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강해 13:아론의 첫 제사(레9:1-24)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3-12-17 12:34
조회
81


레위기 강해 13
아론의 첫 제사(레9:1-24)
2023. 12. 17.


프롤로그

-레위기 9장은, 위임식을 끝낸 제사장이 첫 제사를 드리는 내용이다.
↳제사장 위임식은 칠 일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제 팔일은 위임식 후 첫 날을 말하는 것이다.
↳제사장으로서의 사역 첫 날을 말한다.
↳제사장이 첫 사역을 하기 위해서, 칠 일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우리는 위임식 하면, 행사를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레8:33 위임식은 이레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끝나는 날까지 이레 동안은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34 오늘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게 하시려고 명령하신 것이니
35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머물면서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위임식을 행하는 7일 동안,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회막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것이다.
↳순간 방심하여, 회막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나오면 죽는다.
↳극도의 긴장과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팔 일은 죽음의 고비를 넘긴 첫 날인 셈이다.
↳다시 태어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첫 날이기도 한다.

-왜 하필 7일일까?
↳하나님의 숫자 3과 세상의 숫자 4를 더한 7은 완전수를 상징한다.
↳위임식 7일은 완전한 성결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완전한 성결이 가능한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게 하시려고 명령하신 것이니”

-하나님이 속죄해주셔야 가능하다.
↳속죄를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다.
↳제물로 수송아지를 드렸다.
↳수송아지를 속죄의 희생 제물로 드렸다.
↳그 수송아지가 죽을 때, 제사장 본인이 죽는 것이다.
↳그러니까 7일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자신이 죽는 기간이다.
↳7일은 옛 자아가 철저히 부서지는 기간이다.
↳이중표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면, 별세를 경험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7일이 필요하다.
↳7일에서 팔일로 넘어가는 별세의 경험이 필요하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과정인 7일을 거친 사람이다.
↳7일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라도 흔들리기 쉽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구원의 확신까지 흔들리곤 한다.

-그런 사람들은, 바울의 이 고백이 실감나지 않는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7일 이후에 8일이 온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먼저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 수 없다.

-질문하겠다.
↳그 7일을 거쳤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7일을 거쳤는가?
↳그리스도 없이 살았던 지난 7일의 통렬한 회개 없이, 이 자리에 나와 있지 않는가?

-7일은 별세 기간이지만, 동시에 준비 기간이기도 하다.
↳8일째부터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7일째까지 준비해야 한다.
↳인격은 물론이고, 기술적인 부문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아무리 테크닉이 뛰어나도, 인격에 하자가 많으면 사역을 감당하기 어렵다.
↳반대로 아무리 인격이 고매해도, 테크닉이 부족하면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없다.
↳인격이 완전한 사람도 없고, 기술이 완벽한 사람도 없다.
↳일정 수준을 의미한다.

-일정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칠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7일이 길다.
↳모세의 경우에는 자그마치 80년이었다.
↳테크닉을 준비하는 데 40년, 인격을 준비하는 데 40년이었다.
↳하나님은 테크닉과 인격을 갖추게 하신 후에, 그를 40년간 쓰셨다.
↳그래도 모세는 오래 쓰임받은 편이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세계적인 명지휘자 토스카니니(1869∼1957)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다.
↳불행하게도 그는 아주 심한 근시여서 잘 보지 못했다.
↳토스카니니는 관현악단의 일원으로 연주할 때마다, 앞에 놓인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늘 악보를 외워서 연주회에 나가곤 했다.

-그런데 한번은 연주회 직전에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많은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에, 곡을 전부 암기하여 외우고 있던 사람은, 오직 토스카니니 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임시 지휘자로 발탁되어, 지휘대 위에 서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19세였고,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아름다운 미래를 원한다면, 오늘을 준비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오늘을 눈물로 준비하지 않으면, 내일의 웃음을 기대할 수 없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다.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준비되었다는 것은 절반의 승리를 거둔 것이다."
↳준비하는 시간은, 일을 추진하는 시간보다 사실은 더 중요하다.
↳준비를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서, 일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리지 말라. 오늘 준비가 되지 못한 자는 내일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온다고 해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인격과 기술에 또 하나 더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게 영원이다.
↳다른 것은 후에라도 준비할 수 있지만, 영원은 당장 준비해야 한다.
↳영원을 준비할 기회가 언제까지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언제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다.

-어느 집에 종이 한 사람 들어왔다.
↳그런데 그 종을 보니까 어리석어 보였다.
↳그래서 주인이 장난 삼아 그에게 지팡이 하나를 주면서 말했다.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너보다 더 어리석은 자가 보이거든 지팡이를 그에게 주어라.”

