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식/마태복음 강해 6:세례는 최고의 축복입니다.(마 3:13-17)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6-11-27 00:00
조회
1205
마태복음 강해 6세례는 최고의 축복입니다.(마 3:13-17)2016. 11. 27. 프롤로그

-오늘은 세례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마태복음 강해를 시작하여 1:1부터 차례로 강해를 했는데, 오늘 본문은 건너뛰었다.
마태복음 강해를 시작하고, 그리 멀지 않아 세례식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계획은 우리가 세우지만,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전체 교우들을 대상으로, 세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날 잡아서 하는 게 좋겠다 싶다.

-세례는 최고의 복이다.
세례 많이 주는 교회가 복 있는 교회이다.
세례 많이 주는 목사가 복 받은 목회자이다.
교회에서 가장 기쁜 날이 언제일까?
세례식 하는 주일이다.
오늘이 주일 중에서도 가장 기쁜 주일이다.

-전통적으로 세례는 사순절 기간의 훈련을 거쳐서, 부활절에 행해졌다.
우리교회도 올해는 부활절에 세례식을 하려고 목회계획을 잡았다.
그런데 상반기에는 세례 대상자가 마땅치 않아, 올해를 한 달 앞둔 오늘 세례식을 하게 됐다.
작은 규모의 교회에서, 매년 세례식을 거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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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례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겠다.
교단 [예배 예식서]를 참조하겠다.
세례는 고대 여러 종교의식에서도 발견된다.
기독교만의 고유적인 것이 아니다.
기독교 세례는 유대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유대교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부정한 것을 씻기 위해 행하였던 정결의식이 있었고, 개종자들에게 요구했던 세례의식이 있었다.
특히 유아에게 행하였던 할례의식은, 기독교의 유아세례에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근거이다.

-다음은 교단 [헌법 제1편 교리]에 나오는 세례에 대해 소개하겠다.

-먼저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조이다.
10. 그리스도가 세우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다.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음이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합하는 표적과 인침인데, 성령으로 거듭남과 새롭게 하심과 주께 속한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자와 그들의 자녀들에게 베푸는 것이요,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떡과 잔에 참여하는 것이다. (중략)
성례의 유익은 성례 자체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성례를 베푸는 자의 덕으로 말미암음도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복 주심과 믿음으로써, 성례를 받는 자 가운데 계신 성령의 역사하심에 있다.

-다음으로 요리문답이다.
문 93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례는 어느 것들입니까?
답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문 94 세례가 무엇입니까?
답 세례는 성례의 하나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을 가지고 씻는 예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음과, 은혜의 언약의 혜택들에 참여함과,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된다는 약속을 표시하고 확증하는 것입니다.
문 95 세례는 누구에게 베풀 수 있습니까?
답 세례를 보이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자기의 믿음과 복종을 고백한 이후이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교회의 회원과 같은 사람들의 아기들은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예전이다.
그것은 보이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무리들이, 그 교회에 참가하는 엄숙한 입회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에 대해서는 은혜의 계약에 인침을 받는 표가 되며,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 중생과 사죄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으로 살겠다고,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을 봉헌하는 표와 인침을 의미한다.
이 예전은 그리스도 자신이 제정하신 것이며, 세상 끝 날까지 교회 안에서 집행될 것이다.
세례 성례는 어느 사람에게든지 한 번만 베풀 것이다.

-세례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살펴보겠다.
교단 [예배 예식서] 내용을 인용하겠다.
신약성경에서는 회개와 신앙에 의해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받은 세례가, 여러 가지로 효과가 있으며 의미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세례를 통해 우리의 신앙은, 다음과 같은 특전을 얻게 되는 것이다.1. 세례는 깨끗하게 씻음을 받았다는 상징의 증거로 주님이 주신 것이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소멸시키시고 잊으셨다는 확증으로 받은 것이다. 2. 세례는 성도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게 함으로 성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이 된다. 3.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모든 은사에 동참할 수 있다는 증거를 얻게 된다. 4.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이신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속에 일치한다는 뜻이 있다. 5. 세례의 물은 십자가의 보혈과 천지창조, 노아 홍수, 출애굽 때의 물을 상징함으로써 보혈로 죄를 씻음과 창조의 아름다움과 노아와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과 관련된다. 세례 의식에서 물을 뿌릴 때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새로운 계약을 보증하게 된다. 6. 세례는 죄에 대해 죽고 새 생명으로 다시 산다는 뜻이다. 7. 세례는 구원의 표로서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세례는 수세자가 자신의 생명을 바치기 위한 부름의 표이다. 생명뿐만 아니라 그의 생활, 시간, 물질, 기술까지도 주를 위해 바치고 섬기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세례에는 첫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뜻이 있고, 둘째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여 교회를 위하여 산다는 뜻이 있고, 셋째로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 있게 산다는 뜻이 있다.

