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26(끝):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창 25:1-11)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9-20 13:03
조회
745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26(끝)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창 25:1-11)
2020. 9. 20.


프롤로그

-오늘로서 구약인물 아브라함 강해를 마치겠다.
↳오늘이 26번째 시간이니까 딱 반년이 걸렸다.
↳한 해의 절반이나 되는 시간을, 아브라함과 함께 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브라함의 여정에 함께 하신 하나님과 함께 했다.
↳우리는 아브라함 강해를 통해, 허물과 부족함이 많은 평범한 인간 아브라함을, 어떻게 믿음의 조상으로 다듬어가셨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집념과 의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아브라함의 아브라함 됨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팔짱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도 박수 받아야 할 점이 있다.
↳그건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순종한 점이다.

-오늘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한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175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하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이 몇 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는가?
↳하란에서 나올 때가 75세였고, 175세에 죽었으니까, 그는 1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하나님과 동행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자기에게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서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도 죽어서 작은 무덤 하나를 남기고, 이 세상과 작별해야만 했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도, 어디까지나 인간일 수밖에 없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게 인간이 가진 한계성이다.
↳죽음의 사자는, 누구를 가리지 않고, 예외 없이 찾아온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차별하지 않고, 제시간에 맞춰서 찾아온다.
↳죽음의 사자는 허탕 치는 법이 없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인간의 한계 상황 중 으뜸가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언젠가는 죽는다’ 하는 종말론적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갈 수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세계 기독교 대회가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그 대회를 주관하시는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장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례를 치르게 되는 분은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드릴 필요가 없이, 여러분들이 각자 한 사람씩 옆방에 가셔서 놓여있는 관속을 들여다보시고, 그가 누구인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 대표들은 그의 인도에 따라 옆방으로 안내되었다.
↳옆방에 들어선 대의원들은 거기에 놓여있는 관속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고 지나갔다.
↳그 관속을 들여다 본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고 깊이 뉘우쳤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 관 바닥에 거울을 깔아두었으므로, 들여다보는 사람마다 자기 자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언젠가는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평범한 사실을, 종종 잊고 살 때가 있다.
↳사람이 언제 가장 진실해지고 겸손해지는가?
↳죽음을 코앞에 두었을 때다.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신 앞에 진정으로 겸손해진다.
↳또 사람은 죽음을 의식할 때에, 삶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살 수 있다.
↳이 목숨이 끊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낄 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여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인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어떤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인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가 무엇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
↳아무리 다른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죽음에 대한 준비를 마치지 않았으면, 사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것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고 사는가?
↳이 질문은 연세 높은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젊다’, ‘나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다 해당되는 질문이다.

“죽음에 대해 준비하셨습니까?”

-도산 안창호 선생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없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묘 앞에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당신이 지금 웃으며 그 곳에 서 있듯이, 나도 한때는 웃으며 그 곳에 서 있었소.
내가 지금 여기에 누워 잠들어 있듯이, 당신도 언젠가는 이런 곳에 잠들 것이오.
어서 돌아가서 나를 따를 준비를 하시오.’

-참 의미심장한 묘비글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이고 읽어도 긴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웃으며 그 곳에 서 있듯이, 나도 한때는 웃으며 그 곳에 서 있었소.
내가 지금 여기에 누워 잠들어 있듯이, 당신도 언젠가는 이런 곳에 잠들 것이오.
어서 돌아가서 나를 따를 준비를 하시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물으신다.
↳“너는 영생과 영벌을 판결하실 내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느냐?”
↳“너는 내가 오늘이라도 부르면 내 앞에 올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브라함의 나이가 137세일 때, 아내인 사라가 죽었다.
↳이때 이삭의 나이는 37살이다.
↳그럼 사라가 죽고 3년 후에,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한 것이다.
↳이삭이 장가가던 날, 아브라함은 이제 내가 부모로서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라와 사별하고, 금방이라도 그 뒤를 따를 것 같았던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혼시킨 후에도 35년을 더 산 것은 의외이다.
↳그냥 못 죽어서 살았다면 그렇게 오래 살 수 없다.

