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35:마음의 밭이 중요합니다.(마 13:1-23)

작성자
류현철
작성일
2017-02-12 00:00
조회
1193
마태복음 강해 35마음의 밭이 중요합니다.(마 13:1-23)2017. 2. 5. 프롤로그

-나는 어려서 흙과 친하게 지냈다.
길이 흙이었고, 학교운동장이 흙이었다.
집마당이 흙이었고, 동네 놀이터가 흙이었다.
논이 흙이었고, 밭이 흙이었다.
흙이 좋아 흙에 산 것이 아니라 그 땐 그랬다.

-한 때 학교 운동장을 인조잔디로 바꾸는 게 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중단되고 있다.
알아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부가 학생들의 체육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17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해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사업을 추진했는데, 인조잔디에서 중금속인 납과 발암물질이 기준치의 수백 배를 초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인조잔디의 탄성을 위해 고무칩을 사용하는데, 이게 유해의 주범인 것이다.
고무칩은 오래 사용하면 작은 분말로 부서지는데, 이 화학물질이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축적될 수 있고, 고무칩에 중금속과 유기화합물질이 기준치 이상 들어가서 문제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흙을 밟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산행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천만 해도 냉천공원을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인간의 재료가 흙이어서 그런지, 흙에서 평안함이 느껴진다.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이나 식물은, 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정도는 다르다.
사람은 환경을 바꿀 수 있다.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동물은 환경에 적응하다가, 안 되면 자기에게 맞는 환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식물은 죽으나 사나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환경에 적응하면 사는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면 죽고 만다.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요인이 있다.
빛과 온도, 수분, 토양, 마지막으로 영양이다.
이 다섯 가지 요인이 다 맞아야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

-어떤 학생이 네이버 지식iN에 질문을 올렸다.
식물이 언제 잘 자라는가?
빛이 많을 때 작을 때?
기온이 높을 때 낮을 때?
수분이 많을 때 작을 때?
토질이 좋을 때 박할 때?

-누가 명답을 했다.
빛이 적당할 때 잘 자란다.
기온이 적당할 때 잘 자란다.
수분이 적당할 때 잘 자란다.
토질이 적당할 때 잘 자란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토양에 대한 것이다.
마음의 토양에 관한 것이다.
말씀 앞에 어떤 마음의 토양을 가져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어떤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어떤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실 지를 말해준다.-------------------------------------------------------

-오늘은 예수님이 야외수업을 하시는 날이다.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야외수업 장소로 들판이나 동산이 아닌 바닷가로 잡으셨다.
예수님의 사역 센타가 가버나움에 있고, 멀지 않은 곳에 갈릴리 바다가 있었다.
걸어서 얼마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움직이시기에, 무리들의 눈에 금방 띄었다.
예수님은 늘 무리들의 관심사였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대상을 배척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우리교회가 지역으로부터 환영받는 교회가 되는 방법이 무엇인가?
지역사회의 필요를 채워주면 된다.
정부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교회가 채워주고
지방자치단체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교회가 채워주고
시민단체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교회가 채워준다.
그런 교회는 지역 사회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걸 위해서는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다 필요하다.
아버지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깨끗한 물질을 채워달라고 더 기도해야겠다.

-예수님의 야외수업의 강단은 배였다.
예수님은 배를 강단 삼아 앉으셨고, 무리는 해변에 서 있었다.
예수님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무리에게 잘 들렸다.
무리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오늘은 말씀의 권세가 어떻게 나타날까?
예수님에게서 그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예배자의 자세이다.
이게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의 태도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시고, 설교자를 세우셨다.
이 설교자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본문으로 하여, 관찰 해석 적용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말씀을, 예배 때 회중에게 선포한다.
그걸 선포된 말씀 곧 설교라고 한다.
설교의 권위가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미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목사가 강대상에서 말했다고, 무조건 설교인 것은 아니다.
성경을 말해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말해야 한다.
하나님이 교회에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말해야 한다.
하나님이 예배를 위해 모인 회중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말해야 한다.

-당연히 회중은 설교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되도록 매일 기도해야 한다.
예배 때 설교자를 통해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면 은혜가 된다.
아멘하면서 들으면, 더 큰 은혜가 된다.

-설교자가 설교를 몇 편이나 했느냐가 중요하지 않듯이, 회중이 설교를 몇 편이나 들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설교를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피곤한데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졸린다.
그 때는 무슨 말을 들어도 소용이 없다.

