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나눔축제(2016):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요 14:6)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6-12-11 00:00
조회
1028
행복나눔축제(2016)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요 14:6)2016. 12. 11. 프롤로그

-[다시 떠난 탕자]의 이야기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났던 아들이다.
아버지를 졸라서 자기 몫의 재산을 챙겨서, 아버지 집을 떠났다가, 거지꼴이 되어 집에 돌아왔던 그 탕자이다.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극진한 사랑으로 맞이했다.
탕자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 집에서 잘 살았다.

-그런데 탕자가 또 집을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반대하셨지만, 탕자는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돈을 벌어 귀한 선물을 사드리려고, 집을 떠난 것이다.
다시 떠난 탕자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탕자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말이다.
5년 후 탕자는 성공했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드릴 좋은 선물을 가지고, 기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탕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바로 한 달 전,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탕자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
그리고 그를 더욱 더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아버지의 유서였다. “사랑하는 아들아,나에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단다.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바로 너와 함께 있는 것이었단다.네가 정말 보고 싶구나.”

-다시 집을 떠났던 탕자는, 자기가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을 사드리겠다고 집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바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불효를 하고 만 것이다.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그것이 생명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예수님을 어떻게 아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해 바로 알고 있는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이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 자신의 증언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자기 스스로를 뭐라고 증언하셨는가?“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첫째, 예수님은 길이다.
성경에서 길이란 단어 앞에 정관사 The가 붙어 있다.
그 길, 유일한 길, 하나밖에 없는 길이란 뜻이다.
예수님은 그 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하나밖에 없는 길이다.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닦아야 한다.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골목길도, 심지어 오솔길도 누군가가 내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도 그렇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그 길을 내신 것이다.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길을 닦으신 것이다.

-인간이 불순종하여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격이 벌어졌다.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수렁이 생긴 것이다.
예수님은 그 간격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신다.
예수님은 그 깊은 수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길이 되신다.

-성경에선 그런 예수님을 중보자라고 했다.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자가 무슨 뜻인가?
국어사전에 보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그 관계를 성립시키고 화해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사람. 예수를 이른다’고 나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그 관계를 성립시키고, 화해를 가져오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고 했으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 관계가 깨진 상태요, 관계의 복원이 필요한 상태였다는 말이다.
그 깨진 관계를 복원시켜주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 깨진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이 예수님이시다.

-성철 스님은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평생 수많은 남녀 무리를 속여, 내 죄가 수미산을 넘는도다. 산채로 무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도다.”

-그분은 일평생 득도를 위해 고행을 했던 분이었지만, 열반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열반에 가는 길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미혹했다는 뼈아픈 고백을 하며, 자신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며 한이 만 갈래나 된다고 했다.

-성철 스님은 남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고행을 한 분이다.
오직 수도에 평생을 바친 대단한 분이다.
그럼에도 끝내 영생의 길을 찾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니 먹고사는 문제에 붙들려, 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보통 사람들이, 영생의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 길을 알고 있다.
우리가 크게 많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가 특별한 지혜를 가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됐는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다른 길은 없다.
정말이지 다른 길은 없다.?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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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예수님은 진리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보면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를 말한다.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는 변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조금이라도 변한다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다.

-예수님이 진리일 수 있는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말은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유일한 존재이시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표하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발표한 이 상대성원리는 진리가 아니다. 나의 학설을 뒤집어엎을 또 다른 학설이 나오게 되면, 내 학설은 무시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성경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진리이다.”
아인슈타인도 진리의 특징을 불변성에 두었다.

-만약에 진리가 바뀐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진리가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해 보라.
진리가 사람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해 보라.
그건 재앙이요 끔직한 악몽이다.
갈팡질팡 할 것이다.
뭘 믿고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불안해서 못살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다행인가?
예수님이 불변의 진리라는 것이 말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변함없는 진리라는 사실이 말이다.

-1866년 영국의 한 대학에서 아프리카 탐험과 선교에 대해서 증언해,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던 사람이 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이었다.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하는 등, 아프리카 탐험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날 "가장 힘들었을 때 어떻게 했나요?" 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언어가 안 통하는 사람들, 저를 불신하는 사람들, 심지어 적대적인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괴로웠을 때,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주님의 말씀에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는 이 영원한 진리에 일생을 걸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다른 진리는 없다.
정말이지 다른 진리는 없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진리이다.
예수님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진리이다.
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단 하나밖에 없는 진리이다.-------------------------------------------------------

-셋째, 예수님은 생명이다.
생명이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보면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한다.

-왜 예수님이 생명이신가?
예수님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창조 사역에 함께 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려 내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죽은 후에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이 죽은 것으로 끝났다면, 그분은 생명이 될 수 없다.
자기를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실 수 없다.
우리가 굳이 그분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그분의 제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이유 역시 없다.

