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21: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창 22:1-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8-16 12:21
조회
639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2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창 22:1-8)
2020. 8. 16.


프롤로그

-세 살 때 잃어버린 딸을, 스무 살이 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된 엄마가 있었다.
↳안양천의 판자촌에서 살고 있던 부부는, 살림이 너무 가난해서, 두 사람 모두 직장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잠깐 볼일이 있어서, 큰아이에게 애를 맡기고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아이는 없어지고 큰아이는 울고 있었다.
↳그 후 고아원이란 고아원은 다 뒤지고, 잃어버린 아이들을 보호하는 곳에도 다 가 보았지만, 결국 아이를 찾지 못했다.
↳이 어머니는 선거 때마다 통장이나 반장이 와서, ‘왜 아이의 사망 신고를 하지 않는냐’는 말에 가장 가슴 아팠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우리 아이 죽은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망신고를 할 수 있겠어요’ 라고 끝끝내 버텨서, 호적에는 이 아이가 계속 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 아이는 이탈리아로 입양되었고, 그곳에서 시인이자 아마추어 화가가 되어 친부모를 찾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아온 것이다.
↳그 엄마는 아이를 잃고 나서 웃음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딸을 다시 만났는데도, 자꾸 눈물만 나오지, 웃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처럼 아이를 잃어버린다거나, 아이가 먼저 죽는 것을 보는 것은, 부모에게는 가장 큰 상처요, 눈감기 전에는 잊을 수 없는 절대 아픔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아브라함은 엄청난 시험 앞에 서 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기서 시험이란, 시험받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나 태도를 알아내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즉 테스트의 성격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신 것은, 아브라함 속에 있는 생각과 믿음을 테스트하시기 위함이었다.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분명히 믿음이 있었다.
↳믿음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아직 최종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보기에는 믿음이 있어 보였지만, 그 믿음이 진짜인지를 테스트해 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시험을 치신 것이다.
↳그것도 그가 가장 견디기 힘든 어려운 시험을 주신 것이다.
↳천하의 아브라함이라고 해도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시험을 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공부도 하지 않은 학생에게, 시험지를 불쑥 내민 것이 아니란 말이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수 없이 많은 시험을 쳐왔다.
↳시험은 일종의 훈련의 형태를 띠었다.
↳특히 버리고 포기하는 훈련이었다.
↳고향, 친척, 아버지집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하여, 에덴 같은 목초지 요단들을 포기했다.
↳전리품으로 얻은 재물을 포기했다.
↳큰아들 이스마엘을 포기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시험지를 받아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정상으로 이끌기 위해, 훈련을 단계적으로 시키신 것이다.
↳잘 짜여진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세밀하게 간섭하신 것이다.
↳만약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이, 아브라함의 생애 초기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나자빠졌을 것이다.
↳하나님께 따지고 대들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신앙조차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넉넉히 감당할 수 있을 때에, 마무리 시험을 치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정상에 오른 것은, 결코 아브라함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과 인내로 빚어낸 작품이라는 말이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평소에는 너무도 잘 아는 말씀인데, 막상 시험에 들면 기억이 안 나는 말씀이 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흔히 믿음은 속으로 간직하고 있으면 되는 것으로 안다.
↳꼭 드러낼 필요 없이, 혼자 믿음을 지켜나가면 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구체적인 현실에서 드러나지 않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있을까?
↳자기 문제에 적용되지 않는 믿음이, 참 믿음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본인은 실제로 기도하지 않으면서, 기도의 능력에 대해 아무리 잘 가르치면 뭐하나?
↳그건 아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믿음에 대해, 보통 때는 잘 모른다.
↳평상시에 교회 생활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할 수 없다.
↳보통 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의 믿음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시련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보면, 그의 믿음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시험에 들었을 때,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그의 신앙의 깊이를 정확하게 잴 수 있다.
↳인생의 폭풍우는, 우리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는 시험일 수 있다.

