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30:참된 평안과 안식을 찾았습니까?(마 11:20-30)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6-12-18 00:00
조회
1268
마태복음 강해 30참된 평안과 안식을 찾았습니까?(마 11:20-30)2016. 12. 18. 프롤로그

-지미 핸드릭스라는 록 음악의 기타 연주자가 있었다.
그는 마약 중독자가 되어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 난폭하게 행동하며 문란한 삶을 살았다.
1970년 어느 공연의 마지막에 가서 그는 자기의 기타를 부숴버렸다
지미 핸드릭스의 공연이 마치자 관중들은 소리치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열광하던 박수갈채가 갑자기 그쳤다.
지미 핸드릭스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고요한 정적을 깨며 그는 관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누구 참된 평안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무대 뒤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갑작스런 초청에 응한 사람이 없었다.
며칠 후, 그는 약물과용으로 죽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리들리는 메리여왕 1세의 즉위와 함께 화체론적 성찬을 부정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다가 뒤에 옥스퍼드에서 화형(火刑)되었는데, 그 전날 밤의 일이다.
그의 동생은 찾아와서 그 밤 동안 위로하며 같이 지내자고 했다.
그때 리들리는 그것을 거절하면서 말했다.
"나는 오늘 밤 평안히 자고 내일 순교하겠다."

-지미 핸드릭스와 리들리, 두 사람 다 죽었다.
그런데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지미 핸드릭스는 죽는 순간까지 평안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약물을 의지하다가 약물과다복용으로 죽었다.
리들리는 죽는 순간까지도 평안을 유지했다.
무슨 차이였는가?

-평안은 관계에서 온다.
수 천만 원짜리 침대에 누워도 잠을 못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땀 내음이 나는 엄마 등 뒤에서도 평안히 잠든 아이가 있다.
평안과 환경이 전혀 별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환경을 뛰어넘어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평안은 서두름과 관련이 깊다.
조급증은 평안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급한 사람에게서 평안을 찾기 힘들다.

-몇 년 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인 빨리빨리 베스트 10’을 뽑은 적이 있다.
이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외국인의 눈에 얼마나 경이롭게 보이는지를 알 수 있다.
1.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고 있는데 손을 집어넣어 컵 잡고 기다리기.
2.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출발하면 뒤따라 뛰어가면서 추격전 벌이기.
3. 화장실 들어가기 전부터 지퍼 미리 내리기.
4. 삼겹살이 다 익기도 전에 먹기.
5. 엘리베이터에서 몇 초도 못 참고 ‘닫힘’ 버튼 누르기.
6. 3분 기다려야 하는 컵라면 3분도 되기 전에 뚜껑 열기.
7. 영화관에서 엔딩 자막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 나가기.
8.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 양치질하기.
9. 웹 페이지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닫아버리기.
10.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구매한 뒤 먼저 마시고 계산하기.

-해당되는 게 없지 않을 것이다.
하나도 없다면 한국인인지 검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나 역시 뼛속까지 한국인인지라 해당되는 게 있다.
우리는 평안을 구하면서도, 조급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을 범한다.
그러면 평안과의 간격을 영원히 줄일 수 없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이탈리아 성악계에 새로운 태양처럼 떠오르는 한국 여성이 한 명 있다.
푸치니가 작곡한 나비부인의 주인공인데,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발탁이 되었다.
한 극장에서 주연으로 발탁된다고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분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수년 동안 성악을 공부했다.
그리고 '내가 아직 빛을 못 보는 것은 내 눈 때문이구나! 쌍꺼풀 수술을 해야겠다' 하고는 남편을 겨우 설득시켜서 허락을 얻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제일 좋은 병원에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다.
익히 아는대로 쌍꺼풀 수술 세계적인 권위자는 다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모 성형외과에 어머니가 예약을 했다.
보통 예약을 하면 1년 뒤에나 할 수 있는데 어머니가 빽을 써서 날짜를 받았다.
그 여성은 수술 날짜가 결정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기뻤다.

-그 주일날 로마 한인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다.
목사님 설교 내용이 "왜 주어진 것을 감사하지 않느냐? 왜 여자들 쌍꺼풀 수술하느냐? 쌍꺼풀 수술했다가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냐? 나는 너한테 쌍꺼풀 안 주었는데... 네가 누구냐?'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그 여성은 설교를 들으면서, '이것은 내 문제구나! 나를 향하신 주님의 말씀이구나!' 적용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서울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 나 쌍꺼풀 수술 안 하겠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어머니가 화를 내면서 “어렵게 받은 날짜니까 꼭 받아야 돼” 라고 했다.

