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강해 12(끝):예수 :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마 1:18-25)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9-11-17 14:20
조회
838
하나님의 이름 강해 12
예수 :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마 1:18-25)
2019. 11. 17.


프롤로그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많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한마디로 말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어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 혼자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거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다.
↳믿음 없는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믿음 없인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무슨 신화나 꾸며낸 전설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할 수 있다.
↳비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믿어진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다.

-성경에 많은 이적들이 있다.
↳그게 자연스럽게 믿어지는 게 기적이다.
↳아무리 믿으라고 총칼을 들이대도, 안 믿어지면 할 수 없다.
↳아니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감사하게도, 그게 자연스럽게 믿어지는 걸 보면,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간혹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것은 믿고, 어떤 것은 믿지 않고, 자기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는 사람이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재미있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어린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를 예수님이 축사하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이 그것을 받아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성경대로 믿는다.
↳그런데 색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어린 아이가 자기가 먹을 점심을 용기 있게 내어 놓자, 자신의 점심을 내놓지 못했던 어른들이 부끄러움을 느껴서, 너도 나도 내놓아 나눠먹었다는 것이다.
↳색다른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색다르게 믿지 않고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모인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를 거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도 그렇다.
↳우리는 갈라진 홍해를 마른 땅처럼 지나갔다고 성경대로 믿는다.
↳그런데 그들은 홍해가 아닌 갈대숲을 지나갔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애굽 군대가 갈대숲에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기적이다.

-‘오병이어 급식 이적’, ‘이스라엘 백성의 홍해 도하’...이런 일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가능하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라면 처녀의 몸에서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사람의 보기에는 기적이지만, 하나님께는 일상사에 불과하다.
↳돌고래의 수영 솜씨는, 사람의 보기에는 신기에 가깝다.
↳그러나 돌고래에게 있어서는, 수영이 일상사에 불과하다.
↳만약에 돌고래가 사람 정도밖에 수영을 못한다면 그게 기적이다.

-지렁이가 한 마리 죽어 있다.
↳죽은 지렁이를 발견한 개미들은, 그 맛있는 고기를 자기들의 아지트로 옮기고 싶어했다.
↳수십 마리가 달라붙었는데, 이 고기가 얼마나 무겁든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때 길을 지나가던 한 아이가, 개미들의 끙끙대는 광경이 하도 재미있어서, 막대기로 젓가락을 만들어 지렁이를 개미집으로 옮겨주었다.

-개미에게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세상에 그런 기적은 지금까지 보도 듣도 못한 일이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그게 별 일 아니다.
↳우리 머리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거 자체가, 벌써 잘못된 것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인간이 측량하겠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해되어지는 신은 신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배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으로 완벽하게 파악되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야트막한 지식으로 깨달아지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해의 영역에 속하는 분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속한 분이다.
↳먼저 믿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이해가 된다.

-나는 하나님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다.
↳내 지식으로 이해될 때만 옳은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옳다고 믿는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참 불행하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안 믿어지면, 그것처럼 비참한 것도 없다.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기 바란다.
↳우리가 잘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면 “아멘” 하고 수긍할 수 있는,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사생아인가?’ 맹랑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호적상 육신의 아버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주님은 사생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그런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계산하지 못하실 정도로, 머리가 둔하신 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이 꼭 여자의 후손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남자의 씨로 말미암아 주님이 나셨다면, 주님 역시도 죄인일 수밖에 없다.
↳그럼 창세기 3:15 말씀은 거짓으로 판명나고 말았을 것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이 대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친히 대속의 제물이 되는 것이었다.
↳제사에 있어서 제물이 흠이 있으면 안 된다.
↳죄인이 어떻게 죄인을 위해 죽을 수 있겠는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선, 죄 없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사람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신의 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는데, 깨끗한 그릇이 필요했다.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여야 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는 완벽한 신이다.
↳하지만 그분은 혼자 모든 일을 진행하는 걸 좋아하시지 않는다.
↳사람들과 동역하는 걸 좋아하신다.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를 사용하셨다.

