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강해 10:엘 샤다이 :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창 17:1-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10-27 15:00
조회
1642



하나님의 이름 강해 10
엘 샤다이 :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창 17:1-8)
2019. 10. 27.


프롤로그

-케네스 E. 해긴이란 분이 있다.
↳그는 1917년 8월 20일 텍사스 주의 매킨리에서 기형 심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뛰지 못했고 빠르게 걷지도 못했다.
↳15세에는 완전히 침대에 누웠고, 몸은 거의 마비가 되었고, 의사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았다.
↳마음에 죽을 준비를 하고 있던 중에, 믿음으로 이 말씀을 붙잡았다.

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그 때 케네스 해긴의 나이가 17세였고, 하나님의 극적인 치유를 받은 후, 70년간 왕성하게 사역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가 책을 썼는데 책 이름을 <충분하고도 넘치는 하나님 엘 샤다이>이라고 했다.

-“엘 샤다이”란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이름이 또 있다.
↳여호와 이레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의 이름 강해 1번으로 살펴봤다.
↳하지만 시간적으로는 엘 샤다이가 여호와 이레보다 앞선다.
↳엘 샤다이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겠다는 약속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여호와 이레는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 하나님보다, 엘 샤다이 하나님을 먼저 만나고 체험한 셈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99세 때에는 엘 샤다이로 당신을 보여주셨고, 십몇 년이 흐른 후에는 여호와 이레로 보여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엘 샤다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자녀가 없었다.
↳자녀는 부모에게 울타리다.
↳아 물론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가 자녀의 울타리다.
↳그러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녀가 부모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하나님은 울타리도 없이 사라와 덩그러니 살아가는, 75세의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모태신앙도 아닌,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점은, 위대한 결단이자 순종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아브라함의 모습은 조금은 실망스럽다.
↳오락가락한 면을 보이고, 믿음도 불안 불안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간섭이 없었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열심이 빚어낸 작품인 것이다.

-사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작품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이정도 목사라도 된 것은, 하나님의 열심 덕분이다.
↳이정도 장로라도 된 것은, 이정도 권사, 집사라도 된 것은...하나님의 열심 덕택이라고 믿는가?

-바울도 그렇게 고백하지 않았는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어느 덧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다.
↳99세는 75세하고 또 다르다.
↳75세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당시 수명이 오늘날보다 길었으니까, 75세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99세는 자녀의 꿈을 접어야 하는 나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자식 하나 얻지 못하고, 제대로 된 상속자도 없이, 인생의 꿈을 접어야 하는 아브라함이다.

-물론 그에게 살붙이가 전혀 없지는 않다.
↳부르심을 받은지 10년이 되었을 때, 여종 하갈을 통해서 얻은 이스마엘이 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얻기 전에는, 청지기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했고, 살붙이인 이스마엘이 나자, 그를 상속자로 삼고자 했다.

-문제는 하나님이 그걸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걸 걸고 따라 나섰다.
↳그런데 하나님이 엘리에셀은 물론이고, 아브라함 몸에서 난 이스마엘도 상속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곤란한 상황인가?

-그 무렵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엘 샤다이로 나타나셨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엘 샤다이는 전능한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분이 전능하신 거 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생각하면 안 된다.
↳그분이 전능하심으로, 그분이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주실 수 있다.
↳그분이 전능하시지 않다면, 우리가 위기에 있을 때 맘 뿐이다.
↳위기에 있을 때 발만 동동 구를 뿐이지, 구해주실 수 없다.
↳자녀가 안타까운 상황에 있을 때, 부모로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때, 보호자로서 무력감을 느낀다.
↳부모로서 한계를 느낀다.
↳하나님께 자녀를 맡길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지금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분이 있는가?
↳그렇다면 엘 샤다이 하나님이 필요하다.
↳지금 내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곤경에 빠져 있는 분이 있는가?
↳그렇다면 엘 샤다이 하나님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의 최대의 희망은 아들을 얻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건 상속자를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런 희망을 꺾지 않으셨다.
↳그에게 상속자를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사라를 통한 아들 약속이었다.
↳그런데 그 약속 성취가 이상하게 지연되었다.
↳1년이 가고, 2년, 5년이 지났다.
↳75세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24년이 지나 어느덧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다.
↳아브라함도 아브라함이지만, 사라가 89세가 되었다.