-모든 종교에 공통점이 있다.
죄를 가지고는 좋은 데 못 간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에 차이점이 있는가?
죄의 해결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다른 종교는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자기 죄 값을 스스로 알아서 갚으라고 한다.

-기독교는 어떤가?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신다.
우리 스스로는 죄 값을 갚아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찾아와 대신 갚아 주신다.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시다.

-성경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인이란 성에 한 과부가 외아들과 살고 있었다.
그 아들은 잘 자라 어느 덧 청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들이 그만 죽고 말았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죽었으니,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죽은 아들의 상여를 따라가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천 갈래 만 갈래 찢겨졌을 것이다.

-상여가 막 동네를 벗어날 즈음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동네로 들어가고 계셨다.
죽은 자들의 행렬과 예수님 행렬이 맞닥뜨린 것이다.

-예수님은 상여를 멈추게 한 후, 죽어 관속에 누운 청년을 향해 명령하셨다.
“청년아, 일어나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죽은 청년이 살아났고, 살아난 아들은 달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불경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도의 구시라성의 시다림이란 한가한 숲속을,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그 숲속에서 한 젊은 과부가 애통하게 울고 있었다.
외아들이 죽어서 너무나 처절하게 울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 내 외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이 과부는 석가모니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 때 석가모니는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일어나서 마을에 가서 한 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을 한 줌씩 얻어다가, 죽을 끓여 먹이면 너의 아들이 살아날 것이다.”

-젊은 과부는 기쁜 마음으로 마을로 내려가,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다녔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부처님, 하루 종일 다녀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이 없습니다. 한 톨의 쌀도 못 얻고 이렇게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 때 석가모니가 한 말이다.
“인생은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법,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 너무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석가모니는 이 한마디의 말을 깨닫게 해주려고, 젊은 과부를 하루 종일 걷게 만들고, 허탈 상태에서 기진맥진했을 때, 가장 인간적인 지혜의 말로 위로했던 것이다.

-똑같은 과부의 외아들의 죽음이었다.
석가모니는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셨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생사문제를 제기했다.
예수님은 생사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셨다.
이게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김성화 목사님이란 분이 계신다.
[나는 이렇게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극락의 불나비]라는 책을 쓴 분이다.

-이분은 경북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수학선생님을 하던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삭발을 하고, 남은 생을 도를 닦으면서 진리 가운데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절을 찾았다.

-그 안에서 도를 닦다, 그 바닥이 너무 썩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해 순수한 불교대학을 세우려고 하다가, 불교단체들의 내분에 휘말려 교도소에 수감되게 되었다.
그는 교도소 도서관에서 불경인 화엄경, 법화경, 능엄경, 원각경 등을 빌려 보았다.
그런데 교도관이 불경을 잘 대출해 주다가, 하루는 느닷없이 대출 신청한 불경은 가져오지 않고, 기드온 협회에서 발행한 신약성서를 갖다 주었다.

-당황한 스님이 물었다.
“불경은 어떻게 하고 대출 신청도 하지 않은, 기독교 책을 가지고 왔소?”
“불경은 대출되고 없어서, 할 수 없이 기독교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스님 심심할 때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그날은 참선을 하면서 보내다가, 다음날부터 도저히 심심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았다고 한다.
평소에 그렇게 염원하던 생사의 문제가 성경을 읽다가 해결된 것이다.
그는 출소 후 개종하여 신학을 하게 되었고, 목사가 되어 불교신자들을 전도하는 일에, 자기의 남은 삶을 드리고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이다.
정말이지 다른 생명은 없다.
다른 누구에게서도 생명을 찾을 수 없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자에게만 생명이 있다.
예수님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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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자신을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고 하셨다.“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선언이다.

-지구상에는 약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다.
이들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정해놓은 법에 따라야 한다.
출입국관리법을 준수해야 한다.
비자가 있어야 그 나라에 갈 수 있다.

-미국에 간다고 하자
만일 비자를 받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처음이니까 한 번 봐 줄 거 같은가?
모르고 그랬다고 하면, 한 번은 눈감아 주겠는가?
이민국 관리들은 그 사람을 “추방”이라는 낙인과 함께, 본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천국이 하나님의 나라니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 있다.
천국 비자가 필요한 것이다.
천국 비자가 없이는,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 비자를 누가 발급하는가?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 따라 발급하신다.
하나님이 발급하신 비자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혹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아니 왜 꼭 예수님이어야 하는가?
왜 부처님은 안 되고, 공자님은 안 되는가?
그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 맘이다.
천국도 나라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천국 비자 발급 기준을 정하여 발표하셨다.“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누가는 거기에 좀 더 보충설명을 하셨다.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람은 살아가면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소홀히 하기 쉽다.
과거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지나온 시간이 아닌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안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건 하나님의 관심사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이다.
지금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라.
지금부터 예수님과 함께 살기를 결단하라.

-지금까지의 삶과 지금부터의 삶을 결정짓는 시점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터닝 포인트라고 한다.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