-사라한테는 안 됐지만, 아브라함은 후처에다 자식까지 두며, 잘 먹고 잘 살았다.
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성경은 후처의 이름까지 소개하고 있다.
↳후처의 이름은 그두라이다.
↳그두라가 어떤 여자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역대상에 한번 나오기는 해도,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는 않는다.
대상 1:32 아브라함의 소실 그두라가 낳은 자손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요 욕산의 자손은 스바와 드단이요

-본문에서는 그두라를 후처라고 했고, 역대상에서는 소실이라고 했다.
↳소실은 정식 아내 외에 데리고 사는 여자 곧 첩을 가리킨다.
↳후처와 첩은 분명히 다르다.
↳그두라를 아브라함이 사라 생전에 맞았다면 첩일 거고, 사별한 후에 맞았다면 후처일 것이다.
↳아브라함의 나이로 볼 때, 사라 생전에 맞았을 가능성도 있고, 사라의 질투심을 익히 알고 있기에, 사라의 사후에 맞았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아브라함이 이삭과 이스마엘 외에도, 다른 아들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여기기보다는, ‘영감쟁이가 참 주책이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영감이 주책바가지다.
↳오늘날은 아들을 많이 낳은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히려 아들을 많이 낳은 사람을, ‘어떻게 키우려고 저렇게나 많아 낳았나’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브라함 당시엔 자식 많은 게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아들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스마엘과 그두라가 낳은 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해서 낳은 아들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아브라함이 파기한 후에 낳은 아들이다.
↳약속의 아들인 이삭 대신에 낳으려고 한 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들은 다르다.
↳하나님이 덤으로 주신 아들들이다.
↳하나님이 보너스로 주신 아들들인 셈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고, 하나님과 멀어졌다.
↳무려 10년 동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끊어졌다.
↳그러나 그두라에게서 아들들을 낳고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시므란을 낳고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이고, 욕산을 낳고 감사했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후처를 얻어 아들을 낳은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로 봐야 한다.

-아브라함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의 응답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창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심히 번성하여, 민족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일어나며, 왕들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나올 것을 말씀했다.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3-4절을 덧붙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3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열국의 조상이 되었고, 결국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도가 없다.
↳그 하신 말씀에 확실히 책임져 주신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기다릴 때까지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기다리게 하신 것이다.
↳그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서였다.

-사라가 여자로서 생명이 끊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이삭을 주셨다.
↳그런데 그렇게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확인하시고, 하나님은 그에게 자식을 덤으로 얹어주셨다.
↳그두라를 통해서 여섯 아들을 주신 것이다.
↳하나를 구했는데 여섯 배로 주신 것이다.

-사무엘상에도 이런 비슷한 예가 나온다.
삼상 2: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한나가 어떻게 기도했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하게 아들 셋, 딸 둘만 달라고 기도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에게 그런 여유가 없었다.
↳아들 하나만 주시라고 했고, 그마저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몇 명의 자녀를 주셨는가?
↳3남 2녀를 더해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거보다, 더 넘치도록 더해 주시는 분이다.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엎드려 간구할 때,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더해 주시는 분임을 믿으라.

-아브라함은 죽음 뒤를 준비했다.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재산이 있었다.
↳그는 당대의 부자였다.
↳아들이 이삭 혼자뿐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이삭 외에도 다른 자녀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죽은 후에 상속문제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 미리 교통 정리를 한 것이다.
↳재산권문제로 인해 자녀들 간에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조치를 취한 것이다.
↳죽기 전에 미리 이삭에게 자기 재산을 상속했다.
↳물론 서자들에게 줄 몫은 떼어놓고 주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재산 분배를 하면서, 전에 자기가 빈손으로 내쫓았던 이스마엘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 때는 사라의 서슬퍼런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는 서자들도 먹고 살만큼 충분히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조치를 더 취했다.
↳자기 생전에 서자들을 다 동방으로 가게 했다.
↳이삭과 멀리 떨어져서 살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다 생각이 있어서였다.

-아브라함은 배다른 형제끼리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있었기에,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일처리는 합리적인 게 좋다.
↳가끔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을 주장하며 독단적으로 일처리를 하곤 하는데, 아니다.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해야 한다.
↳여기서 합리적이란 말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합리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합리적이란 말과 다수결이란 말은 다르다.
↳다수의 사람이 좋다고 해도, 혹 비합리적일 수 있다.
↳소수의 의견인데도, 그 소수의 말이 합리적일 수 있다.

-교회 안에서도 합리적인 것을 무시해선 안 된다.
↳합리적으로 한다는 말은, 객관성을 유지한단 말이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누구 편을 일방적으로 든다거나, 특정인에게로 쏠리지 않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당시 문화라고 하는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했다.
↳합리적인 일처리를 통해서, 자기가 죽은 후 자녀들이 분쟁에 휩싸이지 않게 한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잘 살다가 잘 죽어야 한다.
↳여생을 복되게 살다가, 복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까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죽은 후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유언을 통해 미리 교통정리를 해놓는 것이다.

-우리는 ‘유언’하면 꼭 숨넘어가기 직전에 한 말만 생각한다.
↳그래서 “그분은 유언 한 마디 없이 가셨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 지키고 있었는데,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운명할 수도 있잖은가?

