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7: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창 20:1-18)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20-07-19 12:19
조회
103


구약인물(아브라함) 강해 17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창 20:1-18)
2020. 7. 19.


프롤로그

-아브라함은 겉으로 보기에 강한 남자였다.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사병을 데리고 가서 격파할 정도로 담대한 사람이었다.
↳롯과 헤어질 때도, 목초지 선택권을 포기할 정도로 마음이 넉넉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치명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아내 문제였다.
↳아브라함은 유독 이 문제에 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
↳아내 사라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과 함께 살 때는 괜찮은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군가 자신을 죽이고 사라를 차지할지 모른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애굽에서 그렇게 했던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일단 처음이었고, 또 그 당시 그 지역은 아내를 강탈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랄은 그렇지 않았다.
↳아비멜렉 왕만 봐도, 상당한 도덕적 수준에 이른 사람이었다.
↳그렇담 아브라함은 아내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버리지 않고 지켜주셨고, 오히려 존귀하게 세워주신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사실이다.

-아브라함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이사를 하게 되었다.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벧엘 근처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남부 지역인 그랄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당시 그랄은 풍성한 곡물 생산지이자 수출지였다고 한다.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왜 그랄로 갔는지 언급이 없지만,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거나, 아님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나, 그것도 아니면 그곳에 침입한 셋 족속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이야 이사를 했든 말든, 여기에 시비를 걸고픈 마음은 없다.
↳그런데 잠시 후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그가 이사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사를 하는 날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참 놀라운 일이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기에 더 놀랍다.

-한 청교도가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번의 놀라운 순간이 있다고 했다.
↳한번은 처음에 예수를 믿고 나서, 내 모든 죄를 값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을 때이다.
↳주홍같이 붉은 죄를, 눈과 같이 진홍같이 붉은 죄를 양털같이 희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너무나 놀라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 어느 날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구원받고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 아직도 버티고 있는 더러운 죄성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아직도 변화되지 못하여, 그 더러운 현장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놀란다는 것이다.

-청교도의 말에 공감이 된다.
↳우리는 문득 피어오르는 죄의 유혹 앞에 직면할 때가 있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에게 크게 실망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해본 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남 앞에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거려본 적도 있었을 것이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경험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면, 도리어 그게 문제이다.

-아브라함은 중보기도의 사람이었다.
↳믿음의 정상에 서서, 소돔에 있는 조카 롯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섰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런 것 보면, 사람이 나이가 들었다고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더 아픈 사실은, 사람은 시련을 겪고 나서도, 좀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멀리서나마 소돔과 고모라가 잿더미로 변하는 심판을 목격했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그 동안 하나님을 수차례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들었는데도, 특별히 변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때는 사라의 뱃속에서 이삭이 자라고 있던 때였다.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되는 도중이었고, 그걸 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아브라함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의 죄는 반복적이었다.
↳지난날 애굽에서 범한 죄를, 다시 반복한 것이다.
↳그때 본인은 물론이고, 사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조카 롯에게도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나서, 똑같은 죄를 되풀이한 것이다.
↳죄가 이렇게 무섭다.
↳아예 처음에 짓지 않아야 한다.
↳한번 지어본 죄는, 미워하면서도 또 지을 수 있다.
↳죄를 지을 상황에 직면하면, 다른 사람보다 쉽게 지을 수 있다.

-사실 죄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누구에게든지 달콤하게 찾아오는 것이 죄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죄의 유혹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받았다고, 죄의 유혹에서 면제받는 것이 아니다.
↳전도를 많이 하고 선교적 삶을 산다고, 죄의 유혹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도를 많이 하고, 금식을 하는 사람도, 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같은 죄를 더 이상 반복하여 짓지 않도록, 우리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죄와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죄는 급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어서 지은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면이 있다.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그는 아내와 함께 죄 지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는 반복적인 죄 못지않게, 죄질이 좋지 않은 범죄이다.