-그래도 안 받겠다고 하고, 수술하기로 한 날에 열린 콩쿠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 콩쿠르 현장에 독일의 유명한 극장의 극장장이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비부인으로 발탁이 된 것이다.
조연도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주연을 하려니까 처음엔 얼마나 실수가 많겠는가?

-그래서 극장장에게 어느 날 물었다.
"나를 왜 처음부터 주연으로 뽑았습니까?"

-그 극장장 대답이 압권이었다.
“네 눈 때문이다.”

-본래 나비부인은 일본 여인이지만, 일본 여인들의 가창력은 한국 여성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여성은 전부 쌍꺼풀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여성을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 유럽 관객이 볼 때 일본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만한 가창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쌍꺼풀 없는 동양 여성은 처음 봤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탓하는 사람은 평안과 거리가 멀다.
환경탓, 외모탓, 남탓, 부모탓,

-잘 되면 내 탓, 잘못 되면 조상탓이란 말이 있다.
그런 사람은 평안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평안은 관계에서 온다.
참된 평안은 위에서 내려온다.
진정한 평안은 위에 계신 주님과의 관계에서 온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평안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문제가 하나 있다.
평안을 담을 그릇이 준비돼 있냐는 것이다.
평안은 내적인 문제이다.
평안은 속사람의 문제이다.
속사람이 깨끗해야 평안을 담을 수 있다.

-속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회개이다.

-주님이 그 점을 지적하셨다.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예수님은 모든 고을에서 권능을 똑같이 행하시지 않았다.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고을이 있었고, 적게 행하신 고을이 있었다.
고향 고을에서 권능을 적게 행하신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이유도 확실하다.마 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믿지 않음으로 말이암아서다.
고향이라고 일부러 덜 행하셨던 게 아니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예수님이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믿음 없는 사람이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통로가 믿음인데, 믿음이 없다면 그 통로가 막혀 있다는 거 아닌가?

-권능이 많이 행해진 고을의 문제가, 믿음의 문제는 아님을 확인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실 수 있도록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는 하지 않았다.

-20절 말씀을 다시 보자.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신 이유가 나온다.
그 고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고 그건 중요한 관심사도 아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시고 무엇을 기대하셨는지가 중요하다.
말씀에 나오는 대로 회개를 기대하셨다.
그러나 그 고을은 회개하지 않음으로 주님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셨다.

-권능이 많이 나타난다고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권능이 많이 나타남에도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 책망받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고을의 실명을 거론하셨다.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다.
주님이 특별히 그 고을들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그 고을들에 무슨 억한 심정이 있어서 그러신 게 아니었다.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많은 권능을 경험하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동네에 들어와 권능을 행하실 때 너도 나도 몰려갔다.
예수님이 사역을 끝내고 떠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옛 생활을 이어간다.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시기 이전의 삶을 살아간다.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회개를 촉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평안을 위해서다.
그들에게 평안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평안이었기 때문이다.
평안은 회개를 통해서 오기 때문이다.

-회개는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회개는 죄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평안이 찾아온다.
평안은 회개 후에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회개는 아프다.
회개는 고통스럽다.
회개는 찢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는 마음을 찢는 것이다.
회개는 죄 덩어리를 도려내는 것이다.
그 후에 평안이 찾아온다.

-회개는 덮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묻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숨기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드러내는 것이다.
회개는 죄를 들추는 것이다.
회개는 허물을 까발리는 것이다.
회개는 모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 후에 평안이 온다.

-회개는 때가 있다.
회개에 주어지는 시간이 있다.
회개할 기회를 놓쳐 망한 두로와 시돈, 소돔을 예로 들고 있다.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으면, 두로와 시돈, 소돔이 될 수 있다.
아니 그들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왜? 두로와 시돈, 소돔은 이방 나라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은 주님의 권능을 가장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다.
주님이 권능만 행하시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께 복음을 가장 많이 들었던 사람들이다.
주님이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이었는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하라는 말씀을 어느 고을보다 많이 들었을 거라는 말이다.
그들은 회개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알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눅 12: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우리가 알려고 하는 것은, 행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는 이유는, 주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다.

-주의 뜻은 아무나 알 수 없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주의 뜻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는다고, 주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
주의 뜻은 인간의 지혜와 슬기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나처럼 둔하고 미련한 사람은 주의 뜻을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주의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다.
어린 아이는 수용적이다.
자기 생각의 틀이 굳어있지 않아서이다.
차츰 성장하면서 생각의 틀이 굳어간다.
어른이 되면 아주 단단해진다.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간에 예수 믿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한 것이다.
또한 타종교에서 개종하여 예수 믿는 사람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종교 간에 통하는 게 있다지만, 그래도 그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의 뜻은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
먼저 아들이신 예수님이 아버지를 아신다.
또 있는데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이다.
그럼 아버지를 아는 우리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이다.
우리가 아버지를 아는 것은, 예수님의 소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시려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으셨다.