-성경에서 세례는 물에 몸을 담그는 방식이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하던 대로, 강이나 호수의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가야 했다.
지금도 일부 교파는 물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세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연중 어느 때든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설교단 뒤에 세례당을 갖춘 교회도 있다.
그들은 세례라는 단어도 못마땅해 하여, 침례(浸禮)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침례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날씨나 건강의 문제로 침례가 불가능할 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에 몸을 담그는 대신, 물을 뿌리는 세례가 있다.
집례자가 손을 물그릇에 담갔다가,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뿌려주는 방식이다.
또 약간의 물을 부어주는 세례도 있다.
집례자가 손으로 물그릇에서 물을 떠서,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부어주는 방식이다.
물에 담그는 것을 ‘침수’, 물을 뿌리는 것을 ‘살수’, 물을 붓는 것을 ‘관수’라고 하는데, 감사하게도 우리 교단에서는 이 세 가지를 다 허용하고 있다.

-침례냐 세례냐 보다 더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는 유아 세례다.
우리 교단은 24개월 미만의 아이들에게, 부모 중 한 사람이 세례교인이면 유아세례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교파에서는 성경에 유아 세례가 안 나온다는 이유로, 유아세례를 부정하기도 한다.
자기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을 때, 세례를 주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행 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을 때, 어린이나 유아는 세례에서 제외시켰을까?
행 16: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간수와 그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을 때, 어린이나 유아는 세례에서 제외시켰을까?
다 같이 받았지 않았겠나?
그 당시는 예수를 믿는 동시에 세례를 받았었다.

-[교단 헌법 제2편 정치]에 보면 교인의 구분이 나온다.-제14조 교인의 구분
교인은 원입교인, 유아세례교인, 세례교인(입교인)으로 구분한다. 1. 원입교인 :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고 공동예배에 참석하는 자2. 유아세례교인 : 세례교인(입교인)의 자녀(2세 미만)로서 유아세례를 받은 자3. 세례교인(입교인) : 유아세례교인으로서 입교한(15세 이상) 자 또는 원입교인(15세 이상)으로서 세례를 받은 자
교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세례를 받았느냐의 여부이다.

-제16조 교인의 권리
세례교인(입교인)이 된 교인은 성찬 참례권과 공동의회 회원권이 있다.
교회법적으로는 세례를 받아야 교회의 정회원이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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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세례란 말이 최초로 등장한 곳이, 마태복음 3장이다.
1절에 세례 요한이 등장하고, 6절에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것이 등장한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줄 때 조건은 하나였다.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는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 곧 주의 길을 준비하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데는 관심이 많다.
자기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온갖 열정을 불사를 수 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렇지 않았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에 만족했다.

-사실 세례 요한이 딴 맘을 먹을 수도 있었다.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했는데,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에서 요단 강 사방에서 몰려왔다.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면서, 세례 요한 자신에게 세례를 받았다.
심지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까지도, 세례를 주는 현장으로 찾아왔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했다고 했다.
세례 요한을 향한 기대와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세례 요한의 권위가 대단했다.

-무리들이 세례를 받고자 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리들이 세례를 받고자 물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군인들이 세례를 받고자 물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다.
자기들에게 몰려오는 사람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고, 겸손히 자기 뒤에 오실 이를 전했을 뿐이었다.“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이런 겸손이 그를 큰 자로 만들었다.
주 앞에 자신을 그렇게 낮추니, 주님이 그를 높여주셨다.“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주 앞에 낮추면 주님이 높여주십니다.”

-어떻게든 자기 좀 알아달라고 하는 시대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이런 식으로 자기를 PR하는 시대에, 세례 요한처럼 살면 바보 소리 듣는다.

-오래 전에 가수 윤복희 씨가 불렀던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가 있다. 외로움도 견뎌나가겠소
바보란 소릴 들어도 좋소
나를 비웃는 그 비웃음들을
그 사랑으로 받아주겠소
이 모든 것이 힘들다는 것을
당신은 나에게 알려주었소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 넓고 크오
그래서 나는 살아가겠소

-오늘 세례를 받으면, 이런 각오로 살아야 한다.
이미 세례를 받았으면, 이런 결단으로 살아가야 한다.