-당시 사라의 몸 상태를, 성경은 이렇게 증언한다.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로마서에서도 같은 증언을 한다.
롬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사라의 나이도 나이지만,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다.
↳태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녀를 생산할 능력이 없는 몸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가?
창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웃어버렸다. 왜? 너무 잘 아니까?

-그럼 아브라함만 웃었는가?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마음에 확신했는가?
창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사라도 신랑 닮아서 웃어버렸다.
↳부부가 일체의 희망을 접고 있었다는 말이다.
↳희망이 끊어져 버린 절망의 상태였다는 말이다.
↳그 무렵에 하나님이 엘 샤다이로 등장하신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희망 끝”이라고 선언하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다.
↳그전에는 희망이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엘 샤다이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절대 희망만 있다.

-하나님이 사라가 웃은 것을 지적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창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누가복음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다.
↳그 때 마리아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러자 천사가 뭐라고 했는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역시 엘 샤다이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엘 샤다이를 만나기 전에는, 아브라함은 희망 제로 죽은 상태였다.
↳그런 아브라함이 엘 샤다이를 만남으로, 죽었던 희망이 되살아났다.
롬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믿음은 희망을 준다.
↳믿음에 희망이 따라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절대 희망이 있다.
↳사람은 위로는 줄 수 있고, 격려는 해줄 수 있으나, 참된 희망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사람도 거짓 희망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이 주는 희망은, 대부분 희망고문으로 끝나곤 한다.

-엘 샤다이를 전능하신 하나님 한 가지만 생각하기 쉬운데, 샤다이에는 가슴이란 뜻이 있다.
↳그래서 엘 샤다이를 따뜻한 가슴을 가진 하나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전능하신 분이 가슴까지 따뜻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엘 샤다이에는 하나님의 두 가지 성품을 담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부성적이라면, 따뜻한 가슴을 가진 하나님은 모성적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다.
↳예배를 시작할 때, 사도신경으로 고백하는 첫 마디가 이렇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모성적인 면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어 왔다.
↳그래서 이 점을 역이용한 얄궂은 이단에서는, 어머니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좌절을 이해하신다.
↳사라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신다.
↳그리고 그들 곁에 다가오셔서, 그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신다.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해주신다.
↳그들을 위기로부터 건져내주신다.

-우리 인생은 위기의 연속이다.
↳우리는 인생 여정에서, 크고 작은 위기와 맛딱드리곤 한다.

-여러분에게 어떤 위기가 있는가?
↳가정적인 위기인가?
↳배우자의 위기인가? 자녀의 위기인가?
↳경제적인 위기인가?
↳직장의 위기인가? 사업장의 위기인가?
↳사회적인 위기인가?
↳관계의 위기인가?

-위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내가 당하는 위기를, 아무도 몰라준다고 생각이 되면, 힘이 빠진다.
↳그런 나를 격려로 기도로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힘이 절로 난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다.
↳누군가 내 곁에서 힘겨워하고 있을 때, 가만히 지켜봐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라고 말해주자.

“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나는 당신을 앞으로도 기도로 응원하겠습니다.”

-그런데 세상인심이란 게 돌변하곤 한다.
↳어느 한 순간 등을 돌리며 돌아서버릴 때가 있다.
↳그러면 ‘아 내가 세상 헛살았구나!’ 하는 탄식이 나온다.
↳그럴 때 눈을 들어 위를 보기 바란다.
↳엘 샤다이 하나님을....
↳99세의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엘 샤다이를...
↳아무런 꿈도 없이 지내는 사라에게 찾아오신 엘 샤다이를...
↳그분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 엘 샤다이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성경에서 엘 샤다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욥기다.
↳엘 샤다이가 구약 전체에 48회 나오는데, 그중에 무려 31회가 욥기에 나온다.
↳고난 당하는 욥을, 엘 샤다이로 만나주신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 큰 고난을 겪는 욥을, 엘 샤다이로 함께 해주셨다.

-나 혼자 당하는 고난이 아니다.
↳나 혼자 고난의 현장에 내던져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엘 샤다이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고난 중에 있는가? 엘 샤다이를 부르기 바란다.
↳희망이 멀어져 가는가? 믿음으로 엘 샤다이를 부르기 바란다.