-혹시 인생의 힘든 여정을 버겁게 버티고 있는가?
↳인생의 역풍을 만나 인생의 노를 힘겹게 젓고 있지 않는가?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하여 눈앞이 캄캄하지 않은가?
↳믿음의 시험장에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테스트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그냥 단순한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믿으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시험하셨는데, 어떤 시험이었는가?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건 정말 무리한 시험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나친 시험이다.
↳인간으로서는 순종하기 어려운, 너무나 엄청난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아닌 우리에게 이런 시험을 주셨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우리 중에 지금과 같은 얼굴로 있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설교를 들을 때의 얼굴을 보면, 꼭 옛날이야기 듣고 있는 표정이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그랬다더라.’ 하는 식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내가 그 배경 안으로 들어가서 읽어야 한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시험은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당하는 시험은, 환경적인 것이 많다.
↳하나님이 직접 시험을 하시기보다는, 환경 때문에 내가 시험을 받든지, 아니면 내가 시험에 빠지든지이다.
↳시험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다는 말인가?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즉 자신이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그게 시험이 될 수도 있고, 시험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당한 시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시험이다.

-또 대부분의 시험은, 처음에는 ‘왜 나에게만 이런 시험이 오나’ 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만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인제공을 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과관계에서 생겨난 시험이란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시험은 그렇지 않다.
↳특별히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까닭이 없다.
↳만약에 이스마엘을 바치라고 했다면, 그나마 수긍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기 방법으로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이 빼앗아가는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로 주셨다.
↳그를 통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는, 언약 아래 태어난 아들이다.
↳그러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할 인과관계가 없다.

-또 100세에 얻은 독자를 바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한 마디 설명도 없이, 그냥 이삭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고 한다.
↳그러니 노년에 아들을 얻은 아비된 입장에서, 얼마나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는가?
↳이삭을 바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어도, 사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한다.
↳아니 불합리한 세상에서도 이런 법은 없다.
↳누가 들어도, 누구에게 물어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고 계신다.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약속과 모순된다.
창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아브라함은 사라의 요구에 대해 따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따르지 않을 수도 없어서,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사라의 요구를 따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내 보낸 것 아닌가?
↳이제 대를 이을 아들이라곤 이삭 밖에 없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이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삭이 결혼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야 씨가 나올 것 아닌가?
↳그런데 아직 장가도 안 간 이삭을 죽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정면으로 모순된다.
↳이런 사실을 모르실 리가 없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요구하시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가?
↳한 마디로 그의 모든 거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라고 한다.
↳아마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상황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끊었을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지금까지 섬겨온 자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그 시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말았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브라함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거 같은가?
↳아마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다.
↳“아니 자식을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도로 데려가십니까? 그것도 제 손으로 자식을 죽여서, 각을 떠서 불에 태워 바치라구요? 전 못합니다. 아니,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 것 같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아브라함도 순종하기 전에, 적잖이 고민했을 것이다.
↳자기가 들은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자기로서는 도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확인하는 것,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사는 사람은, 어떤 말씀이 주어졌을 때,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아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다면 순종해야 하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의지가 없는 사람은, 굳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순종하지 않을 거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일치할 경우에야, 특별히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순종하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굳이 지체할 필요가 없다.
↳그대로 행하면 된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날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지금까지 믿어온 신앙과 다르고, 내가 배워온 하나님과 차이가 날 때이다.

↳그럴 때는 숙고할 필요가 있다.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야 한다.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사람의 조언을 받는 것도 좋다.
↳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쓴 책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늘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말씀을 붙들 수 있느냐를, 시험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나 극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 수 있느냐를, 테스트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은, 믿음 과목에 해당한다.

-여기서 믿음의 단계를 간단하게 정리해 볼 수 있다.
↳믿음의 초기 단계는, 무엇을 얻는 것이다.
↳기도 응답으로 무엇인가 받는 것이다.
↳신앙생활 초기에는 이런 재미로 예수 믿는다.
↳믿음의 단계가 깊어질수록, 내려놓는 것이 많아진다.
↳믿음의 완성단계에 이르면,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은 내려놓는다.

-그럼 내 믿음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대략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고 있는 단계는, 믿음의 어떤 단계인가?
↳믿음의 완성 단계이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은 내려놓는 단계이다.

