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2020):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행 1:4-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5-31 12:42
조회
1172



성령강림주일(20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행 1:4-8)  
2020. 5. 31.


프롤로그

-터키에서 처음 자동차를 생산했을 때의 일이다.
↳터키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차를 생산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통령과 관료들은 물론 온 국민들까지 지대한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국민 대표들이 국회 의사당에 모여서 시승식 축제를 열고,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온 국민의 기대와 관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출발한 차가, 채 30m도 못 가서 퍽~퍽~ 하더니, 그만 시동이 꺼지고 서버렸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시승한 대통령도 당황하고, 지켜보던 국민들도 당혹스러워했다.

-그때 기술자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는 자동차 점검을 막 끝내고는, 땀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자동차를 그리스도인에 비유한다면, 연료는 성령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정기적으로 출석한다.
↳어느 정도 성경 지식도 있고, 기도도 곧잘 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활력이 없다.
↳그러면 그 이유는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무기력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교회생활은 따분하기만 하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신앙생활은 지루하기만 하다.
↳성령의 간섭을 받지 않는 믿음생활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통치를 받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주님은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 동안 함께 하시면서, 양육하고 훈련하셨다.
↳이젠 이들에게 자신의 일을 일임하시고,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기 직전이다.
↳사실 예수님이 곁에 계실 때도, 제자들의 믿음은 견고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하도 답답해서, 주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그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이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세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신 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라도 부탁을 했고, 그 제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다 싶어, 그 아이 아버지의 요구에 응했다.
↳그러나 결과는 톡톡한 망신이었다.

-그 후 예수님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말이다.
↳아직도 믿음이 겨우 그 정도에 불과하냐는 말이다.
↳주님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음을 느끼고 계신다.
↳무한정으로 시간이 있는 게 아니고, 이들을 남겨두고 떠나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런데 이들은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할 노릇이었겠는가?

-그래도 그 땐 기회가 남아있었다.
↳훈련시킬 기회가 있었고, 믿음을 북돋아 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승천을 코앞에 둔 지금은 아니다.
↳내일의 기회도 없다.
↳무조건 위임하고 떠나셔야 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곧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다.

-성령을 받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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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 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인가?
↳예루살렘이 어떤 장소인가?
↳예수님의 고향도, 제자들의 고향도 아니다.
↳뭐 고향이 아니라도 좋은 추억이 있는 곳도 아니다.
↳자기들이 믿고 따른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장소이다.
↳자기들의 꿈을 짓밟은 땅이고,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린 도시이다.

-그러니 그곳에 잠시라도 있고 싶겠는가?
↳단 하루도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예수님이신데, 제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분부하신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이건 떠나 온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고향이 싫어서 떠난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따라나섰다. 사명을 따라서 고향을 떠나왔다.
↳그렇다면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되고,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생각하기에 예루살렘은 탈출해야 할 곳이다.
↳예루살렘은 만정이 떨어지는, 잠시라도 정 붙이고 살 곳이 못된다.
↳한시라도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은, 아주 정나미가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신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그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 하신다.
↳예루살렘에서 꿈쩍도 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라 하신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
↳떠나온 자리에 다시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우리의 고향은 세상이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아 예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틈만 나면, 옛 고향인 세상으로 되돌아가려는 성향이 있다.
↳주님의 몸된 교회 생활이 힘들면, 떠나온 세상에 눈길을 보내곤 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한 후, 광야에서 힘들 때마다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했듯이 말이다.

-우리의 또 다른 문제가 무엇인가?
↳자기 자리를 쉽게 떠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곳이 자기의 사명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기도해보지도 않고 쉽게 자리를 뜨곤 한다.
↳떠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주 옮겨 다니는 사람치고 크게 성공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개 성공한 사람은, 꾸준히 한 우물을 판 사람이다.
↳한 일에 집중한 사람이 성공했다.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미친 사람이, 뭔가를 이뤄냈다.

-지금의 가정에 충실하기 바란다.
↳바꿔봤자 그게 그거다.
↳그 사람보다 크게 나을 거라도 보장도 없다.
↳지금의 배우자가 최고인줄 알고 잘하기 바란다.