-마리아는 대단한 여성이다.
↳예수의 어머니가 될 만한 정말 훌륭한 여인이다.
↳가톨릭에서와 같이, 신처럼 추앙을 받아선 곤란하겠지만, 보통 여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여성임에 틀림없다.

-마리아는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다.
↳당시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임을 당했다.
↳누구도 간음한 여인을 동정해 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자기 뱃속에 있는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아무리 설명한들, 누가 그걸 믿어주겠는가?
↳마리아는 꼼짝없이 죽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가 아님에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드렸다.
↳아니 자신의 생명마저 드린 것이다.

-그리고 죽음보다 더 부끄럽고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해를 받아 버림을 받는 것이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입게 될 상처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치료하기 힘든 것이다.
↳마리아는 그것까지도 각오한 순종을 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죽지도 않게 하시고, 버림도 당하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주님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섬기는 사람들을, ‘나 몰라라’ 버려두지 않으신다.
↳풍랑을 맞기는 하나, 배가 침몰되지는 않게 하신다.
↳비틀거리기는 하나, 아주 넘어지지는 않도록 도우신다.
↳실수하기는 하나, 망하지는 않도록 인도해 주신다.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는 않도록 붙들어 주신다.
↳그걸 믿음으로 순종한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잘 보여주신다.

-마리아는 그렇고, 그럼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은 어떤가?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인은 아니다.
↳요셉은 법보다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법으로 심판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지만, 그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인간적으로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신감에, 온 몸이 떨렸을 것이다.
↳당장에 요절을 내도 시원하지 않을 일이, 자기에게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여인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고 생각하니, 제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분통이 터졌다.
↳사랑한 만큼 믿었고, 절대적으로 믿었던 만큼,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요셉은 그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워낙 인생이 달린 문제라, 요셉이 즉각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던 거 같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것이다.

-자르기란 쉽다.
↳정리해 버리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원상태로 돌리는 것은 어렵다.
↳본래대로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여간 어렵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받아 죽게 되었다.
↳대부분 조정 대신들은 이순신을 없애려고 했지만, 류성룡은 나무를 키우기는 어렵지만 자르기는 쉽고, 한 번 자른 나무는 다시 소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이해시켜, 이순신을 죽음을 면하게 하고 백의종군의 기회를 주어, 우리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그 유명한 명량대첩을 일궈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실수가 따라 다닌다.
↳목회자도 사람인양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장로님도 사람인지라 본의 아니게 실수를 범할 때가 있다.
↳단지 눈에 선명하게 띄느냐, 감추어지느냐, 크게 부각되느냐, 작게 감추어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교회는 서로의 실수를 품어주고, 허물을 덮어주는 공동체여야 한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을 수 있는 길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남의 실수를 품어주고,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이다.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법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법의 정신을 외면하고, 법 조항에 메이는 것이 율법주의다.
↳모든 믿음의 식구들이, 요셉 같은 의인이 되기를 바란다.

-어떨 땐 하나님이 좀 짓궂다는 생각이 든다.
↳요셉이 오해하지 않도록, 마리아가 잉태하기 전에, 미리 귀띔이라도 좀 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네 아내를 통해 온 인류의 구세주가 태어나게 될 것이니, 네 아내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마음의 준비를 잘하고 있으렴!”
↳이 정도의 말씀만 해주셨어도, 요셉이 그렇게 마음고생 하지 않았을 텐데, 하나님은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가끔 숨어 계시기도 한다.
↳그래서 불러도 대답이 없고, 찾아도 보이지 않고, 뒤돌아봐도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나님이 먼발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것이다.

-그 때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곁을 떠난 줄 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이 때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절망하고, 믿음을 포기해 버린다.
↳명심하라.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셨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사람이니 이름이 있어야 한다.
↳그분은 이름까지 갖고 태어나셨다.
↳예수였다.

-“예수” 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흔하디흔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다른 예수와 구별하기 위해, 예수님이 자라난 동네 이름을 붙여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다.
↳그분은 태어나실 때도 평범하다 못해 비참한 곳에 보금자리를 잡았었는데, 그 이름에서도 평범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평범하지 않은 분이다.