-아브라함은 혼자만의 장소를 찾아,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았을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문제는 말씀의 내용이다.
↳지금까지 해 오신 말씀과는 너무나 상반된 말씀이다.
↳자신이 아는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도 모순되긴 한다.
↳그러니 순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없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기로에 선 아브라함이, 결국은 어떻게 하는가?
↳순종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아브라함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이 말씀을 붙잡으니 문제될 게 없었다.
↳이 말씀에 붙잡히고 보니, 말씀과 아들 중에 말씀을 택하고, 아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내가 이 아들을 버리면 하나님이 도로 살려주실 것이다’ 라고 믿었다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 수양을 미리 준비해 두셨을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주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경험한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옳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의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하기로 한 것이다.
↳솟아오르는 의심을 지그시 누르고, 말씀에 순종할 채비를 꾸린 것이다.
↳아들을 죽이고 돌아오면,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친 영감 취급 받을 것을 각오하고,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에게서 억지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에잇,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한 것도 아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일찍 일어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이런 식으로 행동해 왔다.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왜 그랬을 것 같은가?
↳자기 자신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며칠이 지나면 자기 생각이 달라질 것 같았기에, 그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출발한 것이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자기 파악을 잘 해야 한다.
↳신앙생활이란 곧 자기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 핑계를 잘 댄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핑계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적당한 변명을 늘어놓고, 적당히 넘어가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바른 태도는, 차라리 이래야 한다.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이렇게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더 잘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는 두고, 아브라함만 시험을 하셨다.
↳그럼 하나님이 편애하신 건가?
↳사라에게는 그럴 만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도 이걸 눈치 챘다.
↳그래서 자기한테는 아내이고, 이삭한테는 엄마인 사라에게 말할 수 없었다.
↳만약 사라한테 물어봤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사라는 기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결사적으로 막아섰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은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든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는데, 사라 때문에 안 되겠는데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런 잔머리를 쓰지 않았다.

-번제에 쓸 나무까지 쪼개어 가지고 간다.
↳그 산에 도착해 나무가 없어 제사를 못 드리겠다는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아예 장작을 준비해서 간다.
↳모리아 땅에 도착해서는, 사환들더러 산 아래 머물게 한다.
↳혹시 산에 올라갔다가 사환들이 말려서,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할까봐서이다.
↳그러니까 불순종할 핑계거리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 것이다.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 아닌가?

-번제를 드려야 하는 모리아 산까지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최소 며칠이 걸렸단 말인가?
↳삼일이 더 걸렸다.
↳자발적인 순종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마지못해서 억지로 순종했다면, 중간에 얼마든지 마음이 변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곳을 멀리 바라보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속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모리아 산을 향하여 비장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마침내 모리아 산 아래 도착했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아브라함은 사환들에게 자기가 이삭과 함께 예배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삭에게 나무를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산을 오른다.

-이때 아브라함을 주저앉힐 뻔한 말 한마디가, 이삭의 입에서 나왔다.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버지와 산을 오르던 이삭은, 좀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다.
↳아버지가 제사를 드리러 간다고 하면서, 제물인 양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챙기는 것을 잊었나보다 싶어서, 지금이라도 물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브라함은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저 사랑스런 아들을, 저 아무것도 모르는 이삭을, 어떻게 내 손으로 죽여서 번제로 드리나 하는 생각을 하니까 기가 막혔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시 머뭇거리다 가까스로 대답했다.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이게 아브라함에게 있어 마지막 고비였다.
↳이때 웬만한 사람 같으면, 이렇게 했을지 모른다.
↳“이삭아, 글쎄 하나님이 너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지 않겠니? 차마 내 손으로 너를 죽일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쳐라. 차라리 내가 가서 죽으마. 어서 도망쳐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아들아”
↳어쩌면 이게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볼 말인지도 모른다.
↳차마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어, 다른 곳을 바라봤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또 다시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와 “번제할 어린양은” 이란 말 사이에, 약간의 침묵이 있었을 것이다.
↳자식을 죽일 수도, 그렇다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는, 아브라함의 딜레마가 숨겨져 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잠시의 갈등을 접고 대답을 이어간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을 거라고 했다.
↳어쩌면 그게 아브라함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달리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나머지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강해하겠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도 시험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시곤 한다.
↳작은 시험은 작은 믿음의 테스트를, 큰 시험은 큰 믿음의 테스트를 하신 것으로 보면 된다.
↳그 시험은 하나님께 내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당장은 이해가 안 돼도, 앞으로도 별 유익이 없어보여도, 일단 순종하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