하고, 당나라의 충신으로 변한 주전충이다.
그때부터 당나라의 병권과 함께 정권을 한 손에 거머쥐고, 온갖 호사를 다 누리더니, 다시 한 번 배신하여 290년을 이어오던 당나라를 멸하고, 스스로 후량국의 태조가 되었다.

-이렇게 배신과 배신의 연속선상에서 황제가 된 주전충은, 온갖 호사와 포악을 자행하더니, 미처 5년이 다 가기 전에 자기 아들 주우규의 칼을 맞고, 그의 최후를 장식했다.
주전충이라는 이름으로 배신을 뿌리고 배신을 가꾸던 사람이, 마침내 배신의 열매를 거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다.
아비를 죽이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 주우규는, 1년이 채 못 되어 자기 동생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형을 죽이고 천하를 차지한 주우정은 어떠했던가?
그의 형의 피가 다 마르기도 전에, 후당이라는 나라를 세운 이존욱이라는 사람에게, 자기의 목숨과 함께 황제의 면류관 그리고 나라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이렇게 주전충이 세운 후량국은, 겨우 14년을 지탱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충성은 충성을 낳고, 배신은 배신을 낳는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게 자연법칙이다.

-바울은 부활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주님을 위한 수고가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충성을 심으면 생명의 면류관이 있기 때문이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말씀 있지 않은가?계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가 어떻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쓸 수 있는가?
부활을 믿을 때 가능하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수고는 헛되다.
만일 부활이 허구라면, 주님을 위해 수고할수록 손해만 본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재미있는 주장들을 펼친다.
기절설이다.
예수님이 잠깐 기절했을 뿐이며, 장사된 후에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것이다.
무덤 오인설이다.
어두운 새벽에 무덤을 잘못 찾아서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이 부활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도난설이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옮겨 놓고는,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트렸다는 것이다.
환상설이다.
예수님이 부활했을 것으로 굳게 믿고 머릿속에 그리다가, 마침내 환상을 보고서 부활을 실제인양 퍼트렸다는 것이다. ⑤ 신비설이다.
바벨론 신화, 동방신화에 나오는 부활설을, 예수님한테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냥 부활을 믿는 게 낫다.
안 믿으려고 하다보니까, 그런 재미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있지도 않았던 부활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그 모진 박해 앞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낸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부활을 실제로 믿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된다.

-바울은 부활에 대한 두 가지 질문을 소개하고 있다.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난단 말이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안 믿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어떤 대답을 들어도 믿지 않을 사람이다.
무엇보다 이 땅에서 부활을 보여줄 수 없다.
부활이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부활은 믿어져야 한다.
부활이 믿어지는 게 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안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열두 제자인 도마조차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고 나서야 믿었다.
그런데 우리는 보지 않고도, 예수 부활 우리 부활을 믿는다.
이게 기적이 아니고 뭔가?

-바울은 35절로 질문하는 자들을 가리켜, 이렇게 칭했다.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그들이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기절설, 무덤 오인설, 도난설, 환상설, 신화설, 언뜻 보면 얼마나 똑똑한 주장 같은가?
하지만 그들은 헛똑똑이에 지나지 않는다.
부활을 단순히 믿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부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실 부활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법칙을 통해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씨를 땅에 뿌리면 어떻게 되는가?
씨가 땅에 떨어지면 죽는다.
씨는 그냥 죽지 않고, 생명을 주고 죽는다.
씨가 죽으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내고 풍성한 생명을 준다.
바울은 뿌려진 씨를 통해, 죽음에서 부활로 변화되는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다.

-땅에 떨어진 씨가 죽어 생명을 내는데, 분명히 새로운 생명이다.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뿌려진 씨가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다.
씨가 죽을 때 새로운 생명이 나온다.
죽은 씨와 무관한 생명은 아니지만, 동시에 새로운 생명이다.
우리 몸이 죽어야 부활한다.
죽을 때의 몸과는 다른 새로운 몸이 된다.
그럼 우리 몸과 전혀 무관한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나중에는 알아봤지 않는가?

-어떤 몸으로 부활할지 궁금해 하는 건,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내가 몇 살의 모습으로 부활하려나, 궁금해 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가장 젊고 예쁠 때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 성경은 뭐라고 답해주는가?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죽기 이전의 형체와 내가 부활한 형체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형체 자체가 다르다.
죽기 이전의 형체는 썩어 없어질 몸이다.
부활한 형체는 영원히 살 신령한 몸이다.
그러니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 몰라볼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몸과 어느 정도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게, 가장 좋다고 믿는다.

-기도도 구체적으로 해야 하지만, 결론은 무엇인가?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이 알아서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는 게, 최선의 응답임을 믿는다.