-엘 샤다이 하나님은 위기를 당한 사람 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문제 해결사로만 여기면 안 된다.
↳우리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로만 여기면 안 된다.
↳하나님은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인도해 가신다.
↳엘 샤다이는 과거에 우리와 언약하신 것을, 오늘 지켜나가시고, 미래에 이루어 나가신다.

-엘 샤다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좀 이상하지 않는가?
↳지금 아브라함이 99세인데 아들이 없다.
↳이스마엘이 있지만, 사라를 통해서 낳은 아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약속하신 아들이, 24년이 지났는데도 없다.
↳그런데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고 한다.

-엘 샤다이, 따뜻한 가슴으로 찾아와 주신 거 감사하다.
↳그러나 크게 번성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현재 상황과는 상관 없이 말씀하신다.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이는 믿음으로 받아야 할 말씀이다.
↳하나님은 과거의 나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오늘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미래의 나를 크게 번성하게 하실 분이다.

-대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게 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내가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코람데오’의 삶이다.
↳신전의식으로 사는 삶이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은 흠없이 살라는 말이다.

-허물 많은 우리가 어떻게 흠 없이 살겠는가?
↳그럼에도 “완전하라”는 말씀은, 엘 샤다이 하나님의 요구이다.
↳하나님 앞에서 살 때, 완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칙적으로는 맞는데, 현실적으로는 어렵게 느껴지긴 한다.

-미래의 번성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새 이름을 주셨다.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라함의 본명은 아브람이다.
↳아브람의 뜻은 “높으신 아버지”이다.
↳그만하면 이름으로서 좋은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새 이름 아브라함의 뜻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이다.
↳훨씬 큰 이름이다.
↳자신의 가족, 가문을 넘는 이름이다.
↳더 나아가 민족을 넘어서는 이름이다.
↳열국의 아버지, 열방의 아버지로 세우시겠다는 약속이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의 수도 우르에서, 남부럽지 않게 문명을 누리며 살던 아브라함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순종하고 따른 지 24년이 되었다.
↳그러다 이제 100세를 앞두고 있다.
↳자기를 이을 상속자도 없이, 어느 덧 그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 그를 붙들고, 하나님이 이름을 바꿔주셨다.
↳새 이름을 주신 것이다.
↳아직 높으신 아버지도 아닌데, 그를 향해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아멘”했다면, 대단한 믿음이다.

-그럼 실제로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었는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는가?
↳물론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도시 문명을 누리며 사는 75세의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그를 높은 아버지가 아닌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삼기 위해서였다.

-높은 아버지를 존경받는 아버지로 이해할 수 있다.
↳존경 받는 부모는, 이 땅에 사는 모든 부모의 소원이다.
↳존경 받는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원이다.
↳실제로 우리는 존경 받을 만한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돈 있는 것과 존경 받는 것은 다르다.
↳많이 가진 것과 존경 받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사실이지 존경 받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존경 받는 인생을 넘어, 가치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지 않는가?
↳우리가 가치 있게 살아야 할 이유이다.
↳우리의 순간순간이 예선이 없는 결승전 인생이지 않는가?
↳우리가 가치 있게 살아야 할 이유이다.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이 어떤 삶일까?
↳아브람이 아닌 아브라함으로 사는 것이다.

-존경 받는 삶을 살 거면, 아브람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아브람 가지고는 안 된다.
↳반드시 아브라함이 되어야 한다.
↳열국의 아비,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선교사로 전도자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
↳한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

-예전 교회학교에서 많이 부르던 찬양이 있다.
왕왕왕왕 나는 왕자다
하나님 나라에 나는 왕자다
내가 비록 어릴지라도
나는 왕 나는 왕 나는 왕자다.

공공공공 나는 공주다
하나님 나라에 나는 공주다
내가 비록 어릴지라도
나는 공 나는 공 나는 공주다

-하나님은 우리가 왕자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공주에 만족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왕자나 공주보다 가치 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원하신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선교사로 전도자로 살기를 원하신다.

엘 샤다이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엘 샤다이
하나님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분이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엘 샤다이
너로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약속하신 분이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엘 샤다이
새 이름을 주신 분이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