-설교할 때 조는 교인이 있다면, 설교자에게 50%의 책임이 있다.
나머지 50%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
회중은 수동적인 입장에 있기에, 졸음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목사님은 그냥 자라고 한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옆의 분이 졸고 있으면, 귀에 대고 “그냥 주무세요” 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좀 더 인격적인 방법은, 스스로 졸음에 대처하는 것이다.
자기 살을 손으로 꼬집고, 볼펜으로 허벅지를 찔러도,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질 못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좌우 벽 통로에 서서 듣거나, 뒤에 가서 서서 듣는다.
그렇게라도 말씀을 듣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런 모습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특하게 보시겠는가?
또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조는 게, 고의는 아니어도, 타인의 말씀 듣는 것을 방해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천국이고, 수업방식은 비유이다.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야외수업을 할 때가, 마침 씨 뿌리는 시기였나보다.
배에 올라 있는 예수님의 눈에 저 멀리 씨 뿌리는 자가 보인다.
예수님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진리를 설명할 비유로 쓰셨다.
씨 뿌리는 자는 파종기에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걸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고 잘 활용하셨다.
주님의 관심이 말씀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말씀을 잘 전하신 것도 있겠지만, 주님은 어떻게 하면 하늘의 진리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 말씀하실까를 고민하셨던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설교자로 부름받은 모든 이들도 다르지 않다.
모든 생각과 시각이 설교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로 고민한다.
그렇다면 회중들도 어떻게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어떻게 말씀을 적용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스라엘에서 씨를 뿌리는 방법은, 우리나라처럼 농부가 직접 손으로 갈아놓은 이랑에 뿌리기도 한다.
가장 효율성이 높을 거 같다.
또한 가축을 이용하여 씨앗을 뿌리기도 한다.
가축의 등에 씨앗 담은 주머니를 달아, 이동할 때마다 주머니에 뚫린 구멍으로 조금씩 씨앗이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다.
아무래도 효율성이 떨어질 거 같다.
그밖에도 바람을 이용해 뿌리는 방법도 있을 거 같은데, 가장 효율성이 떨어지는 방법일 거 같다.

-농사에 있어서는, 씨 뿌리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씨 뿌리는 시기가 중요하다.
아무 때나 뿌린다고 추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적의 시기를 놓치면,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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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씨 뿌리는 방법도, 씨 뿌리는 시기도 아닌, 씨가 떨어지는 토양 곧 밭에 있다.
주님이 몇 종류의 밭을 예로 들었다.

-먼저 길 가이다.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농부가 직접 이랑에다 씨를 뿌린 것이 아님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인심 좋은 농부가, 일부러 길 가에 뿌려 씨를 새 밥이 되게 하겠는가?
씨 뿌리는 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씨가 길 가에 뿌려졌다.
당연히 흙에 묻히지 못한 씨는, 길 가에 뒹굴다가 새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물론 주님이 농사 얘기를 하려고 하신 것은 아니다.
그 정도 상식은 누구에게나 있다.

-제자들도 주님이 그걸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래서 무리들이 있는데 서는 못 물어보고 나중에 물었다.
덕분에 주님이 말씀하신 본래적 의미를, 우리도 알 수 있게 됐다.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씨는 말씀이다.
씨가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새가 와서 먹어버렸다는 것은,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간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에 비추어, 오늘 말씀이 길 가에 뿌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교자로서 슬프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말씀을 어렵게 전한다면 몰라도, 일상용어로 풀어 전하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정말이지 내 능력 밖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설교를 했는데, 마음 밭에 떨어진 말씀을 악한 자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길 가는 흙이 딱딱하다.
길 가가 본래부터 딱딱하지는 않았을 게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흙이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밟고 지나다니다보니, 어느 날부터 딱딱하게 굳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지금 길 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도,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는, 은혜도 받고 감격도 있었다.
교회 오는 것이 행복했고, 교우들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것들이 사라졌다.
은혜가 없으면 예민해진다.
감격이 사라지니 불평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교회 와도 행복한 줄 모르겠고, 교우들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그게 정상이 아니다.
그게 내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 밭이 길 가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안 된다.
고민만 하고 있어도 안 된다.
자신의 마음 밭 상태가 위중하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답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주어졌다.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기경하는 것이다.
사전에 보면 기경은 두 가지 뜻이 있다. ①논밭을 가는 것이다.
이 경우는 정상적인 논밭인 경우이다. ②묵힌 땅이나 생땅을 일구어 논밭을 만드는 것이다.
길 가는 여기에 해당된다.