-우리가 살면서 죄를 안 지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없어서 죄를 짓곤 한다.
↳대개는 우발적으로 지은 죄이다.
↳그게 인간의 몸을 입은 우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마르틴 루터의 말에 공감이 간다.
↳“우리는 의인이지만 동시에 아직도 죄인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고 쳐도, 죄를 계획하지 않아야 한다.
↳죄를 작심하고 짓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똑같은 살인이라도, 우발적인 살인인가, 계획적인 살인인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 목사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목사님, 이번 한 번만 은행을 털고 깨끗이 손 씻겠습니다.”
↳그 사람이 전에 지은 죄보다, 이번의 죄가 훨씬 크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계획적인 죄를 짓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실수한 것보다,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건,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아브라함의 편을 들어주셨다는 사실이다.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셨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하나님은 비록 아브라함이 큰 실수를 했지만, 개입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호해 주셨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기 백성에게 필요하다면, 꿈을 통해서라도 위기를 막아주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콤플렉스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 것 같은가?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건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줄 안다.
↳우리에게 있는 약점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육체적 가시를 허락하심도,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자고해지기 쉽다.
↳스스로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교만해지기 쉽단 말이다.
↳우리가 그걸 아무리 부정해도, 우리의 지나간 삶의 노트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CCTV에 담겨져 있다.

-자신의 약점 때문에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자신의 육체의 가시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건 도리어 축복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약점을 직접 챙기셨다.
↳아브라함이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벅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꿈을 통해, 비상 개입을 하신 것이다.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뭐라고 하셨는가?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사라를 건드렸다가는 너 죽는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아비멜렉의 입장에서 참 억울한 일이다.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사실 아비멜렉은 잘못이 없다.
↳그의 항변을 들어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
↳잘못이 있다면, 거짓말을 한 아브라함에게 있고, 공범인 사라에게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편들어주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약점까지도 책임져 주신다.
↳베드로를 보라.
↳그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 약점이 있었다.
↳전적인 헌신이 요구되는 제자에게, 결혼했다는 것은 커다란 약점이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한번쯤은 ‘내가 결혼만 하지 않았어도’ 하는 생각을 해봤을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모가 열병에 걸렸다.
↳자기가 집에 있었다 해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내의 얼굴을 보기가 너무 미안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
↳집을 방문하여,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다.
↳베드로의 약점을 책임져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그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이었다.
↳왕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죽음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 비상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도 아브라함이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사라에게 큰문제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급작스럽게 현몽하신 것이다.
↳그 때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아브라함과 사라가 속여서 이렇게 된 것이지, 자신은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다고 했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사라를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고, 적정한 신부대금을 치르고 아내로 맞았다는 것이다.
↳아비멜렉의 말은 사실이다.

-그런 아비멜렉의 말에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하나님께서 정상을 참작해 주신 것이다.
↳모르고 그랬다는 것을 이해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범죄”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아비멜렉이 사라를 범하는 것은, 누구에게 죄를 짓는 것인가?
↳직접적으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짓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범죄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란 말인가? 맞다.
↳그럼 교인들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란 말인가? 맞다.
↳목회자에게 죄를 범한 것이나, 교우들에게 죄를 범한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다.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왠지 시무룩하셨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끼리,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에는 거짓이 가득했고, 손에는 강포가 있었고, 발을 피 흘리는데 달려가기를 좋아했다.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무시했고 외면했다.
↳그러고도 아침저녁으로 상번제로 드리고, 절기 때마다 성전을 찾았다.
↳그 제사를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았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사람을 중시한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돌려보내라 하시면서, 추가적으로 아브라함에 대해 특별한 호칭을 부여하신다.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아브라함을 뭐라고 호칭하셨는가?
“그는 선지자라”
↳선지자가 뭐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을 나타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행하여야 할 사람이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참 선지자의 삶은 그랬다.
↳이사야가 그랬고, 예레미야가 그랬고, 에스겔이 그랬고, 호세아와 아모스가 그랬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다가, 비참하게 생애를 마감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선지자란 호칭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호칭하셨다.
↳비록 아브라함이 부족하지만, 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불렀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셨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생전 기도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는 없다.
↳아브라함이 순간순간 기도의 삶을 살았던 것을, 지금 인정해 주고 있다.
↳소돔에 있는 조카 롯을 위해 중보기도자로 설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의 지난날들이, 하나님께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지길 원하는가?

