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창 12:1-3)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2-23 13:09
조회
761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창 12:1-3)
2020. 2. 23.


프롤로그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첫 번째 여자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세계적으로 경이로운 기록을 세 개나 남기게 되었다.
↳첫째는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사람이 가장 큰 부자가 된 것이다.
↳둘째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남에게 준 사람이다.
↳셋째는 역사상 가장 건강하게 오래 산 사람이다.
↳록펠러는 98세까지 살았는데, 치아가 하나도 썩지 않았고, 건강한 몸으로 인생을 즐겁게 살다가 죽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한 번도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았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
↳사업상 아무리 바빠도, 예배드리는 것이 그의 삶의 최우선 순위였다.
↳또한 록펠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경건한 삶을 살았다.
↳또한 매일 성경을 읽었다.
↳그가 늙어서 눈이 어두워졌을 때는, 성경을 읽어 줄 사람을 채용해서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루하루 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유산이 무엇인 줄 아는가?
↳어떻게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인가에 대한 열 가지 항목을 적은 종이였다.
↳록펠러는 이 열 가지 항목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았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사는 날 동안 너의 모든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영적지도자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축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3) 오른쪽 주머니에는 항상 십일조를 준비하라.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먼저 구별하여 뗀 후에, 그 나머지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써라. 네가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면, 하나님은 너를 구별하여 축복하신다.
4) 누구도 원수를 만들지 마라.
↳상대방이 자신과의 생각과 다르다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서 올바른 대인관계가 지속된다.
5) 예배를 드릴 때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예배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임을 잊지 말아라
6) 아침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 드려라.
↳하나님의 말씀 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등불이 없이 어두운 밤길로 나서는 것과 같은 것이다.
7) 아침에는 항상 그날의 목표를 세워라.
↳​꿈은 크게 가지되, 목표는 작게 시작해서 하나씩 이루어가야만, 지치고 않고 이루어 낼 수가 있다.
8)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 드려라.
↳네가 죄를 짓고서야 어찌 형통하겠느냐,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9)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힘껏 도와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 나팔을 불지 마라.
10) 주일 예배는 반드시 본교회에서 드려라.

-인생의 일대 전환점을 맞았던 사람들은, 분명히 어떤 계기가 있었다.
↳사람이나 책 또는 종교를 통해서, 그리고 그 사람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준 특별한 사건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그 때가 언제였는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였다.
↳우리가 그분을 만남으로, 우리가 ‘무의미한 인생’에서 ‘유의미한 인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바뀌게 되었다.

-아브람은 7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인생을 새로 시작한다.
↳이전까지의 삶과는 전적으로 다른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 데라의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을 출발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생애는 75세부터 시작된 것이다.
↳75세가 넘지 않은 분은 꾀부리지 않기 바란다.
↳‘이 나이에 뭘’
↳이런 말은 아예 입밖에 내지 말기 바란다.
↳75세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새로 출발한 아브람이 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아브람의 75년은 무의미한 삶이었다.
↳그냥 하루 하루 산 것이다.
↳인생 달력이 하루하루 의미 없이 넘어간 것이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 별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아브람은 더 이상 이전의 아브람이 아니었다.

-아브람은 하란에 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에 오기까지와, 하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이후의 삶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론 하란까지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버지 데라를 감동시키셨든지, 고향에서 도저히 살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있었든지 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아브람이 하란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아브람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온 것은 아니다.
↳그의 삶에 획기적 변화를 맞았던 것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순간이다.
↳그 전에도 하나님을 알긴 알았다.
↳우상을 버리고 개종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만 바뀌었지, 그의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하란에서 아브람에게 어떤 말씀이 임했길래, 그의 삶에 그토록 큰 변화가 온 것일까?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우리는 너무 빨리 1절을 건너뛰고 2, 3절로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복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이고, 복이 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1절이 없이는 2, 3절이 없다는 것이다.
↳1절에 순종할 때 2, 3절이 내 것이 될 수 있다.
↳1절이 2, 3절의 조건이 되고, 2, 3절이 1절의 결과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람은 분명히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그래서 지금은 하란에 머물고 있는데, 하나님은 너의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잡고 있는 삶의 기반을 떠나라는 말이다.
↳자기가 살아왔던 곳 자신에게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로 환경과 문화가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쉽게 결단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삶 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겨서 떠난다.