-또 지금의 일터에서 성공하기 바란다.
↳이것저것 손대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봤자, 시간 버리고 돈 버리기 쉽다.
↳지금의 일에서 어떻게든 성공하기 바란다.
↳지금의 일에서 성공하면, 다른 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지금의 일터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일터에서도 성공하는 게 쉽지 않다.
↳지금의 일터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또 지금의 교회에서 신앙의 승부를 내기 바란다.
↳현재의 교회에서 신앙을 꽃 피우고,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들어보면 다른 교회라고 별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다 자기하기 나름이다.
↳교회도 사람 모이는 곳이기에, 아무리 좋은 교회라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교회라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을 수 없다.
↳문제없는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향은 맘에 들지 않아도 쉽게 떠날 수가 없다.
↳그건 나중에 자기 뼈가 묻힐 곳이기 때문이다.
↳교회도 그렇게 봐야 한다.
↳내가 이 교회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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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할 일 둘째는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기다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대인들의 고질병 중에 하나가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부터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언제 보내셨는가?
↳적어도 4천년이 지나서이다.
↳이사야를 통해서 약속하신 고난의 종으로서 메시야를 언제 보내셨는가?
↳600년이 지나서이다.
↳요엘를 통해서 만민에게 부어주마 약속하신 성령을 언제 보내셨는가?
↳400년이 지나서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기다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다.
↳친절하신 주님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
↳“몇 날이 못 되어”이다.
↳우리는 “몇 날”하면 2, 3일을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10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다리란 말이, 무작정 또는 막연히 기다리란 말이 아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이렇게 했다.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쓴 것이다.
↳이렇게 오로지 기도에 힘쓴 지 10일 만에, 열두 제자들을 포함한 거기 모인 120여명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들이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해도 소용없다.
↳교회 나오는 것과 그리스도인인 것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자기 안에 성령이 있어야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이어령 박사의 책 [아들이여, 이 산하를]에 나오는 내용이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사는 꼬마가 할아버지의 수염을 볼 때마다, 궁금한 생각이 들던 차에,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밤에 주무실 때,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아니면 이불 밖에 내 놓고 주무세요?"
↳할아버지는 꼬마의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금방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꼬마에게 말했다.
↳"얘야, 미안하구나. 사실 나는 그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오늘밤에 자 보고 내일 대답 해주마."
↳그러고는 꼬마를 돌려보냈다.

-할아버지는 그 날 밤 수염과 씨름을 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니까 왠지 답답하고, 수염을 내놓고 자니까 뭔가 이상하고...,
↳그래서 밤새도록 수염을 가지고 씨름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수염을 한 두 해 달고 다닌 게 아니다.
↳30년 동안 달고 다녔지만, 그 수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산 것이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할아버지와 비슷하지는 않는지...?
↳교회는 다니고 직분은 맡고 있어도, 내가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성령이 내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도 모르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이번 기회에 한 번 돌아볼 일이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 죽고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을 말한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다.
↳세례란 출발의 의미가 있다.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은 함께 임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를 인격적으로 영접함으로 성령세례를 받는다.
↳성령세례를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물세례를 성령세례보다 앞서 받는 분들도 있고,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물세례를 받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물세례도 더 없이 중요하다.
↳물세례가 입교를 위해서 필수적이라면, 성령세례는 입국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곧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으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그분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런데 성경은 성령세례만 말하지 않고, 성령 충만을 말한다.
↳아니 성령 충만을 소개하는 정도가 아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신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세례는 단회적인데 반해, 성령의 충만은 영속적이다.
↳성령 충만은 구원받은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의 의미는,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우리의 인격이 성령의 통치를 받는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다.
↳혹 어떤 사람은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간섭을 받게 되니까, 적당히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쎄,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미국 제2차 대각성운동을 일으키고, 평생 부흥을 위해 온몸을 바친 찰스 피니는, 이렇게 말했다.
↳"부흥이 아니면 죽음을! 내가 죽고 부흥을!"

