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일 : 말씀에 반응하는 자녀와 부모(골 3:20-21)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05-05 00:00
조회
985



가정주일

말씀에 반응하는 자녀와 부모(골 3:20-21)

2019. 5. 5.





프롤로그

-우리교회에서는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을 따로 지키지 않는다.
대신 둘을 하나로 묶어서 5월 첫 주일을 가정주일로 지킨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자식에게 주시는 말씀과 부모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상고한다.
자식된 입장에서는 부모님께 효도를 다짐하는 시간이 돼야 하고, 부모된 입장에서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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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부모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했다.
이런 권위를 가진 아버지에게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다소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말씀을 잘 보라.

“아비들아”
“부모들아” 하지 않고 “아비들아” 했다.
무슨 뜻인 거 같은가?



① 아버지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건 아버지가 가정을 대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의 궁극적인 책임이 아버지의 몫이다.
물론 자녀 약육의 책임도 궁극적으로는 아버지에게 있다.
엄마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최종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아무리 바빠도 자녀 양육에 무관심해선 안 된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
엄마는 아빠를 세워주는 일을 해야 한다.
어떻게든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를 높여주어야 한다.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빠가 자녀들에게 가끔 한 마디를 해도 그 말이 먹혀 들어간다.
자녀가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은 상당 부분의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

-어느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가르치느라 그랬는지 몰라도 식탁에 아버지 지정석이 따로 있었다.
아버지가 안 계실 때도 그 의자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 것이 그 가정의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출장 중이었는데 그 집의 일곱 살짜리 꼬마가 갑자기 아버지 의자에 가서 앉았다.
어머니가 야단을 치려고 하다가...
“네가 아빠가 되고 싶은 모양이지? 그래 오늘 한 번 만이다. 오늘은 네가 아빠 역할을 하렴.” 하며 특별히 허용해 주었다.

-그러니까 누나가 옆에 있다가 장난으로 동생한테 말했다.
“아빠, 식사 끝나고 내 숙제 좀 도와주셔야 해요.”

-그랬더니 꼬마가 이렇게 말했다.
“아빤 바쁘다. 너희 엄마한테 물어 봐라.”

-그 아이가 시호였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가 궁금하다.

-양육할 자녀가 있다는 게 복이다.
양육할 자녀를 두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 여러분,
자녀 양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믿으라.



②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노엽게 하지 말지니라는 말은 자녀가 부모 때문에 분이 차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자녀가 분을 내는 경우가 어떨 때일지 한 번 생각해 보라.
자녀들이 어떤 경우에 화를 내는지 자녀들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자.
자녀들은 자신이 이해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좌절한다.
억울하게 야단을 맞는다고 생각할 때 울분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당한다고 느낄 때 절망한다.

-우리는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교하지 않도록 애쓰라.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해서 자기 자신이 행복해 질 것 같으면 열 번이라도 비교하라.
또 열심히 비교해서 내 아이가 잘될 것 같으면 열 번이 아니라 백 번이라도 비교하라.
대개 비교할 때는 자기 집 아이의 장점은 숨기고 다른 집 아이의 장점을 부각시키곤 한다.

-정 비교하고 싶다면 다른 집 아이보다 잘하는 점을 부각시켜 주라.
“그 애는 국어는 너보다 잘했지만 체육은 네가 더 잘했잖아?”
“국어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한 게 더 중요하단다.”

-이런 말을 들으면 아, 부모님이 나를 위로하려고 그러구나 하고 애가 다 알아듣는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하다.
내 속으로 낳은 아들인데 그 애가 누구를 닮았겠는가.
머리 나쁜 것도 나 닮았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도 다 날 닮아서 그러는데 어떻게 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동요가 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얼마 닮았네

-월간 [아버지와 가정]이 초등학생 이상의 아들을 둔 아버지 88명과 만 13-18세의 아들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아들아, 네가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겠다

- 아버지의 46%

◐아들아, 너는 아버지를 닮지 말아라

- 아버지의 28%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다

- 아들의 33%

◑나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

- 아들의 37%

-자녀가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도 불행하고 자기는 결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도 불행하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너 이 아빠 좀 본받아라.”
“너 이 엄마 좀 닮아라.”



③ 부모가 모범이 되라는 말이다.
부모가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부모가 생활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본 된 삶을 살아야 한다.

