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22: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창 22:9-19)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8-30 12:09
조회
80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22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창 22:9-19)
2020. 8. 30.


프롤로그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아직 최종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보기에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어 보였지만, 그 믿음이 진짜인지를 테스트해 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시험하신 것은 아니다.
↳수차례 포기하는 시험을 쳐왔고, 몇 번에 걸쳐 버리는 훈련을 해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시험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을 때에, 최종 시험을 치르게 하신 것이다.

-이 시험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인 줄 안다.
↳우리가 믿음의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브라함과 같은 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건 피할 수 없는 필수 코스인 셈이다.
↳우리에게 다가온 시험에 대해서, 이건 내가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생각하자.
↳우리에게 큰 시험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큰 믿음을 테스트한다고 생각하자.

-아브라함은 지금까지는 시험을 잘 쳐 왔다.
↳이삭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까지는, 그래도 잘 왔다.
↳마음의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심적인 고통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이 뿌리 채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결정적인 시험’ ‘최후의 시험’이 남아 있다.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 정상에 제단을 쌓고, 그곳에 나무를 벌여놓고, 그 위에 아들을 결박하여 올려놓았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 하는 이 엄청난 시험 앞에서, 아브라함은 의외로 담담하게 행동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삭을 사랑했다.
↳그래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위에 아들을 결박할 때, 그의 심장은 거의 멎었을 것이고, 손은 부들부들 떨렸을 것이며,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해졌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다보니, 8절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어린양을 따로 준비해두었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확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그걸 알았다면, 아브라함은 미리 답을 알고 시험장에 들어간 격이다.
↳그렇다면 굳이 시험을 칠 필요가 없었다.
↳그럼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말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어린양’은 무엇인가?
↳수풀에 걸려있는 수양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다. 아들 이삭을 뜻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삭에게 대놓고 ‘바로 네가 제물이다’ 대놓고 말할 수가 없어서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미리 뒷일을 계산하곤 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실 것이다 라고 앞서서 생각한다.
↳내가 이만큼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이만큼 복 주실 것이다 라고 미리 헤아린다.
↳그러나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일단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계산하지 않고, 묵묵히 순종하는 것이다.
↳뒷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바로 순종하고 보는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도, 양이 보이지 않자, 이삭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늙은 아버지를 도와 함께 제단을 쌓았다.
↳나무를 벌여 놓는 일도 옆에서 열심히 도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제사할 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평소 제사 준비하는 아버지와는 어딘지 달라 보였다.
↳겉으로는 애써 감추고 있지만, 너무나 괴로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쯤에서는 이삭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삭도 위대했음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이미 늙었다.
↳이삭의 나이가 15살 정도로 보면, 이삭이 조금만 반항했다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할 수 없다.
↳이삭이 늙은 아버지를 밀치고, 얼마든지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렇담 이삭이 단 위에 스스로 올라간 거고, 잠잠히 순종해 준 것이다.
↳자기는 아버지한테 죽어야 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죽여야 하는, 이런 기막힌 운명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부자(父子)를 본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우리는 믿음을 생각할 때, 너무나 값싸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분히 믿음을 감상적으로 생각한다.
↳믿음을 가지면 모든 것에 형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치러야 할 믿음의 행위에 대해서 다소 인색하다.
↳믿음에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에는 치러야 할 분명한 대가가 있다.
↳대가없는 믿음이란 없고, 순종 없는 믿음이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의 대가를 지불했는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돈 몇 푼, 시간 조금 내는 것으로 생색냈던 적은 없는가?
↳작은 일에 헌신해놓고, 엄청난 헌신을 한 것인 양,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했던 적은 없는가?

-아브라함은 아들을 잡기 위해 칼을 높이 들었다.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손을 내밀어 칼을 잡았다는 말을 통해, 아브라함이 이삭을 진짜로 죽이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까지도 양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조용하기만 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기만 했다.
↳이삭은 눈을 감고 죽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브라함은 칼을 들어 자식을 내리치려고 하고 있다.
↳너무나 숨 막히는 몇 초의 순간이다.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의 사자가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른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제사에 너무 집중하여, 이삭을 잡을까봐, 두 번이나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고 있다.
↳아브라함은 들었던 칼을 내려놓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했다.
↳하나님의 사자가 당황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을 당황하시게 만드는 사람이 아브라함이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이 당황시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바란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뜯어 말려야 할 정도의 순종의 사람이 되기 바란다.