-우리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과 다르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다.
↳그건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른 질그릇처럼 평범한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다른 질그릇과는 질적으로 다른 점은 우리 안에 보배를 가졌기 때문이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 안에 있는 보배는 예수다.
↳그리고 예수란 이름의 뜻은 구원이다.
↳우리가 예수를 부를 때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는 고백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 이름을 늘 불러야 하며,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의 가슴이 뭉클해져야 한다.

-그 이름에 능력이 있다.
↳예수는 원수 마귀가 벌벌 떠는 유일한 이름이다.
↳예수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무릎을 꿇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다.

막 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예수는 구원의 이름이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는 치유의 이름이다.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는 기도응답의 이름이다.

-찬송가 91장 3절
존귀하신 주의 이름 우리 기쁨 되도다.
주의 품에 안길 때에 기뻐 찬송 부르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그런데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임을 아는가?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임을 증거하고 있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 17:11...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 때 요엘서를 인용했다.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요엘서에 나오는 “주”는 여호와를 가리킨다.
↳그런데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주”를 예수님에 적용하고 있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곧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자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는 별명이 있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오래전 선지자가 지은 별명,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이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만큼, 복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는 가정은, 결코 불행해질 수 없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 운전대를 붙잡아 주신다는 확신이 있으면, 초행길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 사업에, 내 직장에, 내 일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지금은 어려워도 넉넉히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할 때든지, 임마누엘의 복이 있기를 바란다.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신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나실 것은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말씀이다.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성경은 믿음 없는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책인데, 한편으로는 참 신기한 책이기도 하다.
↳구약에 몇백 년 전에 예언된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진 것을 보면, 그저 입을 다물 수 없다.

-이 예언을 들은 당시 사람들이, 이사야를 얼마나 우습게 여겼겠는가?
↳아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하라”며, 빈정거렸을 것이다.
↳“나 참 살다 살다 별소리를 다 듣는구만” 하고, 그를 실없는 사람 취급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런 말을 하고 싶어서 했을까?
↳선지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자기 입에 담아준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선지자인 것이다.

-사실 설교자도 마찬가지다.
↳설교를 준비할 때 고민될 때가 있다.
↳간혹 설교하기가 참 곤란한 본문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러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슬쩍 든다.
↳그럴 때 양심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네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네가 만약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니라.”
↳이건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들고 몸부림치는, 이 땅의 모든 설교자의 고백일 것이다.

-아무리 법적으로, 사회 통념적으로, 합법화되고, 인정된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어긋나면, 그건 잘못 됐다고 말해야 한다.
↳아무리 권위가 추락한 시대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회의 질서’를 ‘가정의 질서’를 ‘영적인 질서’를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진리이다.
↳셀리더는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쳐야 한다.
↳자기 생각을 덧붙이면 안 된다.
↳교회학교 교사는 하나님 말씀만 가르쳐야 한다.
↳자기 가치관을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게 말씀을 맡은 자의 자세다.

-요셉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서 말씀을 맺겠다.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은 천사의 분부대로 행했다.
↳처음에는 가만히 끊고자 했지만, 이내 생각을 돌이켰고, 가서 자기 아내를 데려왔다.
↳아내에게 해명을 듣고 나서, 순종한 것이 아니다.
↳천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다.
↳완전히 이해가 돼서 순종한 것이 아니다.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순종했다.

-요셉은 바보처럼 우직하게 순종했다.
↳자기 신세를 망칠 수도 있는 위기였지만 순종했다.
↳동네에서 바보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순종했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와 평생을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데도 순종했다.

-한 번 순종하는 것이, 순종하지 않고 열 번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순종하기 전까지는, 그리 갈등이 오고, 고민이 되고, 밤에 잠이 안 오고, 골이 지근지근 쑤시고, 아프다가도, 눈 찔끔 감고 순종하고 나면, 진즉 순종할 걸 하고 후회한다.
↳순종을 하면 크게 손해를 볼 것 같아 머뭇거리다가도, 막상 순종하고 나면 왜 그리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한지 모른다.
↳알고 보면, 하나님을 위한 순종이 아니라, 나를 위한 순종이다.
↳순종하면 내게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구원의 이름이다.
↳예수는 치유의 이름이다.
↳예수는 기도 응답의 이름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