-몇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언어생활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품을 갖췄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식 앞에서 불평의 말 부정적인 말을 한다.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고, 목회자에 대해 불평하는 말을 하면서, 자식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자고로 부모는 자식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

-둘째, 작은 일에도 본을 보여야 한다.
질서 지키기, 줄서기, 신호지키기, 휴지 버리지 않기, 인사 잘하기 등등, 작은 일 하나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도 어떻게든 본을 보이려고 힘써야 한다.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책임질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다.
애 낳았다고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애들을 바른길로 인도할 줄 알아야 부모이다.

-무엇보다 믿음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자식에게 돈을 남겨 주는 것보다 바른 신앙을 남겨 주어야 한다.
부모는 주일 성수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주일이면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 예배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경건하게 예배하는 모습,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 힘차게 찬송하는 모습, 준비하여 기쁨으로 헌금하는 모습, 자원하여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신앙생활은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여주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보고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선물이다.
나를 통해서 태어났고, 내가 고생해서 길렀지만, 그들은 내 자녀이기에 앞서 하나님 아버지의 선물이다.
내 자녀이기에 앞서 주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자녀들의 앞날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의 앞날을 보장해 주시고, 마지막 책임을 져주시는 분은, 내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하나님이시다.

-자녀에게 믿음 계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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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자녀된 자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① 순종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과 하나님께 대한 신자의 순종은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선택적 순종이 아니라 절대적 순종이란 말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세상이 물구나무를 서고, 지구가 거꾸로 돈다고 해도, 그건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다.

-생명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지만, 부모에게 패역하게 구는 사람은 생명을 빼앗으셨다.

신 21: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잠언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다른 어떤 악행보다 엄하게 다스렸다.
인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②순종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여기 “순종하라”는 말은 상대방의 말을 주의해서 듣고 그대로 따르라는 의미다.

-먼저 말씀을 주의해서 듣는 것이 순종이다.
듣되 진지하게 듣는 것이다.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종의 출발은 들음이다.
효도의 시작도 역시 들음이다.

-부모의 말을 귀담아 듣기 바란다.
남자 교우들에게 부탁한다.
친가 부모는 물론이고, 처가 부모의 말을 경청하기 바란다.

-여자 교우들에게 부탁한다.
친정 어른은 물론이고 시댁 어른의 말을 잘 듣기 바란다.

-간혹 처가 부모의 말은 경청하면서, 친가 부모의 말은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시대 어른의 말은 잘 들으면서, 친정 어른의 말은 잘 안 듣는 사람들이 있다.
양쪽 다 잘해야 한다.
다 같은 부모다.

-다음은 그대로 따르는 것이 순종이다.
순종하되 부모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의 순종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의 순종이다.
종종 부딪히는 문제지만 만약에 부모님이 제사에 참여하여 절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순종해야 하는가? 거부해야 하는가?
아니면 순종하는 척 해야 하는가?

-원칙을 말씀드리겠다.
부모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되는 경우에는 궁극적인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그러니까 먼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부모에 대해 공경하는 자세만은 잃지 않아야 한다.



③ 순종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20절 말씀을 보라.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영역을 말해준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예수 믿는 것 자체는 타협할 수 없지만 그 외의 “모든 일”에 순종할 것을 명하고 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순종하는 것은 분명히 쉽지 않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에 어떤 분야에 문외한인 부모가 자식의 전문 분야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실 때 자식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순종해야 하는가? 거부해야 하는가?
순종하는 척 해야 하는가?
적어도 그 말씀에 담긴 뜻은 존중해 드려야 한다.

-출애굽기 20장에 십계명이 나온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게 십계명 중 하나님께 사람에게 주신 첫 번째 계명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덕의 근간이요 윤리의 기본이다.
여기서 ‘공경(恭敬)’이란 단어는 공손 공(恭)에 공경 경(敬)자이다.
공경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뜻풀이가 ‘공손히 섬김’ ‘삼가고 존경함’이라고 되어 있다.
영어로는 respect를 쓰는데, 민중서림판 영한사전을 보면 ‘상대의 인격, 인품 따위를 훌륭한 것으로 여겨 존경하다’로 풀이되어 있다.
여기서 ‘훌륭한 것으로 여겨 존경하다’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훌륭해서 존경하다’는 뜻이 아닌 ‘특별히 훌륭하지 않지만 훌륭하게 여겨 존경하다’는 뜻이다.

-사실 멀리서는 훌륭하게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허물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훌륭하게 보이기는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는 누가 뭐라 해도 성공한 사람이다.
또 아내에게 존경받는 남편, 남편에게 인정받는 아내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를 존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부모가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그냥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자격심사를 한다면 세상에서 부모 자격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부모니까 그냥 공경하는 것이다.
부모니까 그냥 인정해드리는 것이다.
귀히 여길만한 위치에 있어서가 아니라, 내게 유익이 되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있게 한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다.