-그렇다. 믿음이란 떠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엔 어쩔 수 없이 모험이 동반된다.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한다.
↳웬만하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기를 원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신앙의 갈등이 어디서 오는가?
↳떠나지 않고 출발하려는데 있다.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가려고 하기보다, 어떻게든 현재의 삶을 안정시키려고 한다.
↳“내 자녀 잘 되게 해 주세요.”
↳“내 하는 일에 복을 주시고 내 가는 길을 지켜 주세요.”

-그러나 참된 믿음이란 출발함에 있다.
↳예수 믿기 전에 갖고 있던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채로, 새 출발을 하기는 어렵다.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 기득권과 옛사람을 버리라고 요구하신다.
↳아브람과 그의 가족들은 떠나기로 결정했다.
↳믿음으로 떠날 채비를 한 것이다.

-떠나려면 목적지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아브람은 본 것이 아니다.
↳하나님 믿고 가는 것이다.
↳아브람이 확인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약속만 받은 것이다.

-믿음은 증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보여 준 땅’이 아니라 ‘보여 줄 땅’이다.
↳참된 믿음이란, 내용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분이 나에게 어떤 명령을 하든지, 이해되지 않아도 유익이 없어도,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하는 신앙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야...” 이게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신앙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본토인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게 하셨다.
↳또 아비와 함께 얼마동안 살았던 하란 땅마저 떠나게 하셨다.
↳하란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곳이다.
↳하란은 마치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 가다가 만나는 휴게소와 같다.
↳서울에 가려고 하면, 휴게소는 들러야 한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살면 안 된다.
↳아브람 일행이 하란에서 자리 잡은 것은, 휴게소에서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데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약속의 땅으로 가지 못하고, 하란에 머물다 거기서 죽었다.
↳데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 않아서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은, 시작할 수 있지만 끝을 맺지 못한다.
↳힘들고 어려우면, 도중에 포기하고 만다.
↳약속의 땅을 향해 가야하는 동기가 약하기 때문이다.
↳믿음을 갖기도 어렵지만, 끝까지 믿음 생활하는 것이 더 어렵다.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은 존경받아야 하고, 교회에서도 존중해 주어야 마땅하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데라처럼 살다가 죽는다.
↳신앙의 경주에서 중간에 탈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불같이 믿다가, 서서히 식어가더니, 어느 날 재만 남는다.
↳그 재는 언제라도 날아가 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와 듣지 않은 자의 차이는, 보통 때 모른다.
↳평상시에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인생의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말씀에 기본을 둔 신앙과 그렇지 않은 신앙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기초만큼 무시를 당하는 것도 없다.
↳그럼 교회는 기본과 원칙이 통할까?
↳통하는 교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도 많다.
↳교회가 기본만 잘 지키면, 적어도 사회에서 점수 까먹지는 않는다..

1절을 다시 살펴보자.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람이 하나님을 찾아갔는가?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셨는가?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셨다.
↳이게 신구약성경 전체에 흐르는 사상이다.

-하란에 머물고 있는 아브람에게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과거를 다 버리라 하신다.
↳지금까지 그려온 인생의 밑그림을 전부 버리라 하신다.
↳그리고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지금 바로 떠나자’고, 그의 손을 잡아 이끄셨다.

-믿음의 여행은 내가 떠나지만, 그 여행을 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이 길을 걷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장애물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렇담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비록 하나님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비록 그분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리지 않아도, 그분의 옷자락이 내 손에 잡히지 않아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아브람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을 만한 뭘 갖추고 있었는가?
↳그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을 만큼 탁월한 뭔가가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아브람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그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렇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온전하고 대단한 사람이어서 택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탁월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택하신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믿음이 있어서 택하신 것도 아니다.
↳그냥 택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택하셨다고 해서, 우연히 택하셨다는 뜻인가?
↳아니다. 즉흥적으로 택하셨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다.

-믿음에는 약속이 있고 보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약속이 몇 가지로 나오는가?
↳첫째,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둘째,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셋째, “너는 복이 될지라”

-세 가지를 약속을 유심히 살펴보자.

-첫째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이다.
↳영원한 문명도 영원한 민족이나 국가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람을 통해 태어난 민족이 유대민족이다.
↳유대인의 시조는 아브람이다.
↳유대인이 한 때 나라 없이 2000년 가까이 세계에 떠돌아다녔지만, 민족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대 민족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그러나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유대인이 강성해지고 제국을 이룬다고 보기는 어렵다.