-길 가는 정상적인 논밭이 아니다.
예전에는 정상적인 논밭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묵힌 땅이고 생땅이나 다름없다.
생땅을 일구어 논밭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 죽을 고생을 해야, 몇 마지기 가능하다.

-마음밭이 길 가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많이 쏟아야 한다.
먼저 딱딱해진 땅을 눈물로 적신 후에야 기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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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흙이 얕은 돌밭이다.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아니 왜 흙이 얕은 돌밭에다 씨를 뿌렸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동물을 이용한 씨 뿌리기나, 바람을 이용한 씨 뿌리기를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동물이 흙이 얕은 돌밭이라고 피해 가겠는가?
바람을 이용하여 씨를 뿌릴 때, 씨가 어디인들 안 날아가겠는가?
가리지 않고, 길 가에도 떨어지고, 흙이 얕은 돌밭에도 떨어진다.

-앞에서 살폈듯이,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
싹을 틔워보지도 못하고,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그에 비해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조금 나은 편이다.
그나마 싹은 내보지 않는가?
그러나 씨를 뿌리는 목적을 생각해보면, 더 낫다고도 말하기도 곤란하다.

-흙이 얕은 돌밭에 뿌려진 씨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을 살펴보자.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아무래도 흙이 얕은 돌밭 마음을 가진 사람은, 초신자에 해당될 거 같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고, 교회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해당될 것이다.

-그들도 잘 믿고 싶어 한다.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주일예배가 기다려진다.
말씀을 사모한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다.
은혜 받은 자랑을 한다.
기도 응답받은 간증을 한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고백한다.

-그리고도 어떤 문제가 닥치면 흔들린다.
말씀대로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신앙이 흔들린다.
“예수 믿어도 별 거 없네요” 한다.
“당분간 교회 쉬고 싶습니다” 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주님이 말씀하셨다.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씨가 뿌려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씨가 떨어진 곳이 흙이 얕은 돌밭이기 때문이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잠깐 싹은 낼 수 있어도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뿌리를 통해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으로 강렬한 태양빛에 말라죽게 된다.
뿌리가 잘 내린 식물은, 태양빛이 비추면 더 잘 자란다.
그러나 뿌리가 없으면, 태양빛이 비추면 더 빨리 말라죽는다.

-그래서 초신자 때 양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
양육은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예수 믿은 지 꽤 되었고, 교회를 상당기간 다녔던 사람인데도, 흙이 얕은 돌밭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흙이 얕은 돌밭인 점은 같은데, 초신자와는 다른 점이 있다.
그에게는 사모함이 없다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사모함도 없고, 말씀에 대한 사모함도 없다.
교회 나오는 것도 자발적이지 않다.
그래서 교회 안 나가도 되는 합법적인 핑계를 찾는다.
그러니 몸은 교회당에 있지만, 예배 드리는 시간이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아멘 소리가, 자기에게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릴 뿐이다.

-마음 밭이 흙이 얕은 돌밭인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 밭이 길 가인 사람은 눈물로 기경을 해야 하는데, 흙이 얕은 돌밭인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돌을 제거하는 것이다.
돌을 제거하는 것은 분명히 힘들다.
그래도 그 방법 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 돌을 갖고 있다.
상처의 돌, 아픔의 돌, 원한의 돌, 고통의 돌, 등 치유되지 못한 갖가지 돌들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힘들지만 그 돌들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혼자서는 그게 힘들다.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교회에서는 회복캠프를 통해 도움을 주고 있다.
3월 첫 번째 토요일인 4일에 열 예정이다.
일정을 잘 조절하여, 모든 교우들이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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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가시떨기이다.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여기서 가시떨기는 밭 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렴 밭 안에 가시떨기가 있겠는가?
길이나 돌은 밭 안에 있을 수 있지만, 가시떨기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밭도 본래는 산이나 들이었다.
가시떨기는 그곳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던 터줏대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이 밭이 되었다.
가시떨기는 담 밖으로 밀려났지만, 늘 밭으로 세력을 뻗치고 싶어한다.