-그럼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첫째,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늘 생각하듯이 자식 역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평상시 부모를 생각하는 사람은, 만나서도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릴 수 있다.
옛 사람들은 부모님이 불편해 하실까봐 부모 앞에서는 근심 어린 얼굴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는 증거이다.

-어떤 사람 뱃사람으로 평생을 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선원이 되기 위해 배에 짐을 실었는데 어머니가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러자 그가 따라 나온 하인에게 말했다.
"배에서 내 짐을 가져와라. 어머니를 슬프게 하면서까지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그때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렇게 축복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성경 말씀처럼 네 장래에 큰 축복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작은 배의 선장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큰 배를 움직이는 캡틴이 되었다.
그가 바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자식이 부모보다 잘 되어야 한다.
부모를 능가하는 아들이 되어야 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 놈 애비보다 훨씬 낫다.”
“어쩌면 넌 엄마보다 더 예쁘니?”
“자식들이 부모보다 크게 되겠어요.”

-부모는 자식이 자기를 뛰어 넘고 앞서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부모라면, 자식이 자기 그늘 아래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뛰어넘고 부모를 앞서가는 것이다.

-차범근과 차두리, 아버지와 아들이 월드컵에 출전한 것은, 세계 축구사에 두 번째 있는 일이라고 한다.

-차두리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똑같이 실수를 해도 내가 하면 차범근이 아들이 그런 실수를 한다고 유독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괜찮아요. 아버지가 든든한 후원자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월드컵에서 골을 넣어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가 아니라 차두리의 아버지 차범근이라고 불리는 거예요.”

-제가 차범근 씨라도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랄 거 같다.
언젠가 두 사람이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그 광고 카피가 이거였다.
‘차범근의 아들이 아니라 이제 차두리의 아버지입니다.’

-차범근이 들려준 일화이다.
시드니에서도 아들의 인기를 실감했다면서, “차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는데 큰 케이크를 공짜로 주더라. 나 때문인 줄 알았더니 가게 직원이 얼마 전에 두리랑 사진을 찍어 딱 걸어놨더라. 두리 덕분이지 뭐.” 참 두리가 대견하다.
누가 뭐래도 차두리는 아버지에게 최고의 효도를 한 것이다.

-부정적인 뜻으로 ‘그 애비의 그 아들’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야 한다.
실력으로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자녀된 여러분은 부모보다 잘되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보다 잘 되기를 축복한다.

-둘째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처해진 상황과 사는 여건이 다르겠지만 할 수만 있으면 자주 찾아뵙는 게 좋다.
휴가 때도 할 수 있으면 자식들과 함께 몇 시간이라도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두 분이 살아계시는 경우는 덜하겠지만 혼자 남아있는 분에게 최고의 선물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말벗이 되어 주는 것이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것이다.

-잘 모시든 못 모시든 부모 모시고 사는 아들 며느리가 효자다.
장남이지만 멀리 떨어져 사니까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한다.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 하는데 그게 왜 그리 안 되는지 모르겠다.

-셋째 물질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물질을 드리는데 인색해 하는 것은 이중 플레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시간을 내게 되어있고,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게 되어 있다.

-부모를 향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물질을 드리고 싶어진다.
부모 공경은 말이 아니다.
효도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물질을 통해 봉양하는 것이다.

-이조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서울을 떠나서 개성을 좀 방문하게 됐다.
온 개성에 방을 부치고 소문이 나니깐 어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요청을 하는 거였다.
"내가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번도 임금님의 용안을 뵙지를 못 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을 멀리서라도 한 번 뵙고 죽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그래서 이 아들은 왕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십리길을 어머니를 업고 거기 길가에 나가 서 있었다.
그래서 임금님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해 드렸다.
임금님은 어떻게 하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그 때에 그 어머니를 업고 있던 그 사람 좀 불러들여라."
그리고는 금 백 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불효자 한 사람이 돈 욕심에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데 억지로 업고 나가서 길가에서 왕을 뵈었다.
왕은 그 역시 불러서 상으로 금 백 냥을 주었다.
그걸 지켜보던 신하들이 볼멘소리를 했다.
"임금님, 그놈은 불효자랍니다. 효도가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해서 돈 받았다는 말을 듣고 상을 받으려고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상을 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벌을 줘야 될 것입니다."

-이때 임금님이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을 주어라."

-그렇다. 효도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
이 시대는 부모 공경을 흉내라도 내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