-그러자 종은 그 지팡이를 받아들고서 주인을 보며 물었다.
↳“주인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세상을 떠날 때에 어떻게 해놓고 가실 건지,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인은 적잖이 당황하며 겨우 대답했다.
↳“아...아니, 그거야 아직 준비하지 못했지.”

-그러자 종은 지팡이를 주인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사람들이 하루 여행길에도 완벽하게 준비하고 떠나는 법인데, 영원을 위해 준비한 것이 없어요?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은 처음 보았네. 자 여기 지팡이가 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주인님이니, 여기 이 지팡이를 가지세요.”

-혹 우리 중에서 그 지팡이를 받아야 할 사람은 없을까?

-우리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주님 앞에 서지 않아도 될 사람은 없다.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우리가 죽는 날 아니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중 한 날이다.
↳그날 주님 앞에 잘 서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소에 주님 앞에 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 연습이 바로 예배이다.

-예배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5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고 온 회중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선지라

-예배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인격으로 서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내면으로 서는 것이다.
↳그래서 버릴 것 버리고, 태울 것 태우고, 고칠 것 고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예배했다면, 예배 전과 예배 후가 같을 수가 없다.
↳달라져야 정상이다.

-예배 때는 은혜로운 데, 회의만 하면 소란한 교회들이 있다.
↳대개 회의를 하기 전에 예배가 있다.
↳회의를 위한 기도도 있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시작되면, 은혜는 사라지고 싸늘한 법 논리만 있다.
↳법이라도 제대로 지켜지면 좋으련만, 목소리 큰 사람, 고집이 센 사람의 의견이 관철된다.
↳그럴 바엔 회의 전에 기도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예배 시간의 하나님과 회의 시간의 하나님이 다르기라도 한단 말인가?

-우루과이의 한 작은 성당 벽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마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 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드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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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에게 자기 성결을 위해 제사하라고 했다.
1 여덟째 날에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다가
2 아론에게 이르되 속죄제를 위하여 흠 없는 송아지를 가져오고 번제를 위하여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 드리고

-성결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성찰에서 나온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데서, 성결로 나아갈 수 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자기 성찰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 역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자기 성찰이 없는 예배에는, 예배자의 변화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진지하게 성찰할 때만, 자기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예배 때 자기를 돌아보며, 자기를 성찰해 본 경험이 있는가?

-진지한 자기 성찰은,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진실한 자기 성찰은,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빛이 자신의 더러운 모습을 비췰 때,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이 자신의 부끄러운 내면을 비췰 때, 자기도 모르게 신음하게 된다.

-그럴 때 버려야 할 것 버리게 된다.
↳고쳐야 할 것 고치게 된다.
↳이걸 변화라고 한다.

-아무리 예배시간에 꼬박꼬박 참석을 해도 변화된 모습이 없다면, 자기 성찰이 없는 예배를 드린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예배였던 것이다.

-아무리 예배가 그럴 듯하면 뭐하는가?
↳아무리 예배 순서가 신학적이고, 아무리 예배 의식이 화려하면 뭐하는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지...

-레위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일이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의 바른 관계가 먼저라고 한다.
막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전도보다 먼저이다.
↳전도라고 하는 일보다, 주님과 함께 하는 관계가 먼저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뚤어져 있으면 소용없다.

-아론은 제사장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을 위하여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다.
7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8 이에 아론이 제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면, 어떻게 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남의 영혼을 염려해 주는 사람은, 먼저 자기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시지 않았다.
↳제사라고 다 같은 제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있고, 하나님이 거절하시고 제사가 있다.
↳예배라고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이 물리치시는 예배가 있다.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을까?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 때문이다.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믿음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는 받으시고, 믿음으로 드리지 않는 제사는 받으시지 않는다.
↳믿음으로 드렸는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는지, 우리가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오직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아시고, 제사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신다.
↳그 하나님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받으시고, 믿음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는 물리치신다.

-또 제사를 드리는 본인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제사를 드리는 본인은, 자신이 믿음으로 드리는지, 형식적으로 드리는지를 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은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고, 안색이 변하였고, 동생을 쳐 죽이기까지 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예배 후에 일어났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예배 안 드리는 사람보다 더 악해질 수가 있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생각해 보자.
↳자기 성찰이 있는 예배인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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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에게 여호와의 명대로 하라고 한다.
7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모세는 아론에게 단단히 일렀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을 첨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라는 것이다.
↳모세의 위대한 점이 무엇인가?
↳그의 학문에 있지 않다.
↳그의 무예에 있지 않다.
↳그의 영적 체험에 있지 않다.
↳그의 말씀 순종에 있다.