-전날 하나님께 호되게 당한 일을, 아비멜렉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8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그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난 것을 보면, 꿈에서 깬 후에, 그가 거의 잠을 못 이룬 것 같다.
↳사실 그런 꿈을 꾸고 나서, 다시 잠을 청한들 잠이 오겠는가?
↳그는 일찍 모든 종들을 불렀다.
↳종들은 무슨 큰 일이 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른 시간에 부른 것도 그렇고, 왕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비멜렉이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원 왕도 싱겁긴... 그깟 꿈 얘기하려고 우리를 이 시간에 불러내...!!’ 했는데, 점차 이야기가 진행되자, 그들의 얼굴빛이 두려움으로 변했다.

-아비멜렉은 종을 시켜,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따져 물었다.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책망을 받고 있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꼴이, 지금 아주 우습게 되었다.
↳불의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해야 할 선지자가, 도리어 책망을 받고 있으니, 뭐가 거꾸로 바뀌었다.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사실 오늘 이 시대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각종 사건 사고 때마다, 교인이 안 낄 때가 있었는가?
↳천국의 윤리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이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그럴 때 그들의 비판을 무조건 무시하면 안 된다.
↳궁색한 변명부터 늘어놓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질책하시는구나’ 자성할 수 있어야 한다.

-아비멜렉의 책망에 대해, 아브라함은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첫 번째 이유는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랄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아내를 빼앗기 위해 자신을 죽일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그랄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도덕도 윤리도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생각한 이상으로, 그들은 신사들이었다.
↳아비멜렉만 해도, 경우를 알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이 그곳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함으로,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질 때가 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나쁘고, 믿는 사람들은 다 좋은 것으로 여길 때가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틀린 말이 아니다.
↳아무래도 믿는 사람이 조금 낫다.
↳그러나 예수를 믿다가 관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믿는 사람에게 당한 상처 때문이다.
↳아비멜렉과 아브라함만 놓고 보더라도, 아브라함이 아비멜렉보다 못한 면이 있지 않는가?

-아비멜렉에게 핑계를 대는 아브라함에게서, 신앙인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은,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은, 사람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편견으로 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자기 합리화이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누이”라고 말한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실제로 누이가 맞는가?
↳맞다. 결혼 전에는 누이였던 게 맞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가 맞다.
↳아무리 오누이 사이로 하자고 굳게굳게 약속했어도, 지금은 아내이다.
↳상황에 따라서, 사라가 자기 아내가 되기도 하고, 누이가 되기도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이다.

-우리도 살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이 실제로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한다.
↳말씀 앞에서 자꾸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면 안 된다.

-아브라함의 구차한 이유를 듣고, 아비멜렉이 어떻게 나오는가?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돌려보냈다.
↳양과 소와 종들을 딸려서 말이다.
↳자기에게 심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엄청난 후대를 하고 있다.
↳이것까지는 12장에 나오는 바로와 같다.

-그 다음은 다르다.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했는가?
창 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사실 쫓아낸 것이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자기 곁에 머물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는 사리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자기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자기가 사는 곳에 함께 살기 원한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처음 만났을 때, 선지자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에도, 아브라함을 철저히 낮아지게 만드신 후, 다시 아브라함에게 선지자로 살 기회를 주신 것이다.

-아비멜렉은 사라에게도 한 마디 한다.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뼈 있는 말을 한다.
↳아브라함에 대해 “네 남편”이라고 하지 않고, “네 오라비”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라의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은 천 개를 건네주었다.
↳은 1천 세겔을 말한다.
↳1세겔이 석 돈쯤 되니까, 1천 세겔이면 적은 것이 아니다.
↳이건 사라에 대한 속전의 의미가 있다.
↳사라가 순결하다는 확인이다.
↳또 아브라함과 관계 개선을 바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의외의 대우를 받은 아브라함은 너무나 미안했고,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했다.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얼마 전까지 완전히 밑바닥을 헤매던 아브라함의 권위가 회복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다시 열어주신 것이다.
↳이제 아브라함은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도 아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당당히 서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높이시니까, 그가 하루아침에 존귀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를 광야로 몰아가기도 하신다.
↳약점으로 인해 고생하게도 하신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고통스럽게도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 자리에 방치해두시는 분이 아니다.
↳불신자들에게 질책을 받고, 조롱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높여주시는 분이다.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 때까지 기도로 버텨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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