-한참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고 있을 때였다.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예수님이 요단 강에 이르셨다.
세례 주느라 정신없는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이 성큼성큼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자신이 세례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생각지도 못한 일인지라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니, 그가 당황할 법도 하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말렸다.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무슨 말로 말렸는가?"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알고 있다.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그는 자기 앞에 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다.
한 마디로 자기는 그분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이 지금 자기에게 세례를 받겠다며, 요단 강으로 나아오신 것이다.
그러니 요한이 손사래를 치며 예수님을 말리는 게 당연하다.

-담임목사님의 배려로 교육전도사로 있으며, 장년교우들에게 설교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이 앞자리에 떡 앉아 계시면, 설교가 잘 안 되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말이 헛 나오고 혀가 꼬이곤 했었다.
그런데 만일 어느 날 담임목사님이 교육전도사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더니, “교육전도사님, 저에게 안수 좀 해 주세요” 했다고 치자.
세상에 어떤 교육전도사가 담임목사에게 안수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세례 요한한테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담임목사가 교육전도사한테 안수받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말리는 게, 너무너무 당연하다.

-그때 예수님이 묘한 대답을 했다.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공동번역으로 보면 보다 뜻이 분명해진다.15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예수께서 하자시는 대로 하였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말뜻을 깨달았다.
예수님이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그 안에 진정성이 담긴 말임을 알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짐을 알게 되자, 마음에 부담은 되지만,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세례 요한은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지만, 이번처럼 긴장이 되기는 처음이다.

-목사가 되고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세례를 베풀어 왔다.
그 중 네 번이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안수를 받고 처음 베푼 세례이다.
장례는 부목사 때도 할 수 있지만, 세례는 부목사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내가 준 첫 번째 세례는 2001년 담임목사로 부임하고서였다.
난생 처음 베푸는 세례라, 얼마나 떨렸고 긴장했는지 모른다.
세례식을 위해 한 주간 한 끼 금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세례를 준 사람들은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다.

-두 번째는 우리집 애 유아세례이다.
첫째 예람이는 전임전도사 시절에 구리제일교회에서 손태용 목사님께로부터 받았다.
둘째 예준이는 부목사 시절에 포항동일교회에서 최우영 목사님께로부터 받았다.
막내 시호는 오천남부교회에서 나한테 받았다.
담임목사님한테 유아세례를 받게 하는 것도 좋았지만, 내 아들에게 내가 유아세례를 주니, 감회가 남다른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진중세례식이다.
가까운 해병대 교육훈련단 교회에서 실시하는, 훈련병 세례식에 참석하게 됐다.
그 때는 우리교회에서 찬양사역을 시작하기 전이라, 그 교회에도 처음으로 갔는데, 까까머리 훈련병들이 교회당을 꽉 메우고 있는데, 시작부터 은혜가 됐다.
세례식인데 그날 예배에 참석한 훈련병들은 다 나오는 거였다.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 나오고,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기도 받기 위해 나왔다.

-내 생애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 베풀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세례를 줄 때 문구가 정해져 있는데, 몇 십명에게 반복하여 베풀다 보니, 나중에는 말이 헛 나오기도 하여,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네 번째 역시 진중세례식인데 올해 5월에 있었다.
대구경북지역 10개 노회에서 주관하여 논산육군훈련소 연무관에서 진중세례식을 한 것이다.
보통 때는 세례식을 연무대교회에서 하는데, 그때는 예상했던 4천명이 넘어서 실내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겨서 했다.
내가 논산훈련소 26연대 출신이라, 퇴소식 할 때는 논산 쪽을 보고는 오줌도 안 누겠다고 했는데, 30년의 세월이 지나서, 그것도 목사가 되어 그곳에 진중세례식을 위해서 가는데, 왠지 모를 감회가 있었다.

-세례를 베풀기 위해 연무관에 도착했는데, 까까머리를 한 6천명이 넘는 훈련병들이 모여 있는, 그 엄청난 광경 앞에,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쩍 벌어져 한 동안 닫히지 않았다.
그래도 해병대 세례식 경험이 있어서, 1인당 100명 이상에게 세례를 베푸는데도, 허리 아픈 거 빼고는 큰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었다.
마치고 포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내 생애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의 감동이 밀려왔다.

-그 경험을 통해서, 세례받는 사람에게도 감동이 있을 수 있지만, 세례 주는 사람에게도 감동이 있음을 알게 됐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였다.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세례 요한만 보고 들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장 놀란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예수님을 지식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세례 사건을 통해서 온전히 알게 됐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늘의 음성을 통해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이다.

-그 예수님이 세례를 통해, 몸이 물에 잠기며 죽음을 상징했고, 물에서 올라오시며 부활을 예고하셨다.
그렇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연합을 이룬다.

-오늘 세례를 받는 여러분, 또한 세례를 이미 받은 여러분,
여러분의 남은 삶을 예수님과 행복한 동행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