-그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하나님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 엎드렸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철저히 엎드림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는, 그대로 순종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말씀 그대로 준행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이,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말씀대로 지켰다.
↳말씀 순종을 사명으로 알고 살았다.

-모세의 부탁을 받은 아론이 어떻게 하는가?
10 그 속죄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고

-아론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대로 행한다.
↳기독교는 논리를 믿는 종교가 아니다.
↳논리로 구원을 얻는다면, 유명한 철학자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기독교는 지식을 우상화하는 종교가 아니다.
↳지식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학자들만 구원 얻을 것이다.
↳설사 논리에서 벗어나도,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에 순종하는 종교이다.
↳지식으로 맞지 않아도,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냥 믿고 따르는 종교이다.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6 모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바란다.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바란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소원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손해가 아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에 비해,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나 크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순종을, 너무나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탄한 환경에서 순종하는 것도 기뻐하신다.
↳하물며 우리가 역경 중에서 순종할 때이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할 환경에서 순종해도 영광을 보여주신다.
↳하물며 우리가 불평할만한 환경에서 순종할 때이겠는가?

-스펄전 목사가 타 도시에서 자기가 돌보는 런던의 고아들을 위해 300파운드를 모금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에 이런 음성을 들었다.
↳“그 돈을 조지 뮬러 목사한테 갖다 줘라.”

-스펄전은 그 음성에 대꾸했다.
↳“오! 주님, 저희 고아들도 이 돈이 필요한데요.”

-그러나 그 음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스펄전은 그 돈을 들고 뮬러에게 갔다.
↳그 때 뮬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죠지, 하나님께서 내가 모금한 300파운드를 당신에게 주라고 해서 가져 왔소.”

-뮬러는 기도하다 말고 일어났다.
↳“스펄전 목사님, 저는 지금 바로 300파운드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뻐했다.
↳스펄전이 사무실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편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300 영국에서 1663년에 처음 주조하여 1813년까지 발행한 금화로 1기니는 1실링(shilling)의 21배이다.
기니의 헌금이 들어있었다.
↳스펄전의 고백...
↳“주여, 300파운드에 이자까지 보태서 주시는군요!”

-제사의 근본 정신은 순종이다.
↳우리가 보기에 제사 의식은 까다롭고 복잡해 보인다.
↳그래도 그대로 해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영광을 나타내신다.
↳제사의식이 까다롭다고 자기 방식으로 생략하고, 복잡하다고 자기 방법으로 간소화하면, 그건 하나님과 무관한 제사가 된다.
↳오직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사법에 따라 드려질 때, 그 제사가 열납된다.

-제사의 정신을 잘 말해주는 말씀이 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제사의 무용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순종만 하면 되지, 제사는 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제사의 근본 정신이 순종이라는 말이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말씀 순종의 연장선에 있다는 말이다.

-예배는 말씀 순종의 연장선에 있다.
↳말씀 순종이 없는 예배는, 본질이 빠진 예배인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예배와 말씀 순종의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거 같아 보인다.
↳예배 따로 말씀 따로이다.
↳사실은 이게 기독교의 위기이다.
↳여전히 예배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적다.
↳예배하기 위해 교회 가는 사람들은 다수이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과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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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이 백성을 축복하고 있다.
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아론이 제사장으로서 손을 들어 백성을 축복하고 있다.
↳제사장은 백성을 축복하는 사람이다.
↳축복하는 것은 제사장의 권한이다.
↳동시에 그건 제사장의 의무이기도 했다.
↳그게 권한이란 점에서, 제사장은 타인을 축복할 수 있다.
↳그게 의무라는 점에서, 제사장은 타인을 축복해야 한다.
↳제사장도 똑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백성을 축복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성별하여 세우신 것이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임을 밝히고 있다.
↳타인을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타인을 축복해야 하는 의무도 부여받은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축복의 통로이다.
↳다른 사람의 복을 받게 하는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그로 인하여 내가 복을 받는 데는 익숙하지만, 나로 인하여 그가 복을 받는 것에는 낯설어한다면, 나는 그에게 축복의 통로가 아닌 것이다.

마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축복엔 손해가 없이 남는 장사이다.
↳평안하기를 빌라는 말은 다른 말로 축복하라는 말이다.
↳그 집에서 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복이 축복한 사람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벧전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악한 사람도 축복하고 욕한 사람도 축복하라는 것이다.
↳축복하는 대상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 가려가면서 축복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이 백성을 축복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살랐다.
↳하나님의 영광이 불의 응답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 응답받는 비결 중 하나는, 타인을 축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의 응답을 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바란다.
↳하나님께 불로 응답을 받고 싶다면, 사람을 가리지 말고 축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