-자기 얼굴 모습을 보고, 만족하기 쉽지 않다.
거울에 비췬 자기 몸을 보고, 만족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으로 부활한다?
아니면 성형 전의 모습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
하하~ 걱정할 필요 없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 같지 않다.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공장에서 찍어내면야 같을 수 있지만, 생명을 가진 육체는 다 다르다.
단지 우리가 분간하지 못할 뿐이다.
짐승 새 물고기는 그렇다고 치고, 사람들을 보면 생김새가 다 다르다.
성형술의 발달로 인해 비슷 비슷하지만, 그래도 다르다.
부활체도 같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아무리 신령한 몸인 부활체라고 해도, 딱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데리고 다니면서, “이분이 베드로이십니다.” “이분이 바울이십니다.” “이분이 루터이십니다.” “이분이 칼뱅이십니다.” 이런 소개가 필요 없다.
못 알아볼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바울은 육체를 사람, 짐승, 새, 물고기로 나눠서 설명을 했다가, 이번에는 형체를 하늘에 속한 것과 땅에 속한 것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여기서 핵심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는,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차원에 속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우리는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한다.
우리는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부활한다.
우리는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부활한다.
우리는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바울은 힘주어 강조한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다고....

-그럼 우리가 묻히지 않고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수 없는가?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면 그렇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이 앞당겨져, 만약 우리 때에 임하시면 상황이 달라진다.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가 살아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바로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살짝 두려워하면서도, 자기 당대에 주님이 오시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먹고 살기 편해서 그렇다.
예수 믿는 것이 힘들어야 재림신앙이 강화된다.
모일 때마다,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기도 때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외친다.
부활 신앙이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대조하고 있다.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 아담은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마지막 아담은 다른 생명을 살아 있게 하는 영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주는 영이다.
그 마지막 아담이 곧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서 순서를 말하고 있는데, 육의 사람이 신령한 사람보다 먼저라는 것이다.
당시 헬라적 사고는, 신령한 존재가 먼저고, 현세의 불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의 그림자에 불가하다고 했다.
이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육의 사람이 죽어 신령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첫 사람이 왜 육의 사람인가?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첫 사람이 땅에서 났기 때문이다.
땅에서 난 자는 흙에 속할 수밖에 없다.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다.
하늘에서 나셨기에 하늘에 속한 것이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얼마 동안 땅에서 사셨지만, 그의 근본은 하늘이었다.

-우리는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다.
첫 사람 아담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마지막 아담으로 인해,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흙에 속한 자로서, 땅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들이 있다.

-우리를 흙에 속한 자라고 하니, 질그릇이 떠오른다.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이다.
질그릇은 질그릇인데 그냥 질그릇이 아닌 보화를 담은 질그릇이다.
이게 우리의 가치다.
우리가 비록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담긴 보화 때문이다.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우리 안에 보화가 있다고 해서, 고난이 면제되는 것은 아님을 알라. 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오히려 우리 안에 있는 예수 생명 때문에, 고난이 더 있을 수 있다.
그 고난으로 인해, 예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된다.
먹고 살기 편하면, 그 사람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욱여쌈을 당해보고, 답답한 일을 당해보고, 박해를 받아보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보면, 그 안에 예수 생명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부활을 믿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자이다.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 육의 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다.
혈과 육은 썩는 것을 상징한다.
혈과 육으로는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우리는 혈과 육을 위해서 살아야 할 건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할 건지를, 이 시간 결단해야 할 것이다.

-부활 신앙을 가졌다면서, 여전히 혈과 육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사람이다.
그가 받을 유업은, 이 세상에서 받는 썩을 것이 전부이다.
더 이상 그가 하늘에서 받을 수 있는 유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울은 부활의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여기서 “마지막 나팔 소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한다.
우리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
그런데 그것이 시나브로가 아니다.
순식간이다.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능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 “예수 부활 우리 부활!”“예수 재림 우리 부활!!”

-부활은 창조주의 능력이다.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부활은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더 이상 사망이 어떻게 할 수 없다.
부활은 사망을 향한 승리의 선언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후, 승리한 줄 알았다.
일시적인 승리였다.
3일 천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셨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지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승부수는 따로 있었다.
하나님이 꺼낸 마지막 승부수는 부활이었다.

-하나님의 부활의 승부수 앞에, 사탄은 결정타를 맞게 되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이 십자가와 부활에서 성취된 것이다.

-우리의 부활은 사망을 향한 최후 승리 선언이다.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이 왕노릇 할 수 있었던 것은, 죄 때문이다.
죄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율법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는 더 이상 율법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죄가 힘을 쓸 방법이 없어졌다.
죄가 무력해졌으니, 사망이 왕노릇할 방법도 없어진 것이다.

-아직 우리의 부활은 성취되지 않았다.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부활을 바라본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의 부활을 소망한다.
이건 이미 시작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심으로 재림은 정해진 것이다.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의 부활과 한 묶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오늘 감사하며 살 수 있다.
일상의 삶 가운데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매일 매순간 감사하며 사는 것이 부활 신앙이다.
십자가 신앙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능력을 준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된다.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확고한 부활 신앙만이 우리를 견실하게 한다.
시련과 고난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예수 믿기 좋은 시절도, 이제 지나간 거 같다.
초대교회가 처했던 상황으로 돌아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에 대한 적대감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일반 언론 중 교회에 대해 호의적인 매체는 없는 거 같다.
교회가 사회에 좋은 일 많이 했는데, 억울한 면이 있다.
물론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욕먹을 짓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사회에 기여한 것에 비하면, 너무 박한 평가를 받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수록 더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견실하게 믿음 생활해 왔는가?
더욱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자.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날로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의 남은 삶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