-우리에게 그토록 아버지를 알게 하고자 한 이유가 무엇인가?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우리는 이 땅에서 평안을 누려야 한다.
지상 천국은 심령 천국에서 비롯되고, 심령 천국은 평안에서 비롯된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으로 평강을 말했다.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평강을 누리고 있는가?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환경과 무관하게 평안을 유지하는가?
자기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신앙의 깊이를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심령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환경에 따라 심령이 요동치고, 한 번 요동치면 걷잡을 수 없다면, 아직 신앙이 얕은 것이다.
깊은 은혜의 강이 아닌 얕은 물가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말라.
신앙이 깊은 사람은 어려운 환경을 만났을 때,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인데 왜 안 흔들리겠는가?
처음엔 심령이 요동친다.
기도하는 것마저 힘들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길게 가지 않는다.
다시 심령에 평안을 되찾게 된다.
환경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징계인지, 시험인지, 연단인지, 고난의 보자기인지 깨닫게 된다.
그에 맞게 주님 앞에 나아간다.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얕은 물은 소리를 내어 흐르지만,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얕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고 유속이 빠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도 내지 않거니와 유속도 가늠할 수 없다.
신앙의 깊이가 내공이다.
신앙 역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평강을 잃지 않는, 깊은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기 바란다.

-평안은 안식으로 연결된다.
평안과 안식은 이란성 쌍둥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의미는 비슷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평안은 ‘걱정이나 탈이 없음’, ‘무사히 잘 있음’이라고 풀이 되어 있다.
안식은 ‘편히 쉼’이라고 풀이 되어 있다.

-안식을 위해서는 평안이 필요하다.
마음에 걱정이 있고 마음에 탈이 났는데 편히 쉴 수 있겠는가?
그건 정말이지 불가능하다.
그럼 걱정과 탈로 가득한 인생에서, 어떻게 평안을 누린단 말인가?

-주님이 해답을 제시하셨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와 무거운 짐을 주님께로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해결책이 없다.
우리는 수고와 무거운 짐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오직 주님이 답이다.
주님께로 가져가는 게 답이다.

-어떻게 그것들을 주님께로 가져갈 수 있는가?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로 가져갈 수 있다.
어차피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을 붙들고, 괜히 힘 빼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서는 겁이 많은 사람이 되라.
작은 문제만 생겨도 기도하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 겁내지 않고 간 큰 사람이 있다.
분명히 기도해야 할 상황인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지쳐 쓰러졌는데도, 기도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안식은 주일성수와 깊은 연관이 있다.
주일성수는 축복이다.
육체와 영혼이 쉼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주일성수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다.
주일성수를 통해 하나님의 안식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안식을 통해 심신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필라델피아의 재벌이었던 스티븐 지라드(Stephen Girard) 씨는, 어느 토요일에 직원들에게 주일에도 나와서 방금 들어온 선박의 짐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한 청년이 지라드 씨 앞으로 공손히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내일이 주일이라 교회에 가야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나와 헤어지는 수밖에 없겠군."
"그것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형편이지만, 주일에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총무과로 가보시오. 그동안 일한 급료를 지불해 줄 것이요."

-그 후 청년은 근 한 달 동안이나 발이 부르트도록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했으니, 직장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필라델피아 시의 한 은행장이, 지라드 씨에게 전화를 걸어, 새로운 은행을 하나 열게 되었는데, 혹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본 지라드 씨는, 전에 자신이 해고했던 그 청년을 추천했다.

-"하지만 자네는 그 청년을 해고하지 않았나?"
"허긴 그렇지. 그 청년이 일요일에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해고했네. 하지만 함부로 자신의 신념과 뜻을 바꾸지 않는 사람에게라야, 자네가 열겠다는 그 새 은행의 돈을 맡길 수 있지 않겠나?"

-그 청년은 지라드 씨의 친구인 은행장에게 발탁되어, 전보다 훨씬 저 좋은 조건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신앙을 위해 오늘 손해 보는 것이, 내일의 축복으로 돌아올 것을 믿으라.
주일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라.
예배를 드리는데 생명을 걸어보라.

-우리에게 안식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안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는 달려가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멍에를 메고, 사모하는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달려가야 한다.

-예전 우리의 멍에가 인생의 수고와 무거운 짐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멍에는 사명이다.
예수 믿기 전의 멍에는 벗어던져야 한다.
예수를 이미 믿으면서, 그 멍에를 아직 메고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두 개의 멍에를 동시에 멜 수 없다.
둘 중에 하나만 멜 수 있다.
어느 하나를 메면, 다른 것은 벗어야 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어떤 멍에를 메고자 하는가?
세상이 주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인 멍에인가?
주님이 주신 사명의 멍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