-명절 때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곤 한다.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이 농사를 했던 밭 근처를 지나가는데, 지금은 그곳이 산과 구별이 잘 안 된다.
산과 밭의 경계였던 담이, 그곳이 예전에 밭이었음을 말해준다.
밭이 가시떨기에 완전히 점령을 당하고 만 것이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을 보자.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역시 동물이나 바람을 이용한 씨 뿌리기였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가시떨기가 자라고 있는 곳은 멀쩡한 땅이다.
가시떨기가 아무리 생명력과 성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길 가나 흙이 얕은 돌밭에서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곡식은 그런 땅에서 자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가시떨기는 그런 땅에서도 어느 정도는 생존하고 자라기도 한다.
또 가시떨기는 한 나무만 있지 않다.
처음에 한 나무만 있어도 금방 퍼져나간다.
그래서 다른 나무들을 밀어내고 가시떨기 군락을 만든다.
그곳에서 다른 나무는 버텨낼 수 없다.

-씨가 가시떨기에 떨어졌다.
흙이 있으니까, 싹은 났고, 어느 정도 자라기도 했다.
그러나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서, 더 이상은 자랄 수 없다.
말씀의 씨가 떨어졌다.
아멘으로 받았다.
말씀에서 은혜를 받았다.
은혜 받은 자로 살겠다며, 교회 문을 나섰다.

-집에 도착하니, 집구석이 어질러져 말이 아니었다.
온갖 돈 내라는 청구서가 눈에 들어왔다.
당장에 돈은 없고 세상의 염려만 됐다.
다음날 직장에 갔다.
직장에서 검은 재물의 유혹이 왔다.
마침 급하게 필요한 만큼 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교회에서는 나름 좋은 그리스도인이다.
어느 누구에 비해도 떨어지지 않는 교인이다.
말씀도 잘 듣고 잘 깨닫기도 한다.
성경읽기도 열심히 하고 성경공부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정생활은 충실하지 않다.
가정에서 말씀의 열매가 없다.
직장생활은 성실하지 못하다.
직장에서 말씀이 결실하지 못한다.

-가시떨기를 그대로 둔 채, 말씀을 들어서 그렇다.
마음밭이 가시떨기인 경우는, 교회 직분자에게 많을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있는 체 하고, 기쁨이 없으면서도 기쁜 체 한다.
겉으로는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를 외친다.
하지만 속에는 세상의 염려로 가득차 있다.
입술로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고백한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 이 돈만은 안 됩니다.” “하나님 십일조만 빼주면 감사헌금과 선교헌금은 잘 하겠습니다” 한다.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다.
교회 직분자쯤 되니까, 말씀을 취사선택할 능력이 있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고, 자기 필요한 말씀만 듣는다.
그런데 어느 날은 평소 같으면 그 말씀을 듣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
그러나 혹시 몰라서 순종을 늦췄다.
그랬더니 감동은 사라지고, 결국 순종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마음밭이 가시떨기란 말을, 히브리서 기자는 달리 표현했다. 히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쓴 뿌리라고 했다.
쓴 뿌리는 뽑아야 한다.
그런데 이 쓴 뿌리가 잘 뽑히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쓴뿌리를 깊이 내렸기 때문이다.
또 뽑아도 완전하게 뽑히지를 않는다.
언젠가 덜 뽑혔던 뿌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쓴 뿌리 뽑기는 교회에서 회복캠프를 통해 도움을 주고 있다.
다시 한 번 부탁하지만, 3월 첫주 토요일 회복캠프에 참석하라.-------------------------------------------------------

-마지막으로 좋은 땅이다.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바로 주님의 설명을 듣도록 하겠다.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말씀을 듣고 제대로 깨닫기만 하면, 결실은 확실하게 보장된다.
백 배냐 육십 배냐 삼십 배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최하 삼십 배이다.
30%가 아니고, 30배임을 기억하라.
말씀에 결실이 없는 사람은, 마음밭이 길 가이거나, 흙이 얕은 돌밭이거나, 가시떨기이거나이다.
좋은 땅은 최하 삼십 배의 결실이 있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우리에게 보다 급한 것은, 말씀 읽기도 듣기도 연구하기도 암송하기도 묵상하기도 아닌, 마음밭 가꾸기이다.
우리는 마음 밭의 옥토화 작업을, 서둘러서 해야 한다.
먼저는 내 마음 밭이 어떤 밭인지 정확하게 진단을 한 후, 그에 맞게 작업을 해야 한다.
충격을 받은 만큼, 옥토화 작업을 잘 할 수 있다.
자기 마음밭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른다.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주님이 비유 수업을 하신 이유가 나온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천국 비밀을 아는 것이,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 비밀을 알게 된 우리는 복 있는 자들이다.
한편으로는 그 비밀을 우리만 알고 있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가족, 우리의 가까운 이웃에게 전하여, 그 천국의 기쁨을 함께 누리자.