-그의 또 다른 말이 있다.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듯이,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것도 죄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죄란 사실을 인정할 때,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찰스 피니의 말에 공감이 된다.

-그렇다고 죄짓지 않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란 말이 아니다.
↳그럼 너무 비참해진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성령으로 충만하자는 것이다.

-어떤 농부가 있었다.
↳그는 읍내 농기구 가게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고는, 당장 자동톱을 하나 샀다.
↳그 포스터에 씌어 있는 광고 문구가, 농부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 자동톱은 2시간에 다섯 그루의 참나무를 벨 수 있습니다."
↳그 농부는 톱을 사서 집으로 갔다.
↳그러나 그는 참나무 다섯 그루를 베는 데, 하루 종일이 걸렸다.

-화가 난 농부는 자동 톱을 가지고, 가게 주인에게 가서 따졌다.
↳그러자 주인은 그 자동톱에 엔진을 걸어 주면서, 다시 나무를 베 보도록 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톱이 나무에 닿기가 무섭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무들이 순식간에 베어진 것이다.
↳하루 종일 베어도 다섯 그루도 채 벨 수 없었는데, 그 톱에 엔진이 걸리자 엄청난 효과가 나타났다.

-그렇다. 아무리 톱의 모양이 좋고 이빨이 날카로운 자동톱이라 하더라도, 엔진을 걸지 않고 사용하면 수동 톱보다도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은 자동톱의 엔진과 같은 것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엔진이 걸린 자동톱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자동톱을 수동톱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마귀의 장난감이 되기에 딱이다.
↳마귀는 목사라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우습게 여긴다.
↳장로라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아주 얕잡아 본다.
↳그러나 어린 아이라도 성령 충만하면 무서워한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숱한 마귀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다.
↳죄의식과 정신적인 갈등, 긴장과 의심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참된 자유와 평안과 쉼과 확신을 갖는다.
↳죽음의 공포 때문에 불안하게 사는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놀라운 안식과 쉼을 얻는다.
↳악한 습관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거기서 해방될 수 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된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권능"의 원어 ‘두나미스’는 영어로 power란 뜻이다.
↳성령은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다.
↳성령은 감화 감동이 다가 아니다.
↳성령은 기쁨과 평안이 전부가 아니다.
↳성령은 권능이요, 능력이다.

-성경이 말하는 권능이 무엇인가?
↳원수를 때려눕히는 권능이 아니다.
↳세상을 뒤집어엎는 권능이 아니다.
↳자기를 이기는 권능이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곧 원수를 이기는 것이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곧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프랑스의 미술가협회가 ‘올해의 가장 멋진 그림’의 수상자로, 프란시스 모더론 씨를 선정한 적이 있다.
↳시상식장은 유명한 미술인과 평론가들로 꽉 차 있었다.
↳이윽고 사회자가 이 날의 주인공인 모더론 씨를 소개했다.
↳모더론 씨가 강단에 섰을 때,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아..." 하며 놀라고 말았다.
↳모더론 씨는 양손이 없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무로 만든 손을 양팔에 묶고, 그 나무 손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어느 정상인의 그림 못지않게 예술성이 뛰어났고, 평론가들로부터 색채 구성이 절묘하고, 색채에 담긴 상징성이 탁월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환한 얼굴로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손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호흡이 있는 한 이 나무 손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그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장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잠언 기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자기를 이기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지를 말해주는 말씀이다.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자기 안에 성령이 임하셔야,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자기가 마음의 보좌에 앉아 있는 한, 결코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
↳그리스도께 내 보좌를 내어드릴 때에야, 비로소 그게 가능해진다.

-D.L무디가 교인들에게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컵에서, 어떻게 공기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뺄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어떤 사람이 대답했다.
↳"공기 펌프로 빼면 됩니다."
↳그때 무디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여 진공이 되면 컵이 깨집니다."
↳많은 빗나간 대답들이 있은 후, 무디가 미소를 지으면서, 주전자를 들고 컵에 물을 가득 부었다.
↳"자 보세요. 이 컵에서 공기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할 때, 무디가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생활에서 공기를 빼려고 하듯이 죄를 제거하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오로지 성령으로 충만해짐으로, 죄를 제거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절대로 자기를 이길 수 없다.
↳성령 충만 이전에, 우리는 죄성으로 충만해 있었다.
↳성령 충만 이전에, 우리는 이기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죄성으로 충만한 곳과, 이기심으로 충만한 곳에, 성령 충만은 없다.