-이삭은 조금만 아니 단 몇 초만 늦었어도, 아버지의 칼에 죽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아직 응답하시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아직은 괜찮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이상 가면 안 되겠다 싶으면 개입하신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응답이 지연되고 지체된다고 낙심하면 안 된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나 보다, 마음을 좀 늦추기 바란다.

-잠이 덜 깬 양 어안이 벙벙해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말하고 있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목적이 이삭을 죽이는데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과연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아들을 통해 시험하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아브라함은, 식은땀을 소매로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이삭은 아버지를 향해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을 것이고....
↳이제 모든 시험이 끝났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분은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지를 시험하실 수 있다.
↳내가 예수를 믿고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순종을 보여달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혀에 발린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
↳말로 예수 믿고, 입으로 교회 사랑하는 것에 속지 않는다.
↳아프지만 이건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챙길 것 다 챙기고, 가질 것 다 가지면서 섬기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 때문에 자존심을 포기하라고 하면, 굉장히 힘들어들 한다.
↳예수의 제자로 살기 위해, 물질욕을 포기하라고 해도 고통스러워들 한다.

-그러나 명심하자.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할 때까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결국은 포기하게 만드신다.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포기하라고 해서, 우리 것이 탐나서 그러시겠는가?
↳아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포기하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만, 믿음의 진위가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프리카를 위하여 C.T.스터드라는 사람을 사용하셨다.
↳그는 일백 년 전 사람으로, 캠프리지 7인이며, 크로켓 선수며, 영국인의 가장 촉망받는 지성인이었다.
↳그의 가문은 훌륭하였고,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들어가 선교하며, 허름한 움막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곳 아프리카에 뼈를 묻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희생과 헌신은 헌신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하여 나는 감격할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깨달은 만큼 포기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포기한 만큼 사랑할 수 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은, 그를 향해 특별한 계획을 세워놓으셨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의 눈에 수풀에 걸려있는 한 숫양이 보였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걸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모리아 산에는 숫양이 돌아다니다가, 심심하면 수풀에 걸리는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리아 산은 숫양은 고사하고, 야생동물도 거의 없는 지역이다.

-숫양이 모리아 산 수풀에 걸려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준비하심이다.
↳그리스도인은 우연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재수 좋아서” “운이 따라서” 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도우셨다”
↳“주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베푸셨다”
↳우리의 불신앙적인 언어생활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하나님은 제물로 숫양을 준비해두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숫양을 잡아, 보통 때처럼 번제로 드렸다.
↳그러나 그 숫양은 단순한 숫양이 아니라, 이삭과 똑같은 의미의 제물이었다.
↳아브라함은 그동안 수차례 제사를 드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드려왔다.
↳이삭을 잡아 제사를 드리려고 했던 이번 일을 통해서, 그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제사란 내가 가장 아끼는 것, 내 생명처럼 여기는 것을 드리는 것이구나. 나 자신을 대신하는 죽음이구나’
↳아브라함은 이번 시험을 통해, 너무나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예배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배는 주일날 교회에 나와, 한 시간 앉아 있다가 가는 것이 아니다.
↳설교 듣고, 헌금 얼마 드리는 것이, 예배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내 아들을 죽이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자.
↳아니 내 자신을 죽이는 심정으로, 예배자의 자리에 서자.

-우리에게 내 자식이 중요하다면, 하나님께는 독생자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거 아닌가?
↳혹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은 어차피 죽어도 살 거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이삭보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더 아팠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더 아팠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우리를 구원하셨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 감사가 있고, 예배 중 감격이 있고, 감동이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몸 뿐 아니라 온 마음이다.
↳하나님을 향한 가난한 마음이고, 죄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고 났을 때,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말은 반만 맞다.
↳예배는 내 것을 포기하는 시간이다.
↳나의 가장 아끼는 것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이 시간부터 내 생활 습관을 뜯어고치겠다.’ ‘오늘부터 내 야망을 포기하겠다.’ ‘지금부터 내 욕심을 버리겠다.’
↳이런 결심이 없는 예배는 무의미하고, 종교적 유희에 불과한 것이다.