-메시아가 장차 유대인 가운데 태어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큰 민족이란 메시아를 통해 새롭게 이루어지는 민족이다.
↳오히려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조금 더 정리해보면, 아브람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태어나고, 이스라엘 자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결국 아브람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말이다.

-우리가 믿음의 큰 가문을 이루는 꿈을 꾸면 좋겠다.
↳우리 자손 중에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믿음의 거장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말씀의 사람들이 기도의 용사들이 우리 가문에서 배출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둘째,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이다.
↳홍수 후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다.
↳왜 쌓았는지 혹 기억하는가?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 한 가지 이유만 있는가?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우리 이름을 내고”
↳그들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내주셨는가?
↳아니다. 자기의 명성을 높이려는 자들의 욕망을 꺾으셨다.

-반대로 주님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애쓰셨는가?
↳자기 PR하고 다니셨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았음에도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을 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자, 자기 힘으로 이름을 내려는 자는, 어김없이 낮추셨다.
↳오히려 무안만 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높여주셔야 한다.

-하나님께 붙들리기 전 아브람은 철저히 무명이었다.
↳자기 이름을 내려고 노력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수줍음을 많이 타고, 자신 없어 하는 비겁한 모습이 나온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
↳단 그가 순종했을 때다.
↳하나님이 높여주시니까, 그의 이름은 감당할 수 없이 높아진 것이다.

-셋째, “너는 복이 될지라” 이다.
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공)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네가 복의 사람이 될 거라는 말이다.
↳복을 받아 나눠주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몇 가지 의미가 있다.

① 우리가 먼저 복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먼저 복을 받아야 나눠주든지 말든지 할 수 있다.
↳흔히들 한국교회가 기복주의 신앙이라고 해서 비판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을 사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복을 사모해야 한다.
↳하늘의 신령한 복은 물론이고, 땅의 기름진 복도 사모해야 한다.

-문제는 복을 사모하는데 믿음도 없이, 순종도 없이, 헌신도 없이, 노력도 없이, 수고도 없이, 복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해야 할 일을 먼저 말씀하신 다음에, 덧붙여서 그가 받을 복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복을 사모하는 것 자체만으로 기복주의 신앙으로 매도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예수 믿고 복을 받았는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는가?
↳땅의 기름진 복을 받았는가?
↳그럼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복이 있는가?

-우리는 복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후히 주시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시는 하나님의 복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② 우리가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각자는 내가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복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혹시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

-‘그 복을 나 혼자 독차지해야 하는데...’ 하며, 혹 기분 나쁜 사람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독차지해서 안 될 뿐만 아니라, 독차지할 수도 없고, 독차지하게 하시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서, 우리가 복의 통로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렇담 우리는 이런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나를 만난 사람은 다 복 받아라!”

-한 번 따라해 보자.
↳“나를 만난 사람은 다 복 받아라!”

-나는 여러분이 복을 받는데 통로가 되고 싶다.
↳나를 통해서 여러분이 복 받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나도 여러분을 만난 것 때문에 복 받게 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
↳더 나아가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주위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복의 통로로 축복의 유통자로 쓰임받기를 소원한다.

③ 하나님이 우리를 편들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내편을 들어주신다...’ 얼마나 든든한 말씀인가?
↳이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시인이 그랬다.
시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편이 되어주심을 믿었다.
↳그랬기에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익히 잘 알려진 얘기다.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한 참모가 링컨을 찾아왔다.
↳“각하, 하나님이 과연 우리 편일까요?”
↳그때 링컨이 이렇게 대꾸했다.
↳“하나님더러 우리 편이 돼달라고 하기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돼야지.”

-3절 말씀은 다른 의미에서, ‘너는 축복의 대상이 되라’는 말이다.
↳복 받을 대상으로 살아가라는 말이다.
↳복 받을 짓을 해야지, 저주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왜 우리가 축복의 대상으로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칭찬감이 되어야 하는가?
↳그 사람들의 저주가 우리에게 임할까봐 그런가...?
↳아니다.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기분 나쁘면 천국도 안 간다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 이웃과의 관계가 나쁘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는 길이 막히고 만다.

에필로그

-앞으로 얼마간 아브람과 함께 믿음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우리도 아브람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