-로슨의 이 말이 맞다.
↳“성령 충만한 사람만큼 겸손한 자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채워지기 전에,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은 사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 충만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가능하다.
↳우리의 죄성과 이기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자.

-성령 충만은 우리 삶의 안팎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자연스럽게 삶의 변화가 따라온다.
↳성령 충만 받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확연히 달라진다.
↳스스로도 달라졌다고 느끼지만, 그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느낀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비전의 사람이 된다.
↳성령 충만을 입으면 확신의 사람이 된다.
↳사람이 비전을 보면, 인생이 바뀐다.
↳확신을 가지면, 모든 면에서 사람이 달라진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온 ‘알라미라’라는 청년이 있었다.
↳알라미라가 고국에 돌아와 보니, 땅 전체가 풀이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사막이었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 사막이라, 농사도 목축도 할 수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나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큰 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성령 충만을 받게 되었다.
↳성령 충만을 받은 그에게 비전이 임했다.
↳그에게 광야 어딘가에 분명히 물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났다.
↳사막한 가운데에서 물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을 날마다 하나님이 주셨다.

-그래서 그는 물줄기를 찾기 시작했다.
↳모두가 다 반대하여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6개월간 날마다 기도하며 찾던 중, 축축한 모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곳을 깊이 파고 들어가니까, 사막 한 가운데서 생수가 펑펑 쏟아졌다.
↳그 후로도 그는 사막한 가운데에서, 그런 물줄기를 15군데나 더 찾았다.
↳그는 그 물을 퍼내어서 목장을 만들고, 밭을 일구어, 과일과 채소도 생산했다.
↳이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키부츠(qibbutz)’라는 집단농장이 되었다.
↳한 청년에게 임한 성령의 권능을 통해, 사막이 채소농장으로 변한 것이다.

-한 사람에게 임한 성령의 권능이, 사막을 옥토로 바꿨다.
↳한 사람에게 임한 비전이, 사막에 물이 넘쳐흐르게 했다.
↳한 사람에게 임한 확신이, 세계의 지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성령의 권능으로 변화된 우리를 통해, 우리 삶의 환경이 변화될 수 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기만 하면, 우리의 가정이 변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일터가 변화되는 것도 물론이다.
↳자신이 바뀌면, 환경은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이 바뀌기를 위한 기도보다, 자신이 바뀌기를 위한 기도가 먼저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권능이 다가 아니고, 사명을 동시에 받는다.
↳그 사명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물론 말씀을 보면, “내 증인이 되라”가 아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증인이 되게 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내가 증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증인이 되는 게 아니다.
↳내게 성령이 임하시면, 내가 증인이 되기 싫어도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증인이 되었는데도, 증인으로 살지 않은 건가?
↳아니면 아직 증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증인이 되었음에도 증인으로 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증인이 되지 않았다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왜? 그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오늘날과 달리 ‘그리스도인’이란 말과 ‘제자’라는 말과 ‘증인’이란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각각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오늘날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증인이 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
↳증인이 되는 것은, 성령이 임하심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증인으로 사는 것은, 대가를 지불해야 가능하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증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증인으로 살지 않는 이유는, 대가를 지불하기가 싫어서다.

-“증인”의 원어 ‘말투리아’는 영어로 martyr로 번역된다.
↳martyr란 ‘순교자’란 의미이다.

-클레멘트는 이렇게 말했다.
↳“피 흘리기까지 증거하는 사람이 순교자다. 순교자만이 증인이다.”

-손해를 각오하지 않고는, 증인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다.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는, 증인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순교를 각오하지 않고는, 증인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다.

-반하우스라고 하는 신학자는, 증인으로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자폐증 크리스천’이라고 했다.
↳‘자폐증 크리스천’이란 말을, 오늘 우리는 아프게 새겨들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