-스코틀랜드 어느 예배당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오. 그러나 온 모습 그대로 가지는 마시오!”

-우리가 예배하러 올 때의, 그 모습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새로운 각오와 분명한 다짐을 한 채, 세상에 예수의 제자로 파송 받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한 후에, 그곳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기서 ‘이레’란 말이 준비하다는 뜻이다.
↳결국에는 8절 말씀대로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고백이다.
↳순종하고 나서의 신앙고백이란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숫양을 준비해 두었을 것으로 보고 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고 하니까 그냥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한 이후에 우리의 고백이 ‘여호와 이레’이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기 전에, 미리부터 ‘여호와 이레’를 생각하는데, 이건 순서가 틀린 것이다.

-이제 아브라함의 시험이 모두 끝났다.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요구 앞에, 아브라함이 주저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테스트가 다 끝났다.
↳이제 그에게는 시험에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쁨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 오는 시험도 마찬가지다.
↳그 시험이 크든 적든, 말이 되든 말이 안 되든, 그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아브라함이 어떤 상급을 받게 되었는지를 같이 살펴보자.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로 나타났다.
↳11절에 확인한대로, 첫 번째는 이삭을 죽이기 위해 아브라함이 칼을 내리치려는 그 순간에 나타났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시면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란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가 보증하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보증하시면 틀림없다.
↳세상 다 못 믿어도, 하나님만은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이 무엇으로 보증하셨는가?
↳말씀으로 보증하셨다.
↳하나님이 어떤 문서로 보증하셨다.
↳신구약 66권 성경으로 보증하셨다.
↳이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바란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신앙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가?
↳오랫동안 믿었는데도, 변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더 크게 여기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가?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첫째는 자녀를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그 자녀를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해줄 것이라고 하신다.
↳사실 이 약속은 처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셨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아브라함의 믿음이 흔들렸다.
↳그때 하나님은 또 나타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는 없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백세가 될 무렵에 또 나타나셨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 말을 들은 사라가 불신의 웃음을 웃었지만, 그 약속을 틀림없이 이루실 것을 말씀하셨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이삭이 태어났다.
↳그러다 이삭이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에, 이삭이 번제물로 죽을 뻔했다가,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신다.
↳이제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에게 후손에 대한 약속을 하신다.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이건 셀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자녀가 많아진다는 뜻만은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녀 가운데서, 먼 훗날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땅의 복이 아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이다.

-둘째는 자녀가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문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중요한 것이다.
↳문을 장악하기만 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독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다 항복하게 되어 있다.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말은, 메시아의 승리를 뜻한다.

-이 말씀도 일찍이 예언되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메시아 예언이다.
↳메시아가 오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류에게 지워진 모든 저주가 끊어졌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의 결과로 인해 찾아온 사망의 올무가 벗겨졌다.

-셋째는 자녀가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산 아래로 들어온 사람은 복의 자손이 된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이 복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이런 복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우리를 만난 사람은 다 이 복을 받아야 한다.

-옆에 있는 분들을 축복하겠다.
↳“당신은 나 때문에 복 받을 겁니다.”

-아브라함은 사환에게 약속을 지키게 됐다.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모리아 산 아래서 아브라함은 사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사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이삭을 죽이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 이삭을 다시 데리고 돌아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게 됐다.
↳그는 분명히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음에도,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 사람과의 관계도 깨뜨리지 않게 해주셨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 순위임을 명확하게 보여주신다.

-아브라함의 시험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게 만드는 시험이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요구할 것이 없는 사람이다.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입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버린 것보다 훨씬 크다.
↳그분은 우리더러 무엇을 버리라고 하실 때, 그보다 더 큰 것을 준비해 두셨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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