-또 유언과 같은 성격인 유서가 있다.
↳우리는 ‘유서’ 그러면 자살하는 사람이나 쓰는 줄 아는데, 꼭 그렇지 않다.
↳나도 아직 못 썼지만, 유서를 미리 작성해 놓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더라도, 자신의 죽음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정리를 해 놓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을 책임 있게 사는 것이다.
↳유서를 쓸 때는, 나중에 대필이나 가필 의혹이 있을 수 있으니까, 공증을 받아놓으면 보다 확실할 것이다.

-만일 유서를 써서 품에 넣고 다닌다면, 우리 삶의 자세가 달라질 것 같다.
↳인생을 종말론적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나그네 의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세상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도, 뭔가 움켜잡으려고 하는 욕망에 붙들릴 것이다.
↳이런 욕망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음 이후에 대해 미리 정리를 해놓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잘 마쳤다.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아브라함은 인생의 장애물 달리기를 완주했다.
↳175세는 홍수 이후의 나이치고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는 병사(病死)한 것도 아니고, 사고사(事故死)를 당한 것이 아니다.
↳나이가 많아서 죽은 것이다.
↳즉 충분히 살만큼 살다가 죽었다는 말이다.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는 말은, 만족하게 살다가 죽었다는 말이다.
↳만족하게 죽었다는 말은, 만족한 마음으로 죽었다는 뜻이다.
↳주님은 지상에서 33년 정도밖에 살지 못했지만, 만족하게 죽으셨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다.

-꼭 오래 살다가 죽어야, 만족하게 죽는 것이 아니다.
↳99세까지 살았으면 장수한 건데, 1년만 더 살았으면 백 수인데 할 수 있다.
↳오래 살아도 만족이 없다는 것이다.
↳사명을 완수하고 죽을 때, 만족하게 죽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평생 사명을 부여하셨다.
↳세상에 사명이 없는 인생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여,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 사명이 다하는 날 나를 데려가 주옵소서.”

-만족하게 죽었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자연사를 했다는 말이다.
↳수명이 다하여 죽었다는 것이다.
↳이게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다.
↳자기 수명대로 사는 것이 사실 복이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한단 말인가?
↳‘주여, 내 명대로 살게 해주세요!’
↳물론 명대로 살되, 건강하게 살기를 구해야 한다.
↳병석에 오래 누워 있으면, 자식들을 불효자로 만들게 된다.

-아브라함은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열조 곁에 묻였다는 말이 아니다.
↳그의 시신은 에브론에게서 산 막벨라 굴에 사라와 합장되었다.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표현에서, 아브라함의 내세 신앙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 죽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니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이 세상을 떠난 다음의 삶이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이 세상에서 복 있는 인생을 살았다.
↳또한 이 땅에서 복의 근원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죽음 이후에 더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려야 한다.
↳기도하고 계획한 일들이 형통하는 은혜를 입어야 한다.
↳또 나이가 들어서는 자손들이 잘되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세에 누리는 복이다.
↳죽음 이후에, 천국에서 예수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복을 누려야 한다.

-아브라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마엘이 찾아왔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참...혈육의 정이 이렇게 무섭다.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어느 정도 화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만일 아브라함이 죽지 않았다면, 이스마엘과 이삭은 계속 화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죽음이 이스마엘과 이삭의 화해를 불러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알게 되는 것은,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한쪽 면만 보지 않아야 한다.
↳어느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된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법이다.
↳우리는 잃은 것만 생각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닫힌 문만 바라보고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얻을 것에 소망을 두고, 열린 문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아브라함의 복이 이삭에게 계승되고 있음을 본다.
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 복을 이삭에게 계승시키셨다.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그에게 주어졌던 약속은, 여전히 유효했다.
↳우리가 당대만 생각하니 조급해진다.
↳내 대에 다 이뤄야 한다고 하니, 다급한 마음이 든다.
↳계승시키고 계승되는 것이 좋다.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조손(祖孫)이 대를 이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복이다.

-우리의 자손들이 우리의 신앙을 계승하되, 우리보다 더 잘 믿기를 소원한다.
↳그들이 우리가 예수 믿고 받은 복보다, 더 크고 많은 복을 받아 누리기를 소망한다.

-아브라함이 기운이 다하여 죽었듯이, 우리 역시 어느 날 죽게 된다.
↳아브라함이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듯이, 우리에게 역시 그런 날이 돌아온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이런 시를 썼다.
↳“죽음의 신이 당신의 생명의 문을 노크할 때, 당신은 생명의 광주리에 무엇을 담아 죽음의 신 앞에 내어놓겠습니까?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설 수 없다.
↳그 때는 빈 손 들고 앞에 와 십자가를 붙들 수 없다.
↳그 날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온 삶의 열매들을, 하나님께 내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여러분
↳죽음을 잘 준비하자.
↳언제라도 천국 갈 준비를 하고 살아가자.
↳우리가 내일도 호흡할 수 있을지, 주님만 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